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4)
내 마법이 더 쎈데-114화(114/203)
< 제57장 – 남아있는 찌꺼기 (2) >
장소는 쉼터의 집무실.
으득.
의자에 몸을 기댄 카모쉬 자작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아침부터 황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지난 밤, 자신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언질 없이 멋대로 쉼터를 떠나버린 것이다.
듣기로는 그녀를 수행하던 기사 한 명이 동행한 듯한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황녀님을 찾아보겠네.”
황녀가 사라졌다는데, 당연히 그녀를 수행하여 이곳까지 온 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검성을 위시한 일행마저 황녀 수색을 이유로 카모쉬 자작의 손을 벗어나버렸으니.
‘이대로 있으면 곤란해.’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대업’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그들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된 건 아무래도 곤란함을 넘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알로스린 공작, 황녀가 떠나는 것조차 붙잡지 못했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처음부터 이번 계획은 알로스린 대공의 의뢰를 받아, 서부 영지의 장악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준비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녀가 나타나다니?
여기 들인 품이 얼마인데, 잠자코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카모쉬 자작은 씩씩 거리며 연락용 마도구를 손에 쥐었다.
‘연락을 하지 말라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내 쪽이지만······.’
원래는 정보 유출을 이유로 최전선에서 계획을 실행 중인 놈들과 연락을 끊은 카모쉬 자작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조금 달랐다.
‘다시 그 시궁창 쥐새끼 같은 놈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니······.’
밑바닥 지하 수도에서 살아가는 쓰레기들.
놈들과 다시 말을 섞어야한다니, 결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불평을 꺼내들 때가 아니었다.
삑삑.
잠깐의 조작 이후, 몇 번의 신호가 울렸을까.
달칵.
“······나다.”
지지직.
거울처럼 생긴 마도구 건너편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나타났다.
– 호오······. 자작님께선 갑자기 무슨 용무로 연락을 취하셨는지? 서로 연락을 끊자고 말을 꺼낸 건 그쪽 아닌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
정말 몇 번을 보더라도 비위가 상하는 놈이었다.
아무리 알로스린 대공이 보내온 자라고는 하지만, 자작인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저런 태도를 취하다니.
‘쓰레기 주제에······.’
속내는 씹어 넘긴 채로.
“중요한 일이다. 칼센의 황녀가 이곳을 찾아왔다. 이대로 있다간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몰라.”
– 제도에서 냄새를 맡았단 말인가?
“아니, 이번 방문은 황녀의 독단이라고 하더군. 다만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검성까지 찾아왔다.”
건너편의 남자는 침묵했다.
아무리 여유가 넘치는 그라고 해도 검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앞에선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잠시 후.
– 혹시 그 중에 ‘마법사’가 있었나?
‘뭐?’
남자가 꺼내든 말을 듣곤 카모쉬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마법사는 왜 찾는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목소리를 애써 꾹 눌러 삼키며, 잠시 자작은 머리를 굴렸다.
마법사라면······.
“아니, 일행 중에 마법사는 없었다.”
–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지.
돌아온 대답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다.
– 우리가 하는 계획은 신이 내려준 ‘선물’을 통해 행하는 일. 아무리 검성일지라도, 마력 그 자체를 감지하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냄새는 맡을 수 없어.
정말로 그런가?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물건은 언제쯤 완성되는 거지?”
–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 순도를 높이기 위한 실험은 막바지야. 당신도 알다시피 마지막 ‘최종 접종’을 통해 우리는 완성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다! 얼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황녀에게 걸리는 것은 고사하고, 알로스린 그 남자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란 말이다!”
카모쉬 자작이 터트린 노호성에도, 화면 너머의 남자는 그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 그 ‘망할 놈’만 없었다면 우리 계획은 좀 더 빨리 이루어졌겠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그건 카모쉬도 잘 알고 있었다.
우매한 대중 사이에서 돌고 있는 ‘괴담’.
그 괴담의 주인공이자,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그 놈의 망할 자식 때문에 계획의 진도가 느려졌다.
놈이 마법사인지, 아니면 별개의 능력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 이것도 신께서 우리에게 내린 시련이라고 생각해야지.
“헛소리라면 됐다. 너나 나까지. 전부 이번 일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걸 잊지 마라.”
– 크흐흐. 잘 알고 있다고, 이제 바로 내일이야. 내일이 되면 ‘작품’은 완성된다. 그러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서부의 영지는 전부 당신의 ‘군대’가 되어주겠지.
작전의 결행일은 바로 내일.
하루만 황녀를 붙잡아두고 있었다면,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를 일도 없었을 것을.
······참으로 공교로웠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운명이 그들을 이끌어 이곳으로 인도한 것처럼.
‘······운명?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 뭐, 그래도 일단 황녀를 내버려두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니, 우리 쪽에서도 애들을 풀어보지. 딱 하루야. 하루만 버텨보라고.
뚝.
상대는 자기 할 말만을 남겨둔 채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조차도 카모쉬에겐 머리가 끓어오르는 짓이었지만.
어쨌거나.
“······내일까지, 딱 하루란 말이지.”
남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최종 개시 시간.
앞으로 하루 안에 황녀를 찾아내서, 반드시 붙잡아야만 한다.
그래야.
‘대업이 무사히 이루어진다.’
카모쉬 자작의 눈동자가 형형히 빛나기 시작했다.
****
혼란은 독처럼, 그리고 병처럼 전염되어 퍼져 나간다.
동시에 귓가를 스치며 울려 퍼지는 것은.
– ♪~♪~
심장을 어루만지듯, 아련하고도 낮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의 아리따운 소리였으니.
– 도, 도망쳐! 환자가 나타났다!
– 여기 있으면 병이 옮을 거야!
– 저리 비켜!
음악을 피해, 그리고 병이 발병한 환자를 피해 빈민가에 모여 있던 이들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광기가 감도는 풍경이었다.
“아르민 경! 피아노 소리가······!”
“그래, 나도 들려.”
선율이 귀에 익다.
그때와 같다.
처음 모르티엔의 영지 초입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음악이었다.
동시에 으득. 으득. 하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앞에, 전염병이 발병한 자가 있다.
“······!”
미네르바는 망설임 없이 빈민가를 향해 내달렸다.
잠깐이지만 아르민의 눈에 비쳤던 올곧은 눈동자.
병이 옮을지도 모르는데, 한 치의 주저도 없는 걸음이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이거지.’
아르민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 걸음이 닿은 곳은 작고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그, 그르륵!”
거기엔 입가에서 피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키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보!”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가 타는 얼굴로 남편을 불러댔다.
“어서 음악을 멈춰야 하네······!”
미네르바는 다급하게 아르민을 돌아보며 그리 말했지만.
음악을?
의문이 치솟는다.
정말로 이건 음악이 벌인 일인가?
아르민의 감각에 느껴진 바로는, 음악에선 아무런 ‘마력’의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소리이자, 그저 울려 퍼질 뿐인 선율
그런데도 이것이 정말 ‘신물’이 일으킨 현상이란 말인가?
“이대로 있다간······!”
미네르바의 후회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 그때.
– 미안해.
귓가에 와 닿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히 건네듯.
– 이 음악을 듣는 네가, 더는 괴롭지 않기를.
아픔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악에 섞여, 등을 쓸어 넘기며 속삭이듯 울려 퍼진 목소리를 뒤로.
투둑.
미네르바 황녀의 곁을 지나쳐, 중년 남성에게 달려든 이가 있었다.
그건.
“······어린아이?”
꾀죄죄한 몰골을 가진 꼬맹이였다.
녀석은 병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 손을 꼭 부여잡았다.
“제발, 형. 도와줘.”
아이는 누구에게 바라는 것인지 모를 목소리로.
“제발, 톰 아저씨를 구해줘.”
간절히 원했다.
순간 피아노의 선율이 강해진다.
그리고
“······어? 떨림이······.”
중년 남자의 몸에 찾아온 발작이 조금이지만 잦아들었다.
그 육체의 변모 과정이, 아주 약간이나마 기세가 줄어든 것이다.
이거라면.
‘······혹시?’
아르민에게 또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잠깐, 실례하지.”
“······누구?”
꼬마 곁으로 다가간 아르민은 남자의 맥을 만졌다.
체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림.
생체리듬 따윈 전부 뭉개지고, 그 내부 장기부터 천천히 ‘변모’하는 것이 아르민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그것이 아르민의 추측한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아르민 경···?”
“미네르바, 우린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를 접했던 걸지도 몰라.”
“무슨······.”
어째선지 이 변모의 과정이 아르민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다만 지금은 자세한 이야기를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누구세요?”
눈물 맺힌 눈동자로,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는 꼬맹이에게 아르민은 말했다.
“나라면 치료할 수 있다.”
“저, 정말인가요?!”
꼬맹이만이 아니다. 옆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이 반색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병을 치료하는 행위 자체는 아르민에게도 낯설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 번, 자신은 그 과정을 눈앞에서 목도한 적이 있었다.
‘민세희, 너라면 어떻게든 해냈을 테지.’
후배가 올곧은 의지로 일으켰던 기적.
그것을 자신이 흉내 내지 못할 리가 없다.
기억해내라.
그때 세희는 어떻게 행동했더라?
‘우선 육체를 스캔한다.’
마력을 침투해, 병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내부를 살핀다.
‘세포가 괴사하고, 다른 바이러스 같은 것이 장기를 대신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과정을 멈춘다.
그리고 치료를 이어나가며, 아르민은 마력의 공명현상을 이용해 들려오는 피아노의 선율을 증폭시켰다.
‘이미 붕괴해서 괴사한 육체는 마력으로 재구성하고, 대체하면 돼.’
물론 아무리 아르민이라고 해도, 자신도 아닌 타인의 육체를 그렇게 쉬이 마력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르민에겐 ‘그것’이 있었다.
‘3년분의 토지 영맥을 끊임없이 포식해온 탐식의 핵이라면, 부족분의 마력을 대체시킬 수 있어.’
분석, 중첩, 투사, 개시.
아르민이 쌓아온 현대 마법의 지식이 아낌없이 발휘된다.
그렇게 좀먹는 육체를 보수하고, 재건축하고, 다시 이끌기를 수십 분.
쿠웅.
마력의 파동이.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이 빈민가를 감싼 그 순간.
“좋아, 그럭저럭 치료는 끝났다.”
“아······.”
꾀죄죄한 꼬맹이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중년 남성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림이 멈춘 걸 느낀 것이다.
그렇게.
“······으윽, 여, 여긴?”
가까스로 중년 남성이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뜨자.
“정말로······, 치료, 됐어?”
“여, 여보!”
남자 꼬맹이는 시선이 아르민을 향했다.
사상 처음으로 그 놈의 병이라는 걸 치료한 아르민을 올려다보면서.
“아, 아으······.”
꼬맹이는 아르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누,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부탁드릴게요! 부디! 제 형을 구해주세요! 아저씨!”
······아저씨라니?
****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참. 어떻게 보답을 해드려야 할지.”
톰이라고 이름을 밝힌 중년 남성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의 부인 또한 연신 굽실거리며 감사 인사를 해왔지만.
“뭐, 운이 좋았다고 치지.”
그보다 달리 물어볼 것이 있었다.
“여긴 병이 통제된 환경 아니었나? 어째서 병이 발병한 거지?”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톰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역시 그놈의 음악 때문인가?”
아르민이 찔러본 말에.
“아니에요!”
그때 꼬맹이가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음악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네.”
미네르바의 말에도 꼬맹이는 고개를 휘휘 저어댔다.
오히려 그 음악은.
“제 형이 연주하는 거예요. 형이 연주하는 음악이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들었을 리가 없어요!”
“······연주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리 생각한 아르민이었지만.
“그게······. 저희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확실히 그 피아노 소리는······.”
“네······. 그 청년이 연주하던 소리가 맞죠?”
“무슨 소리지?”
아르민이 캐묻자, 톰은 주저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마을에 맨 처음으로 병에 걸린 환자가 나타났을 때,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해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지젠.
여기서 씩씩거리는 꼬맹이 지잔의 형이라고 톰은 말했다.
“지젠의 음악 덕분인지, 병에 걸린 사람들도 수일을 버티긴 했지만. 결국 환자를 치료해낼 순 없었죠.”
“피아노 소리로 병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야말로 사이비라고 할 수 있겠지.”
미네르바의 말엔 아르민도 동의했다.
실제로도.
“예···. 말씀이 맞습니다. 결국 저희 마을 사람들도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마을을 버리고 도망쳐야만 했었으니까요. 지젠은······. 결국 마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죠.”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톰은 말했다.
“남들이 병이 나타났을 때. 음악이 들려온다고 했을 땐 무슨 괴담 같은 이야기냐고 생각했습니다만.”
“정말 지젠의 피아노가 들려오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톰과 그의 아내는 그리 말하며 서로를 멀뚱거리는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음악과 병이라······.’
“그럼 지금 그 지젠이라는 남자는?”
“형은 여전히 마을에 있어요. 병을 막기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죠. 모두를 위해 마을에 남은 거예요!”
지잔이 꺼낸 말에, 이번엔 미네르바가 아르민을 바라보았다.
“아르민 경,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확실히 신빙성이라고는 하나 없는 꼬맹이의 말일 뿐이다.
그것도 현실이 아닌 망상에 가까운 말.
“······지잔, 하지만 네 형은 이미···.”
톰도 지잔의 말이 안타까운지, 말꼬리를 흐렸지만.
“아니에요! 형은 아직 무사해요! 아저씨! 부디 형을 구해주세요!”
지잔은 여전히 아르민에게 형을 구해 달라 말했다.
자, 어떻게 된 걸까.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발병한 이유가 음악 때문이 아니라면, 뭐, 짐작 가는 건 없나?”
“그게······. 전혀 없습니다. 애당초 저와 가족들은 살던 마을에 병이 발병했을 때, 이미 영주님이 주신 약까지 받아서 먹었는데······. 어째서······.”
“약을 받았다고?”
아르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톰은 남아있는 약이라며, 빨간 알약 하나를 보여주었다.
“내일 중으로 여기 도시에서도 이 약을 주민 전원에게 나눠준다고 들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효과가 없으니 이걸 어째요.”
톰과 그의 부인이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 사이에도.
아르민은 조용히 약을 둘러보며, 마력으로 내용물을 분석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제대로 된 도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연금술에서 일가를 이룬 아르민이기에, 잘 알 수 있었다.
미리 예상한 대로.
“미네르바, 우리는 처음부터 이번 사태의 선후를 잘못 파악하고 있던 거다.”
“······아르민 경?”
아르민은 고개를 들어 톰에게 물었다.
“혹시 내일 약을 어디서 나눠주는지, 알고 있는 거 있나?”
****
제발 형을 구해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지잔을 향해 아르민은 우선 수면 마법을 사용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어쩌면 그 지젠이라는 남자도 관계가 있을지 몰라.’
그리하여 미네르바 황녀와 찾은 곳은, 이곳 도시에서도 일종의 보건소로 취급되는 의료원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지붕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설명해주게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겐가? 아르민 경.”
“톰에게 받은 이거, 처음부터 약 같은 게 아니었어.”
“······뭣?”
그래. 이 안에 든 성분은 병의 발병 따위를 막아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르민의 기억이 맞다면 이 약을 먹었을 때 나올 결과는 하나뿐.
지금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처음부터 카모쉬 자작은 병의 치료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는 거지.”
은신 마법과 잠행 마법을 통해, 미네르바 황녀를 데리고 도착한 곳.
거기엔 톰이 가지고 있던 알약이 포대기 째로 쌓여있는 창고였다.
‘역시나.’
알약 하나만 있을 때는 알기 어려웠지만.
이 정도로 수많은 약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제야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역한 냄새.
마치 반 년 이상을 홀로 방치해둔 나머지, 썩을 대로 썩어버린 시체 냄새가 풍겨오는 것처럼.
“······아르민 경, 이건······.”
“이번 사태에 엮인 놈들은, 생각보다도 질이 나쁜 놈들이야.”
그래. 이 시체 썩는 냄새가 가리키는 놈들의 정체는 그들 밖에 없다.
흡혈귀(吸血鬼).
그리고 이 약의 정체는, 아르민이 알기로는 단 하나.
“어째서 여기에 블러드 문(Blood moon)이 있는 거지?”
과거 오르펜 교수가 만들었던······.
알트바리아 클랜의 잔재다.
****
< 제57장 – 남아있는 찌꺼기 (2)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