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7)
내 마법이 더 쎈데-117화(117/203)
< 제58장 – 나태의 서 (2) >
눈앞에 펼쳐진 풍경.
그걸 눈에 담은 미네르바는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게 정말 1년 전의 마을 모습인가?”
대답 대신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녀가 저리 반응할 만도 했다.
지잔을 찾아 여기까지 온 아르민 일행이 목도한 마을의 모습은 이미 폐허로 변한지 오래였다.
시체 썩은 내가 감도는 공간, 나아가 싸늘한 바람이 감도는 마을 안에는 정체불명의 거목(巨木)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을 떠나, 대지의 영맥을 읽어 들여 아르민이 구현한 1년 전의 풍경이란.
– 와하하하! 나 잡아 봐라!
– 기다려~
– 오늘 밤엔 비가 온다고 그럽디다.
– 애 아빠가 늦지 않게 들어올지 걱정이라우.
아이들이 뛰어놀고, 우물가에서 애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실로 평범하고 한가롭기 짝이 없는 광경.
“······저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가 보군.”
미네르바 황녀가 자신의 몸을 신기하다는 듯 내려다본다.
아르민과 미네르바의 몸은 반투명한 형체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이건 과거의 풍경일 뿐이니까. 우리는 단순한 관측자. 외부인이다. 저들이 우리를 보는 것도, 우리가 여기에 간섭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
“이런 일 까지 가능하다니, 자네는 대체······.”
잠깐이지만, 미네르바는 아르민을 향해 순수한 감탄과 의혹이 어린 시선을 던져왔다.
‘뭐, 놀라는 것도 당연한가.’
1년 전의 과거를 보여주는 마법이라니, 그녀 입장에선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리라.
특히나 이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은 신과 관련된 부분으로, 어디까지나 신성시 되고 있는 영역이다.
그러한 영역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침범하고, 유린하고, 제 것으로 삼는다.
아르민이 보여준 마법은 그녀가 가진 상식의 근본부터 파괴하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라고 해서 1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서 보여주는 일 같은 게 아무 때나 가능한 건 아니지만.’
과거 전성기의 아르민이라고 해도, 전신의 마력신경을 쥐어짜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일주일 남짓일까.
그러나 여기서 1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도, 아르민의 주머니 속에서 약동하는 ‘탐식의 핵’ 덕분이다.
어쨌거나.
“대지의 영맥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장 커다란 마력의 변곡점이 발생한 것이 대강 이 시기쯤이야.”
그래서 아르민의 마법은 정확히 1년 전의 오늘을 비추게 된 것이다.
“······자네의 말을 듣다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가 태반이네만. 요컨대 여기서 큰일이 벌어졌다. 이 소리인가?”
“그래.”
여기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마을이 폐허로 변하게 된 이유와 꾀죄죄했던 그 꼬맹이 지잔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터.
그렇게 잠시 주변을 얼마나 배회하고 있었을까.
– 지젠? 일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냐?
“아.”
미네르바의 감탄이 들려왔다.
지젠이라는 이름은 분명 기억에도 있다.
“아르민 경. 저 청년이 바로 지잔이 말했던······.”
빙고.
미네르바 황녀의 시선이 향한 장소.
거기에서 등장한 삐쩍 마른 채, 넉살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 지젠이었다.
****
작은 마을 플로라에서 살아가는 지젠의 하루는 평범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집 근처에 있는 우물가로 향한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이미 이른 아침부터 물을 길러 나온 아주머니들과 한가로운 대화를 주고 받고.
적당히 세수를 마친 지젠은 물을 길어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나면.
“아침이야. 일어나 지잔.”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을 돌보기 시작한다.
“······아, 으. 조금만 더······.”
“이미 해가 중천이야. 아침부터 먹어야지.”
칭얼거리며 투정을 부리는 동생을 다독이며, 지젠은 동생이 먹기 쉽도록 만든 오트밀을 내와, 함께 아침식사를 즐긴다.
나누는 대화는 동생의 몸 상태에 대해서.
“어제에 비해선 몸이 어때?”
“······난 괜찮아. 형.”
애써 웃으며 답하는 동생이지만, 청년은 잘 알고 있었다.
동생의 이런 말은 언제나 형인 자신을 위해 해주는 말이라는 걸.
선천적을 몸이 좋지 않아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여의치 못한 동생이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형이 걱정하지 않도록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동생을 위해서라도.
“그럼 나는 일하러 갔다올게.”
지젠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을 나섰다.
밖으로 나선 청년이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마을 근처 여관에서 삯을 받고 피아노를 쳐주는 일 정도였다.
여관 1층에 있는 피아노 앞에 지젠이 앉으면.
“오늘도 술맛 당기는 연주 잘 부탁하마!”
마을 제일의 술주정뱅이도.
“지젠 씨의 연주도 좋지만 여기서 그만 좀 마시고 부인 분에게나 잘 해드리라구요!”
그런 술주정뱅이를 타박하던 여관 주인의 따님도.
“지젠 군. 오늘은 잔잔한 음악으로 부탁하지. 팁은 여기있다.”
때 마침 여행을 하던 도중 마을을 들른 모험가도.
“지젠 오빠가 치는 피아노를 들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
“마음이 치유 되는 느낌이라니까.”
이른 아침부터 애들을 돌보다, 한숨 돌리러 나온 아주머니들까지.
모두가 말은 달라도 한 마음이 되어 청년의 연주를 기다려주었다.
어려서부터 마을을 전전하던 음악가인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뿐인 동생의 약값을 벌기 위해서라도 지젠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지젠 씨. 오늘 제국 카라클에서 의사가 찾아왔다는 모양이야.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동생한테 줄 약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의 연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여관 주인의 딸이 꺼낸 말에, 지젠은 들뜨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의사를 찾아갔다.
지금까지 왔다 갔다 하며, 큰 마을에서 몇 번의 약을 구하긴 했지만.
그 전부 차도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지젠은 몇 번이고 매달렸다.
똑똑똑.
알려준 대로 의사가 있다는 장의 문을 두드리자.
끼이익.
“무슨 일이지?”
그 안에서 얼굴을 보인 건 일견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지젠은 그를 향해 부탁했다.
“동생이 어려서부터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의사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동생에게 줄 약을 구하고 싶습니다. 돈이라면 드리겠습니다.”
지젠의 말에 남자는 미소 지었다.
어쩌면 동생을 향한 청년의 애정에 감동을 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가? 좋네. 마침 좋은 물건이 들어와 있었거든. 돈은 필요 없네.”
“저, 정말이신가요!”
지젠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기뻐했다.
어려운 사정을 가진 형제에게 흔쾌히 자비를 베풀어주는 의사.
“죄, 죄송합니다. 들뜬 나머지 제가 미처 소개도 없이 무례하게······.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지젠의 질문에 의사는 미소 짓는 얼굴로 답해주었다.
“내 이름은 알트바리오라네.”
****
그 뒤로는 며칠 간, 꼬박꼬박 의사에게 약을 받아 동생에게 먹였다.
처음에는 건강해지는 기미가 보였다.
“형! 이것 봐! 다리가 움직여!”
약 기운으로 몸이 강해진 걸까.
정말로 동생은 침대 위에서 다리를 움직였다.
당장엔 꿈지럭거리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난 십수년간 단 한 번도 움직이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쏴아아아.
비가 지독히도 많이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울컥.
“어?”
동생이 피를 토했다.
몸부림치면서 괴로워했다.
“형······.”
어째서, 분명 약의 효과는 돌고 있었을 텐데.
천천히 몸이 낫고 있다고 믿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동생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피를 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아예 눈조차 뜨지 못하기까지 했다.
지젠은 정신없이 여관으로 달려가 의사를 찾았다.
“알트바리오 님! 동생이······! 동생이!”
하지만 의사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가난한 청년에게 가능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혼자라도 해낼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지젠은 미친 듯이 마을에서 제일 큰 영지로 향해 의사를 찾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가난한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이상한 병이 옮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지젠이 뻗은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모두 하나 같이 거절했다.
마침내 지젠이 찾은 곳은, 그 영지 중심에 있는 커다란 도서관이었다.
혹시 여기라면, 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약에 대해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홀린 듯이 걸음을 내걸어, 닥치는 대로 약초나 약과 관련된 책을 뽑아들던 중에, 지젠은 발견할 수 있었다.
유난히 자신의 눈길을 끄는 책 한 권.
그걸 집어든 순간, 머릿속으로 들어온 단어 하나.
[나태의 서]지젠이 신물과 만난 순간이었다.
****
집으로 돌아온 지젠은, 아픈 채로 죽어가는 동생과 마주했다.
“하아······. 하아······. 형······. 너무 아파.”
지젠은 동생을 끌어안았다.
의식이 있는 지금이라면,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연신 뜨거운 호흡을 몰아쉬는 동생은 지젠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죽어가고 있었다.
책에 적혀 있는 건, 동생을 구할 방법 같은 게 아니었다.
–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하는 방법.
무섭다고.
이대로 죽는 게 무섭다고 우는 동생을 위해 지젠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괜찮아. 지잔. 이 형이 다 고쳐줄게.”
지젠은 피아노에 손을 올렸다.
동생을 위해 지젠은 어머니가 알려준 음악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치며 동생을 위해 노래했다.
– 아르민 경,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 병을 이길 수가······
– 없어. 게다가 봐봐. 동생은 이미 생명이 경각에 달한 거다.
상황을 냉정히 단정한 아르민은 또한 납득했다.
나태의 서가 가진 기능은, 소유자로 하여금 원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
하지만.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제5종 마법. 금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태의 서가 신물이라고 해도,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단순히 피아노 소리만으로 죽은 자가 되살아날 리가 없다.
그래서 책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 따위에서 정보가 멈춘다.
더구나.
– 나태의 서라는 이름대로, 저것이 ‘나태’를 대표한다면 필시 거기 적혀 있는 정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겠지.
– 무슨······?
나태함이란 무엇인가.
단지 게으름이나, 하기 싫다고 미뤄두는 것에서 그 개념은 끝나지 않는다.
나태함이란 자신이 원래해야 할 의무를 져버리고, 죄악으로서 그 존재를 공고히 하는 개념이다.
이루어질 리가 없는 기적.
그런 기적을 의미하는 신물.
그렇다면 저 지젠이라는 청년의 말로는 뻔했다.
– 저 병은, 블러드 문의 효과겠지.
궁극적으로 저 병은 치료되지 않는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지젠이 괴로워할수록, 연주를 듣는 지잔의 표정은 온화해지지만.
저것은 고통을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년 전의 블러드 문이 가진 효능은, 복용자를 단숨에 시귀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겠지.’
즉 지난 1년 간, 이 마을에서 의사란 작자가 뿌린 블러드 문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순도를 높이기 위한 실험.
아마도 몇 번의 투약을 통해, 몇 번이나 되는 실험으로 그 효능을 높여갔을 터.
– ······인체, 실험······.
꾸욱. 황녀가 주먹을 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그런 내용이었다.
나태의 서에 떠오른 ‘어머니의 노래’를 연주할수록 파멸을 향해 치닫는 두 형제의 모습을.
아무리 노력해도 동생을 구해내지 못한 청년의 말로를.
“······형.”
이제는 눈조차 뜨지 못하고, 희미하게 ‘형’ 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움켜쥐고.
어째서. 라며 목 놓아 울부짖는 청년은.
“왜 동생을······.”
구할 수 없는 거냐고.
“미안해, 형.”
그 말을 끝으로, 동생이 죽고, 피아노의 연주가 멎은 그때.
형제가 살던 마을은 천천히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멎지 않고.
지젠의 동생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로 병은 마치 종양처럼 퍼져 나간다.
지젠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영주를 찾았다.
이제는 동생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부디 마을을 구해달라고, 모두를 도와달라고 영주님에게 간청했다.
탄원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매몰찬 반응이었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청년은 피아노 앞에 앉아, 좌절했다.
하지만.
– 형.
“······그래도.”
비극 속에서 청년은 피아노 위로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부르트고, 피를 흘리며, 양 손이 짓뭉개질 때까지도.
지젠은 오로지 피아노를 연주했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보낸 뒤에도,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피아노를 쳤다.
– 그만.
알트바리오가 다가왔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등을 향해 날붙이를 치켜든다.
– 제발, 그만······.
자그마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을 안으로 천천히 스며든 절망은.
푸욱.
알트바리오의 칼날이 청년의 등에 꽂히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죽고 피아노 소리가 멎은 순간.
1년 전의 풍경은 여기에서 전부 끝이 났다.
****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미네르바 황녀는 손을 내민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눈앞에서 일어난 비극엔 일체의 간섭도 못한 채.
그저 그녀와 아르민은 그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 째서······.”
그들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단지 동생을 살리고 싶었던 청년과 청년의 연주를 좋아해주던 마을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저러한 비극을 맞이해야만 했는가.
“······형은 이미 죽었어.”
“······!!”
미네르바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향한 곳.
거기엔 지잔이 조용히 폐허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당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말을 잇지 못하는 미네르바를 대신해 아르민이 물었다.
“우릴 여기로 이끈 이유가 뭐냐.”
톰이나 그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지잔의 존재를 납득하고 있었지.
죽어버린 혼령이 살아있는 사람을 가장해 스며드는 건 흔한 경우다.
‘내 수면 마법을 풀고, 말도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해온 것도 그럼 전부 설명이 된다.’
그건 좋다.
다만 아르민이 궁금한 건, 바로 그런 귀신이 무슨 이유로 우리를 이리로 이끌었냐 하는 것이었다.
“이미 네 형은 죽었다.”
“맞아, 하지만 여전히 형은 연주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아스라이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피아노의 선율이 있었다.
“바보 같이. 미련하게도 누군가가 아파하면, 그걸 함께 나누고자 싶어서. 지금도 저기 있는 거야.”
지잔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엔 커다란 나무와 나무 아래로 만들어진 피아노가 있었다.
지젠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난 그걸 끝내주고 싶어.”
아르민은 착각하고 있었다.
이 피아노의 음색은, 신물의 힘 같은 게 아니었다.
도리어 신물이 남기고 간 찌꺼기와도 같다.
“부디 도와줘, 형을 구해줘.”
지잔은 천천히 아르민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죽은 채로도 미련이 남아,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면, 이미 악령이나 다름없어.”
미련으로 움직이는 건, 아르민의 세계에선 악령이라 불렀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한들.
한 자리에 고여 특수화되는 영체의 힘은, 끝내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남아 있는 미련을 만족시켜준다면 성불(成佛)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놈을 구할 수는 없다. 가능한 건 퇴치뿐이겠지.”
“아르민 경. 하지만···!”
“미네르바 착각하지 마라. 놈이 가진 미련은 동생을 구하고 싶다. 마을을 구하고 싶다. 라는 소망이야.”
하지만 폐허를 둘러보아라.
이것만 보아도 지젠의 소망은 이미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애당초 저건 이미 네 형 같은 게 아니야.”
“아니, 그래도 내 형이야.”
나를 구하고 싶어, 미련하게도 지금도 부르튼 시체의 손으로 연주하고 있는 저 사람은.
그 미련 덕에 마침내 저 기묘하기 짝이 없는 나무를 불러낼 만큼 상냥하기 짝이 없는.
“내 형이야. 그러니까 부디······.”
하지만 그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
“···아르민 경?”
아르민의 신경을 간질이는, 음험한 기척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손길로 미네르바를 이끌어, 몸을 한 걸음 뒤로 물린다.
바로 그 순간.
콰아앙!
거대한 핏빛 강기가 날아든다.
사방을 찢고, 아르민이 서 있는 자리를 사정없이 파헤치는 강력한 공격.
그걸 피해내면서 동시에 아르민의 눈길이 미치는 곳엔.
“크흐흐, 역시 여기까지 찾아오셨나. 제국의 황녀.”
1년 전의 비극에도 얼굴을 비추었던 남자.
아르민의 추측이 맞다면, 피를 빠는 괴물 알트바리아의 맥을 잇는 자.
“······퀸 알트바리오.”
마을을 비극의 무대로 연출한 작자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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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8장 – 나태의 서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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