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8)
내 마법이 더 쎈데-118화(118/203)
< 제58장 – 나태의 서 (3) >
퀸 알트바리오.
아르민의 부름에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호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를 아는가?”
“그럼, 알다마다.”
이렇게나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하는데 어찌 몰라볼까.
“알트바리아 클랜이라면 안면이 있는 놈들이니까.”
무려 자기 손으로 직접 쳐부숴버린 전적이 있는 집단이다.
놈은 ‘알트바리아의 이름까지 알 줄이야.’ 라며 놀라워하고 있었지만.
아르민 또한 동감이었다.
이런 장소에서 알트바리아의 찌꺼기와 만날 줄이야.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그때 미네르바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은······! 아르민 경, 저 자가 이번 사태의 범인이란 말인가!”
그래, 의심할 여지도 없다.
현재 서부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태.
수많은 사람을 좀비로 영락시키고, 곳곳을 시체 썩은 내로 가득 채운 것은 전부.
저 남자가 원흉이다.
“내가 알기로 알트바리아 클랜은 철저하게 박살났을 텐데, 잘도 쥐새끼처럼 살아남아있군.”
순간 알트바리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르민의 한 마디가 적잖이 심경을 거스른 탓이리라.
동시에 ‘클랜 이야기를 네놈 따위가 어떻게?’ 라는 표정이 떠오르기까지 했지만.
“설마 황녀의 종기사 따위가 우리의 자세한 사정까지 알고 있을 줄은, 황녀 전하도 제법 대단하군. 참으로 놀라워.”
알트바리오는 분노를 나타내는 대신, 유쾌한 목소리로 웃었다.
“소개할 수고가 줄었군. 만나서 반갑네, 황녀와 그 종기사여. 나는 퀸 알트바리오. 로드 알트바리아의 유지를 잇는 피의 혈족이다.”
놈은 기사가 예를 표하듯, 우아한 태도로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고개를 숙이는 예법을 보였다.
피를 탐하는 흡혈귀치고 퍽이나 고상한 태도에 아르민은 입가를 비틀었다.
“대체······! 서부에 전염병 따위를 퍼트린 이유가 무엇인가!”
서부 지역에 도착해, 미네르바 황녀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를 몇 명이나 그 눈에 새겨 왔던가.
그만한 비극들이 벌어진 데에 대체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
따져 묻는 황녀를 향해, 알트바리오는 입을 열었다.
“이유?”
그야.
“당연히 클랜의 부활을 위해서지.”
“······부활이라고?”
마치 연극 무대에 올라선 배우처럼.
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황한 어투로 말을 시작했다.
“너희가 말하는 전염병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만들어낸 블러드 문을 통해 알트바리아의 혈족으로 변모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말하자면 이것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은혜를 베푸는 행위.
“이 척박한 서부의 땅에서 인간들은 하루하루 생존만으로도 허덕이고 있었지. 특히 3년 전. 서쪽의 타국과의 교역이 끊긴 뒤로, 그야말로 카모쉬 자작의 영지들은 모두 생존만을 위한 열망으로 타들어갔다.”
아마 이대로 내버려뒀다면, 그 전원이 아사를 하거나 폭동을 일으키는 등으로.
“자멸해버렸을 테지.”
“······!!”
미네르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역으로 먹고 살던 자작의 땅이다. 고위 귀족이 가진 자금력으로 교역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서부 지역이 맞이할 말로라는 건, 결국 뻔한 파멸일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바로 그때.
“서부가 버틸 수 있도록 돈을 대준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알트바리오는 유쾌한 목소리로 어깨를 떨어댔다.
“거기의 종기사는 말했지. 알트바리아 클랜이 무너졌다고. 그건 사실이면서 동시에 거짓이야. 로드 알트바리아는 사라졌을지언정 클랜의 자금도, 남은 혈족도 조용히 숨어있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알트바리오는 다시 한 번 클랜의 비상을 위해,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 제국의 귀족들과 손을 잡았단 소리였다.
그렇다면 놈은 과연 누구와 손을 잡았을까.
서부의 지배자라고 하는 카모쉬 자작?
설마, 그런 애송이 따위가 아니다.
상대는 최소 황녀와 맞설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자.
즉.
“·········알로스린, 대공.”
“과연 황녀야. 머리 회전이 빨라. 말 그대로 나는 알로스린 대공과 함께 카모쉬 자작에게 돈을 대며, 생존으로 괴로워하는 자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는 블러드 문의 재현을 위한 실험체들을 제공 받았지. 요컨대 약간의 실험체를 제공받는 것으로.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인간을 구원해주었단 소리다.”
놈은 그래서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이건 칭찬 받았으면 받았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그리 생각하지 않나? 황녀 전하.”
으득.
미네르바 황녀가 이를 간다.
그녀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때문에 그러한 황녀를 대신해.
“개소리도 수준급이군.”
아르민은 그리 일갈했다.
****
“호오?”
아르민의 일갈에, 그제야 놈의 시선이 황녀를 떠나 아르민에게 향한다.
“개소리라고?”
그래. 개소리다.
“잘도 그딴 소리를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떠들 수 있군. 흡혈귀란 원래 다 그런 놈들뿐인가?”
“무엇이 말이냐? 확실히 블러드 문의 완성을 위해 몇 명은 이성을 잃은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래라면 전부 죽었어야 했을 인간들 중엔 구원을 받은 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이게 ‘구원’이 아니라면 뭐지? 그들이 그저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정의’라고 말할 셈인가?”
“······!”
미네르바의 몸이 한 번 더 움찔거리듯 흔들렸지만.
아르민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개소리란 거다.”
“아르민, 경······?”
피식, 아르민은 한숨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렸다.
“미네르바. 마음이 흔들리나?”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자기가 손을 대지 못했던 자들이, 아무리 악의로 점철되어있다고는 해도 다른 누군가 덕분에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흔들리는 바는 알겠다.
하지만.
“저건 그냥 궤변이야. 이미 벌어진 행위에 그럴 듯한 말을 덧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애초에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미네르바는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놈의 목적은 추악할 만큼 투명하다.
앞으로 수 시간 후.
놈은 약을 나눠주며, 서부 전체를 알트바리아의 이름으로 집어삼킬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던가.
“결국 이대로 있다간 서부 전역의 사람들은 좀비로 전락할 뿐이다. 놈이 그간 무슨 자비를 베풀었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성공했건. 놈이 하려는 짓으 변하지 않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결국 네가 그토록 비통하게 생각하는 비극이 한 번 더 일어날 뿐이지.”
“아······.”
미네르바의 떨림이 멎는다.
그걸 본 알트바리오는 재미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흥, 재미없군.”
“누구의 말이 재미없는 탓이지.”
“뭐, 어차피 상관없다. 대업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알트바리오는 투명한 벽 너머로 솟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 너머엔 신물을 가지고 저항하던 자가 있었지. 하지만.”
그 시선은 이번에는 아르민 옆에 서 있는 지잔에게로 향했다.
“놈은 실로 어리석은 자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멍청하게 블러드 문을 자기 동생에게 먹여 죽음에 이르게 한 놈이었지.”
“······아니야, 형은······!!”
지잔은 눈을 부릅뜨고 알트바리오를 노려보았지만.
도리어 알트바리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그걸로 누군가를 구하고자 했다고?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되었단 거냐?”
블러드 문의 효과를 늦춘다고 해도, 결국 막아내진 못했다.
“앞으로 이어질 대업은 아무도 막지 못해.”
알트바리아 클랜의 부활.
아니, 단순히 부활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서부를 기점으로, 우리 클랜은 제국을, 그리고 대륙 전역을 집어삼키는 세력이 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알트바리오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로드 알트바리아는 완전한 생명체가 되고자 하여 태양으로 목표로 했다. 핍박 받는 흡혈귀들을 위해, 태양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업이라 생각하신 거지. 아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실패했다.”
방법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달리 접근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존경하는 로드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 완전한 흡혈귀가 되는 일 따윈 아무래도 좋아. 우리 흡혈귀들에게 필요한 건 숫자다.”
압도적인 숫자야말로 진정한 힘. 폭력으로 군림할 수 있다.
“핍박받고, 거부 받는 흡혈귀라고 해도 대륙 전체의 인간을 흡혈귀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승리다.”
“무슨······.”
그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에 미네르바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차마 반론을 꺼내들 순 없었다.
허무맹랑하지만, 동시에 놈의 말에는 현실성이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라도 찍겠다는 소리로구만.’
확실히 블러드 문으로 발생한 시체들은 또 다른 인간을 습격하며 그 숫자를 불려나간다.
종자가 늘어나면서 알트바리아 클랜의 규모는 커져만 가겠지.
개인의 강함이나 지향점과는 별개로.
놈은 숫자라는 폭력을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서 지껄이는 세계 멸망 시나리오를 듣고선.
“알트바리아가 보면 코웃음이나 치겠군.”
“뭐? 네 까짓 게 뭐길래 로드를 아는 척 하는 거지?”
냉혹한 눈빛에 아르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누구냐고?
간단하다.
“네놈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알트바리아를, 직접 이 손으로 쳐 죽인 사람이다. 그놈도 한심했지만, 네놈은 더 한심하구만.”
애당초 놈은 흡혈귀를 위해서니 뭐니 하는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트바리아는 그저 혼자 신좌에 오르고자 했다. 단순한 폭군이었단 말이지. 그런 놈을 존경한다니, 네놈 머릿속도 참 알만하군.”
“인간, 함부로 입을 놀리는 구나.”
말은 그리 하면서도 놈은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도발에 넘어올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다는 건가.’
무엇보다.
“네놈,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구나.”
알트바리오의 눈이 빛난다.
“정체가 뭐지?”
“보다시피 평범한 황녀의 호위기사일 뿐인데?”
가늘어지는 눈가.
놈은 고개를 기울이며, 의심스럽다는 듯이 목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면 수상한 이야기였다. 서부 지역을 찾은 황녀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면 필시 검성 지크프리트일 터. 헌데 그 자를 동원하지 않고 택한 자가 따로 있다······.”
‘역시 단순히 이상을 지껄이는 미친놈은 아니야.’
추측에 이은 추리, 그걸 넘어서 추론으로 놈이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움직인다.’
목표는 놈이 들고 있는 저 신물, <나태의 서>를 빼앗는 것.
우선 그것부터 해결한다.
“······말하지 않겠다면, 네놈의 정체를 알아내는 방법이 따로 있지.”
촤라락.
놈이 나태의 서를 펼쳐든 바로 그 순간.
그게 바로 놈의 빈틈이 가장 크게 드러난 시점이었다.
‘영역 조준, 속성 부여 불꽃, 특성 부여 폭발. 마력 부스트.’
아르민의 오른손이 섬전처럼 휘둘러진다.
아무리 마력에 민감한 흡혈귀라고 할지라도, 극순에 이른 아르민의 마법 캐스팅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
‘터져라.’
마력신경을 쥐어짠 네 차례의 캐스팅.
쿼드 액션 ‘순수원폭(純粹原爆)’.
직후.
콰아앙!!!
“꺄아아악······!”
황녀의 비명을 배경음으로 삼아.
알트바리오가 발을 딛고 있는 영역 전체가 아르민이 발동한 폭발 마법에 휘말려, 아예 터져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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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하게 일어나는 폭연.
방금 전 일으킨 폭발 마법은, 주변이 폐허라는 것을 감안해 상당부분의 마력을 때려 박은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여기서 살아있는 생명체.
나아가 죽어있는 시체 따위도 온전히 형체를 유지한다는 것 따윈 불가능하다.
그만한 마법을 아르민은 펼친 것이다.
하지만.
“해, 해치웠나······?!”
미네르바 황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흘린 말에, 아르민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혀를 찼다.
“······웬만하면 이런 상황에서 그런 대사는 꺼내지 않는 게 좋다고. 미네르바 황녀.”
“무, 무슨 뜻인가?”
뭐, 단순한 농담일 뿐이지만, 문제는 여전히 아르민의 마력신경에 감지되는 이 짜증날 정도로 고약한 기척.
역시나.
“이런 장면에서 쉽게 퇴장 당해주지는 않겠다는 거지.”
“저, 저건?!”
나태의 서를 주변으로 펼쳐진 진득한 마력방벽.
아마도 본인의 힘보다도, 신물의 힘을 빌린 듯한 방어 마법이었지만.
그 형태가 기묘했다.
마치 마력 그 자체를 와해시키는 듯한······.
나아가 ‘현대 마법’의 근본 구조를 무너트리는 듯한 그 속성은······.
“그만한 폭발에서도 멀쩡하다니?!”
황녀는 놀란 듯 했지만, 아르민은 방벽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척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거야 원.
‘아르카디아,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들어뒀군.’
아마도 이것은 아르민을 겨냥하여 여신 아르카디아가 설치해놓은 덫일까.
방벽 너머에서, 나태의 서에 눈이 못 박힌 알트바리오는 슬며시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흘렸다.
“과연······. 그래, 그래서였나. 네놈이 지껄였던 말들은······! 전부······! 네놈이 로드를 살해했던 자인가!”
나태의 서가 가진 힘은, 소유자가 원하는 정보를 드러나게 하는 힘이다.
현재 녀석이 간절히 바라는 정보.
그것의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알트바리오는 부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아르민을 노려본 채.
이윽고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르민 일레인스······. 아니! 나태의 서에 기록되길 ‘강재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여! 네놈이 사용하는 현대 마법이라는 기술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현대 마법을 알아보고, 나아가 파훼까지 하는 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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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8장 – 나태의 서 (3)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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