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9)
내 마법이 더 쎈데-119화(119/203)
< 제59장 – 기적을 내 손에 (1) >
<언제나 나는 이웃을,
그리고 가족을 사랑했다.>
어느 날.
“형, 나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 거야?”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동생이,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온 적이 있었다.
“지잔, 딴 짓하지 말고 밥부터 전부 먹어야지.”
“으~ 다, 다 먹었어······! 그건 됐고! 나무 말이야!”
동생이 남긴 피망을 보며 피식 웃으면서도, 나는 새삼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문 바로 너머로 보이는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세워져 있었다.
“저 나무는 아빠랑 엄마 어렸을 때도 있었어?”
“그랬지.”
자신이 알기로는 조금 더 오래전부터.
“할아버지랑 할머니의 또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도 저 자리에 그대로 있었대.”
“굉장하다······!”
동생 지잔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만큼 놀라운 일이겠지.
그래, 척박한 서부의 황야에서도 나무는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 되면 더욱 푸르러진다.
가을이 찾아올 때면 알록달록 물드는가 싶더니, 겨울엔 차갑게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곤 했던가.
그것은 얼핏 1년의 시간을 거쳐 차츰차츰 죽어가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나무는 수 십 년, 또 수 백 년을 살아간다고 해.”
내 설명에 동생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뭐?”
순수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물어왔다.
“병이 낫고 다 크면 나도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아이답게 실로 순수하고, 조금은 멍청하고, 약간은 귀여운 얼굴 표정을 짓는 동생에게.
“·········물론이지!”
나는 힘껏 웃어주며, 그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
.
.
.
콰직.
등을 찌르고 들어와, 폐부를 헤집고, 가슴으로 튀어나온 칼날.
– 어째서.
멍하니 가슴팍에서 쏟아지는 선혈의 뭉치가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 나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미처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 신물을 가지고 있다니, 분에도 맞지 않는 물건을 가진 죄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해라.
냉혹한 미소를 짓는 남자.
자신을 의사라고 밝히며, 내게 약을 나누어주었던 남자 알트바리오는 나를 비웃었다.
– 결국 네놈의 동생은 너 자신 때문에 죽음을 앞당긴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내 손으로 소중한 이를 상처 입힌 현실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만 죽는 일 따윈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동생 지잔을 떠올렸다.
이 간절한 마음이여, 부디 나무가 되어라.
콰드득.
찔린 등에서 가지가 피어오른다.
선혈이 쏟아지던 자리에서 뿌리가 내려 대지를 휘감는다.
– ······놀랍군. 이것도 신물의 힘인가? 마지막까지 변변찮은 발버둥이구나!
나무가 되자.
이대로 죽을 바에는, 저 하늘로 이파리를 뻗고, 동생이 죽어간 이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되자.
그것이 내가 상처 입히고, 죽음까지 이르게 한 동생을 위한 속죄.
나무가 하늘까지 뻗은 직후에서야, 나는 그 밑동 속에서 피아노와 마주할 수 있었다.
– ······, ······. ···.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섞여, 나무 안에 앉은 내 귓가에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다.
이것은 나만의 속죄(贖罪).
서부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또한 진하게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가 느껴질 때라면, 나는 손을 들어.
– 데엥.
건반 위로 손가락을 대었다.
동생이 죽어버린 이상, 이런 일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지잔, 너를 위해 피아노를 칠게.’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도,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무뎌지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육체를 잃어, 신물의 힘까지 빌려 나무가 되었다한들.
이 전부가 언젠가는 쓰레기 더미로 전락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이것은 자신의 최후다.
설사 악령이 되어, 추후 괴물로 영락할지라도 동생을 구해내지 못한 자로서.
이건 형으로서 동생을 죽여 버린 얼간이에 대한 벌이다.
그러니까 고통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나는·········.
****
“역시 나태의 서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다!”
퀸 알트바리오, 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르민이 발휘한 현대 마법을 파훼했다.
‘이것이 아르카디아가 준비한 장난감인가.’
아르민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르민 일레인스로 다시 태어난 인생 중, 처음으로 자신의 마법 자체를 ‘무효화’ 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알트바리오가 외치길.
“현대 마법사, 강재민······. 네놈이 어떠한 자인지는 상관없다. 나태의 서에는 네놈이 사용하는 그 기묘한 술수조차 무위로 돌릴 방법이 쓰여있단 말이다!”
콰아앙!
나태의 서에서 발휘된 마력은 이어 혈기(血氣)를 띠고, 아르민을 향해 날아온다.
‘방호의 룬······. 아냐, 위험하다.’
마력신경에서 뽑아올린 직접적인 마력행사.
그것이 이루어지기 직전, 아르민의 피부를 할퀴는 예리한 살기에 아르민은 몸을 물리고, 바닥을 향해 손가락을 튕긴다.
‘영역 지정 지면(地面), 가용 마력은 지맥을 선택······, 아니, 그것만으로는 마력이 불충분한가.’
연산에 계산을 반복.
‘폭발 범위 지정, 세로, 발끝을 향해 마력을 분사하며 대지를 주무른다.’
무대를 만들고, 대지를 다지는 마법사로서의 속성에 충실한 마법은 이윽고 하나의 언어가 되어 이 자리에 구현된다.
‘국소 범위 폭발 술식.’
“백두대간(白頭大幹).”
쿠콰콰콰!!
마력을 이용한 직접적인 방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규모의 범위를 지정해 폭발시키는 위력으로 놈의 공격을 무위로 돌린다.
이렇게까지 귀찮은 방법을 통해 방어 마법을 펼친 이유는 간단했다.
“크흐흐, 좋은 수였다. 마력으로 막으려 했다면 그대로 네놈의 육체는 두 동강이 났을 테지.”
‘마력의 술식 전체가 파악 당하고 있다.’
성가신 일이었다.
말하자면 나태의 서를 든 놈은 현재의 상황에 한해 한없이 ‘현대 마법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단 소리였다.
일각의 호흡. 일순의 겨룸 속에서 서로의 술식을 파악하고 빈틈을 찾아내고 역산한 뒤, 그대로 약점을 노려 마법을 처먹여주는······, 바늘 위에서 위태로이 벌이는 진짜배기 싸움.
그것이 참으로.
‘이런 감각은 오랜만이군.’
다만 문제는 놈이 가진 나태의 서 쪽이었다.
“보인다.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놈이 사용하는 마법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태의 서에는 전부 나타난다! 전부 무의미하구나! 이 책이 있다면 내 승리는 확정되어있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어투로, 놈은 자신의 전능감을 어필했다.
그렇지 않아도 흡혈귀의 상위종이라는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알트바리오다.
거기에 나태의 서가 전해주는 정보, 나태의 서가 공급해주는 신물의 마력은 호랑이에게 날개는 물론 부스터까지 달아준 격이었으니.
여기에서 아르민은 생각했다.
‘귀찮은 적을 만났다.’ 라고.
“네놈에게 로드 알트바리아는 결국 패했나. 확실히 태양은 추락했다. 허나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확실한 승리의 수단을 가지고! 어디 로드를 패퇴시켰던 신화 마법을 사용해봐라!”
마음 같아선 알트바리오의 도발처럼.
필살의 한 방으로 일격에 끝장을 내고 싶지만.
‘이쪽의 신화 마법까지 역산 당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마법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강대한 위업을 따르고,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저 신화와 역사 속에 한 획을 그은 마법이라 할지라도.
이미 상대가 그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대비를 한다면,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보의 영역에서 싸우는 마법사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인 것이다.
“인정하지. 나태의 서란 것도 제법 굉장한 물건이야.”
“하하하. 그래. 이제 알겠느냐?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예언은 믿을 게 못되는 군.”
“예언?”
되묻는 아르민의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놈은 한층 더 유쾌하단 얼굴로 이렇게 지껄였다.,
“나태의 서에 적혀있기를, 내 대업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을 방해하는 마법사가 나타난다고 했었다.”
그래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타난 네놈조차도 결국엔.
“나태의 서를 이용하면 이런 식으로 격파할 수 있지. 신물을 가진 내게 불가능이란 없다.”
신물이란 그만큼 대단한 물건이다.
때문에 더욱이.
알트바리오의 시선이 저 멀리 뻗어있는 나무에 가 닿았다.
놈은 양껏 비웃음을 짓고선 이렇게.
“이런 굉장한 물건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여버린 얼간이는 대체 얼마나 멍청하단 말인가.”
“······감히······! 형을······! 모욕하지 마!”
그 한 마디.
지잔은 알트바르오를 향해 격렬한 외침을 터트렸지만.
어차피 힘이 동반되지 않는 외침이란, 산들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멍청한 놈. 이런 유쾌한 상황이다. 네놈 같은 죄다 무너져 내린 귀혼(鬼魂) 따위가 끼어들 무대가 아니다.”
일갈에 담긴 마력은 아르민이 신경 써서 전개한 마력 방법조차 무시하고 지잔에게 가 닿았다.
“아악!”
“지잔······!”
지잔의 몸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흔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영체 상태로, 순전히 이 자리에 남은 혼백과 넋으로만 존재를 유지하는 소년이었다.
한순간에 영혼이 흔들리고, 지잔의 실루엣이 희미해진다.
“네놈이 얽매이는 건, 벽 너머의 저것 때문이었지? 그럼 좋다.”
알트바리오가 나태의 서를 든다.
촤라락. 책장이 펼쳐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은 알트바리오는.
“적혀 있군. 방벽 너머를 공격하는 술식. 하나, 둘, 셋, 나아가 여섯 개의 술식을 구성하는······. 현대 마법에선 헥사 액션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일순, 한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읽어내린 끝에 놈은.
“그대로 무너져라.”
놈이 탁. 하고 책을 덮은 순간.
그그그그긍.
대지가 용틀임친다.
지맥 그 자체를 비틀고, 부수고, 나아가 일대의 지대를 전부 무너트리는 이 마력의 기백은 가히 ‘대지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힘의 격류였으니.
“헥사 액션까지 멋대로 사용하신단 말이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리는 아르민이었지만.
그의 시야에 바로 진동에 대처하지 못하고 지진의 마력파에 휘말리는 지잔의 영혼이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어차피 천천히 소멸해갈 영혼이었다.
딱히 신경을 쓸 것도 없이, 비루한 몰락만이 예정된 자였다.
그리고.
“······지잔!”
“미네르바?”
미네르바의 몸이 움직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미 죽어있는 귀혼 따위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잔에게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천지를 뒤집는 진동이, 세계를 집어삼켰다.
쿠구구궁!!
***
허공을 난다.
단 두 번의 발걸음, 나아가 손끝에서 분사한 마력의 폭포가 지잔을 껴안은 미네르바를 휘감고,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던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의 추락을, 아르민은 대지가 진동하는 가운데에서도 깔끔하게 받아냈다.
지진을 피해 지대가 높은 곳에 발을 디딘 바로 그 순간.
“멍청한 놈······! 위험하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르민은 황녀를 타박했다.
방금 일어난 대지진으로 이미 지반은 무너졌다.
액상화라고 하던가. 아예 폐허가 된 마을 전체가 천천히 대지 안으로 가라앉는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여전히 지잔을 꼭 끌어안고 있는 미네르바 황녀는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민도는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가······?”
방금의 마력파로, 이미 지잔의 영혼은 지나칠 정도로 투명해졌다.
영혼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죽음의 때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미네르바는 지잔을 놓아주지 않고서 울었다.
어째서 소년이 고통을 받아야 하냐고 비통한 외침을 내뱉었다.
그 말에 대한 답을.
“네놈들이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닥.
똑같이 높은 지반에 발을 디딘 알트바리오는 냉혹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무런 힘조차 가지지 못한 평범한 인간들에게 고통이란 당연한 것. 힘없는 민중이란 강자에 의해 당하고 유린 당하는 것이 운명.”
놈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귀족들의 거래에 의해, 평민들은 구원을 빌미로 실험체로 쓰여, 고통 받고, 버려지고, 죽어간다.
“단지 윗자리에 앉은 자들의 판단 하나. 서류에 쓰인 글자 몇 줄만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그 전부가.
“그들이 평범하고 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것이 분한가? 그것이 괴로운가? 걱정 마라. 아침이 찾아오고 서부 전역에 블러드 문이 뿌려진다면. 너희는 힘 없는 민중을 벗어나,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 될 테니까.”
그러니.
“무의미한 저항은 여기까지다. 황녀여.”
더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말.
미네르바 황녀는 고개를 들었다.
지잔을 끌어안은 채, 표독스럽게 알트바리오를 노려보았다.
“그 말은,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네. 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오기전, 그녀는 무슨 말을 했던가.
“힘없는 민중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괴로움은 당신 같은 자와도 다르지 않을 것을.”
“다르지 않다고? 정말 그리 생각하나?”
푸흡. 알트바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 구나. 황녀. 좋아. 기분이다. 네년은 살려주도록 하지. 비켜라. 거기 꼬맹이를 끝장내고, 네년의 호위기사도 죽여버리고. 서부와 제국 전역이 시체로 전락하는 걸 네눈에 들이밀어주마. 그때도 그런 헛소리를 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차라락 펼쳐지는 나태의 서.
한 번 더 놈의 마법이 발동되려는 순간.
“미네르바.”
피해라, 여기선 내가 막아서겠다는 아르민의 옆을 지나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미네르바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
쓰러진 지잔의 앞을, 그녀가 신민으로 인정하는 아르민의 앞을.
“본녀는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네.”
미네르바의 자그마한 육신이 막아섰다.
“······비키지 않을 생각인가? 네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파멸이 예정되어있을 뿐인데도? 왜 그렇게까지 신민을 지키는데 집착하는 거지?”
그 이유는 달리 있을 리가 없다.
“이 이상의 비극이······. 더는 싫기 때문이네. 더는 내 앞에서 누군가가 고통 받는 일 따윈, 지켜보고 싶지 않네.”
“하······!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여기까지 온다면, 이미 그것은 논리도 뭣도 전부 파탄나버린, 실로 단순한 생떼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황녀는 비통한 목소리를 내었다.
“황녀된 자로서, 나라를 이끄는 자로서, 아무런 힘조차 없는 자신일지라도 여기서 신민 하나, 죽어가는 소년 하나의 목소리조차 지켜주지 못한다면······!”
작은 등 뒤로 보이는 그림자는, 비통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지배하는 자의 뒷모습.
“내 어찌 황녀라 말할 수 있겠는가!”
미네르바는 떠올린다.
기적을 바란다면.
“······내 손으로 먼저 열어젖히라고 말해준 이가 있었다!”
누구의 말인지는 물을 것도 없다.
비통함과 절망 속에서도, 오롯이 그녀의 기품은 살아있었다.
아르민은 천천히 그 광경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어리숙한 소녀라고 생각했다.
어리기만 한 여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형···을, 구해···줘.”
지잔은 말한다.
이제껏 몇 번이고 고장난 테이프처럼 되풀이해온 말.
그 목소리는 나아가.
“그럼 죽어라.”
알트바리오의 손가락이 미네르바를 가리킨 바로 그 순간.
아르민의 방호 마법 따윈 간단히 찢어발기는 또 다른 현대 마법이 구현된 순간에 이르러.
“형······. 구해줘.”
소년의 목소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단 한 마디를.
자신이 사랑하는 형을 부른다.
****
부글거리는 목소리가 멀다.
그 안에서 피아노에 손을 가져다 댄 손은 멈춰있다.
무의미한 걸 알고 있어도.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악령이 되어가는 청년은.
– 형.
분명히도.
– 구해줘.
이번만큼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 제59장 – 기적을 내 손에 (1)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