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29)
내 마법이 더 쎈데-129화(129/203)
< 제65장 – 나약한 존재 (1) >
“호오, 둘이 부자 관계였다니, 이런 드라마틱한 우연이 있나.”
가증스러운 얼굴로 떠드는 블라디미르의 말에 헬레나는 혀를 찼다.
정말로 우연인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남자는 케뮬란을 장악하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나아가 무슨 목적을 가진지 꿰뚫어보지 않았던가.
‘헛소리야.’
민세희를 비롯한 우리들이 수드라 계급의 소년과 접촉하고, 도움을 주고, 콘클라베에 도전하도록 만든 것.
그 뿐이랴.
애당초 크샤트리아 계급의 수인들이 베오를 습격하게 만든 것이나, 거기에 더해 처음부터 베오의 아버지를 점찍어 ‘대장군’이라는 위치에 올려둔 것까지 전부가.
“······처음부터 네놈이 수작을 부린 일이었나.”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알고 있다.
똑같이 신좌에 올랐다 떨어져본 자로서.
신좌에 오른 자가 세계를 보는 눈은,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높이에 있다는 것을.
블라디미르는 슬쩍 가라앉은 눈동자로 헬레나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농담도 안 통하다니, 재미가 없군. 하지만 그래, 맞아. 처음부터 이 원환의 연쇄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설마 이 와중에 아르카디아에 의해 봉인된 네년이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예상치 못했지만. 그런가, 생각해보면 아르카디아가 소멸했으니 네 봉인이 풀려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군.”
“·········.”
블라디미르는 무언가 착각을 하는 듯 했지만.
굳이 헬레나가 나서서 그 착각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너희들이 나타나준 덕분에, 굳이 내가 귀찮게 손 쓸 필요 없이 도전자가 만들어졌다. 내 위업에 도움을 준 것에 감사를 표하마.”
블라디미르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 과정.
가장 비천한 계급에서 태어난 소년이, 착실하게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아가 끝내 도달한 장소.
그곳에서 맞이한 풍경이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무대라는 아이러니.
이 무대야말로 비로소 자신이 연출하고 만들어낸 클라이맥스이자.
“원환의 연쇄를 완성하기 위한 최후의 무대다.”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소년이, 끝내 자기 아버지를 죽였을 때 도달하는 원환의 연쇄 고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물어볼 것도 없다.
“대장군을 죽이고 강자라는 위치에 오른 소년은, 추후 자신의 위치를 노리고 다시금 나타나는 또 다른 비천한 약자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될 테지.”
그렇게 죽이고죽이고, 질투의 열망은 쌓이고 쌓여 무한한 신앙을 키운다.
그것은 곧.
“나를 아르카디아조차 뛰어넘는 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괴소, 그리고 광소.
미친 듯이 웃으며 말하는 블라디미르의 말을 듣고난 뒤.
헬레나는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아버렸군. 네놈은 신도 뭣도 아니다.”
헬레나는 기억한다.
자신은 아무리 신좌에서 밀려나, 아무리 그 육체와 정신이 복수심으로 뜨겁게 불타오른다 하여도.
내가 내려다보는 존재, 나를 우러러 보는 아이들에겐 애정을 느껴왔다.
마계의 아이들이 그러했고, 이곳에서 목 놓아 자신을 부르짖던 이멜다가 그러했다.
하지만 저 놈은 다르다.
만력교의 신, 유토피아로서 자신이 돌보아야 할 자식들마저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태도.
저건 이미 평범한 광기로 도달할 경지가 아니었다.
“내가 돌아버렸다고? 무엇 때문에?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실로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만들어낸 이곳 케뮬란은 그저 내가 아는 세계를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아. 아르카스. 애당초 너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지구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를 말이다.”
괴물이 거리를 거닐고, 법과 질서가 파괴되었던 시절.
정부는 기능을 멈추고 도시의 사람들은 순전히 자신의 손으로만 살아남아야 했던 세계가 있었다.
그때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법도, 윤리도, 사랑이나 애정, 우정 따위의 추상적인 감정이 아닌.
철저한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강자만이 약자 위에 군림하는 질서였다는 것을.
“약육강식은 우리가 일개 인간이었을 시절부터 세계를 지배하던 룰이었다. 잊었나? 만인이 괴물에게 살해당했던 그 시절, 지옥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강자뿐이었다.”
그러니 이곳도 마찬가지다.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고, 죽이고 칼을 겨누는 것뿐이야. 난 모두에게 그런 무대를 만들어준 것뿐이지. 이게 무엇이 문제지?”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꺼내든 말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리 떠들고 있었다.
놈의 눈동자는 기이한 열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헬레나가 기억하기로,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출신으로. 특히 그곳에서도 영구동토(永久凍土)라고 불리는 얼음의 땅에서 태어난 헌터라고 알고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도 더욱 척박하고, 더욱더 괴물의 위협에 취약했으며.
갱단의 힘이 지배하던 지역에서 태어난 헌터.
그런 헌터가 가슴에 품어온 질서는, 분명 다른 이들의 상식과는 다른 구조로 이루어진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남자는 더욱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했던 인간.
그 인간의 마음은 끝내 이곳에서 만력교라는 힘의 논리로 재탄생해버렸다.
더구나 희미하지만, 헬레나는 증오와 질투로 불타고 있는 블라디미르의 눈동자가 누구에게 향해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블라디미르의 시선이 쫓는 자는 분명·········.’
그때였다.
카아앙!
다시금 날카롭게 울리는 쇳소리.
– 아아아악!!
소년의 비명소리와 코를 찌르는 혈향까지.
포효하는 울음 소리가 귓전을 때린 순간.
헬레나는 심언 마법을 발동했다.
관중석에 있을 민세희에게 진상을 알려야만 했다.
****
베오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 째서, 아버지가······.’
거구를 이끌고 눈앞에 등장한 당사자.
그 얼굴은 분명 베오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처음엔 당혹감이 치밀었지만, 이윽고 밀려온 건 그리움이었다.
“아, 아빠. 보고 싶었어요!”
그랬다. 지난 3년 간, 얼마나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왔던가.
한 걸음, 베오가 다가가자.
휘익! 쿠웅!
“윽?!”
베오의 코끝으로 대검이 휘둘러졌다.
자기 키만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세는 노도와도 같았으니.
단순한 검압이 일으킨 바람만으로도 베오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아빠! 저에요! 베오에요!”
몇 번을 애타게 불러봤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기색은 바뀌지 않았다.
그저.
[도전자 소년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이것도 무언가 작전의 일환인 걸까요? 하지만 우리의 챔피언! 전혀 동요하지 않습니다! 검을 휘두르고 덤벼오라는 듯 여유로운 자태!]사회자의 말이 야속하다.
다만 그것보다도 더욱 베오의 마음을 안달나게 만든 건 아버지의 상태였다.
‘이상해.’
눈동자는 베오를 바라보고 있지만, 어째선지 거기에 초점이 없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대검을 몇 번 휘둘러 본 아버지는 베오의 부름에 답하는 대신, 천천히 투구를 들어 자신의 얼굴에 썼다.
[대장군의 준비가 전부 끝났습니다! 그럼 양측 준비하시고!]“아빠······!”
베오의 부름도 허망하게.
[경기 시작합니다!]콰아앙!
바닥을 박차고 베오를 향해 대검이 내리찍혔다.
후욱, 후욱.
무대를 가득 매우는 거친 숨소리.
턱, 타악.
무겁지만 날렵하게 바닥을 튕기는 걸음걸이까지.
콰앙!
대검과 철검이 부딪친 순간, 베오의 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욱 밀려났다.
그 순간, 베오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아버지의 눈동자는 지금까지 수없이도 보아온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질투의 열망.
아버지의 눈동자는 말했다.
– 내 자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반역자를 내버려둘 수 없노라고.
“아빠! 정신차려요! 아빠!”
베오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어머니와 동생인 베니가 걱정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라. 함께 돌아가자.
이미 승리한다는 마음은 마음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아버지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마음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지만.
“후우우욱!”
휘둘러지는 대검은 베오의 말까지도 일거에 갈라버렸다.
“크으으윽!”
어떻게든 배웠던 검술을 펼쳐보지만, 이미 승리하겠다는 마음이 꺾인 베오의 칼이 대장군의 대검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베오는 궁지에 몰렸다.
****
관중석.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은 베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베오의 입에서 튀어나온 ‘아빠’라는 말.
“······상황이 빌어먹을 정도로 꼬였구만.”
카스팔의 말대로였다.
상황이 꼬일 대로 꼬였다.
설마 3년 전 콘클라베에서 우승한 수드라 남자가 베오의 아버지였을 줄이야.
게다가 여기에 더욱 찬물을 붓는 소리가 헬레나로부터 민세희에게 닿았다.
“질투의 신물을 이용한 원환의 연쇄?”
심언 마법을 통해, 헬레나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민세희에게 전부 전했다.
신앙을 자아내기 위한 발전기.
즉 처음부터 모든 과정이 블라디미르의 손아귀에 있었다는 말이였다.
“이대로 두면 베오 군이 위험해질 걸세.”
레프너겐의 냉정한 말에, 민세희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도전자! 지금까지의 기세와는 달리, 계속 밀려나고 있습니다!]사회자가 기쁘다는 듯이 떠드는 말.
– 죽여라!
– 대장군이여 우승을!
– 감히 이 자리까지 올라온 수드라를 쳐죽여버려!
이 기이할 정도로 폭발하는 적의는, 전부 블라디미르가 준비한 것이란 말이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민세희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멀리 갈 것도 없이 하나.
– 베오가 아버지를 쓰러트리면 된다.
그리한다면 급한불을 끄고 상황을 우선 일단락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안돼.’
민세희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비장의 수단’이라면 제아무리 대장군이라고 할지라도 쓰러트릴 수 있다.
베오를 콘클라베의 우승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결국 블라디미르의 노림수가 먹혀들게 돼.’
근본적인 해결로 이르지 못하게 된다.
아니, 그걸 떠나서라도 지금 저렇게 밀리고 있는 베오가 아버지를 쓰러트리고 우승한다면.
민세희는 확신했다.
그리 된 순간, 베오의 존재나 자아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질투의 열망에 당한 채로, 베오가 또 한 명의 ‘대장군’이 될 뿐이다.
블라디미르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그러했다.
‘계획을 속행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퇴각을 해야 하나?
사실 이런 상황에 몰린 순간, 민세희가 가장 먼저 떠올린 선택지가 있었다.
아마 다른 이가 듣는다면, 추악하다고 손가락질을 할 만한 생각.
– 베오에게 모든 걸 맡기고, 우리들만이 도망친다.
어차피 이번 행사의 참가는 베오가 직접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민세희 일행이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까지도 받아들이고 결정한 사항이었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서, 선배를 기다린다면 이번 사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선배라면, 그래.
강재민, 아르민 일레인스라는 이름을 가진 현대 마법사라면 능히 이 사태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우리들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베오가 여기서 죽건, 혹은 아버지를 쓰러트리고 또 다른 시스템의 부품이 되건.
우리들만이 퇴각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면 그만이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야.’
그래.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아닌 민세희가 떠올릴 수 있었던, 지극히 현대인스러운 사고방식.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고귀한 검성의 제자들이나, 성녀라면 절대로 떠올리지 않을.
– 실로 추악한 생각이기도 했다.
민세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말, 그걸로 되나?
그런 선택지를 택하는 것으로, 나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로 그때.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요.”
이멜다가 몸을 일으켰다.
바오르의 성녀로서 이름을 날려 온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구해야 해요.”
그렇게 무대로 난입하려는 걸, 레프너겐이 막아섰다.
“레프너겐 님, 말리지 말아주세요!”
“잠깐만 기다려주게나. 성녀 아가씨.”
레프너겐은 힐끗 민세희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평지풍파로 인생의 경험을 쌓아온 마탑주는 조용히 시선으로 물어왔다.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고.
뿐만 아니라, 카스팔과 브리타 또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민세희를 바라보았다.
‘내가 선택하라는 걸까.’
하긴 잠재적으로 이들 일행의 리더로서 활약해온 건 민세희 그녀였다.
제국의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간 위험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에는 일종의 ‘믿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 민세희, 그녀라면 어떻게든 대단하고 놀라운 해결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그 대단한 아르민 일레인스의 후배라고 자처하는 그녀라면, 분명 상황을 타개할 멋진 해결책을 보여줄 것이라고.
민세희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내게 그런 놀라운 능력 따윈 없는데.’
선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능력과 힘.
아무리 현대 마법을 같이 배웠다고는 해도, 자신의 힘엔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
순간적으로 소년을 포기해버린다는 추악한 선택지까지 떠올려버린 자신을 말이다.
– 부채감.
가슴을 깊숙이 쥐어짜는 그 감각에, 민세희는 고개를 들었다.
“작전은 여기서 종료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멜다와 눈을 마주쳤다.
소년을 구해야한다고 바로 이야기한 성녀의 바람에 응할 수 있도록.
“베오를 구해서 도망치도록 하죠.”
순간 이멜다의 표정이 환해졌다.
****
“네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나 보군.”
콰아앙!
저 멀리, 무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자욱한 폭연이 시야를 가렸다.
무대의 귀퉁이가 무너지고, 그 사이로 혼란이 번져나가며.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사라지는 것이 블라디미르의 눈에도 보인 것이다.
헬레나는 손에 불꽃을 머금었다.
화르륵.
“호오, 한 번 해볼 생각인가? 그것도 유흥으로 나쁘지 않겠지.”
블라디미르는 박수를 치며 전신에서 신력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쿠우웅!
압도적인 힘.
그걸 목도한 순간, 헬레나는 알 수 있었다.
‘놈이 했던 말은 허언이 아니야.’
이 감각, 피부를 간질이는 압도적인 신력의 힘은 놈이 완성했다는 [원환의 연쇄]가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움직인 순간, 전신이 신의 광휘에 의해 짜부라질 것만 같은 감각.
헬레나는 직감했다.
‘신좌에서 밀려난 나는, 블라디미르를 이길 수 없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상대는 아직도 신격을 유지하고 있는 능력자.
그에 반해 그녀 자신은 봉인까지 당해, 능력의 대부분을 빼앗긴 신격의 짜투리가 아니던가.
더구나 원환의 연쇄까지 더해진 놈의 힘이라면, 능히 생전의 아르카디아조차 능가하는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은 셈이다.
결국.
“쳇.”
헬레나 또한 이스텔과 몸을 돌렸다.
정면에서는 상대할 수 없다. 지금은 후일을 도모할 때였다.
그렇게 몸을 돌리긴 했지만.
헬레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망치는 건 안 막을 생각이야?”
헬레나의 질문에 블라디미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시스템은 완전해졌다. 굳이 내가 막을 이유가 없어. 오히려 여기서 꽁무니를 내빼주는 그대들의 모습은, 내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증거가 될 뿐이지. 그러니 감사의 표시로 자비를 보여주도록 하마. 도망쳐도 좋다.”
그 말에 헬레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그러고 보면 그랬다.
“칠영웅으로 활동했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말이야. 당신이라는 남자 진짜 밥맛이야.”
생전의 미스터 강과는 다른 의미에서 상대하기 껄끄러웠던 남자.
“그래도······.” 라고 말을 덧붙인 헬레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블라디미르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그 얄팍한 승리감을 만끽해두는 게 좋을 거야. 언젠가 당신의 자만심이 그 목을 죌 테니까.”
그 말만을 남겨둔 채, 헬레나는 이스텔과 함께 방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사라진 헬레나의 뒤를 향해.
“아니, 그런 일은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을 기점으로 케뮬란의 세계는 비로소 완전해질테니까.”
블라디미르는 손짓을 하여 부하들을 불렀다.
힘을 발휘하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음에도, 블라디미르가 도망을 허락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 교황님.”
부름에 답해 부복한 만력교의 사제들을 향해, 교황은 명령했다.
“도망간 자들을 수배해라. 상대는 수드라 계급의 비천한 자들. 도전할 자격을 이용해 무대까지 올랐건만. 결국 우리의 성스러운 콘클라베를 더럽힌 채 도망쳐버렸다. 지금부터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놈을 죽인 자에겐 계급 특진과 함께 상금을 지급하겠다.”
블라디미르가 택한 건 계엄령 선포였다.
이번 일을 이용한다면 콘클라베 뿐만이 아니라.
일상 전체에 질투의 열망을 보다 진하게 스며들게 할 수 있을 터.
‘이번의 도주극까지도 내 시스템의 완성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주마.’
블라디미르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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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5장 – 나약한 존재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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