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1)
내 마법이 더 쎈데-131화(131/203)
< 제66장 – 비천하지만 고귀한 자 (1) >
이멜다는 생각했다.
– 고결함이란 무엇일까?
신성왕국 바오르로부터 성녀의 칭호를 받아들고, 다른 이들에겐 고결한 성녀로서 받들어지는 이멜다지만.
자신은 원래 평범한 약초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즉 모두가 고결하다고 말해주는 그녀는, 단지 주어진 힘이, 형편이, 배경이, 그리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그저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성녀로 여겨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멜다는 기억하고 있다.
그 날.
평범한 약초꾼에 불과했던 자신으로 하여금, 여동생을 구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고, 앞에서 이끌어주며, 끝내 빛을 보여준 남자를.
– 말했지. 이멜다. 나는 네게 동생을 구할 기회를 주겠다고.
아르민 일레인스.
다정하다기보다는 무심하고, 살갑기보다는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악(惡)을 쓰러트리고, 죽어간 이들을 위로한 그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이멜다는 느꼈다.
– 고결함이란 이런 것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어떤 막다른 길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는 것.
악을 용납지 아니하고, 정의를 우습게 여기지 아니하며, 비틀린 모습이나마 노력하는 자들을 인정하는 마음.
그것이 이멜다가 느끼고 깨달아온 고결함이었고.
때문에.
‘민세희 님, 당신도 그 분과 같은 분이셨군요.’
이멜다는 미소 지었다.
수인족 소년을 위해, 괴로워하는 소년을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인생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며 솔선해서 움직인 그녀.
민세희,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감정을 추악하다 토로하고, 누구보다 비천한 것이야말로 자신이라 말하지만.
이멜다는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요.’
민세희, 그녀는 빛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남들이 성녀라 추켜세우는 자신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결한 빛을 품고 있었다.
‘솔직히 당신께서 15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분을 기다려왔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부터 생각해온 것이지만.’
감히 이멜다는 그녀가 견뎌 내온 시간의 무게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자신의 추악함마저 직시한 저 고결한 모습에서, 그녀야말로 아르민의 옆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라고.
나를 향한 질투라니, 당치도 않다.
‘그 사실이 조금 분해요.’
하지만 동시에 성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성녀는 지금, 고결한 자와 함께 하고 있다.
****
민세희가 설명한 계획은 이러했다.
“콜로세움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베오의 결전을 재현할 생각이에요.”
“·········진심인가?”
가장 먼저 반론의 목소리를 낸 건 레프너겐이었다.
다른 이들도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레프너겐과 같은 마음이 느껴져 왔다.
우선 굳이 왜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와 싸워 꺾인 베오에게 다시 그러한 고행을 강요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유라면 있었다.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민세희가 사태 해결을 위해 골몰히 생각을 거듭하던 중 떠올린 사실.
그건 현재 그들을 노리는 수인족들의 행동 바탕에 ‘질투의 열망’이라는 신물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질투의 열망.
남을 질투하고, 증오하고, 내가 있는 이곳으로 끌어내리기를 원하는 마음.
수드라 계급을 차별하고, 비천한 자가 고귀한 자리에 오르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부러움을, 멸시를, 질투를 품게 만들었다.
블라디미르는 그것을 ‘원환의 연쇄’라는 시스템으로 케뮬란 왕국에 정착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바로 그 원환의 연쇄를 근본부터 부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이러해요.”
민세희는 짧고 굵게, 일행들에게 자신이 떠올린 계획을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난 뒤.
“······정말, 그런 걸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카스팔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물어왔지만.
당연하게도.
“100% 확신할 수는 없어요.”
민세희는 그리 말하며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렇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최악으로 치닫는 현 상황을 뒤집기 위한 역전의 발판.
민세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요구한 바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아예 무리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도.
차라리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오를 위해 그녀는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선배의 마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여기 있는 소년을 위해.
“부디 모두 협력해주세요.”
민세희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 망설이겠지, 혹은 거절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도 전부 감수한 그녀였지만.
“물론이네.”
“당연히 협력하겠습니다.”
“세희 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까짓것 해보죠!”
“기꺼이 도와드리겠어요.”
곧바로 돌아온 대답들.
레프너겐, 카스팔, 브리타, 그리고 성녀 이멜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옆자리에서 따로 떨어진 이스텔과 헬레나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돕겠다고 해주었다.
“······여러분.”
그런 민세희의 손을 이멜다가 잡아주었다.
“처음부터 말했었죠. 돕는다면 확실하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그렇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거기엔 후회가 남지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결말 뿐.
“이 두 팔은, 고결한 당신을 지탱하기 위해 있답니다.”
그 말에 민세희는 안심했다.
추악한 감정을 토로하고도, 이들은 내 곁에 남아서 이렇게 지탱해주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
잠시 뒤, 소식을 접한 블라디미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부하를 향해 물었다.
“놈들이 콜로세움에서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무슨 협상?”
“그게······. 결승전까지 올랐던 참가자의 대결을 다시 열어줄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을 전하는 부하조차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만큼, 협상 요구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써 그 자리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도망쳤던 주제에 이곳으로 돌아온 것도 놀랍건만.
다시 싸우자니?
“국민들은? 현상금을 내걸었잖나. 국민들은 어쩌고 있지?”
“그렇지 않아도 현재 콜로세움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야 질투의 열망으로 들끓는 국민들이 놈들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
필연적으로 싸움이 벌어질 터.
“그런데 놈들은 도망칠 생각도 않고······.”
“않고?”
부하는 차마 말하기 죄송스러워하는 투로 한 마디를 더했다.
“덤벼드는 자들을······. 그게······. 전부 쓰러트리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죽이지는 않고 제압만 하고 있지만 그 실력이 말도 안 되게 강합니다······!”
“······하!”
부하의 모든 보고를 듣고나서, 블라디미르는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을 머금었다.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아예 정면에서 싸우길 선택했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한단 말인가?
‘물론 헬레나까지 포함된 파티라면, 일반적인 수인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는 애당초 이번 추격전을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발로 빵 터트려 놈들을 쓸어버릴 수 없는 이상.
천천히 각개격파를 노리고, 차근차근 체력을 갉아먹어 하나 둘 제압하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허나 놈들은 아예 태도를 바꾸어 이쪽으로 쳐들어왔다.
더구나 아들과 아버지가 다시 싸우기를 원하다니.
“어찌하시겠습니까?”
응해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좋아. 대장군을 내보내도록.”
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블라디미르는 입가를 비틀고는 부하에게 명했다.
“어디 한 번, 놈들이 어디까지 재롱을 부리는지 직접 확인해주지. 이렇게 된 거, 이번 전투를 끝으로 일망타진을 해야겠어.”
천천히 국민들의 욕구를 부채질하여, 연환의 연쇄를 위한 시스템 강화에 써먹을 생각이었지만.
직접 덤벼왔다면 거기에 맞춰 상대해줄 뿐이다.
“놈들이 벌인 짓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내 직접 증명해주마.”
****
콰앙!
덤벼드는 늑대 수인의 옆구리를 카스팔이 겁집째로 후려친다.
– 크아앙!
그 뒤로 허공을 박차고 달려드는 고양이 수인은 카스팔의 뒤를 이어 근육이 부풀어 오른 레프너겐의 주먹이 틀어박혔으니.
한 번에 하나.
콰앙!
몇 번이나 되는 싸움 속에서, 대체 지금까지 몇 명의 수인을 쓰러트렸을까.
헬레나나 이스텔이라면 몰라도, 어느새인가 카스팔과 브리타, 그리고 이멜다의 얼굴에서는 확실히 피로가 엿보이고 있었다.
무모한 싸움.
처음부터 민세희가 그들에게 요구한 건, 콜로세움에서 버티며 덤벼드는 수인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이상 추격자는 반드시 따라붙는다.
이 싸움은 어쩌면 영원히,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민세희는 믿는 바가 있었다.
그때.
“저, 저도 싸우겠어요!”
일행의 중심에서 베오가 그리 외쳤지만.
“됐어. 너는 우리들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해줘야 해. 그때까지는 힘을 비축하고 있어.”
“그렇지만······!”
민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베오는 힘을 비축할 때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민세희 자신이 베오를 더욱 괴롭고 힘든 일을 맡도록 등을 떠밀지 않았던가.
최소한 그때까지는, 우리들이 베오를 지켜야만 했다.
콰앙!
한 명 더.
악어가 이족보행을 하는 것처럼 생긴 수인을 때려눕힌 카스팔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후우, 후우, 정말 놈들이 재결전 요구에 응해주리라 생각하십니까?”
“응해줄 거에요.”
민세희는 확신했다.
계획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놈이라면 움직인다.
헬레나에게 듣고, 지구에 있을 적 그곳에서 들어왔던 블라디미르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수학 계산식만큼이나 그 남자의 반응은 뻔했다.
연극적이고, 희극적이며, 자신이 세운 룰이 전부 잡아먹는 걸 지켜보고 싶어 하는 그 남자라면.
분명 민세희가 만들어낸 이 무대 위로, 링 위로 오를 것이다.
그리고.
– 크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갑옷을 걸치고, 대검까지 쥔 남자가 테라스 위에서 콜로세움의 중심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장군.
베오의 아버지.
그가 나타난 것이다.
“·········!!”
질끈, 베오가 입술을 깨무는 기척이 전해져왔지만.
민세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뚜벅 뚜벅.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회장에 나타난 자.
블라디미르는 오연하게 민세희 일행을 내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놈들, 하지만 좋다. 너희의 요구를 수용하마. 신성한 콘클라베의 의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데 교황의 자비로 응하지 못할 것도 없지. 대장군. 놈들을 찢어죽여라.”
– 크아아아아!!!
명에 따라, 거대한 대검이 베오를 향해 휘둘러졌다.
****
카아앙!
쇠와 쇠가 부딪친다.
검과 검이 교차하고.
쇳소리에 이어 불똥이 허공을 수놓는다.
교황의 명으로 다시 시작된 콘클라베의 결전.
민세희 일행을 사냥하기 위해 모인 수인들은 싸우는 대신,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포효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 죽여라!
– 쳐죽여라!
– 찢어 발겨라!
대장군을 응원하는 그들은 바란다.
감히 비천한 신분을 가지고서, 수드라 계급의 출신으로서 저 자리에 위치한 소년.
자기 주제도 모르고 저 자리에 오른 어리석은 놈을 죽여라.
피를 토하게 만들고, 자기 주제를 알도록 만들어라.
– 제까짓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려줘라!
질투는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증오는 열망을 피워올린다.
그것은 블라디미르가 그토록 바라는 세계였다.
카앙!
한 번 더 검과 검이 부딪쳤다. 싶은 바로 그 순간.
후우웅!
베오의 검이 기묘한 궤적을 그렸다.
카스팔과 브리타에게 배운 검술을 따라,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 기술.
지구 있을 적의 지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량발천근(四兩拔千斤)의 묘리가 발휘된 것이다.
– 아!
누구의 탄성이었을까.
방금 전의 공방으로 인해 대검이 튕겨져 나간 대장군의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그곳을 향해 검을 찌르기만 하면.
아주 단순한 그 행위만으로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하앗!”
전진하는 대신, 베오는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길 수 있음에도, 상대를 쳐죽일 수 있음에도 망설이고야 마는 그 자태.
수인들은 베오를 가리켜 소리 질렀다.
– 나약한 새끼.
– 멍청한 놈.
– 왜 싸우지 않은 거냐.
– 어째서 싸우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냐.
나약하다.
투쟁심도 없고, 남을 질투하는 욕망도 없다.
나보다 잘난 위치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검을 거두는 소년은 만력교라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이분자였다.
– 투쟁해라!
– 싸워 쓰러트려라!
수많은 질타와 혐오, 증오, 외침이 무대를 가득 메우지만.
베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버지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이 싸움은 그러한 싸움이었다.
그저 싸우기만 하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눌 수 없는 소년으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칼을 휘두르지 말라 요구하고.
아버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 채로, 절대로 아버지에게 패배하지 말라.
민세희는 베오에게 그런 무리한 일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누구도 상처 입는 일 따윈, 싫어······.”
그것은 나약하지만, 소년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베오가 떠올리는 건 그 날의 기억이다.
3년 전.
– 아빠!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세상이 멀쩡했을 시절.
– 아빠, 이번에 콘클라베가 열린대요! 거기 참가해서 우승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잡화점 아저씨가 그랬어요!
소년은 한점의 의심도 없이 아버지에게 가서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신기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그때, 커다란 손이 소년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 베오는 행복해지고 싶니?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 네!
당시 소년이 떠올린 행복이란, 어떠한 형태의 물건이었을까?
– 아빠랑 엄마랑, 베니랑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수드라 계급으로서, 가장 비천한 자로서 꿈꾼 행복이란 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그래.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씩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 이 아빠만 믿어라.
하지만.
“허억······. 허억······.”
카앙!
피가 튀고, 선혈이 흩뿌려지며, 가쁜 호흡이 무대를 감싸는 와중에.
베오는 소리쳤다.
“······아빠, 저······. 잘못 생각,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와 싸우고, 쓰러트리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높은 자리로 향하는 일 따윈.
“그런 건······. 전혀 행복해지는 일이 아니에요······. 아빠······.”
그 당연한 사실을, 이 세상에서 3년 전을 기점으로 모두가 잊어버린 그것을.
자신조차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 그어어어어어!!
이성은 돌아올 기미조차 없이.
무자비하게 아들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아버지.
만약, 그때 자신이 억지로 행복을 바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일은, 없었을 텐데······. 그쵸?”
콰아앙!
세계는 이상해졌다.
그걸 알아채고 있었으면서, 베오 자신도 어느 샌가 이상해졌던 걸지도 모른다고.
“난······. 이제 싸우고 싶지 않아요······.”
더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았다.
소년이 바라는 바람은 단순했다.
나는 단지.
“아빠랑······. 엄마랑······. 베니랑······. 돌아가고 싶어요······. 그때로······. 제일 행복했던······. 그 날로······.”
카아앙!
싸우고.
피를 토하고.
검이 부딪치고.
끝내 선혈을 흩뿌리더라도.
소년은 쓰러지지 않는다.
아버지를 쓰러트리지 않을 작정이라면, 남는 건 이쪽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각오 뿐.
실로 어설프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그 마음을.
– 그 누가 죄악이라 했는가.
칼을 맞대고 있을지라도, 마음에 품은 칼만큼은 겨누지 못하는 이 마음을 어찌 나약함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민세희는 알고 있다.
소년이 품은 마음은 고귀할지언정 나약하지 않다.
질투라는 감정 대신, 소년이 품고 있는 마음은 필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이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잘못되지 않았어.’
그러니.
콰앙!
“크으으윽!!”
– 그아아아!!
대검이 휘둘러지고 주르륵 베오가 미끄러진 그 순간에 이르러, 베오의 옆구리가 대장군의 대검 앞에 훤히 드러났다.
단순한 칼질 한 번.
그것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 멍청아! 옆으로 굴러서 피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오의 몸이 본능처럼 반응해 옆으로 구르자
쾅!
그 자리로 대검이 박혀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 일단 무기를 빼앗아! 그러면 대응할 수 있어!
– 그게 말이나 돼냐! 그보다 방패다. 방패를 먼저 주워서 막는 게 낫다고!
이어진 말들은 증오가 아닌 다른 빛으로 반짝인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뭣?”
블라디미르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고.
쩌적.
원환의 연쇄 사이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균열은 시작된다.
< 제66장 – 비천하지만 고귀한 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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