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2)
내 마법이 더 쎈데-132화(132/203)
< 제66장 – 비천하지만 고귀한 자 (2) >
크샤트리아의 계급.
긍지 높은 검은 이리의 혼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싸워온 ‘남자’에게 있어 투쟁이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우리의 국가가 믿는 만력교(萬力敎)가 말하지 않았던가.
싸움이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자,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다.
때문에 남자는 이제껏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싸워왔다.
– 싸워라.
피륙을 찢고, 누군가를 해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 상대를 찢어 발겨라.
그러지 못하는 자를 증오해왔다.
차라리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나라면 나와 맞서는 적을 쓰러트리고 그 목덜미를 물어뜯고, 심장을 뜯어내어 승리를 외칠 자신이 있다.
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하지만 정작 콘클라베에 무대를 선 자.
작고, 어리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꼬맹이는 그러지 않았다.
– 나는······. 아버지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놈이 내뱉은 말에 남자는 소리 높여 비웃었다.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공격하지 않으면 뭘 어쩌려는 생각이냐.
내가 먼저 적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상대에게 내가 무력하게 패배할 뿐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
만력교의 정신은 그러한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 나는 누구도 상처 입는 일 따윈, 싫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소년은 나약한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헛소리를.
– 위선 따윈 버려라. 칼을 들어라. 적을 찔러라.
비극의 주인공인양 굴지 말고, 네 검을 들어 아비를 찔러라.
변절한 아버지를 죽이고 몰락하는 아들의 이야기라니.
어쩌면 이렇게나 우리의 열망에 어울리는 이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였다.
– 아빠!
귓가에 들려온 그 목소리를 처음 들은 순간,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 아빠, 이번에 콘클라베가 열린대요! 거기 참가해서 우승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잡화점 아저씨가 그랬어요!
눈앞에 보인 풍경은 누구의 기억인가.
아비와 아들이 다정한 대화를 나눌 뿐인 광경.
행복해지고 싶냐는 아버지와 그러고 싶다고 답하는 아들.
그런 광경을 본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었다.
3년 전, 혹은 그보다도 전.
이 자리에 선 남자는 이미 가족에 대한 것을 잊었다.
잊은 채로 내다버렸다.
어차피 그들은 나와 함께 투쟁하는 자.
내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자.
만력교를 추종하는 남자에게 가족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 아빠랑 엄마랑, 베니랑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콘클라베가 뭔지도 잘 모르는 어리석은 아들을 위해.
– 이 아빠만 믿어라.
어리석은 아비는 스스로 칼을 들고 문을 나선다.
열기가 이어진다.
이 뒤의 이야기를 남자는 교황의 입을 빌어 이미 알고 있다.
아버지는 승리한다. 그리고 아들을 잊는다.
승리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여, 만력교의 교리를 온몸으로 실천한다.
그저 그 뿐인 이야기.
하지만 그런 광경이 이어진 뒤에도 소년은 여전히 그 칼을 아비에게 겨누지 않는다.
단지.
“아빠랑······. 엄마랑······. 베니랑······. 돌아가고 싶어요······. 그때로······. 제일 행복했던······. 그 날로······.”
소년의 나약하기만 한 마음은 남자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피를 토하고.
검이 부딪치고.
끝내 선혈이 흩뿌려지는 광경 속에서.
여전히 오롯이 버티고 선 소년의 모습을 보고, 남자는 생각했다.
싸우는 행위는 오로지 자신의 보신을 위해.
교황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이제까지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거늘.
이곳에서 본 싸움은 다르다.
남자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아예 근본부터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하는 나약함.
그걸 보고 나서야 남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가슴에 차오른 열기는.
이 가슴에 전해져오는 감정은.
이곳에서 가슴 속으로 차오르고 있는 열기는 필시.
– 싸워라.
이전과 같은 내용의 말을 내뱉지만.
확실하게도.
“·········멍청아! 옆으로 굴러서 피해! 가만히 있다 뒈지고 싶냐?!”
아까까지와는 전혀 다른 뜨거움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쩌적.
균열은 분명히 생겨났다.
****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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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균열.
그 균열 사이로 새어든 목소리는 관중석을 넘어 무대까지 전해진다.
– 싸워라!
목소리가 꺼내드는 외침은 이전과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 물러서지 말고 버텨!
– 체력을 온존해! 여기서 더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니까!
– 일단 관절을 노리는 거야! 다리부터 무력화 시켜라!
– 멍청아! 아버지를 찌르고 싶지 않다잖아!
– 아! 진짜 조건 개빡시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난폭하고, 폭력적이고, 또한 제멋대로인 말 투성이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분명히도 변화했다.
“대체······!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게냐?!”
남자, 블라디미르의 얼굴이 무너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년 베오와 관중석을 번갈아보며, 그는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그야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
약육강식의 룰을 세우고, 그것만이 전부라 믿어온 남자는 여기에 펼쳐진 풍경의 변화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민세희의 노림수는 간단했다.
“당신이 말했었지?”
가장 비천한 계급에서 태어난 소년이, 착실하게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아가 끝내 도달한 장소.
그곳에서 맞이한 풍경이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무대라는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 원환의 연쇄를 완성하기 위한 최후의 무대다.
되돌아보면 지독하기 짝이 없는 연출의 무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국민 모두가 품고 있는 질투의 열망을 들끓게 하는 광경이겠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그 말을 돌려주겠어.”
이지를 잃고 광전사가 되어 싸우는 아버지 앞에서 검을 들어, 막아서고 막아내고, 그러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은 아들의 모습은.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광경이잖아?”
그래.
블라디미르가 이제껏 국민들이 질투의 열망을 품도록 케뮬란이라는 국가를 만들어왔다면.
민세희가 한 건 아주 단순한 행위였다.
“세상 모두가 품고 있는 질투의 열망에도 끄떡 않고 아버지를 지키기 위한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있어.”
모두의 마음이 질투의 열망으로 들끓어오르고 있다고? 블라디미르가 원환의 연쇄를 자아냈다고?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그렇다면 열망을 다른 걸로 대체하면 그만이야.”
남을 끌어내리고 질투하는 것에 열광하는 것이 아닌.
남을 응원하고, 노력하는 것에 열광하는 세상을 보여주도록.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고, 피를 보지 않고, 피해를 끼치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어.”
자신은 그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줬을 뿐이다.
다름 아닌 블라디미르, 그 작자가 만든 무대를 이용해서 말이다.
“······하, 네놈······. 감히······!”
쩌적.
한 번 더.
원환의 연쇄가 무너진다.
남자의 대업은 소리를 내며 귀퉁이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저 남자가 그토록 무시하고 비웃고 짓밟기만 했던······.
아버지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아들의 일념 하나 때문에.
“노오오옴······! 웃, 기지 마라!!”
테라스 너머에서, 참지 못한 채 분노를 일으킨 블라디미르는 그대로 목청 높여 소리쳤다.
****
– 교황님?
– 무슨 일이지?
콘클라베의 결전을 지켜보고 있던 관중석은 난데없는 교황의 괴성에 당황스러워하기 시작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블라디미르는 대장군을 향해 명했다.
“무얼 꾸물거리는 거냐! 덤벼드는 잔챙이 따윈 냉큼 베어버려라! 그리고 저기서 만력교의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자 놈들까지 전부······! 전부 죽여 버리란 말이다!”
약육강식의 룰을 지켜라.
이 룰이 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해라.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블라디미르는 악을 써댔지만.
– 그, 아······.
정작 대장군의 반응이 이상했다.
휘두르던 대검에서 예기(銳氣)가 사라지고,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던 움직임이 조금이나마 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뭣이?”
어째서인가.
블라디미르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 해답을 마법구조에 해박한 민세희가 대신 입에 담았다.
“당신이 만들어낸 원환의 연쇄. 질투의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한 거야. 주변을 봐.”
“주변?”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돌리자, 관중석 이곳저곳에서 속삭이는 말들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 콘클라베라면 신성한 싸움이지 않나?
– 교황께서 직접 개입하신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 만력교의 교리에 반하는 일이 아닌가?
아.
블라디미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이미지메이킹을 해온 교황이란 만력교의 교리를 따르는 자.
싸운다면 그 싸움의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디까지나 이긴 자를.
약육강식의 룰을 증명한 자를 치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놈들의 대처가,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에게 엿 먹인 일을 보고 참지 못한 채 직접 나서버린 것이다.
“크윽······! 감히 내 앞에서 이 따위······! 잔재주를······!”
그 순간.
“윽?!”
블라디미르는 감지했다.
자신의 힘이 어디론가 빠져 나가고 있다.
관중석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의심의 시선. 그것이 원환의 연쇄로 만들어놓은 신앙 발전기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단적으로 말해.
‘신앙이······. 흐려진다. 힘이 빠져 나가고 있다고?’
온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생각했거늘.
질투의 열망이 사라진 순간부터, 점차 자신의 힘은 줄어들고야 말 것이다.
“안돼······.”
그것만은 안되었다.
나는 강자다.
언제까지고 강자로 군림하고자 한 존재다.
다른 칠영웅을 포함해, 주신의 자리에 오른 아르카디아를 뛰어넘어.
······아니, 그 뿐이랴······!
“나를 엿 먹인 그 남자를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이 힘을 포기할 것 같으냐!”
쿠웅.
테라스의 전체로 압도적인 기운이 흩뿌려진다.
블라디미르가 그 육에 응축하고 있던 신성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좋다. 내 힘이 사라지고 있다면······! 전부 사라지기 전에 내가 직접 이 자리에 있는 전부를 쳐죽여주마!”
블라디미르가 택한 것은 아주 심플한 행위였다.
“어차피 내가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이분자들은 여기에 있는 놈들 뿐이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여버리고 은폐한다면 내가 만들어낸 시스템은 여전히 완전히 유지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의 외침과 함께.
– 으아아악!
– 피, 피해!
콰앙!
파직파직!!
번개줄기처럼 뻗어나간 힘의 파편이 사위를 부수고, 박살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헬레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사전에 민세희가 말한 대로,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가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의 말은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무리 벌어진 일이라도 숨기고 은폐하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런 선택지를 택한 것이 참으로 블라디미르답다고 생각하면서.
“이, 이건?!”
“위험합니다. 자리를 피해야 해요!”
카스팔과 브리타의 경고가 날아든 바로 그때에.
콰앙!
번개줄기 중 하나가 대장군의 등허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쿠웅!
육중한 갑옷을 걸친 몸뚱이가 몇 번이나 튕기며 바닥을 구른다.
“아빠······!”
그 광경을 본 베오는 그대로 있는 힘껏 아버지에게 달려가기 시작했으니.
– 가만히 내버려둘 것 같으냐!
쐐애애액!
베오와 대장군을 향해 또 한 번 번개줄기가 쏘아졌다.
그것을.
“헬레나 씨······!”
“맡겨만 줘!”
민세희의 외침에 화답하며, 헬레나가 불꽃을 일으켰다.
신좌에서 내려온 이상, 정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저런 파편 따위를 막는 일 정도는 헬레나에게도 가능했다.
화르륵.
콰아앙!!
솟아오른 불꽃이 번개를 막아서며 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베오! 아버지를 데리고 도망쳐! 카스팔 씨와 브리타 씨, 그리고 레프너겐 씨는 베오와 함께 이곳에서 도망쳐주세요!”
“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세희 님은······!”
“저, 저도 힘을 합쳐서 교, 교, 교황님을 막겠어요!”
반발하는 브리타와 베오를 향해 민세희는 입가를 비틀어, 미소 짓는 얼굴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블라디미르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괜찮아요.”
그래, 괜찮다.
왜냐하면.
“베오를 돕는 일에는 처음부터 블라디미르를 막는 일까지 전부 계획에 들어있었으니까요.”
민세희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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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6장 – 비천하지만 고귀한 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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