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6)
내 마법이 더 쎈데-136화(136/203)
< 제68장 – 신물의 정체 >
스르륵.
하녀 케냐는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옷자락을 풀기 시작했다.
한 올, 한 올.
스스럼없이 옷자락을 벗어가는 모습에선 여성이라면 응당 보일 수치심 따윈 보이지 않았다.
딱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응하는 그 모습은 보는 아르민조차 감탄이 나올 만큼 무심하기만 했지만.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잠깐.”
덜컥.
아르민의 제지하는 행동에 케냐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계신지?”
물론 딱히 도덕적인 이유로 그 행위를 막은 건 아니었다.
– 지배인이 여자를 보냈고, 자신이 그걸 취한다.
이 행위가 어떤 추악한 거래를 뜻하는지 모를 아르민이 아니었다.
설사 정말로 순수한 호의에서 보내왔건, 북방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지금이라도 낚아채고 싶어 대가성으로 보내왔건.
여기서 쓸데없는 약점을 잡히는 것만큼은 사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민은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하녀를 바라보았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란 말이지.’
아르민이 처음 그녀를 보고 눈을 빛낸 이유.
그건 실제로 그녀의 외모에 혹했다거나, 그런 류의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순전히 그녀에게서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 챘을 뿐이었다.
“정말로 지배인의 명으로 밤 시중을 왔다는 건가?”
굳이 한 번 더 던지는 질문엔 순수한 의구심이 담겨 있었다.
“······예, 하녀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돌아온 대답의 내용은 역시나 변치 않는다.
여기서 케냐, 그녀가 진짜 자신을 드러낼 생각 따윈 없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했을 뿐.
여전히 하녀라는 정체성을 고집할 생각이라면야.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서로가 서로를 기만하는 행위.
적당히 연극에 어울려주자는 생각으로.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아르민은 고개를 젓고 입을 열었다.
“지배인에겐 이미 양해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전해지질 않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한 번 더 말하지. 난 밤시중 같은 건 필요 없어. 그쪽도 지배인에겐 내가 거절했다고 전하면 추궁하지 않고 넘어갈 거야.”
그러니 이쯤이면 됐다.
“알았으면 물러가도록.”
아르민의 축객령.
그러나.
“뭐, 또 볼일이라도 있나?”
여전히 케냐는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가는 대신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바로 돌아간다면, 같은 방을 쓰는 동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고 비춰질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르민이 거절을 했는지, 아닌지. 같은 숙소를 쓰는 동료들은 알 도리가 없다.
막말로 지배인의 명을 어기고 처음부터 찾아가지 않았다. 고 오해하게 된다면 그녀의 입지가 위험해진다는 소리였다.
아르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야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하녀’라면 밤시중 같은 피곤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당장 화색부터 보였을 테니까.
결국 여기서 케냐가 바라는 건.
“필사적으로 설득했지만, 결국 내가 거절했더라. 라는 명분이겠지?”
“·········.”
케냐는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뭐, 좋다.
“그래.”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밤이 끝나기엔 여유가 있었다.
“그럼 잠깐이라도 괜찮다면, 잡담이나 나눌까?”
그녀가 아르민의 추측대로 정말 평범한 하녀가 아니라면.
“때 마침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
조용히 촛불만이 타오르는 가운데.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케냐가 주방에서 타온 커피를 홀짝이며, 아르민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일은 할 만 한가?”
“······괜찮습니다. 벌이도 좋지요.”
케냐로부터 금빛 황금 상단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의 벌이가 얼마인지 듣고 나니, 확실히 아르민은 감탄했다.
“일레인스 저택에서 지급하는 보수의 두 배인가. 잘 나가는 상단은 확실히 다르구만.”
몰락해가는 백작 가문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케냐가 말한 금액은 확실히 평범한 서민의 월수입 따윈 가볍게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그 정도라면 진짜 밤시중 같은 옵션이 달려 있을지라도, 평민 출신의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북방의 영웅이신 아르민 님께도 시중을 드는 하녀가 있으신가요?”
“물론 있지.”
아, 물론.
“밤시중 같은 걸 들어주는 상대는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
약간은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지, 케냐는 고개를 숙이며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귀족이라고 전부 하인이나 하녀를 그렇게 취급하리라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애당초.
“마리나는 굳이 따지자면 시중을 들어주는 하녀라기 보단,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가족 같은 녀석이라서 말이야.”
아르민은 간만에 즐거운 어조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갔다.
굳이 자기가 원래 고향에서 망나니로 통하던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꺼내진 않았지만.
마리나가 처음 자신의 시중을 맡게 되었을 때 질색을 하던 이야기나, 서로 처음엔 친해지기 어려웠다는 둥의 이야기.
다만 최근 들어, 그래, 굳이 따지자면 약 5년 전.
이멜다와 그녀의 여동생이 납치되었던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다시 보게 된 마리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천둥벌거숭이마냥 속을 썩이던 아르민 일레인스라는 인간이었지만.
“수도 카라클에서 3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날 보고 울어주었을 땐 꽤나 기뻤었지.”
그랬다.
그것만큼은 가감 없는 본심이었다.
이것저것 아르민이 늘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유명하신 북방의 영웅께서 가진 개인사치고는······. 제법 소탈한 이야기군요.”
그 말에 아르민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앗, 혹시 무례한 말이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려는 케냐였지만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소탈한 이야기라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영웅이라고 불리는 나 같은 놈도 까놓고 보면 평범한 인간이란 이야기겠지.”
평범한 인간.
신을 죽이고, 강력한 마법에 손을 대고, 신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장애물을 만나고 뛰어넘어오더라도.
아르민은 자기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 점의 의심도 품지 않아왔다.
어쨌거나 대강 분위기도 너그러워진 것 같겠다.
아르민은 본론을 꺼내들었다.
“저택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넌 알토리움 토박이인가?”
“······토박이는 아닙니다. 3년 전쯤, 아버지를 따라 알포리움을 찾아왔으니까요.”
“아버지인가······.”
딸이 밤시중을 위한 하녀로 활동한다는 걸 알면, 꽤나 심정이 복잡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때 케냐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
딱히 동정하는 투의 말을 꺼내진 않는다.
대미궁도시 알포리움은 용병의 나라 포리네의 수도다.
이곳에 정착하는 자들이 하는 일이란 대개 위험하고 험한 일 투성이일 터.
특히 그것이 남자라면, 이것저것 남에게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개인사가 있을 테지.
그렇다면 여기서 본론.
“혹시 대탐색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대탐색······. 말씀이신가요?”
그래. 라고 아르민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처음으로.
“왜 영웅께서는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시나요?”
케냐의 눈동자가 아르민과 마주쳤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의 케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귀족, 영웅, 나아가 야심한 시각 외간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물러서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모습이 그녀의 본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무맹랑하다라······.”
아르민이 운을 떼자, 그제야 간신히.
“주제넘은 질문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소원을 들어주는 성배를 찾기 위한 대모험이라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맞지.”
하지만 아르민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별 거 없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서 관심이 가는 거야. 기왕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 왜, 영웅이란 언제나 모험이 있는 곳에 발을 들이는 법이니까.”
물론 헛소리였다.
그래도 그 말이 그녀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는지.
“영웅······이군요.”
케냐는 조심스레 그런 말만을 되뇌었다.
그래서 결국 뭔가 알고 있는지가 문제였지만.
“죄송하지만, 한낱 하녀로서는 알고 있는 건 몇 가지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큰 걸 기대한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지만.
잠시 후.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대탐색 때 벌어진 일은 그리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잃어버린 게 많은 원정이었다고······. 저는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케냐는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뒤에 덧붙였다.
마냥 들려오는 소문처럼 모험심을 자극하는 모험담은 아니었다는 냉철한 말.
그 말은 마치 모험담을 찾아왔다는 아르민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렇군.”
고개를 저으며, 아르민은 그런 식으로 맞장구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찾아오고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거사를 치렀다기엔 너무 짧고, 설득에 공을 들였다고 변명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슬슬 이정도면 됐겠지.”
케냐는 몸을 일으켜, 아르민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배려가 되었다면 다행이야.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내일 아침은 맛난 걸로 준비해달라고.”
아르민이 꺼내든 농담에 그제야 케냐는 처음으로.
“······물론입니다. 그것이 영웅의 부탁이시라면.”
살며시 미소를 보인 그녀는 탁하고 물을 닫고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조금 일정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창밖으로는 아직도 야심한 밤하늘 위로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는 중이다.
“그럼 어디 보자.”
아르민은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다가갔다.
케냐의 기척은 없다. 정말로 돌아간 것이다.
그럼 진정한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선 아르민은.
따악.
주저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
아르민이 발동한 마법은 두 가지.
하나는 제2종 마법, 비원소 계열의 개념 마법. 탐색 마법이었다.
– 필터는 서적, 금고, 서재라고 부를 수 있는 넓은 공간, 장서 수는 최소 50권 이상.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이어 발동한 것이.
– 광학위장(光學僞裝).
발소리를 죽이고,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대기의 떨림을 최소화하는 잠행 마법까지.
뚜벅뚜벅.
저택의 복도 건너편에서 순찰을 돌기 위해, 등잔을 들고 나타난 경비병은.
“흐아암.”
저벅저벅.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아르민의 옆을 지나쳤다.
이처럼 아르민의 위장 능력은 완벽했다.
‘자, 그럼.’
천천히 감각을 집중해, 탐색 마법을 발휘한다.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을 집중하고 나자.
‘찾았다.’
아르민은 저택의 서가로 보이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끼이익.
아르민이 고개를 들이민 곳은 책 곰팡내가 물씬 풍기는 자료실과도 같은 장소였다.
여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도 한세월이 걸릴 일이지만.
아르민은 곧바로 세 번째 마법을 발동했다.
– 속독(速讀)의 눈.
일순간이긴 해도 집중력과 함께 물건의 윤곽을 빠르게 훑고 인지하게 해줄 수 있는 마법.
요컨대 집중력 향상을 위한 마법을 사용한 뒤.
아르민은 서가에 놓여있는 각종 서책과 종이들을 헤집으며 필요한 정보를 찾아 나섰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뒤졌을까.
“빙고.”
아르민은 자신이 찾아낸 서책의 제목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음미했다.
그 제목은 다름이 아니라.
‘<대탐색 최종 정리 보고서>라, 이거지.’
처음부터 자신이 금빛 황금 상단에 찾아온 이유.
그것은 대탐색에 대한 본질적인 정보를 찾기 위함이었다.
기다릴 것도 없다.
아르민은 바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
그것은 2년 전 벌어졌던 대탐색 도중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하는 기록이었다.
포리네의 용병 길드를 중심으로 모여든 여러 단체들.
거기엔 지금도 제법 유명한 용병단의 단체명도 있었고, 말 그대로 전설이라 알려진 S급 용병의 이름도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금빛 황금 상단이 가장 많은 돈줄을 대긴 했지만, 이곳 말고도 몇 개의 상단이 더 이름을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쿠올 상단······.”
기록에서 아르민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쿠올 상단이라면, 제국의 변방에 있는 일레인스 영지까지 찾아와 식량을 팔아주는 중소규모의 상단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단이었거늘.
“이런 데까지 참가했다니, 돈이라는 게 중하긴 중한가 보구만.”
그 정도로 대탐색의 규모는 생각 이상으로 컸던 모양이다.
다만.
[탐색 도중······. 어째선지 최전선의 용병단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각자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어째선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싸우기 시작했다는 그들.
[성배는 아직 찾지도 못했건만, 강하다고 이름 난 용병과 전사들은 성배를 차지할 자격을 증명하겠다는 것을 이유로 옆에 있던 동료를 찔렀다.]무언가 보이지 않는 망령이 심신에 영향이라도 미친 듯 탐색을 하며 계속해서 미궁 깊숙이 내려갈수록 커져만 가는 갈등.
기록은 성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 둘 미쳐간 자들의 광기를 그리고 있었다.
[미궁을 내려가던 도중 누군가가 외쳤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라고, 그 자는 평소 오른팔이 불편하다면서 투덜거리는 남자였다. 그 남자가 외친 순간, 남자의 오른팔을 옆에 있던 동료가 잘라버렸다.] [또 다시 누군가가 소리쳤다. ‘내가 바로 성배의 주인이다!’, 그는 이번 대탐색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용병이었다. 남자는 미친 듯이 자신의 얼굴을 긁으며 외쳐댔다. ‘피부가 매끈해졌어. 매끈해지고 있다고!’, 주변에서 말리려고 들었지만, 남자는 결국 과다출혈로 기절해버렸다.]쓸데없이 잔혹한 묘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묘사에, 아르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록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이렇게 외쳤다. ‘소원을 이루는 것은 내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죽거나 미쳐갔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환각에 홀려 광기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그것은 그야말로.]“[아비규환이었다]······고.”
기록에 따르면 결국 그들의 여정은, 진짜 성배를 찾기도 전에 더는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도중에 끝이 난 모양이었다.
대탐색에 참가한 인원은 100여명에 이르지만, 그 중 사상자만 40여명에 가까웠고.
그 안에는.
“쿠올 베니스. 쿠올 상단주의 이름도 올라와있나······.”
어렸을 때 잠깐 얼굴을 보았을 뿐이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중년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콧수염에 제법 멋진 아저씨란 느낌이었는데.
그 남자조차도 이번 여정에서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밖에도 기록에 따르면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한 단평도 실려 있었다.
누가 성배를 찾았다느니, 못찾았다느니, 확인해보니 그냥 관심을 끌고 싶어서 지어낸 호사가의 이야기였다느니.
술자리에서 튀어나온 개소리였다느니 하는 말이 오고가더니.
그때 문득.
“음?”
아르민의 시선이 잠깐 멈추었다.
거기엔 <용병 가르강에 대한 보고> 라는 글귀가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내용 자체는 길드에서 아르민이 읽었던 내용과 같았다.
용병 가르강이 동료들과 성배에게 소원을 빌었니 마니로 싸운 내용.
다만, 여기에만 적혀 있는 글귀가 있었다.
기록 아래로 급하게 휘갈겨 쓴 듯한 문구의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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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기록 : 저번 기록으로부터 삼일 뒤, 용병 가르강이 알포리움 강가에서 동사한 채로 발견됨.
그간의 활약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거액의 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이었지만, 수혜자가 없어 다시 길드로 환수 조치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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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든 기록을 읽고 나자, 끄트머리에 기록자의 마지막 본심이 적혀 있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배, 어쩌면 그것은 알포리움의 탐욕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보았지만. 앞서 가르강의 사례처럼 그 끝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의 결말은 늘 소원을 빈 자가 최후를 맞이했다는 결과였던 것이다.]때문에 기록자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
[혹시라도 성배에 관심을 가지는 자가 있다면 나는 충고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요물이다.]탁.
아르민은 서책을 덮었다.
천천히 그 내용을 마음속에서 음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배라니, 이름부터가 틀려먹었군.”
여기 적힌 물건의 정체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배 따위가 아니다.
소망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것을 일그러진 방향으로 구체화시켜주는 요물.
탐욕의 신물.
그 속성은.
“제이콥의 원숭이 손 같은, 고약한 물건이다.”
아르민은 입가를 비틀었다.
****
< 제68장 – 신물의 정체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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