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7)
내 마법이 더 쎈데-137화(137/203)
< 제69장 – 쿠올 상단 (1) >
제이콥의
<원숭이 손>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워마크 제이콥스가 1902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에서 다루는 동명의 물건을 말한다.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아이러니함을 다루는 이 단편 소설은, 당대의 유명한 호러 소설임과 동시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괴담’의 원전으로 확실한 입지를 가진 작품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1. 주인공이 우연히 얻은 ‘소원을 세 번 이루어준다는 원숭이 손’에게 돈을 달라고 소원을 빈다.
2. 그때 아들이 사망하고 그 보상금으로 돈이 주어진다.
3. 이후 아들이 죽은 걸 슬퍼한 나머지 주인공의 아내가 원숭이 손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소원을 빈다.
4. 그로 인해 분명 무덤에 묻었을 아들이 시체의 모습으로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5. 그걸 견디지 못하고 주인공이 아들을 다시 원래 안식의 장소로 데려가 달라는 소원을 빌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처럼.
소원을 빌어도 결국 비틀린 형태로 ‘이루어진다.’ 라는 이야기는 후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괴담으로 전해지기까지 하는 이야기다.
이 기록에 담긴 내용은 결국.
“평소 오른팔이 불편하다고 말하던 자는 오른팔이 잘리고, 추악한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자는 자신의 얼굴을 뭉갰다라······.”
그밖엔 돈을 원한 가르강에겐 자신의 사망 보상금을 전해준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따로 없다.
그야말로 원숭이 손의 내용 그대로다.
‘하긴 아르카디아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아르민은 헛웃음을 삼켰다.
더구나 하나 더.
사망자 명단을 살펴보던 중, 아르민은 신경 쓰이는 점을 발견했다.
기록의 끄트머리에 적혀 있는 참가인원들의 이름.
그리고 용병 길드의 보증인이라며 적혀 있는 용병국가 포리네의 절대일인자.
용병왕 ‘카포네’의 이름까지.
“금빛 황금 상단이 지난 2년 간 어떻게 세력을 불릴 수 있었는지, 대강 짐작이 가는 걸.”
탁. 소리가 나도록 보고서를 덮은 뒤.
그 전부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아르민은 확신했다.
저 대미궁 알포리움의 깊은 지하엔.
“탐욕의 신물이 있다.”
****
다음날 아침.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아르민은 식당을 찾았다,
식당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오, 아르민 님. 어젯밤은 즐거우셨습니까?”
밀카다는 퍽이나 유쾌한 얼굴로 떠들어댔다.
중년 남자의 미소 속에는 ‘역시 남자라면 즐기지 않았겠느냐?’ 라는 은근한 속내가 들어있었지만.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앞서 말씀 드렸을 겁니다. 보내지 말라고.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쾌하더군요.”
아르민은 반대로 밀카다를 힐난했다.
어디까지나 도덕성의 흠결을 용납지 않는 영웅처럼.
딱히 노려보는 것도 아니건만, 설마 아르민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그제야 밀카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그걸 정말 거부했다고?’라는 식의 경악어린 표정.
‘확실히 케냐의 외모가 뛰어나긴 했지.’
도저히 일반 하녀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그건 아르민도 동의하는 바였다.
밤중에 방으로 보낸다면, 심지어 그것이 보낸 사람이 직접 공증한 밤시중이라면야, 남자 열 명 중 아홉 정도는 바로 응했을 테지.
그저 아르민이 그 아홉 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에 불과했을 뿐이다.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랄하기까지 한 마지막 단언에.
“그, 그렇게까지 불쾌하게 여기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밀카다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호감을 사려 한 짓이 되려 불쾌감을 산 셈이니, 지배인 입장으로도 뼈가 아픈 일일 터.
무거워진 공기 속에, 밀카다만이 데룩데룩 눈을 굴리고 있을 무렵.
– 상단! 이 악마들아! 내 아들을 살려내라!
바깥에서 난데없이 소동이 벌어졌다.
****
소란에 못 이겨 창밖을 내다보니, 그곳엔 두어명의 늙은 노모와 경비병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 대탐색에서 내 아들이 죽은 이유는 다 너희 때문이다!
윽박지르는 노모들에 비해.
– 험한 꼴 보기 전에 꺼지쇼. 상단주께서 자비롭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지만. 우리도 계속 이러면 방법이 없수다.
경비병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마치 이런 일이 지난 날 몇 번이나 있었는지, 꽤나 익숙한 대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광경을 본 아르민이 질문을 던지자, 밀카다의 표정이 환해졌다.
지금 벌어진 일을 화제 전환의 기회로 본 것이리라.
“하하하. 이거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풍경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대탐색 때 안타깝게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들이 가끔 이런 식으로 항의를 오는 경우가 있어서 말입니다.”
밀카다의 말에 따르면, 대탐색 때 벌어진 희생은 자기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또한 유족들에겐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보상도 했거늘.
“인간이란 왜, 욕심이 끝이 없는 동물이지 않습니까? 최근 들어 저런 식으로 격식이나 예의라고는 쥐뿔도 없는 이들이 자기들이 받은 보상금이 적다느니, 저희 상단이 거기다 수작을 부렸다느니 헛소리를 해대서 곤란하던 차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금방 잠잠해질 거라며, 식사를 다시 재개하자는 밀카다의 말에 아르민은 다시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 이, 이 망할 놈의 자식이!
때 마침 노인 중 하나가 지팡이로 경비병을 후려칠 생각인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 이 늙은이가 노인이라고 잠자코 봐줬더니······!
결국 참지 못한 건지 경비병이 손찌검을 하려는 찰나.
그 사이로 난입한 이가 있었다.
– 그만 둬 주세요. 노인 분들게 폭력이라니, 그런 분이신줄 몰랐습니다.
– 케, 케냐 양······. 이, 이건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
하녀 케냐가 나타나 경비병을 제지하자, 경비병들은 당황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들었다.
꼴에 젊은 남자들이라.
하녀 케냐 앞에서 추태를 부린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뭐, 그네들의 수치심엔 그녀의 외모가 한 몫 했을 테지.
– 찾아온 이를 박대했다간 주인님의 위신에 해가 됩니다. 이 분들은 제가 잘 타일러 보낼 테니, 그리 알아주시길.
– 무, 물론이오!
결국 불평을 쏟아내는 노인들을 이끌고 저만치 사라지는 케냐를, 아르민은 흥미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희생자.
아들의 보상금.
거기에 상단의 수작질이라는 그들의 주장까지.
그래. 금빛 황금 상단이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전부.
‘보상금 장사 덕이었군.’
****
대탐색의 기록 보고서를 살펴본 뒤, 아르민은 금빛 황금 상단이 어떻게 규모를 키워왔는지 대강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용병 길드를 중심으로 행해진 대탐색에서, 금빛 황금 상단은 거액의 돈을 투자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이 발생한 경우는 대개 전투보다도 서로를 향한 칼질, 자멸의 영향이 컸지.’
그 결과 그 속에서 가장 커다란 희생을 낸 건, 다름 아닌 금빛 황금 상단 소속의 이름 없는 하인들이었다.
때문에 용병 길드는 ‘본의 아닌 희생’이라는 명목으로 상단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한 모양이었다.
그 뿐이랴.
‘유족에게 전해져야 할 보상금의 태반까지 착복하다니, 어지간히도 해먹었더란 말이지.’
물론 그 문제의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아르민이 직접 나서서 따질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 기록 속에서 아르민은 한 가지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저런 방식으로 상단이 돈을 벌었다는 건, 마치.
‘대탐색이 계획된 시점부터 탐욕의 신물로 인해 저런 희생이 벌어질 걸 예측이라도 한 것 같단 말이지.’
과한 추측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금빛 황금 상단 뒤에 선 자는 알로스린 대공.
그는 미네르바 황녀의 정적이다.
그 남자라면, 그 냉혹한 외모를 가진 남자라면 그런 짓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무런 근거 없이, 단지 아르민은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어쨌거나.
– 거기 보고서 돌려!
저택에서 식사를 마친 아르민은 다시금 용병 길드를 찾았다.
기록 보고서를 읽고 나니,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던 탓이다.
‘대탐색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용병 길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다.
특히나 그것이 이곳 용병과 상인의 나라 포리네라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만한 희생까지 내고, 심지어 금빛 황금 상단에게 거액의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했던 용병 길드가 이대로 대탐색을 포기할까?
대답은 NO다.
실제로.
“용병왕께서는 여전히 성배를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군······.”
처음 용병 길드에 왔을 땐 눈치 채지 못했지만.
다시 길드로 찾아와 게시판에 적힌 의뢰나 오고가는 고함 소리를 듣고 있자니.
대충 용병 길드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보였다.
– 앞으로 3일 뒤에 S급 용병 테르키우스 씨가 도착한다는 소식입니다.
– 독칼날 용병단에서 보고입니다! 알포리움의 12층 청소가 완료되었다고······!
강력한 용병은 알포리움으로 불러들이고, 미궁의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용병 길드가 직접 용병단에게 의뢰를 하여 정기적으로 청소한다.
무지한 자가 본다면 평범한 용병 길드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대탐색의 기록보고서를 읽고 나니 그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용병왕은 제2차 대탐색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조용히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아르민의 귓가로.
“예, 짐작하시다시피 제2차 대탐색이 멀지 않았습니다. 대중에겐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 있는 이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정보죠. 아마 일반 용병 모집 공고도 조만간 나올 터입죠.”
뜬금없이 들려온 목소리.
당황하는 일 없이, 아르민은 몸을 돌려 목소리를 낸 자를 바라보았다.
다부진 체격과 햇볕에 탄 구릿빛 피부.
학문을 닦기보다는 검과 더 어울릴 법한 젊은 청년은 아르민에게 악수를 권하듯 손을 내밀고는.
“안녕하십니까. 아르민 일레인스 님. 쿠올 상단의 상단주. 쿠올 베론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와 시선을 마주한다.
“날 아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일레인스 백작령이라면 저희의 주요 고객이신걸요.
말 그대로 쿠올 상단은 일레인스 가문과 거래를 트고 있는 상단이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상단주는 콧수염이 멋진 신사 분이었는데 말이지.”
“안타깝게도 전대 상단주께선 제1차 대탐색 때 돌아가셨습니다.”
기록을 읽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베론의 말에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도를 표하지.”
“북방의 영웅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상단주께서도 고맙게 여기실 테지요.”
과연, 베론이 웃는 얼굴로 말하는 이야기엔 아르민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이 제국 북방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실까지, 이 자는 파악하고 있다.
제아무리 금빛 황금 상단에 비해 규모가 떨어진다고는 해도, 정보력에선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본론은 지금부터다.
“만약 아르민 님께서 제2차 대탐색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와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웃는 얼굴.
속내가 엿보이지 않는 그 말에, 아르민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상관없겠지.”
슬슬 움직이리라 생각했다.
애당초 이 만남은.
‘내 쪽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거다.’
***
베론은 아르민을 쿠올 상단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금발의 하녀 한 명이 두 사람 분의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각각 앞에 찻잔을 내어준 뒤, 자연스럽게 베론 뒤에 시립하는 하녀를 슬쩍 바라보며.
아르민은 후루룩 차를 홀짝였다.
“제2차 대탐색에 관한 이야기라고?”
“예, 이미 눈치 채셨다시피, 용병왕 카포네는 상단들을 모아 제2차 대탐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인으로서 현 알포리움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판단한 능력.
현 상황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베론은 쿠올 상단이 자기네가 제2차 대탐색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참가하는지.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차분하게, 마치 ‘책을 읽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탐색이 시작되면 시장이 요동치고, 알포리움 일대에 거대한 소비 시장이 생길 것입니다. 저희 상단의 최종 목적은 투자 금액의 세 배 이상 벌이. 이 정도면 한 몫 단단히 잡는 셈이죠.”
구체적인 금액을 언급하거나, 사업 규모를 다른 상단과 비교해서 떠드는 모습까지.
그 말하는 모양새가 꼭 사업 보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젊은 벤처 기업가 같은 모습이었지만.
결국 아르민에게 중요한 본론은 달리 있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날 찾은 이유는?”
“듣던 대로 호쾌하신 분이군요.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북방의 영웅이라 불리며, 실력이 증명된 아르민 일레인스라는 제국의 기사를 말이죠.”
이미 실력은 증명이 되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본다면 백작가의 차남이자, 기사의 작위까지 가진 귀족 나으리께서 용병 놀음에 끼어들지 말지부터 물어봐야겠으나.
“아르민 님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건, 성배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만. 틀렸습니까?”
“앞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성배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건 여기 와서지만, 결국 아르민이 성배를 노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역시 아르민 님이십니다. 말이 맞는 군요! 그러면 더욱 저희 상단과 계약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아르카디아 신이 보장하신 우리의 인연에 축복이 있기를! 자! 이번 사업의 지분은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여기 계약서가 있으니······!”
아르카디아의 이름까지 빌어가는 그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은 채.
아르민은 한 번 더 베론 뒤에 있는 하녀를 힐끗 바라보며.
“아, 그러고 보니.” 라면서 운을 떼었다.
“저번에 쿠올 상단에게서 구입한 소금에 대해 촌장이 칭찬이 자자하더군. 질이 무척 좋다고 말이야. 앞으로도 이런 거래를 하고 싶다고 연신 말하더란 말이지.”
급작스럽게 아르민이 꺼내든 화제에 베론의 반응이 한 박자 느렸다.
“아······. 그렇, 습니까?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상단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베론은 어째서 아르민이 이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모르겠지. 어리둥절해하는 젊은 사업가를 바라보며 아르민은 씨익 웃었다.
“자, 그럼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정말로 나와 계약을 맺고 싶다면 진짜 주인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을···이라고 말을 끄는 시점에서.
“베론, 당신은 상단의 주인이 아니야. 혹시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주인이 바뀌었나 했지만,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애당초.
“일레인스 영지는 가난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상단과 소금 거래를 틀만큼 돈이 많은 영지도 아니거든. 다행히 마을에 공급하는 양은 암염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실정이다만.”
때문에 일레인스 영지가 쿠올 상단과 거래하는 건 대부분 식량 위주였다.
“우리와 거래하는 쿠올 상단의 상단주라면 그걸 모를 리가 없지.”
가벼운 대화 속에 숨겨진 함정이었다.
“······아.”
베론의 얼굴 위로 천천히 낭패한 기색이 서린다.
아마, 사전에 이런 대화는 계획에 없었다. 고 실토하는 듯한 얼굴.
자신이 저지른 말실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아르민은 눈앞에 앉은 남자 대신, 그 곁에 서 있는 하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심성이 있는 것도 좋지만, 경우가 과하군. 사람을 불렀으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게 바람직한 행동이지 않나?”
아르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녀의 머리색이 변했다.
금발이 아닌 본연의 검푸른 머리칼색으로.
마력의 명동이 울린다.
아마도 아티팩트의 효과인 것이겠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관찰력이 좋지 않다면 놓치고 말지도 모를 미묘한 변화다만.
어차피 아르민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직후 드러난 외모는 아르민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금빛 황금 상단의 저택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던 하녀.
“케냐, 여기서 보다니 의외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예정대로 어울려줬다만, 내 연기가 어땠냐고 물어봐야 할까?”
케냐, 아니, 아마 그조차도 가명이겠지만.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쉰 뒤, 아르민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언제부터 눈치 채고 계셨던 겁니까?”
언제부터냐고?
“처음부터 대강.”
거의 전부를.
아르민이 꺼내든 대답을 듣고선,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케냐를 바라보며.
아르민은 보란 듯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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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9장 – 쿠올 상단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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