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41)
내 마법이 더 쎈데-141화(141/203)
< 제71장 – 첫 번째 시련 (1) >
– 취이익!
쿠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마지막 남은 오크가 쓰러지자, 잠시나마 던전 통로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들려오는 것은 날 것의 거친 숨소리와 또 다른 마물이 있는가 주변을 살피며 데굴데굴 눈을 굴리는 소리뿐.
그렇게 잠시 후.
– 하아, 하아···, 끝······났나?
– 저, 전부 쓰러트렸어······.
– 끄, 끝났다!
와아아아!!
치열한 전투를 펼쳤던 이들 사이로 환호가 솟아올랐다.
진한 피냄새가 풍기는 전투가 가까스로 끝이 난 것이다.
이걸로 마물들의 자해와 살육으로 인해 벌어졌던 혼란도 간신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후우.
– 죽는 줄 알았네.
저마다 떠들어대는 이들의 얼굴 위로 자연스레 피로한 기색이 떠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 멍하니 있을 새는 없다. 다음 출몰이 발생하기 전에 ‘거점’으로 움직인다!
카포네의 종용에 당연하다는 듯이 척척 이동 준비를 마친 단원들은 저마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마디 정도 불평이 나올 만도 하건만 그러지 않는 건.
용병으로서 잔뼈가 굵은 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던전 통로로 꽉 막힌 이곳에선 피로한 자의 처지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몇 번이고 제3차 출몰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그러니 우선은 이 자리를 빠져 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그렇게 그들의 걸음은 다음 층으로, 또 다음 층으로 이어져.
– 이 계단을 지나면 10층입니다.
선두에서 날아든 그 정보에 천천히 단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더럽고, 악취가 나는 통로를 지나 마침내 그들의 걸음이 닿은 10층.
계단의 끄트머리를 지난 순간.
“오.”
아르민은 휘파람을 불었다.
사전에 베로니카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일 만큼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었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건 저 위로 뻗은 널따란 창궁(蒼穹).
햇빛을 머금고 살랑거리는 깃털 구름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으니.
이 풍경을 보고서, 누가 이곳이 지하 깊은 곳의 장소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던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이 바로, 대미궁 알포리움의 이질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번째 요소.
“창궁의 방인가.”
용병단원들은 간신히 거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으아, 죽는 줄 알았네!
– 거기 텐트 칠 땅부터 다져놔, 준비해둔 장작은 지원조가 끌고 온 수레에 있으니까 꺼내오고!
– 누구 고기 남는 거 없어? 아까 전투 중에 다 쏟아버려서 여유분이 부족해!
고함이 오고간다.
10층을 돌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6시간 남짓.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때를 놓쳤지만, 격렬한 전투를 벌여온 용병들은 공복이 극에 달한 참이다.
피로가 엿보이긴 해도, 쉬는 걸 마다할 자가 어디 있을까.
특히나 밥을 먹기 위한 휴식이었다.
식사 준비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용병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조차 흥이 겨울 정도였다.
“던전 안쪽에 정말로 초원이 있을 줄은 몰랐어.”
“이곳에선 마물도 출몰하지 않으니까요. 이곳보다 더 깊은 하위층으로 향하는 용병단의 경우, 이곳을 거점으로 두고 움직이게 되죠.”
베로니카의 말을 들은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거점이라, 이건가.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라고 보란 듯이 준비해둔 장소 같다.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다분히 게임적이로군.’
게임이라면 그 왜, 던전 내부에서도 게임 유저들을 배려하여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세이프 존을 만들어두지 않던가.
그 기묘함에 아르민은 혀를 차는 사이.
베로니카 또한 아랫사람들을 이끌고 캠프를 치고, 솔선해서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코 끝을 찌르는 냄새를 보니, 돼지 고기가 들어간 스프가 메인 메뉴인 듯 했다.
‘그나저나······.’
아르민은 이 일대 주변을 향해 그물망을 펼치듯 마력을 펼쳐냈다.
제2종 탐색 마법.
여러개의 필터를 내걸어,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자.
‘정말로 몬스터가 몇 없군.’
그나마 저 먼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놈들도, 대개 길을 잃은 동물처럼 움직이는 것이.
우연찮게 흘러들어온 몬스터를 제외하면, 정말로 이곳에선 마물이 출몰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근데 아까 그 마물 새끼들,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 지들끼리 치고 박고 난리도 아니었지.
– 누가 광란 마법이라도 쓴 건가?
– 그런 거 치고는 놈들이 전부 그러던데?
탐색 마법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텐트를 치고 있는 용병들 사이로 그런 잡담이 오고간다.
아르민으로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마물의 생태, 어쩌면 그 또한 알포리움의 특이성일지도 모르지만.
‘아니야, 이곳에서 수십 년을 굴러온 용병들도 당황하던 걸 보면, 절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닐 테지.’
그렇다면 여기서 아르민이 고려할 수 있는 외적인 요소는 몇 가지 없다.
암살교단의 개입인가?
아니면 혹시나.
“신물의 영향으로······.”
정보가 부족해, 확실한 추측이 불가능한 도중.
탐색 마법에 두 명의 목소리가 걸려들었다.
– 다행히 전체 사상자는 총 세 명, 갑작스러운 3차 출몰 사태 치고는 미미한 편입니다.
보고하는 용병의 말에, 용병왕 카포네가 흠. 하고 침음을 흘렸다.
– 흠, 사망자가 한 명에, 부상자가 둘인가. 아무리 그래도 하위층에서 희생자가 나온 건 아쉽군. 충분한 전력을 끌어 모았을 텐데.
– 사망자는 최후방조의 용병이라고 합니다. 용병단에 입단한지 얼마 안된 신입이라고 하더군요.
보고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투로 말한 듯 했지만, 카포네는 놀랍다는 듯 반문했다.
– ······지원조의 일꾼이 아니라?
– 아, 예. 용병과 달리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지원조에서 부상자가 나올까 가장 먼저 우려를 했습니다만, 다행히 지원조는 괜찮았다고 합니다. 미지스 양이 활약해준 덕분이겠지요. 역시 백은이라 불리는 실력자입니다.
– 흠.
둘의 대화에 아르민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지원조에서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아르민의 대처가 적절했던 덕분이었다.
‘뭐, 가서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거나 그 화제는 금방 지나갔다.
– 용병 대부분이 무사했다 할지라도, 마물이 보여준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마물의 본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카포네의 지적은 정확했다.
보고자 또한 그걸 알고 있는지 말을 우물거렸다.
– ······배고플 시기도 아닌데, 같은 동족을 공격하다니, 어쩌면 저희가 알고 있는 생태와 조금 다른 종이 아닐는지.
– 아니면 그 외의 요소가 개입된 걸지도 모르지.
카포네의 말에 보고자는 침을 삼켰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예감하고 있을 터였다.
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소문의 물건이, 어쩌면 여기까지 영향을 미친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 앞으로 더욱 주의해야할지도 모르겠어.
– 예.
– 이렇게 된 거, 인원을 한 번 더 확인해보겠네. 참가하고 있는 용병단의 리스트를······.
두 사람의 대화가 업무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아르민은 탐색 마법을 중지했다.
그때.
– 밥 다됐다!
하나 둘, 거점 준비를 마치고 식사 완성을 알리는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르민 또한 베로니카가 끌고 온 일꾼이 건네주는 스프 그릇을 받아드는 사이.
스윽.
아르민의 발치로 그림자가 졌다.
음?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자.
“크, 크흠. 아, 안녕하쇼. 형씨.”
알베르토의 어색한 인사와 함께, 그 곁에 서 있는 백은의 용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
본격적으로 용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아르민에게 백은의 용병들이 찾아왔다.
“허허, 미지스 양이 감사 인사를 하러 가야한다고 했을 땐, 누가 이 아가씨의 마음을 훔쳤나 했더니. 그 유명한 백금 기사단의 기사님이었을 줄이야. 홀딱 반할 만도 하구먼.”
“그야말로 백마 탄 기사님이네요!”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진짜 감사 인사만 하려고 찾아온 거라구요!”
아르민의 신분을 듣고선 놀란 반응을 보여준 케인과 천진난만하게 감탄하는 이슈엘.
미지스는 당황한 목소리로 부정하고 나섰다.
그녀로서도 단순히 정말 감사 인사만 하고 싶어, 뒤늦게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 찾아오려고 한 듯하지만.
하필 찾아오던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붙잡힌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실토했더니 이런 꼴이라는 건가.’
특히나 그중에서 가장 가관인건.
“크, 크흠. 백금 기사단 출신이라고? 나는 백은의 용병 출신이니까. 결국 비슷한 거 아냐?”
알베르토는 애써 허세를 부리는 목소리로 눈을 부라리고 나섰으니.
보고 있는 아르민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동료를 구해줘서 고맙네. 아까 상황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긴 했었지. 지원조에 배치된 미지스 양이 걱정이었네만. 든든한 실력자가 있었구먼.”
케인이 허허롭게 웃는 웃음 뒤로 이슈엘이 번쩍 손을 들더니 질문을 입에 올렸다.
“헌데 쿠올 상단에서 고용하신 분이시라구요?”
“알고 있나?”
하프엘프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올 상단이라면 저희 고향에서도 자주 도움을 받고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러 곳에서 차별을 받는 하프엘프 출신인 이슈엘의 고향은 일종의 떠돌이 정착지인 듯했다.
그런 곳에서.
“모두가 꺼리는 저희들과 거래를 해주던 고마운 상단이었어요. 최근 던전 공략에서는 쿠올 상단의 물건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방긋방긋 웃으며 내놓는 그 대화에 아르민은 문득 베로니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프엘프 정착지와도 거래를 터놨다고?’
보통 엘프와 인간의 혼혈자들은, 엘프에게나 인간에게나 차별의 대상이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들과도 거래를 터놓고 있다니.
그것은 그녀가 상행에 욕심이 많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 어쨌거나,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이건 말씀하셨던······. 은혜에 대한 보답이에요.”
아르민은 미지스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금화주머니를 받아들였다.
무게가 제법 묵직한 것이.
‘내가 바란 보답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결국 이렇게 백은의 용병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으니, 나쁜 일은 아니다.
미지스가 인사를 건네는 바로 그 곁에서.
“······나, 나도 미지스를 구해줘서 고마워. 형씨.”
알베르토가 주저주저 하던 끝에 간신히 그런 말을 입에 담자.
“날 구해준 걸 왜 네가 고마워하는 건데?”
미지스의 톡 쏘는 목소리가 향하자, 알베르토의 “아씨, 왜, 또!” 하는 불평과 케인의 껄껄 웃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단순히 동료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뜻인가? 싶던 아르민의 귓가로.
“둘은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 연인 관계라서 말일세. 젊은이가 이해하게. 알베르토는 소중한 연인과 외간 남자가 아는 채를 하는 게 영 불만인 듯 허이.”
케인의 넉살 담긴 말을 듣고선.
““그, 그런 거 아닙니다!”“
단박에 두 사람에게서 튀어나온 대답.
그걸 보면 사이좋은 소꿉친구라는 말이 참 잘 어울렸다.
“하지만 알베르토 씨는 백마 탄 기사님에는 안 어울리잖아요?”
“뭐? 이 하프엘프 꼬맹이. 시비 거는 거냐?!”
“우와아악!”
이슈엘과 알베르토가 투닥이기 시작한다.
“그건 그렇고 아까 마물들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네. 내 던전 인생 30년 중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어.”
“서로 공격하다니, 왜 그런 걸까요?
던전 답파 경력이 남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긴 케인의 말은 특히 무게가 실렸다.
다른 용병보다도 실력이 뛰어난 백은의 눈으로도 방금 그건 이상사태였다는 뜻이리라.
그 뒤에도 “용병왕의 검기는 대단했죠.” 라며 감탄하는 이슈엘이나.
“형씨. 알겠어? 미지스 이 녀석은 선머슴에다가 먹을 거나 밝히는 녀석이라. 여자로서 매력은 완전히······.” 라며 떠드는 알베르토의 머리 위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퍼억! 하고 미지스가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리는 등.
백은의 용병들은 한차례 소란을 떨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료를 구해줘서 고맙네.”
“고맙습니닷!”
서로가 아르민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은이 멀어져 가는 풍경을, 아르민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며 아르민이 느낀 바는 하나였다.
– 절친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동료.
백은의 용병들은 확실히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료를 구해준 것에 감사하고, 떠들고, 투닥거리면서도 분명한 동료로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일 테지.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이.
‘어째서 알베르토는 암살교단 따위에 투신한 거지?’
암살교단에 소속되었다는 말은, 살육의 역사를 그 손으로 새겨왔다는 말이다.
지금의 알베르토만 보면, 피와는 영 거리가 먼, 조금은 바보 같은 청년으로만 보일 뿐이거늘.
만약 저것이 전부 연기라면, 그것이야말로 알베르토의 기만이자 능력인 것일 테지만.
알베르토가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에, 아르민의 눈동자는 한층 더 깊어졌다.
****
한 차례의 휴식이 끝나고, 용병단은 다시 다음 층을 향해 나아갔다.
– 알포리움의 공략은 10층 단위로 더욱 어려워진다.
알포리움을 공략하는 자들이 가슴에 품은 금언.
때문에 지금까지의 하층 공략과는 다르게, 11층부터 시작되는 중하층 공략은 더욱 난이도가 상승할 터였다.
“아까 백은의 용병들과 아는 채를 하시더군요.”
걷는 도중, 아르민의 곁으로 다가온 베로니카는 우선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뭐, 어쩌다보니 연이 생겨서 말이야. 그보다 쿠올 상단의 명성이 제법 대단한가 보지? 백은의 용병도 알고 있던데?”
아르민이 이슈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 하프엘프 정착지라면 북서쪽에 있는 마을 이야기로군요. 예, 저희 쪽이 특히 공을 들이는 거래 상대기도 하죠.”
엘프의 정령술은 때로 새로운 상행에 이득이 되기도 하고.
북서쪽으로 상행을 나아갈 땐,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말하는 베로니카였지만.
아르민의 입장에선 그리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애당초 차별 받는 자들에게까지 손을 뻗기에, 상행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런 건 정말로 실력자라 불리는 용병 따위를 호위로 고용하면 될 일이니까.
그런데도 그녀가 그런 거래를 이야기한다는 건.
‘자선사업에 꽤나 공을 들이다는 소리겠지.’
그러고 보면 일레인스 영지도 쿠올 상단의 덕을 보는 면이 컸다.
일레인스 영지는 객관적으로 제국 남부의 깡촌에 불과하다.
딱히 금광이나 보석 광산처럼 부유한 재산을 지닌 것도 아니고, 특별한 특산품이 있는 지역도 아니다.
‘오히려 남부 수왕국과 가까운 점 때문에, 영지민들의 탈주가 가끔 있다는 소식이나 들려올 정도였다.’
그런 곳에 쿠올 상단이 어떤 상업이익을 보고 찾아왔는지, 아르민도 늘 의문이 있었다.
‘내가 베로니카와 협업을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어차피 싸워야할 대상도 같겠다.
기왕이면 은혜도 알게 모르게 받은 거, 한 다리 걸치기 위해 아르민은 베로니카를 택했다.
하지만 그 뒤에 쿠올 상단의 정보를 사고,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나니 더욱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아르민은 대놓고 물었다.
“왜 그런 자선 사업 따위를 벌이는 거지?”
어째서 커다란 상업적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그런 행위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잠시 말을 아끼던 그녀는, 곁에서 끌고 가던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흔히, 상인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마다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족속들이라고 하지요.”
그런 상인들은 결국 있는 자, 가지고 있는 자의 출신이다.
태어날때부터 가졌고, 앞으로도 가진 것으로 곳간이 가득할 자들.
“아르민 경, 당신은 이 세계의 경제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있나요?”
“······경제?”
갑자기 나온 익숙지 않은 단어에 아르민은 살짝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물론 아르민도 일레인스 가의 차남으로서 영지를 운영하기도 했거니와.
현대인의 시점으로 경제학을 공부한 적도 있으니 경제에 대해 아예 까막눈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식해본 적 없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황했다.
왜 하필 그녀는 여기서 그런 화제를 꺼내는가.
“실제로 제가 만나와 본 수많은 상인들은, 돈만 있다면 가지지 못한 자,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들 따윈 실로 손쉽게 짓밟은 이들이었어요.”
세상은 그들의 손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움직이는 돈에는 피가 흐르지 않고.
그들이 손을 잡고 움직이는 세계는 냉혹하고 차가우며, 싸늘하다.
“이 세계의 경제란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제국과의 혼란이 발생한 순간, 가장 먼저 손을 뗀 건 상인들이었죠. 서부의 왕국연합은 그렇게 상인들이 등을 떠미는 손에, 그들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며 냉큼 교역을 끊었죠.”
“아.”
그거라면 아르민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교역이 끊기고, 서부의 마을이 어떤 식으로 망가져갔는지.
그래서 그들이 흡혈귀의 피에 손을 댈 수밖에 없던 현실을 아르민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하지만······, 제가 만난 아버지만큼은 달랐어요.”
만난?
그 의문을 입에 담기 전에, 베로니카의 올곧은 시선은 아르민과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렇게.
“제가 하는 행위는, 단순히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것. 그것 뿐이랍니다.”
자기가 하는 자선행위는 고작 그런 이유로 하는 것뿐.
베로니카는 확답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만약······.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배가, 정말로 실재하고 있다면······.”
이라고 말을 잇던 베로니카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뒤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대화가 끊어졌다.
‘아버지의 유지, 인가.’
그러고 보면 그녀와 본격적으로 계약을 맺기 전.
베로니카는 말했다.
–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희생케 만든 그 요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이름 그대로의 물건인지.
만약 그렇다면.
– 아버지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그걸 통해 제 소원을 이룰 수 있는지. 전부를.
‘베로니카는 정말로 성배를 원하고 있단 건가?’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해 열심히 조사를 했다면, 당연히 1차 대탐색 기록 보고서까지 읽었다면.
영특한 그녀가 보고서에서 읽히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성배가 소원을 온전히 이루어주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단 건가?’
그걸 위해 그녀는 성배를 갈구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럼 대체 자선 사업까지 벌일 정도로, 아버지를 유지를 잇는다는 베로니카가 가슴에 품은 욕망이란 무엇일까.
잠시, 그것에 생각이 미쳤을 무렵이었다.
– 야, 야! 갑자기 무슨 짓이야?!
– 끄악! 카, 칼에 찔렸어!
– 미, 미친 새끼! 붙잡아!
앞열에서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요?”
베로니카가 의문을 담고, 잠깐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은 순간.
‘아.’
아르민의 피부로, 진하디 진한 마력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그 파동은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귓가로 울려 퍼지는, 탐욕에 가득 찬 목소리를.
[성배를 찾아 지하로 내려온 탐욕스러운 그대들에게 시련을 내리노라.]그 첫 번째 시련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너의 욕망을 방해하는 자를, 먼저 배제하라.]이어진 한 마디를 당장에 이해한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아르민은 순식간에 그 문장에서 모든 맥락을 이해하고. 깨닫고, 납득했다.
처음 만난 마물들이 어째서 서로를 죽이고, 살육하고, 난장을 벌였으며.
대탐색 기록보고서에서 그러한 ‘비극’이 적혀 있었는지를.
문장이 말하는 바는 하나였다.
– 서로를 죽고 죽여라.
동료의 칼이 적이 아닌 나를 향한다는 비극이.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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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장 – 첫 번째 시련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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