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47)
내 마법이 더 쎈데-147화(147/203)
< 제74장 – 네가 품은 욕망 >
따스한 햇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저택이었다.
안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정원은 관리하는 정원사가 보통 공을 들인 게 아닌지, 잡초가 보이기는커녕 곳곳을 장식한 가로수마저도 깔끔하여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으며.
무엇보다 정원 사이로 난 새하얀 자갈길은, 장인이 공을 들여 만든 조각품처럼 때 아닌 아름다움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니.
바로 그러한 곳을.
“베로니카, 얼른 와!”
작은 체구의 소년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내달렸다.
“기, 기다려주세요. 오빠···.”
그 뒤를 따르는 건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예복을 입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얼굴 위로는 오라비가 자기를 두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익숙지 않은 달리기에 숨이 벅찬 듯 숨을 몰아 내쉬는 다급함이 담겨 있다.
다른 이가 본다면 누구라도 혹여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만치 위태롭게 달리던 소녀는.
쿵!
“아야!”
역시나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크게 넘어지고야 말았다.
“어이쿠야! 베로니카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꼬마 아가씨에게 가장 먼저 달려 간 건 바로 옆에서 정원을 손질하던 정원사였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베로니카를 부축하여, 그녀가 다친 데는 없는지. 혹시 울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주었다.
“괘, 괜찮아요. 존.”
“베, 베로니카! 다, 다쳤어?!”
신이 나서 달리던 베론도 동생이 넘어진 것에는 깜짝 놀랐는지, 울상을 지은 채 달려왔다.
서로 괜찮니, 다친 데는 없냐느니 정성껏 보살피는 두 남매를 보며.
“허허, 베론 도련님과 베로니카 아가씨는 늘 사이가 좋으시군요.”
정원사 존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허허롭게 웃었다.
“당연하죠! 베로니카랑 전 장차 쿠올 상단을 이끌어 가야하잖아요. 사이좋게 지내는 건 당연해요! 그치?”
“네. 물론이에요.”
의젓한 두 사람의 대답에 정원사는 한층 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지금부터는 천천히 걸어가자.”
“네.”
뛰는 대신,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 두 남매를 보며 미소를 짓는 건 정원사뿐만이 아니었다.
빨래 바구니를 나르던 시녀도, 요리를 준비하던 요리장도, 집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집사도.
모두가 쿠올 상단의 후계자인 저 두 남매를 보며 웃거나, 미소를 짓거나, 따스한 얼굴로 바라봐주었다.
“또 달리다 넘어진 거니?”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상냥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쿠올 상단의 안주인이자, 두 남매의 어머니였다.
“베론, 동생을 내버려두고 함부로 뛰면 안 된다고 했잖니.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죄, 죄송해요.”
베론이 힘없이 내놓는 대답에 어머니는 이번엔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고?”“······네,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
어머니가 앞으로 꺼낼 말이 무엇인지, 베로니카는 알고 있었다.
“울지 않았어요. 오빠가 손을 잡아줬거든요.”
“그래. 다행이구나.”
어머니는 웃어주었다.
그때 마침 바깥에서 끼익, 하고 마차가 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사와 하인들이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 맞이해준 남자는 다름 아닌.
“모두 여기 있었구려.”
쿠올 베니스, 쿠올 상단의 진짜 주인은 껄껄 웃는 얼굴로 모여있는 가족들에게 다가왔다.
“날이 좋아서 다 같이 홍차를 한 잔 하려고 했거든요.”
“오오, 그럼 나도 끼워주겠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베니스의 옆구리에 베론이 착 달라붙었다.
“아버지! 오늘은 따로 선물이 없나요?”
“어머, 베론. 아버지는 이제 막 돌아오셨잖니? 그렇게 달라붙는 건 너무 버릇 없는 행동이란다.”
어머니의 나무람에도 아버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허허, 아니지. 자고로 상인이란 자기가 챙길 수 있는 건 챙기는 게 맞는 법이지. 자, 오늘 동쪽에서 찾아온 상인이 이런 물건을 팔고 있더구나.”
아버지가 꺼낸 건 반짝이는 유리로 만든 신기한 세공품이었다.
그건 동쪽에서만 나고 자란 동물을 새겨 만든 것일까.
베론은 어린아이답게 그것이 마음에 든 듯, 눈을 반짝이며 세공품을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도 나중에 크면 이런 신기한 물건을 잔뜩 모으고 싶어요!”
“모으기만 해서 쓰나! 상인이라면 팔아야지!”
아버지의 농이 섞인 꾸지람에 베론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소년답지 않게 슬며시 진지한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제가 아버지 같은 굉장한 상인이 될 수 있을까요?”
대답은 바로 나왔다.
“물론이다마다! 베론도 베로니카도 우리 자랑스러운 쿠올 상단의 자식들이지 않느냐!”
아버지는 단언했다.
“당연히 너희 둘은 이 아비도 뛰어넘는 대단한 상인이 될 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베론도 함께 웃으며 즐거워하는 풍경.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따스한 가족들이 모여 있는 광경.
“도련님! 아가씨! 케이크를 구워왔습니다요!”
요리장이 기쁜 얼굴로 나타나, 정원에 마련된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내음.
달콤해 보이는 케이크는 절로 군침이 흐를 만큼 맛있어 보였지만.
“자, 베로니카. 여기 와서 앉으려무나.”
어머니의 손짓 앞에 베로니카는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째에 걸음을 멈추었다.
서로가 즐겁고 정답게 웃으며 맞이하는 한가로운 점심 때의 티타임.
웃음이 끊이지를 않고, 이들의 얼굴이나 그 어떤 곳에서도 어둠이라고 부를 만한 얼룩은 한점조차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웃고 있는 세계.
괴로움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 광경은.
어쩌면 영원토록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천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고.
– 베로니카는 그렇게 ‘생각’ 했다.
“왜 그러니?”
어머니의 미소.
“베로니카! 얼른 먹자!”
오빠가 손짓하는 그 모습.
그리고.
“베로니카, 네게도 줄 선물이 있단다.”
자상한 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미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서.
“거짓말.”
또각.
울리는 구두굽 소리에 아르민은 자신이 바라보던 풍경에서 눈을 돌려.
자신의 뒤로 다가온 그녀를······.
이 세계의 진짜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런 풍경이, 진정으로 실재할 리가 없지요.”
신랄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짙은 슬픔이······.
그리고 누구를 향한 건지, 진의를 알 수 없는 진한 분노가 묻어나오는 목소리를 흘리며.
베로니카는 풍경의 아지랑이를 지우듯,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
거짓으로 점철된 아지랑이를 지워내고, 눈앞에 홀연히 떠오른 광경.
퀘퀘한 냄새.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 늘어서 있는 건, 마치 짐승을 가둘 때 쓸 것 같은 철창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짐승이나, 동물 따위가 아니었다.
– 무, 물을 줘······.
– 콜록콜록.
– 의, 의사를 불러줘.
– 나 좀······ 나 좀 여기서 꺼내줘!
고통에 가득 찬 비명과 신음, 절규가 하모니를 이루는 장소.
거기엔 악에 받친 자도, 이미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는 자도.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아르민은 깨달았다.
이곳은 제국에서도 공공연하게 열리고는 있는 노예시장의 본모습이란 것을.
그때.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으로 철창 속을 헤집고 나서는 얼굴이 보였다.
아르민에게도 익숙한 그 얼굴의 주인은.
“베니스 님, 여기입니다.”
쿠올 베니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안내인의 지시를 따라, 구석에 놓인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철창엔 한 쌍의 어린아이들이 담겨 있었다.
검댕 따위로 더럽혀진 얼굴이나, 옅게 피가 배어나오는 상처, 누더기에 가까운 복장에선 성별조차 짐작하기 어렵지만.
한쪽은 남자아이.
다른 한 쪽은 여자아이라는 걸, 베니스는 알고서 찾아온 참이다.
천천히, 그의 시선이 상품명이 적힌 명판으로 닿는다.
상품명 : 케론, 케냐.
간신히 알아볼 만큼 희미하게 조각된 이름.
그것을, 아르민은 이전에 어디선가 보고, 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아이들을 사겠네.”
“가, 감사합니다!”
어리고 약하다.
그것만으로도 팔아치울 가치 따윈 없는 것이 어린아이 노예들이다.
그런 것들을 선뜻 거금까지 내주며 사준다는 말에 노예 상인이 횡재라도 한 듯 기뻐했지만.
“······왜?”
의문을 던진 건 여자아이 쪽.
케냐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베니스를 향해 물었다.
왜.
“우리를 사려는 거죠?”
“이, 이 자식들이 감히 버릇없이!”
쾅!
노예 상인은 혹여 상품이 고객을 노하게 할까봐, 철창을 발로 차며 입을 다물게 하려 했지만.
“그만.”
“네? 네, 넵!”
베니스의 제지에 상인은 허겁지겁 뒤로 걸음을 물렸다.
그 대신.
“왜냐고 물었느냐?”
“······네. 물었어요.”
지금 같은 공간, 분위기다.
저만한 어린아이라면 응당 눈물이라도 보일 법도 하건만.
케냐의 시선은 순수한 의문을 담은 채로 그저 오롯이 베니스를 향하고 있었다.
베니스는 답해주었다.
“너희들의 부모를 내가 죽였기 때문이다.”
놀란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케냐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친척들한테 들었어요. 아버지가 진 빚을 갚지 못하고, 결국 살해당했다고. 그래서 저희를 팔 수 밖에 없다고.”
케냐와 케론이 팔려온 경위.
문제는 언제나 돈, 그리고 빈곤이었다.
“다, 당신이 아버지를! 그래서······!”
케냐 대신, 케론이 옆에서 마구 철창을 흔들며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케냐의 시선은 여전히 베니스를 향하고 있었다.
“얌전히 날 따라와라.”
베니스의 말에.
“내가 미쳤어?! 케냐! 이딴 인간의 말은 듣지 마! 내가! 내가 여기만 나가면! 당신 같은 인간은 바로 죽여버리겠어!”
원수를 바라보듯, 케론은 미친 듯이 외쳐댔지만.
케냐는 물었다.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답은 금방 돌아왔다.
“내게 복수를 할 기회를 주마.”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단이 거구를 움직일 때.
늘 어디선가는 돈을 잃는 사람, 피를 보는 사람, 나아가 소중한 것을 전부 잃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케론과 케냐의 부모를 죽인 건 확실히 쿠올 베니스, 그 남자가 맞았다.
– 이번에 제국과 거래하던 루트에서 잡음이 일었네. 돈을 착복하는 자를 정리한다고 꽤나 많은 고생을 했지.
쿠올 베니스.
그는 냉철한 얼굴로 상단을 좀먹는 벌레들을 처리했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각종 이권 다툼이 벌어지며 희생자들이 나타났다.
케론과 케냐는 바로 그 희생양이었다.
다만.
“부모는 몰라도, 아이들에겐 죄가 없지.”
더구나.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라면 더욱 더.”
케론과 케냐가 팔린 그 날로부터, 그들은 베론과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받아 쿠올 상단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베론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 인간은 이렇게 우리를 살찌워서, 나중에 잡아먹을 생각이야!”
아마도 가정교사가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던 작문 시간 도중에 읽은 동화를 보고 저리 말하는 듯 했지만.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일 리가 없다.
어린 나이지만, 베로니카는 알 수 있었다.
“상인이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굳이 우리 남매를 거둬들였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베로니카가 바라본 쿠올 상단의 내부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베니스에겐 아내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
늘 냉철한 얼굴을 하던 베니스가 그 사진을 볼 때라면, 슬쩍 입가가 풀어진다는 걸 베로니카는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요?”
“······살아있다면,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었을 여자다.”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베로니카에겐 이미 어머니가 있었다.
자신을 팔아치운 자를 과연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얼굴조차 보지 못한 여자가 어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니.
그저, 웃기지도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배움의 난도는 계속해서 어려워지기만 하고.
베론이 늘 힘들다며 죽는 소리를 하는 것도 번번이 회수가 늘어만 갔다.
단지 베로니카만이.
그녀만이 담담한 얼굴로 배움을 흡수하고, 먹어치우고, 받아들여갔을 뿐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어느날.
술을 기울이던 베니스가 이런 말을 꺼냈다.
“······나는 원치 않았다 해도, 상단의 주인으로서 내 아랫것들을 짓밟아왔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저 대단한 제국이 흉포한 성세를 자랑하는 순간에, 자신의 직감을 믿고서 택한 일들은 늘 상단에겐 성장을.
적대하는 자들에겐 평등한 죽음과 실패를 불러왔기에.
“······더는 힘들구나.”
처음으로 보인 약한 얼굴.
지금이라면 저 냉철한 남자라고 할지라도, 실패를 모르는 쿠올의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짐승의 송곳니로 물어 뜯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념.
호신용으로 쥔 나이프를 쥐고서, 베로니카는 입을 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언젠가, 때가 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당신에게 복수를 할 테니까.”
그럴 때라면, 그 남자. 베니스는 냉철한 얼굴로 돌아와 슬쩍 입가에 기대감이 어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주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1차 대탐색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끄트머리에서, 그녀, 베로니카의 복수는 성공하지 못한 채 불타 사라졌다.
****
베니스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베로니카와 베론은 그의 정식 후계자로서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야만 했다.
이미 처음부터 모든 일은 그리 되도록 꾸며져 있었다.,
서류 작성, 언질, 계약 관계, 기타 등등 전부.
베니스는 그저 자신이 퇴장할 때를 대비하여, 두 남매에게 자신의 뒷자리를 맡겼다.
“베로니카.”
“·········.”
아버지의 관을 눈앞에 둔 채로, 베로니카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저 이렇게 느꼈다.
– 복수는 실패했다.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우리들의 원수는 멋대로 이곳에서 사라졌다는 담담한 체감뿐.
거기엔 분노도, 혐오도, 증오도, 미움도 솟아나질 않았다.
그저 홀로.
– 남자는 욕망을 품었다.
괴로워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못한 채.
버림 받은 자들을 보아 넘기지 못한 채로, 멋대로 그들을 돌보고자 해왔다.
요컨대.
“우리는 당신의 속죄를 위한 도구였지요.”
자기 멋대로 누군가를 거둬 기르고, 속죄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식을 찾아왔다.
이 얼마나 추악하게 일그러진, 자기애 덩어리인가.
오로지 그의 속죄, 안도만을 위해 우리들은 길러진 것이다.
– 숨겨둔 자식이라고?
– 사실 후계자라고 해도 사생아 같은 게 아닐까?
– 아비가 죽었는데 눈물도 흘리지 않다니. 피도 흐르지 않을 게 틀림 없어.
수군대는 목소리 속에서 베로니카는 받아들였다.
결국 이건 그 자가 남기고 간 족쇄다.
아니, 나아가.
“아버지가 남겨주신 선물이군요.”
복수는 해내지 못했지만, 손에 들어온 이것의 값어치를 모를 베로니카가 아니었다.
복수는 다른 방향으로 향할뿐이다.
자신에게서 복수할 대상을 빼앗아간 그들에게로.
“당신이 남기고 간 허물이라면,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속죄하고, 보살피고, 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
다른 누가 본다면 저주라고 밖에 말할 길이 없는 업보를.
담담히 그녀는 등에 지었다.
차가온 분노로 심장을 벼리고, 날카로운 증오로 자신의 손끝을 매만진다.
바로 이 순간.
그녀가 품은 욕망은 실로 단순했다.
– 더는 나 같이, 비참하게 발버둥치는 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그래, 이 세계를 뒤바꾸자.
저 빌어먹을 아버지가 남겨둔 것을 전부 써서, 나의 욕망을 이뤄내자.
그날, 그때.
쿠올 베니스가 보여주었던 약한 모습.
그저 후회로 점철된 인생이었다고 말하던 그때의 풍경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
****
세계가 불타 들어간다.
풍경의 끄트머리부터 재가 되어 흩날린다.
후우.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에도 개의치 않고,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며 숨을 삼키는 그녀, 베로니카.
한 여성의 꿈, 탐욕을 가지게 된 경위.
그것의 고결함을 목도한 아르민은 조용히 세계를 무너트리기 위해 마력을 짜올렸다.
– 탐욕을 품을 필요 따윈 없다.
그리 넌지시 말하는 세계는 더 이상 우리들에게 의미가 없기에.
“무너져라.”
의미없는 세계여.
쿠웅!
****
세상의 풍경이 바뀌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여기저기서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는 용병단의 모습이었다.
– 으으으.
– 크윽.
“······전부 저희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건가요?”
바로 곁에서, 베로니카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던져온 질문에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신물에게 당한 거야. 가만히 내버려뒀다면 이 중에 태반이 신물에 먹힌 채······.”
“제가 봤던 그런 세계 속에 갇힌다는 거군요. 이해했어요.”
역시 두뇌회전이 빠른 여자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리 말씀하신다는 건, 당신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단 말이겠지요.”
“뭐, 그렇다고 치자고.”
실제로 아르민의 마법 행사 이후, 하나 둘,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는 자들이 보였다.
신물의 농지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장난을 그냥 보아넘길 아르민이 아니었다.
당연히 마력을 휘둘러 개입하고, 세계 자체를 무너트렸다.
이미 신물의 시련에 의미 따윈 없다.
무엇보다.
“이미 시련의 통과자는 결정이 났으니까.”
쿠웅!
바로 코앞에서, 반투명한 장막을 두드리는 밀카다가 보였다.
– 이, 이게 어찌된 거요?! 아르민 경! 성배는 어디로 가고! 왜 당신들만이 그런 곳에···!
공간이 분리되어있었다.
저쪽과 이쪽이, 서로의 간섭을 막는 반투명 장벽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이곳으로 넘어온 인원은, 대강 7명 정도, 나머지는 전부 밀카다 쪽이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조건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련을 클리어한 자들만이 이곳으로 넘어왔다.’
그나마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건, 아르민이 세계 그 자체를 무너트린 덕분이다.
“당신도 두 번째 시련을 받았으면 알겠지. 여기서 승패가 갈린 모양인데?”
– 뭐, 뭣이요? 자, 잠깐. 그럼 이게 성배가 벌인 조화란 말이오?
“그렇게 됐다. 아쉽지만 여기서부턴 우리들끼리 들어가야겠군.”
아르민이 그렇게 손을 흔들려는 찰나였다.
– 서, 성배를 이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으냐! 암살교단! 교단은 뭘 하고 있단 말이오! 얼른 저 놈들을 죽여버리고······!
푸욱.
반투명막 너머로 피가 뿌려졌다.
– 꺼, 억?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기 가슴께를 바라보는 밀카다.
등 뒤로부터 뻗어온 날카로운 칼날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급소를 갈랐다.
그렇게.
– 교단의 이름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주게.
밀카다의 등 뒤에서 날아든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살기!’
아르민의 마력신경이 민감한 적의를 캐치, 곧장 몸을 돌려 바라본 그곳엔.
“끄아아아아!!!”
알베르토가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아르민, 그리고 베로니카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 제74장 – 네가 품은 욕망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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