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3)
내 마법이 더 쎈데-153화(153/203)
< 제78장 – 그리고 동쪽으로 (1) >
창가로 흘러드는 햇살.
슬며시 따사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복도를 걷고 있던 아르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슬슬 겨울도 끝인가.”
창가 밖.
눈이 내리지 않아, 계절감은 덜하지만.
햇볕 속에서 얼어있던 땅마저 녹아드는 광경을 보아하니, 확실히 북방의 대지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얼어붙은 계절이 끝나고, 변화해 간다는 실감이 들었다.
다만 변한 것은 계절만이 아니었다.
– 와하하~!
– 나 잡아봐라!
– 거기 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두두두! 하고서 우당탕 뛰는 소리가 뒤를 따른다.
요란한 뜀박질 소리의 주인공은 저 복도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복도가 꺾이는 지점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는 제 발이 꼬여버렸으니.
“앗!”
“제레미!”
악! 하고 짧은 비명.
제레미라고 불린 소년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복도에서 크게 넘어지려는 찰나.
아르민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바람이여, 날아가듯(volante) 섬세하게(delicato).’
원소계 속성과 더불어 특성을 세공하는 개념어를 뒤섞는다.
지휘봉처럼 휘둘러진 아르민의 손가락은 정확하고 또한 부드럽게 바람을 어루만졌다.
사아아~
복도 사이로 난데없이 불어 닥친 건 봄날을 떠올리게 하는 산들바람.
부드럽게 날아든 바람은 넘어지려는 소년을 껴안고, 다독이고, 이윽고 희미한 잔향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어?”
“방금 그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레미는 물론 소년을 따라 소란스레 달려온 아이들까지 저마다 멀뚱거리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로 그때.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고 했잖니?”
“베, 베로니카 님!”
“죄, 죄, 죄송해요!”
끼익.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타난 베로니카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나무라자.
꼬맹이들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쩔쩔 매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베로니카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다치지는 않았니?”
“네, 네!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넘어지지 않았어요!”
“근데 방금 그거 뭐였을까?”
“나 알아! 분명 정령님이 도와준 거야!”
“진짜?”
“좋겠다! 나도 정령님 보고 싶어!”
혼나고 있었다는 걸 그새 잊은 건지, 아이들은 또 꺄악꺄악 거리며 떠들기 시작했지만.
“자자, 그러고 있지들 말고 식당으로 가야지. 오늘 점심엔 후식으로 과자가 나온다고 조리장이 그러더구나.”
“과자요?”
“내가 먼저 가야지!”
“와아!”
과자란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선 보물이나 다름없다.
특히 그런 걸 먹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겐 더욱 더.
흥분한 기세로 다시 복도를 뛰려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고. 천천히.”
“네, 넵!”
아이들은 타박타박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아르민의 곁을 지나쳤다.
그 와중에도 아르민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이, 고작 일주일이지만, 교육의 성과는 착실히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아르민 경 덕분에 다치지 않았군요. 감사합니다.”
이번엔 베로니카의 정중한 인사였다. 아르민은 별 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간단한 재주였다.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실례하지.”
베로니카의 안내에 따라 아르민은 집무실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볼일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
달칵.
베로니카가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아이들은, 어째 적응은 잘하고 있나?”
저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면, 용케도 저렇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싶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모두의 눈빛이 새카맣게 죽어있었다는 걸 떠올린 참이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훨씬 솔직하고,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니까요. 아직 밤마다 우는 아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베로니카는 잠시 눈을 깔았지만, 이어 또렷한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도록 노력할 생각이에요.”
그때 창밖으로는 어설픈 걸음걸이로 항아리를 옮기는 어린 하녀들이 보였다.
그 뿐일까.
바쁜 걸음으로 망치나 못, 칼 따위를 들고 움직이는 자.
빽빽한 종이뭉치를 들고 서둘러 달리는 이들도 있었으니.
“저택이 많이 소란스러워 졌는걸.”
“아무래도 식구가 늘었다 보니 말이죠. 부디 양해해주시길.”
살그머니 베로니카가 치마를 걷어 올리며 그런 말을 꺼냈지만.
“아니, 나는 칭찬하는 거야.”
“······감사합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칭찬이다.
대미궁도시 알포리움을 뜨겁게 달구었던 제2차 대탐색도 끝이 난지 일주일.
고작 7일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알포리움에는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금빛 황금 상단의 세력이 상단 부분 줄어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탐색에서 배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이민 총지배인 밀카다.
그것뿐이라면 괜찮겠지만, 하필 그가 끌고 온 세력이 암살교단이라는 게 문제였다.
–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신앙을 증명하는 미치광이들.
그런 교단에 손을 뻗쳤다는 건, 이미 저들이 금기를 범했다는 소리다.
때문에 대탐색이 끝나고 그 소식이 퍼져나가자마자 금빛 황금 상단은 모든 이권 다툼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상인의 세계란 칼이 오가는 세계보다도 냉혹하다. 이권 다툼을 위해 사람을 한 둘 죽이는 거야, 늘 상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것도 숨어서 하기에 용인되는 짓이다.
들키고, 까발려지고, 끝내 만천하에 악행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다른 상단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이다.
가장 먼저 알포리움의 큰손이었던 용병 길드가 거래를 끊었다.
차례차례, 손을 빼고, 저주받을 암살 교단과 손을 잡은 그들에 대한 유형무형의 처벌이 이어졌다.
금빛 황금 상단의 세력은 삽시간에 축출되고 일소되었다.
거기에 걸린 시간이 고작 일주일이었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말 그대로 정의구현의 표본.
악행을 저지른 상단이 벌을 받은 꼴이지만.
문제는 상단에 소속된 힘없는 아랫사람들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직장, 아니. 아예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갈 곳을 잃게 된 셈이니.
이미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베로니카가 나섰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곧 이익을 위해서···라고, 알포리움 미궁 안에서 그런 말을 했었지.”
“네. 사람이야말로 가치가 있다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베로니카의 말처럼.
그녀는 금빛 황금 상단에서 나올 수밖에 없던 이들을 솔선해서 받아들였다.
그렇게 받아들인 인원만 50명.
그 중 절반이 노예 제도가 합법화 되어있는 제국에서 들여온 노예 출신들이었다.
금빛 황금 상단에게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었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들을 되팔고, 금으로 바꾸는 작업을 거쳤겠지만.
바로 그걸 베로니카가 용납하지 않았다.
“케냐라는 이름으로 상단에 숨어든 것도, 처음부터 이걸 위해서였나?”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었다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같은 출신으로서 동질감이 든 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그녀는 진심으로 그 행위가 자신이 이끄는 상단에 이익이 된다 판단했을 것이다.
판단은 정확했다.
실제로 금빛 황금 상단이 알포리움 내에서 와해되어가는 와중에도, 버려진 자들을 보듬은 그녀의 이름을 날로 유명해졌으니까.
더구나 본의 아니게 상단주들이 보는 앞에서 아르민과 함께 던전 깊숙한 곳으로 향했던 그녀다.
그 덕에 베로니카는 도시 내에서는 ‘성배를 보고 온 자’ 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노래까지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베로니카란 여자는 그조차도 이용해 먹으면서, 최근엔 각종 이권에 손을 얹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녀로선 상인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게 된 셈이다.그 말인 즉.
“복수는 이룬 셈이군.”
“············예.”
베로니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말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다면 된 거겠지.”
아르민이 해줄 말은 그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소원을 이뤄준다던 성배는 환상에 불과했군요······.”
베로니카는 그리 말했지만.
글쎄, 아르민은 떠올렸다.
성배는 분명 소원을 빌면, 그걸 이루어주는 이상의 물건이라고 했다.
허나 그녀와 아르민이 직접 찾아가 본 성배는 어디까지나 고약한 취미가 섞인 장난감에 불과했을 뿐이다.
확실히 이것만 본다면, 성배는 새빨간 거짓말처럼 여겨지지만.
‘소원을 비틀린 형태로 이루어준다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고, 자신의 꿈을 인정받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그녀는 그 가슴에 품은 거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갈 테지.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야.
“성배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는 걸.”
“·········?”
갑작스럽게 아르민이 흘린 말에, 그녀는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었지만.
아르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보다 집무실로 온 건, 아르민이 그녀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베로니카, 나는 제국에서 미네르바 황녀와 손을 잡고 있다.”
탁.
베로니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따로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진 않았다.
“놀라진 않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하긴 이미 그녀는 아르민이 북방의 영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백금 기사단은 황녀를 위시한 황가를 호위하는 기사단이다.
관계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겠지.
게다가 이건 아르민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지만.
“알로스린 대공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영웅담처럼 들려오기도 했지요.”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인데.”
정치에 식견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이야기다.
제국의 두 기둥.
알로스린 대공과 미네르바 황녀가 어떤 대립 관계에 있는지.
덕분에 처음부터 베로니카는 아르민이란 인물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말이렷다.
그럼 더욱 말을 꺼내기가 편해진다.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마. 나와 손을 잡자.”
그의 눈동자는 보다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마 이대로 아르민이 제국으로 돌아가면 알로스린 대공과의 충돌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알로스린, 놈은 신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놈은 분명히 신물을 손에 넣으려고 들었고, 암살교단이란 강경한 수단까지 동원해 액션마저 취했다.
어쩌면 이미.
‘제국에 있다는 색욕의 신물은, 그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르지.’
즉 알로스린 대공은 단지 미네르바 황녀만의 적이 아니라, 아르민에게도 적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근거는 없어도, 확신은 할 수 있었다.
아르민의 본능이 그리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니 힘이 필요했다.
속물적인 이야기지만, 정치 싸움과 칼부림에는 돈이 들어가기 마련.
하지만 금빛 황금 상단이나 다른 상단 같이, 제국의 젖줄을 움켜쥐고 있는 알로스린 대공에 비해.
‘미네르바 황녀의 세력은 너무나도 미약해.’
당장 급한 건, 뒤를 받쳐줄 자금력이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선 눈앞에 있는 아가씨가 누구보다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한 아르민이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인물이고, 얼마나 값진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온 것이다.
그래서 아르민은 베로니카를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제안이건만.
“즉 당신께서는 저를 사고 싶다. 이거로군요.”
“응?”
아르민은 의문을 토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로니카는.
“장사의 기본은 서로의 값을 따지는 것. 저도, 그리고 당신도 싸구려가 아닌 이상. 거래는 확실해야겠지요.”
그녀 또한 알로스린 대공과 대적한다는 행위의 위험도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거래를 하고자 한다.
자신에게, 그리고 아르민에게 값을 매겨 값을 치르고자 한다.
베로니카는 물었다.
“저를 당신에게 팔도록 하지요. 대신 당신은 무엇으로 값을 치를 수 있나요?”
천성 장사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저울에 눈금을 매기고자 하는 그녀의 기개에 아르민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거래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좋다.
아르민이 저울 위에 올려놓을 거래 재료라면, 한 가지.
“차기 제국의 황제가 될 자와 단독으로 거래할 수 있는 자격. 제국의 거래상대로 만들어주지.”
제국의 경제를 움켜쥐게 해주겠다.
만약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그녀가 꿈꾸는 욕망에 다가가는 것도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닐 터.
“이 정도라면 값을 치를 수 있을까?”
아르민의 웃음기가 담긴 질문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값을 치르는 정도가 아니다.
“차고 넘칠 정도랍니다.”
베로니카는 미소 지었다.
****
베로니카가 마련해준 저택의 어느 구석방.
창가로 비쳐드는 햇살을 음미하며, 아르민은 후배에게 연락을 취했다.
[고생 많으셨어요.]이번 탐욕의 신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베네딕트와 만난 일.
성배의 정체.
그리고 든든한 아군을 얻었다는 이야기까지.
대강의 근황보고를 나누고 나자.
[이제 남은 신물은 3개네요.]색욕, 오만, 분노.
남은 세 개만 모아 파괴하면, 아르민의 기나긴 여정은 끝이 난다.
뒤늦게나마 칠영웅의 망집이 싸지른 똥을 치우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나머지 다른 칠영웅과도 부딪치게 되겠지.
문득 베네딕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라면 알 걸세. 이 세계에서 신좌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자칭 신들이란 불필요한 존재란 것을. 자네라면 몇 번이고 보아왔지 않은가?]신들은 이제 종말을 맞이할 때가 왔다.
이제는 인간들에게 세계를 넘겨줘야할 때라고.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충고까지 해줬다.
베네딕트가 어떤 생각을 품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
이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후회일까. 아니면 체념일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가.”
마법의 끝을 보기 위해.
처음엔 단순히 그런 이유로 아르민의 생을 납득하고 받아들였더랬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모양새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나의 벗은 말했다.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아도 좋다. 라고.’
그 울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었다.
곰곰이 상념을 계속하는 사이.
[······선배? 무슨 일 있나요?]“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조만간 제국으로 복귀할 테니. 그때 보자.”
[네···!]후배의 활기찬 대답을 들으며, 아르민은 통신을 종료했다.
잡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남은 신물은 세 개.”
그것만 처리하면,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참고로 탐욕의 신물은 시련에서 승리한 베로니카를 승리자로 지목하고, 그 육에 깃든 모양이지만.
‘당분간은 내버려둬도 되겠지.’
어차피 나중에 부술 거, 잠시나마 그녀에게 맡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 그럼 한 번 더 신물의 위치를 확인해볼까.”
아르민은 품에서 나태의 서를 꺼내들었다.
정보를 확인.
나머지 신물의 위치를 알고자 강하게 바란 아르민의 눈앞으로.
“······어?”
예상치 못한 글귀가 나타났다.
****
– 연락이 오지 않는다.
문득 그러한 생각을 떠올린 알로스린 대공은 잠시 펜대를 놓았다.
눈가를 문지르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은 오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와야할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 성배의 소실.
“그런가. 그 남자는 벌써 거기까지 닿았나.”
알로스린 대공이 떠올리는 얼굴이 있었다.
북방의 영웅이라 불리고, 제국의 새로운 젊은 피로서 각광을 받으며.
끝내 자신이 탐을 내어 건넨 제안조차 차버린 청년을.
“아르민 일레인스 경.”
알로스린 대공은 눈을 감았다.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까?
단순히 병력을 움직여 남자를 친다?
아니, 그런 거창한 행위를 했다간 지금까지 얌전하게 물밑에서 작업을 해온 게 물거품이 될 뿐이다.
아직 ‘그것’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몸을 움직였다간, 그 청년만이 아니라 바로 목전에서 칼을 빼들고 있는 미네르바 황녀마저도 위협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조금이다.
정말로 약간의 시간만 더 있으면 자신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
3년 전, 그날을 기점으로 손에 들어온 기적.
나는 이것을 체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왔던가.
그런데도, 뭣도 모르고 내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니.
북방의 영웅이여.
“······인정하지.”
알로스린 대공은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 얕보고 있었다.
그런 새파란 남자가 영웅이라는 호칭 따위를 달다니, 거창하고 웃기지도 않는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인식을 정정했다.
무엇보다 이제껏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남자의 행보는 심상치가 않았다.
서부를 장악하게 만든 나태의 흡혈귀.
나아가 암살교단을 이용해 소원을 비튼 형태로 이용해먹고 있던 성배까지 제압한 거라면.
‘놈은 나와 다른 경로로 신물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터.’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알로스린 자신의 판단 착오였다.
지금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미네르바 황녀와 마찬가지로.
“나의 적이다.”
그 남자는 바로 이 제도 카라클로 돌아올 테지.
눈앞에서 기웃거리며, 내 계획을 방해하려 들 거다.
그러니 그 전에 선수를 치기로 했다.
“여봐라.”
알로스린 대공은 명했다.
“그녀를, 비발트로 보내라.”
무대는 보다 동쪽으로 이어진다.
****
나태의 서에 나타난 신물의 위치는 이러했다.
[분노 – 알 수 없음.] [오만, 색욕 – 마도공화국 비발트.]< 제78장 – 그리고 동쪽으로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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