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5)
내 마법이 더 쎈데-155화(155/203)
< 제78장 – 그리고 동쪽으로 (3) >
달그락. 달칵.
드넓은 식당 홀 내부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진다.
그릇 위에 올라와 있는 건 부드럽게 익힌 소고기.
씹자마자 육즙이 흘러나와, 입 안 가득 풍미를 채우는 것이 꽤나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든 음식인 듯 했다.
‘마리나가 자신할 만 했군.’
식사 시간 전에 마침 하녀 마리나가 근 두 달여 만에 카라클로 돌아온 아르민을 환영하면서 “도련님을 위해 조리장이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 있다니까. 기대해 주세요.”라고 호들갑을 떤 참이었다.
괜한 요란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런 맛이라면 자신만만하게 단언할 만도 했다. 싶다.
음식은 맛있었다.
여기에 곁들인 와인 또한 일품이라, 저녁 식사 자체는 불만을 품을 필요가 없으리만치 완벽했다.
그래, 식사만큼은 말이다.
그저.
‘영 거북하구만.’
슬쩍 눈길을 들자,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면면이 보인다.
상석에선 아버지 킬레인 일레인스가 와인을 음미하고 있는가 하면.
정면에는 그의 맏이 형, 카일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또한 아르민의 옆으로는 그의 하나 뿐인 누이 릴리에가 재잘거리면서 음식을 음미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전형적인 평범한 귀족가의 가족 식사 풍경이지만.
정작 분위기만은 그렇지 못했다.
사위를 깔아뭉개는 불편한 침묵.
“······얼마 전에 사관학교 마법학부 동기가 말해준 건데, 요즘 마도공화국 쪽에서 신기한 걸 시작했다고, 궁정에서 지원자를 받고 있다나 봐.”
유일하게 릴리에만이 그런 침묵을 어떻게든 날려보려고 안간힘을 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불편한 분위기를 날리기엔 역부족이다.
어째서 이렇게나 분위기가 우중충한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다만.’
그리고 마침, 그 이유를 카일이 입에 담았다.
“아르민.”
“···예.”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내뱉은 대답.
빠릿한 대답 대신, 여유가 담긴 태도가 눈에 거슬렸는지.
카일은 슬쩍 인상을 찡그린 채 말을 꺼냈다.
“설마하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황녀와 가까이 지낸다는 말이 들리던데. 사실이냐?”
“······아.”
올 것이 왔다는 듯. 릴리에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떡하니 입을 다문다.
동시에 킬레인도, 카일의 시선도 아르민에게 향했다.
‘딱히 비밀로 삼은 건 아니었다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난 두 달간 아르민은 황녀와 함께 움직였던 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알로스린 대공을 의식해서라도 황녀가 움직이는 걸 외부로 노출해선 안 되었으니까.
그런 것이 이번 원정 복귀와 함께, 이른바 알로스린 대공의 황녀 축사 건으로 인해 가족에게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대강.
– 황녀를 곁에서 보필하여 무사히 임무를 완수해낸 백금의 기사. 아르민 일레인스 경에게 박수를!
이라던가.
그게 또 참으로.
‘악취미였지.’
아르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황녀, 정확히는 황족과 일레인스 가문이 어떤 알력관계에 있는지.
그걸 아는 자라면, 저것이 얼마나 뒤틀린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아르민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카일은 아르민을 노려보듯 압박하는 시선을 뿌리고 있었다.
황녀와 손을 잡고 움직인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네놈은······!”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간신히 참아낸 카일은 가까스로 죽인 목소리를 씹어뱉듯 토해냈다.
“······우리를 변방으로 쫓아낸 것이, 누구였는지 잊어버린 게냐?”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가 있나.
정치 알력 다툼의 최전선, 그곳에서 낙오되어 일레인스 가문을 저 남쪽의 변방 영지로 쫓아낸 자.
그것이 황궁의 칼센이라는 걸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즉 일레인스 가문에게 있어, 황실의 적통을 잇는 미네르바 황녀란 크게 보자면 원수에 가까운 자란 뜻이었다.
“칼센 황궁은 어머니를 죽인 자들이다.”
변방으로 내쫓긴 일레인스 가문, 환경이 변화하자 몸이 약했던 릴리아나 일레인스는 결국 병을 얻어 사망했다.
아르민이 태어나고 몇 년 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머니를 죽인 자가 있다면 그건 황제 폐하겠죠. 그리고 황제 폐하라면 이미 서거하셨습니다.”
정확히는 아르민이 직접 자기 손으로 끝장을 내준 셈이지만.
그거야말로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 아르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카일이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네가 어떤 인연으로 황녀와 연이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황녀를 곁에서 보필하고, 기사로서 무공을 세운 건 칭찬해야 마땅할 일이지. 하지만 정치에 뛰어들고 싶었던 게냐? 그럴 거면 황녀만큼은 안 되었다.”
그 말에서 아르민은 카일이 지금까지 카라클의 정치 싸움에 어떤 식으로 끼어들고, 어떤 파벌에 공을 들이고 있었는지 대충 감이 왔다.
“그럼 형님께서는 알로스린 대공에게 붙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파벌에 가입해야한다면 당연한 소리지 않느냐!”
쾅.
식탁을 내리치자, 누님 릴리에가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만큼 카일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황녀에겐 아무런 힘이 없어. 아무리 용을 써봤자. 조만간 카르몬드 제4황자와 알로스린 대공에게 이 황궁이 떨어질 거라는 건 지나가던 코흘리개도 알고 있을 이야기다!”
그리고 카르몬드 황자는 단순히 알로스린 대공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막 비상을 준비하는 우리 가문에서, 네놈만이 헛짓거리를 한다니. 어머니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아르민은 차가운 눈동자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형님이라는 작자는 그랬다.
정치에 끼어들고 싶어 했고, 변방으로 쫓겨난 일레인스 가문의 명예를 다시 드높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과정과 수단이, 결국 힘 있는 자에게 붙어야한다는 결론이라면.
거기에 대의 따윈 없고, 정의 따윈 섞여들지 않았다면.
“형님의 선택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짓으로 드높일 명예라면, 애당초 일레인스 가문에 명예 따윈 없었다는 소리겠지요.”
“아르민!”
“너, 이 새끼······!”
릴리에의 안타까운 부름.
여기에 카일이 참지 못하고 드르륵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날리려는 바로 그때였다.
“그만.”
중후한 음성이 사위를 제압했다.
****
덜컥. 카일의 몸이 멈춘다.
카일을 지나, 아버지 킬레인은 묵묵히 입을 열었다.
“아르민, 내가 너에게 일레인스 가문이 어떻게 하여 변방으로 쫓겨났는지. 말해준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일레인스 가문이 쫓겨 날 때. 아르민은 고작 세 살 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의 비극을 기억하는 건 아버지와 10살 남짓했던 형과 누나뿐인 것이다.
과거를 어렴풋이 떠올리듯, 킬레인은 말했다.
“당시의 황제는 남부를 장악하고 싶어 했다. 수왕국이 제국에게 위협이 된다 보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카일도, 릴리에도, 아르민도, 그간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보지 못했던 이유.
제국에서 강건한 장군으로 유명했던 킬레인은 황제의 부름에 답해 달려갔을 때, 어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 수왕국을 치고 싶으니, 그대가 선봉을 맡아 달라.
어차피 변방의 오랑캐.
제국의 적수는 되지 못할 자들이다.
남부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먼저 쳐야만 한다고.
하지만 킬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수왕국은 어디까지나 제국에서 강제로 빨아들여 노예로 부리던 자들이 도망쳐 만든 부족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위협이라 볼 수 없다.
설사 장차 위협이 될지라도, 먼저 가서 무의미한 피를 본다는 건 옳지가 않다.
킬레인은 황제에게 말씀을 올렸다.
–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전하.
젊어서부터 전장의 길을 함께 해오던 총명한 황제라면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 나의 오른팔이라 생각했던 그대가 내 명을 받들지 않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매우 아쉽구나. 하는 수 없지. 이 일은 다른 자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그것이 계기였다.
단숨에 킬레인은 전선에서 물러나, 후방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영예롭던 장군이라는 말도 옛 것.
킬레인을 대신하여 남부를 칠 인재가 뽑혔고, 전쟁이 벌어졌으며, 끝내.
“수왕국을 함락하기 이전에 지루한 소모전을 반복하다 전쟁은 결국 냉전이라는 결과로 끝을 맺었다.”
어째서 황제가 그런 무모한 결단을 내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여전히 킬레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날 보시던 황제 폐하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나아가 자신과 같은 존재, 인간으로조차 보지 않던 시선.
어째서일까.
그가 알던 총명하고 지혜롭던 황제는 어디로 가고, 이 자리엔 다른 이가 들어서고야 만 것인가.
킬레인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서, 아르민은 머리를 굴렸다.
아마.
‘그쯤에 이르러, 아르카디아와 접촉하고, 그 업을 수행해온 것이겠지.’
어차피 이반 황제는 신의 수족에 불과했던 남자다.
신과 타협하여, 모형정원으로 구성된 이 세계를 지배하고자 했던 자.
다른 의미에서 인간을 보호하고자, 신의 시점을 손에 넣어버린 자.
그래서 끝내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였지 않던가.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찰나.
“하지만 미네르바 황녀 전하께선 다르시더구나.”
“아버님!?”
킬레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이제까지 했던 말과는 정반대의 평가였다.
카일의 반발도 무시한 채로 킬레인은 말을 이었다.
“그 눈빛은 백성을 바라보고 계셨다. 네놈도 기사나부랭이라면 곁에서 그 분을 보필하며 많은 걸 보고 느껴왔겠지.”
“예. 그 분을 올곧은 분이셨습니다.”
그렇다. 미네르바 황녀가 서부에서 보여준 모습.
한낱 백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냐고 처절하게 외치던 모습.
그것이 올곧지 않다하면, 무엇을 올곧다고 할 것인가.
“하지만 아버님! 아버님께서도 분명 알로스린 대공을 지지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카일의 말은 아르민으로서도 조금 의외인 말이었다.
킬레인 백작은 이미 대공에게 붙기로 마음 먹었던 것인가?
킬레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정하지 않으마, 나 또한 카일 너와 마찬가지로 알로스린 대공에게 이끌리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 남자는 나처럼 소중한 아내를 마음에 묻은 자였지.”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알로스린 대공에겐 아내가 하나 있었고, 이제는 곁에 두지 않고 있다는 말.
“한 번 소중한 걸 잃어본 자는, 더는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드는 법이다. 나는 대공의 그런 점을 믿었다. 그가 하는 정치가 옳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미네르바 황녀 전하의 걸음 또한 틀리지 않았다면.”
킬레인의 시선이 아르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각자가 믿는 바를 따르면 그만인 게다.”
킬레인은 아르민에게 물었다.
“아르민, 황녀와 함께하는 것이 너의 결심이더냐.”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네 눈으로 확인한 미네르바 황녀의 뒤를 따를 만한 가치가.
“예.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걷는다. 일레인스 가문의 자식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법이지.”
아버지의 허락.
그 앞에선 결국 카일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민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실행해라.
그것은 저 노익장이, 평생을 가슴에 품고 온 신념일 터.
한 명의 인간이 평생을 품어온 신념은, 그만한 가치와 무게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대강의 식사가 마무리 된 후.
카일이 식당을 떠나기 직전.
“······네 선택이, 나중에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르민.”
나직한 경고.
아르민은 묵묵히 답했다.
“날아오는 칼날을 그냥 맞아줄 생각 따윈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쾅. 문을 닫고 사라지는 카일을 일별하며.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신물을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사이에, 가족 내에선 이런 다툼이라니.
“나, 나는 그래도 아르민을 응원해······!”
릴리에의 응원에는 그저 쓴웃음으로 화답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황녀의 활약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기서도 오늘과도 같은 눈에 보이고, 또한 보이지 않는 정치 알력 다툼이 오고가겠지.
그런 점에 있어선.
“······미네르바 황녀에게 감사해야할 일인가.”
쓸데없는 정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미네르바 황녀를 떠올리며,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 제78장 – 그리고 동쪽으로 (3)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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