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9)
내 마법이 더 쎈데-159화(159/203)
< 제80장 – 변덕스러운 요정의 신 (2) >
발밑으로 질척하게 차오르는 긴장감.
아르민은 손가락을 주무르며 그 손마디를 풀어주었다.
눈앞에 서 있는 엘프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아르민을 보며, 요야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저 의미심장한 표정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지만.’
정체를 간파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칠영웅들의 태반은 신좌라는 힘에 취해, 그 힘으로 폭거를 저질러온 놈들이었다.’
마치 신의 힘을 쥔 이상.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거기에 반발한 헬레나와 베네딕트는 끝내 봉인을 당하지 않았던가.
즉 칠영웅이란 아르민에게 있어 ‘적’이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이제까지 만나온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암살교단의 주신이 쿠로카게 모리오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자연스레 소거법에 따르자면, 그녀 샤오메이는 엘프들이 숭배한다던 세계수의 어머니라는 존재가 될 터.
그리고
‘그놈의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예언이라는 형태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가져오라고 종용했었다.’
은색떡갈나무 부족의 출신이었던 그레이시아가 예언을 받고서 어떻게 움직였던가.
제국의 북방으로 향해, 탐식의 고래 위에서 벌어졌던 만남.
즉 그녀 또한 신물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그녀가, 다른 칠영웅들의 망집과 맥락을 같이하는 의도를 품고 있다면, 대처는 정해져 있었다.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진 순간.’
자신이 발동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마법으로 놈을 친다.
그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근육을 이완시키며 대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스트리엘이 입을 열었다.
‘오나?’
싶었던 아르민이지만, 의외로 그녀는 공격을 위한 주문의 영창 대신, 그저 순수한 의문이 담긴 말을 던져왔다.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아차렸나. 물어봐도 될까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질문이냐.
아르민은 피식 웃어버리곤 묵묵히 답을 꺼냈다.
“아까 전에 수련장의 바닭을 정리할 때. 흙정령을 꽤 많이 불러냈었지.”
“그랬죠. 일 처리는 빠르면 좋은 법이니까요.”
아스트리엘은 그게 뭐 어쨌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방식에서 사용된 마력의 흐름과 매커니즘이 아르민에게 무엇보다 익숙했을 뿐이다.
“이 세계의 일반적인 정령술사는 고작 해봐야 정령 하나와 계약을 맺는 게 보통이야. 그 능력이 뛰어난 자라고 해도 동시에 셋 이상을 계약하는 것이 힘들다는 모양이더라고.”
그레이시아나, 혹은 알포리움에서 만났던 이슈엘도 셋 이상의 정령을 불러내는 데에는 꽤 애를 먹곤 했다.
그건 순전히 정령을 유지하는 마력을 개인의 마력으로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의 지맥으로부터 마력을 가용하고, 순환 고리의 술식으로 그들의 유지력을 대지에 떠맡겼지.”
그 방식은 아직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 이념.
요컨대 현대 마법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개념이었다.
“당신이 사용한 건, 과거에 그토록 자랑하던 선술(仙術)이겠지.”
중국 도교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진 선술은 제3종과 제4종 마법의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모호한 개념의 마법이다.
주로 중국이 그 분야에서 가장 특출 났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들에겐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과 동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도교라는 문화 자체가 생활상에 깊게 녹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쨌거나 그런 특징적인 마법을, 아르민이 잘못 알아볼 리가 없다.
그래서 확신했다.
여기에서 선술을 사용한 자는, 엘프의 거죽을 뒤집어 쓰고 있다한들.
한때 도술의 천재로 이름을 날렸던 바로 그녀, 샤오메이일 것이라고.
“역시 강재민. 당신의 관찰안은 어디로 가지 않았군요.”
“그러는 그쪽도 내 정체를 한 눈에 알아봤군.”
아스트리엘의 감탄과는 별개로 아르민 또한 환생한 몸으로 지난 날의 외모가 아닌,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모를 갖춘 꼴이었다.
이런 지적에.
“사실 제 정체를 간파한 시점에서, 대강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는 알 수 있었어요. 제 정체를 드러내 보일만한 단초는 마법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라며, 잠시 고혹적인 미소를 띠고선 말을 흐리던 아스트리엘은.
생긋 웃는 얼굴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고작 그 정도의 작은 단서를 가지고 저를 알아볼만한 수준의 마법사는 강재민. 당신 밖에 없을 테지요.”
과연, 알아본 시점에서 이미 상대도 반대로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얄궂은 이야기였다.
하여간 잠시, 소리 없는 긴장이 아르민과 아스트리엘의 사이로 퍼져나갔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됐다.’
여기서 괜히 본심을 탐색한답시고 시간을 지체하는 건 아르민의 취향이 아니었다.
여기서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샤오메이, 네가 여기 있다는 건 신물을 찾아 온 건가?”
그렇다면 혹시.
“내가 이곳에 오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
지난 탐식의 고래 때도 그랬지만.
엘프들을 시켜 모노리스의 파편을 찾고 있는 건, 샤오메이도 마찬가지.
즉 그녀는 아르민처럼 신물을 찾는 형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만과 색욕의 신물을 찾아 이곳에 오자마자 그녀와 마주치다니.
우연이라기엔 기묘하지 않느냐고.
때문에 아르민은 빙빙 돌아가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는 내 적인가?”
그 한 마디를 듣고서,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문 샤오메이는 이윽고.
“아하하하!!”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뭐가 웃긴 걸까.
눈을 가늘게 뜨는 아르민에게, 샤오메이는 손사래를 쳤다.
“푸, 푸훗. 아니,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비웃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하, 맞아. 하긴 이런 곳에서 이렇게 극적으로 만난다면야. 오해할만도 하다 싶어서. 그래도. 아하핫.”
참으로 공교롭다면서, 아스트리엘은 이런 상황이 된 것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한동안을 웃어대던 그녀는.
“물론, 한 때는 모노리스의 파편을 노렸던 적도 있죠. 아르카디아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탐냈던 적도 있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였지만, 이어서 돌아온 대답은 아르민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다?”
“예.”
신으로서 군림하던 천 년.
그것은 신좌에 앉아, 따분히 세계를 바라보며 이 모형정원을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가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난 3년, 아르카디아가 당신에게 패해 사라지고. 이 세계를 지켜보며 제가 손을 뻗기 시작한 뒤로 보아온 세계는······. 천 년을 바라봐온 정원과는 조금 달랐어요.”
마치 TV로만 보던 세계에, 내가 직접 들어간 것처럼.
이 세계에 내려와, 직접 엘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동료가 되어 거니는 사이에 바라봐온 세계의 색채는 예상과는 달랐다고, 그녀는 말했다.
“······무슨 뜻이지?”
“엘프들은 제가 만들어낸 아이들이에요. 자연이라는 건 중요하거든요? 그러니 자연을 지킬 아이들을 만들고자 한 제 선술에서 태어난 것이 엘프들이죠.”
뭐, 그 논리 자체는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도술의 천재로서, 샤오메이가 천혜의 자연 속에서 어떤 생활을 보내왔는지.
그건 직접 그녀를 칠영웅으로 스카우트한 아르민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직접 만나보니, 정말로 이 아이들은 순수하더군요. 자연을 갈망하고, 남들의 비탄에 슬퍼하고, 어머니 세계수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서, 일관되게, 그저 조화를 위해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들은 힘을 탐내지 않는다.
인간의 멸절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조화와 균형.
그 사이에서 자신들이 살아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믿겨지시나요? 신좌까지 오른 제가, 아르카디아라면 ‘열등한 것’이라고 손가락질 했을 피조물을 보고 새로이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을 그녀는 머지 않아 내놓았다고 한다.
“애착(愛着).”
물론.
“이건 어렸을 적에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커서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종류의······ 정말 별 것 아닌 마음일 수도 있지요.”
그리 말하는 샤오메이, 아니, 아스트리엘의 눈동자는 고양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르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내놓았다.
“전 당신의 적도, 당신의 아군도 아니에요.”
단지.
“이 세계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그러다 보니, 이러저러하다가 겸사겸사 이렇게 상아탑의 교학장까지 되었답니다.”
이러저러해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리도 믿기 어려운 말이 있을까.
그래도.
“이건 전부 당신 때문이기도 해요. 아르민 일레인스.”
아르민을 부르는 아스트리엘의 호칭이 바뀌었다.
“당신이 3년 전 보여준 활약, 이후 신물을 회수하면서 아르카디아의 망집과 싸우는 과정은 제게도 퍽이나 영감을 주었거든요. 나는 모리오카나 블라디미르와는 달라요.”
모두를 죽여,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그림자의 괴물.
암살교단의 모리오카나,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신성의 발전기로서, 그저 진흙 인형으로만 취급했던 블라디미르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다.
애착이란 감정이 생긴 이상.
“뭐, 조금은 여기 세계를 열심히 도와줘볼까. 같은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죠.”
“자기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말하는 놈 치고 제대로 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인간이 아니라 엘프인 걸요. 원래는 신이기도 했고.”
입 싹 닦고 태도가 변해버리는 아스트리엘의 모습엔 아르민조차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난 널 뭐라고 판단하면 좋지?”
“글쎄요. 음······.”
잠시 그녀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그저, 그렇네요. 당신의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관객이라고 해둘까요?”
그리 말하는 아스트리엘의 입가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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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장실의 문을 뒤로하고, 아르민은 복도를 걸었다.
‘아스트리엘의 말을 전적으로 신용하기는 어려워.’
그러고 보면 생전의 샤오메이부터가, 원래 이런 녀석이긴 했다.
전형적인 쾌락주의자라고 할까.
헬레나가 본질을 쫓는 원리주의자라면, 샤오메이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공교롭긴 해.’
상아탑의 존재의의자체가, 그녀가 이 세계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유와 부합되어 교학장자리까지 올랐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이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저.
‘거짓말은 하지 않되, 진실도 말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면, 뭐. 좋다.
‘이쪽도 나름대로 이용해먹지 못할 이유도 없고 말이지.’
때문에 아르민과 아스트리엘은 서로를 터치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서로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상아탑까지 온 이상 각자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동맹 관계라고나 해둘까.
이 협정이 과연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교학장실을 나서기 직전.
아스트리엘이 이런 말을 했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 제미니와 아는 사이 같던데. 뭔가요? 혹시 한때 연애라도 했었나요?”
마치 전 여친을 다시 만난 거 아니냐는 농까지 섞어가면서.
“과거에 조금 연이 있었을 뿐이야.”
정말로 그 뿐인 이유라, 달리 할 말이 없는 아르민이었다.
“하긴 좀 이상하다 싶었죠. 당신에겐 사랑스러운 후배가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같이 안 왔네요?”
민세희의 존재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뭐, 후배가 합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생각보다 빨리 복귀한데다, 상아탑으로 오는 일정도 급하게 정해진 거였으니까.’
아마 세희와 헬레나 쪽도 1주나 2주 이내로 카라클로 복귀가 예정되어있다고 알고 있었다.
이게 다 서부와 달리.
야생이 즐비한 남부는 수왕국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마력열차의 시설 따위가 부족한 탓이지만.
기다려서 합류하기보다는, 아르민이 먼저 비발트로 향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여기저기 불안 요소가 산재한 건 사실이지만.
“이걸로 진짜 교사 생활이 시작되어 버렸구만.”
목표는 간단하다.
상아탑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사이, 오만과 색욕의 신물에 대한 단서를 잡는다.
그걸 다시금 상기한 아르민은,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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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0장 – 변덕스러운 요정의 신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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