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65)
내 마법이 더 쎈데-165화(165/203)
< 제83장 – 별이 머무는 땅 (1) >
상아탑에도 밤은 찾아왔다.
고개를 들자,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선 별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을지 궁금한 걸.’
별이란 지구로부터 수백, 수천, 수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아득한 외계에 존재하는 천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지식.
그 외에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마법사에서 별은 수많은 의미를 품어온······.
마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기도 했다.
별자리, 금성, 성운, 은하수, 별에서 태어난 신화나 전설 그리고 설화는 수없이도 많다.
애당초 마법의 발전 분류중에는 점성술과 운명론이 한데 묶여 하나의 학파를 이루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해 이 세계는.
“아르카디아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진 세상······이었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이렇게 드문드문 그 사실을 떠오릴 때마다 아르민은 묘한 감개에 젖고는 했다.
지구가 아르카디아를 필두로 한 칠영웅의 손으로 덧칠되어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면.
별들은 어떨까.
인간의 시간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아득히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저 천체들은.
과거 아르민이 보아오던 별들과 똑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쓸데없이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것도 잠시.
“아, 여기 계셨네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가 아르민의 귀를 잡아당겼다.
제미니가 얇은 외투를 껴입은 채로 아르민에게 다가왔다.
봄이 찾아왔다고는 해도, 아직 상아탑의 밤은 다소 쌀쌀한 참이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지?”
오늘 수업은 모두 끝이 났다.
각자 상아탑 기숙사에 준비된 방으로 돌아가, 내일 있을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인데.
“아스트리엘 교학장님께서 상아탑의 교사를 전부 호출하셨어요. 각 방으로 사역마를 보냈다고 하던데. 아르민 씨만이 방에 없다고 하시길래······.”
그래서 데리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사흘 뒤에 있을 수학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려는 모양이에요.”
수학여행.
처음 아스트리엘이 흥겹게 꺼내든 그 단어에 상아탑의 교사들은 모두 난색을 표했다.
기본적으로 수학여행(修學旅行)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던 탓이다.
그러나.
– 현재 상아탑에서 각 마탑의 학생들 관계는 결코 좋지 못하다. 동일한 환경에서 힘을 합쳐 커다란 목표를 이뤄내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라며 아스트리엘이 밀어붙인 덕에, 바로 사흘 뒤.
난데없이 상아탑의 수학여행이 결정된 것이다.
‘정말 변변찮은 이야기로군.’
그래도 상사가 까라는데 별 수 있나.
학생들의 관계처우 개선이야, 그야말로 아르민으로선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만의 한 가지.
어쩌면.
‘이것도 아스트리엘의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있었다.
애당초 아르민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곳에 있다는 오만의 신물을 찾아, 그리고 알로스린 대공이 숨겼다는 색욕의 신물을 찾아 상아탑에 당도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만이야 그렇다 쳐도.
– 알로스린 대공은 어째서 비발트로 색욕의 신물을 빼돌렸는가?
여기서 가장 먼저 아르민의 눈에 밟히는 건, 다름 아닌 이곳 상아탑이라는 장소다.
상아탑은 비발트 전역에 있는 모든 마탑의 리소스가 모여든 실험의 장이다.
만약 무언가를 만들고자 한다던가, 완성시키고자. 신물의 힘을 진정으로 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면.
‘그에 가장 걸맞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르민은 알로스린 대공의 행동이 가진 의미를 이렇게 추론했다.
처음부터.
– 알로스린 대공은 상아탑을 이용하기 위해, 신물을 빼돌렸다.
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
실제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수많은 사건을 겪어온 아르민의 직감이 속삭였다.
이건 충분히 ‘진실’로 이르는 추론이라고.
그리고 정말로 그게 진실이라면.
‘지금 움직임이 없는 것도 설명이 된다.’
보는 눈이 너무 많은 것이다.
특히 아르민의 존재가 가장 위협이 될 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액션을 취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여행으로 아르민이 자리를 비운 틈.
그것이 신물의 소유자에겐 가장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아르민의 목적을 듣고 난 아스트리엘이 갑작스레 수학여행이란 카드를 꺼내놓은 것도.
어쩌면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렇다면, 교활한 여우가 따로 없군.’
신이라는 짬밥이 있다고는 해도, 역시나 얕볼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러저러한 이유 덕에, 아르민으로서도 그 장단에 맞춰주지 않을 이유가 없을 터.
아르민은 제미니의 뒤를 따라, 교사들이 모인 회의실로 향했다.
****
회의실에는 열다섯 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전부 칠색 마탑에서 파견된 교사들과 그 외의 외부기관에서 파견된 능력자들로.
‘확실히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한가락 하는 놈들인데?’
얼굴 위로 엿보이는 차분함과 여유는 괜한 것이 아닌지.
각자 심장에 품은 마나의 고리가 풍기는 위세가 제법이다.
모두가 한가락 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치 않고.
마법이라는 분야에서는 저마다 최고의 실력을 뽐낼 실력자들일 테지만.
하필 지금.
“저기······. 교학장님, 이건 대체······.”
백색 원피스를 걸친 여성 교사 하나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모여 있는 이들 앞으로는 각각 맑은 청주가 담긴 술잔이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상아탑의 조리장에게 부탁해 만들어 놓은 각종 요리가 한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는 풍경.
그걸 본 순간, 아르민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설마.’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듯, 아스트리엘은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이건 회식이란 거예요.”
“······회, 식?”
요컨대 퇴근하고 갖는 술자리 문화의 재현이다.
“······저 녀석, 가져오지 않아도 될 문화를 가져와서 뭐 어쩌자고.”
“아르민 씨? 무슨 말 하셨나요?”
아스트리엘이 생긋 웃는 얼굴로 째릿 노려본다는 신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자.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아르민은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자리에 모인 교사들은 제각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지만.
‘칠영웅 시절엔 자주 이렇게 뒤풀이 했었지.’
아르민으로선 조금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려운 토벌을 마치고 나면, 꼭 제이크와 블라디미르가 솔선해서 이들을 이끌고 토벌지역의 명물 요리를 먹고, 보드카나 맥주 따위를 퍼마시면서 흥겹게 노래를 불렀던가.
참으로 오래된 추억을 그리고 있으려니.
불현 듯.
‘음?’
술잔을 기울이려는 순간, 아르민은 미묘한 시선의 낌새를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당혹스러워하는 교사들 중 유일하게 무덤덤한 얼굴을 한 채.
아르민에게 시선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전신에서 거뭇하게 피어오르는 죽음의 냄새 덕에, 다른 교사들과는 배 이상으로 거리를 둔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
그 이름이 분명.
‘테트리오라고 했던가?’
흑색 마탑의 출신이라고 했었지.
왜 날 쳐다보는지, 의문을 가지기 전에 먼저.
“이렇게 회식 자리를 연 건, 앞으로 있을 수학여행에 대해 공지를 하기 위해서예요.”
아스트리엘이 낭랑한 목소리로 사전 고지를 시작했다.
“이번 수학여행지 말입니다만. <별이 머무는 땅>으로 할까 합니다.”
별이 머무는 땅?
“그게 뭐야?”
아르민으로선 처음 듣는 지역명에 의문을 표했더니, 제미니가 신기하단 투로 말을 건네왔다.
“응? 아르민 씨 모르시나요?”
그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니, 제미니는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신화에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제미니는 이렇게 말했다.
– 오래된 과거, 이 세계에 마법을 전해준 자가 있었으니.
– 그가 바로 마나와 마법의 샴발라여라.
– 신화 속 전쟁을 끝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흑문을 닫은 신이여.
– 별이 되어 이 땅에 떨어졌으니.
– 이곳이 바로 <별이 머무는 땅>이니라.
“······해서, 비발트는 처음부터 그 샴발라의 별을 기리는 점성술사들이 모여 만들기 시작한 국가란 이야기도······. 아르민 씨? 왜 그러세요?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변모한 아르민의 얼굴을 본 제미니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지만.
아르민으로서도 방금 그 말은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마나와 마법의 신에 대한 신화를 하필 여기서 다시 접하다니.
애당초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아르카디아가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낸 거짓 신화일 텐데?’
****
3년 전, 아니. 혹은 더 그 이전이었던가.
아르민은 이 세계의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 태곳적에 이 땅에 흑문이 열리고 괴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 알몸으로 헐벗은 인간들이 괴물들의 횡포에 신음하고 죽어갈 때.
– 그것을 보다 못하여 일어선 일곱의 신이 있었으니.
– 태양과 달, 하늘과 땅, 물과 불, 그리고 마나(Mana)여라.
– 괴물들은 강했고 흑문 너머에서 어둠은 밀려들었다.
– 신들은 맞서 싸웠지만 하나 둘, 어둠에 패퇴했다.
– 하지만 마침내 최후의 항전에서 마나의 신이 직접 나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흑문을 닫았으니.
– 남은 여섯 신은 그를 기리며, 세계를 창조하고, 각각이 이 세계를 통치하며 태평성대를 누렸노라.
그리고 이 신화는 바로.
‘내가 마왕과 싸우고 나서 소멸했을 때. 당시를 은유한 신화였지.’
처음부터 이건 아르카디아가 자신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대륙에 뿌린 거짓 신화였다.
이후 아르카스가 아르카디아를 배반했다는 이야기나, 헬레나가 봉인되었던 뒷이야기를 뿌리고 신화로 만들어낸 것도 전부 그가 꾸민 짓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마나와 마법의 신······. 빈칸 맞추기를 해보면, 결국 그것이 뜻하는 건.’
아르민 일레인스.
아니, 보다 전에 가지고 있던 원래의 이름 강재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저런 설화를 뿌린 거지?’
저 이야기를 퍼트린 것이 아르카디아라는 건, 곧 아르카디아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말일 터.
‘아르카스에 대한 신화가 그렇게 퍼진 건, 처음부터 헬레나를 악신으로 몰아 배제하기 위해 아르카디아가 수를 쓴 거였다.’
본질을 비틀어 그 존재에게 저주를 씌우는 건 원시 주술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원시적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예를 들어 내가 미워하는 자에게 ‘얼간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그것을 내 주변 사람들. 나아가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을에선 ‘얼간이’라는 말이 곧 본질과 무관계하게, 내가 저주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변질될 수가 있다.
이는 언어오염의 효과와 더불어, 저주의 매개체로도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선.
‘마법의 신이 떨어진 자리란 말이지.’
그런 설화를 남겨둔 이유가, 뭘까?
거기에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또한 아스트리엘이 그곳을 수학여행지로 고른 이유는?
“샴발라인가······.”
“그래도 기대되지 않나요? 따지고 보면 다 같이 여행을 가는 거잖아요? 앞으로 숙소도 잡아야 하고, 거기서 먹을 식재료도 준비해야하고. 바쁘겠지만. 단체로 여행이라니. 뭔가 기대되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도 좀 더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순진하게 아스트리엘의 의도가 그걸 위해서라고 믿는 제미니는 흥이 난 얼굴이었지만.
글쎄다.
물론 아스트리엘에겐 별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마법에 정진하는 학생들이 마법의 신과 관련된 장소로 향하는 건, 맥락상 이상할 부분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다만 문제는.
‘여기에 그 당사자가 있단 말이다.’
아스트리엘에게 시선을 줘봤지만, 돌아온 건 다시금 가늘어진 눈매로 생긋 웃는 웃음 뿐.
‘대답을 회피할 생각으로 가득하군.’
여기서 꼬치꼬치 캐물어봤자,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반증인지.
이 또한 교활한 여우같다고나 할까.
저 여자는 내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걸까?
그런 식으로 의심이 담긴 시선이 오고가는 사이, 회식 자리는 천천히 무르익었다.
****
그리고 시간이 강물처럼 흐른 사흘 뒤.
수학여행 당일이 찾아왔다.
< 제83장 – 별이 머무는 땅 (1)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