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66)
내 마법이 더 쎈데-166화(166/203)
< 83장 – 별이 머무는 땅 (2) >
그곳은 거대한 회의실을 연상케 하는 장소였다.
엄숙한 분위기 속, 원탁을 중심으로 일단의 무리가 모여 앉아 있었으니.
그 숫자는 총 일곱.
먼저.
“대충 모일 인원은 모두 다 모인 것 같군.”
하얗게 센 머리칼과 풍성한 수염,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 아래로 가지런히 걸치고 있는 백색의 로브까지.
흔히들 마법사라고 하면 바로 떠오를 복장을 갖춘 노인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꺼내들자.
“레프너겐은? 그치는 이번에도 결석인가?”
노인을 향해 반말로 응대한 건,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귀족 특유의 복식인 튜닉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어디서 또 등신 같이 그 풍선 근육이나 자랑해대고 있겠지. 놈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니.”
동그란 유리알 안경 너머로 비치는 날카로운 시선.
특징적인 매부리코를 치켜 올리며, 중년의 여성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자색의 마탑주를 비난했다.
“무의미한 말다툼은 그만하지요. 자, 저희들은 전부 준비가 되었습니다. 슬슬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는 쓴 소리와 욕설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회의장을 정리한 건, 꿀과도 같은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 외견은 성녀, 혹은 창부일까.
신이 직접 그 손으로 빚은 외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
반개한 눈동자 아래로 보이는 몸뚱이 위로는, 아예 속이 비치는 얇은 옷을 걸친 채 예술품 같은 자신의 육체를 과감하게 드러낸 모습이었다.
이처럼 회의실에 모여든 자들은 다양한 개성으로 무장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개성 같은 건, 이들 신분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모여 있는 일곱 중 한 명인 아스트리엘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견을 받아, 그럼 지금부터 제8회 마탑 평의회 정례회의를 시작하지.”
백색 노인이 엄숙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모임의 이름은 <마탑 평의회 정례회의>.
즉 아스트리엘을 제외한 저 여섯의 별종들이 바로 현 비발트를 이끌어나가는 권력의 중추이자, 이 세계 마법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자들.
이른바 제7마탑주란 자들이었던 것이다..
“곧바로 현안 보고에 들어가지. 아스트리엘 교학장. 현재 상아탑의 운영 상태는 어떠한가?”
백색 로브를 걸친 노인의 이름은 고르돌프.
일곱의 마탑주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며, 또한 7서클에 이른 몸으로 반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사실상 마탑주들의 리더격인 인물이다.
질문이 있고서 곧장 마탑주들의 시선이 아스트리엘에게 쏟아졌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이에요. 로드 화이트.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마탑의 자원은 상아탑으로 도착하고 있답니다. 개축과 지원, 증축을 위해서라도 보내주신 인원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지요.”
아스트리엘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하지만 최근 우리는 의아한 보고를 받았다네. 이틀 후에 상아탑에서 수학여행인지 뭔지 하는 일을 벌인다고 한다던데······.”
고르돌프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아스트리엘을 향한다.
수학여행이라니, 그런 개념이 다소 생소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이런 중요한 순간에 대체 무슨 짓을 하는가. 싶었던 것이겠지.
‘뭐, 이렇게 나올 줄 예상은 했지만요.’
아스트리엘이 속으로 미소를 짓건 말건.
“그대가 운영하는 시설의 중함은 잘 알고 있겠지?”
고르돌프를 위시한 마탑주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진다.
설마하니 이제 와서 다시금 상아탑의 존재의의(存在意義)를 떠들어댈 줄이야.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걸까?’
아스트리엘이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도, 고르돌프는 열기를 띤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잊지 말게나. 그대가 어째서 상아탑을 운영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는지.”
알다마다.
어찌하여 엘프 종족인 자신이 그들의 장기말이 되었는가.
물론 첫 번째 이유는, 샤오메이로서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접근해서 능력을 어필했다는 점이 크지만.
“마탑주인 우리들이 섣불리 움직였다간 제국이나 신성왕국의 눈에 띄일 확률이 높아. 하지만 엘프의 몸으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마법 소양을 지닌 자네라면, 우리의 원대한 ‘꿈’을 이해한 그대라면 이번 계획을 이끌어나갈 자로 충분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전권을 위임한 걸세. 그런데 이제 와서 샛길로 빠진다니. 이유가 뭔가? 당연히 대답을 준비해왔겠지?”
말 없는 비난의 시선.
고르돌프 뿐만이 아니다, 마탑주들은 전원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눈빛에서 언뜻 비치는 감정.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자면.
‘광기(狂氣)일까.’
물론 마법사란 족속들은 모두가 마법이라는 분야에 미친, 따지고 보면 광인(狂人)에 다름 없는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이들이 이토록 상아탑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그 본질을 알고 있는 입장에선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야.’
하지만 아직. 아직이다.
아직 본심을 내비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시기가 너무 이르다.
그저.
“물론이에요. 저 또한 ‘관측자’의 ‘예언’을 무시할 생각은 없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저 또한 목표는 당신들과 같아요. 다른 누구도 아닌 상아탑의 교학장인 제가, 상아탑의 존재의의를 잊을 리가 있겠나요?”
“그렇겠지. 그래야만 한다네. 그렇지 않고서 단순한 친목여행 따위를 준비해서야 언어도단이겠지.”
고르돌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을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그들의 심장에 각인시키겠다는 듯이.
“관측자는 말했네. 우리 제7마탑이 전부 모여, 힘을 합친다면 우리가 품은 영원의 숙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즉 숙원을 이루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대중들이 알고 있는 상아탑이 만들어진 이유.
그건 마탑들이 더는 서로 간에 지나친 반목을 줄이고, 협업하고,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말은 틀렸다.
마탑주들이 상아탑을 만든 이유는 바로.
“우리가 가진 마법의 한계, 그것을 벗어나. <보다 한 단계 높은 고차원의 마법>을 손에 쥐기 위해서라도. 상아탑 계획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네.”
지식의 탐구니 뭐니, 겨우 그 정도의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상아탑이 만들어진 ‘진정한 이유’.
그건 이제는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의 마법을 부수고, 보다 미래에 존재하고 있을 마법을 손에 쥐기 위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이들은 상아탑을 만들었다.
아스트리엘은 마탑주들이 바라는 답을 입에 올렸다.
“걱정하지 마시길. 로드들이여. 예언의 실행은 한 치의 빈틈도 없어요. 수학여행이라는 요소 또한 이번 계획에선 빼놓을 수 없는 요소에요.”
그녀는 차분히 설명했다.
계획을 이루기 위해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기적은 단순히 ‘대상’과 ‘상황’과 ‘자원’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숙성과 담금질이 필요한 법이랍니다. 로드 화이트께서는 단순한 친목여행이라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현재 여러분의 마탑에서 파견해준 학생들은 연이은 반목으로 상아탑의 분위기가 흉흉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걸 해소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요?”
아스트리엘의 에둘러 표현한 비난에, 마탑주들은 저마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반목하도록 교육한 건, 결국 따지고 보면 그들 자신이다.
“기다려주세요. 와인이란 고된 과정을 거쳐 숙성된 것일수록 풍미가 깊은 법. ‘그것’의 완성은 순조롭습니다. 그저.”
아스트리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부디.
“여러분이야말로, 조급한 마음에 쓸데없는 실수를 피해주시길.”
좌중을 휩쓰는 침묵.
그들을 보며 입가에 요야한 미소를 띤 아스트리엘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지요.”
****
쿠웅.
문이 닫히고, 아스트리엘은 복도를 내걸었다.
마탑의 정례회의도 끝났으니, 남은 건 상아탑으로 돌아가 한숨 돌리는 것뿐.
정말 여덟 번이나 회의를 계속해오면서 느낀 거지만.
‘어리석은 자들.’
아스트리엘, 아니, 샤오메이의 얼굴은 냉철하고도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한심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그들의 목숨은 이미 경각에 달해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마법으로 변용하고 주물럭댄 육체는 시시각각 종극을 향해 다가들고 있겠지.
그토록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실패한 자들의 말로가 바로 저들이다.
이 시대의 마법을 극한으로 익힌 덕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이란 존재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계를 한 번 벗어난 시점에서, 그들은 더욱더 높은 곳을.
자신의 분수에 걸맞지도 않은 영역을 넘보려고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럴 때.
그들에게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관측자’란 자.
옵저버(Observer)의 존재.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또 한 번의 기회, 기적으로 비춰졌을 테지.
그것이 실로.
“한심해.”
아스트리엘은 입가를 비틀었다.
그들은 꿈에도 모른다.
그들 앞에 나타난 관측자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또 하나.
이미 상아탑에는, 그들이 꿈꾸는 궁극(窮極)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자신은 그것을 그들에게 알려줄 의무도, 생각도 없었다.
단지.
“자, 이제 운명은 어떤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할까?”
아스트리엘은 그저 담담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마침내 찾아온 수학여행 당일.
아르민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사전에 모임 장소로 고지해둔 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어딘지 모르게 들뜬 얼굴이구만.’
수학여행 특유의 분위기라고 할까.
길을 걷는 학생들의 표정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아르민이 나타나자마자, 또한 숨기지 못한 적의나 분개를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어차피 그것까지 포함해서.
“다들 젊구만.” 하고 느끼는 아르민이었다,
적의나 호의나, 그런 부류의 강렬한 감정조차도 결국엔 그만치 감정과 품은 생각이 치기 어리고, 젊기에 가능한 행위다.
육체야 그렇다 쳐도, 정신의 나이만은 이미 60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르민 입장에선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다.
어쨌거나.
‘오전 9시까지 상아탑 광장에 모이라고 했었지.’
모인 건 좋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수학여행지까지 어떻게 가려는 거지?”
일반적인 수학여행의 경우와 다르게, 이곳은 어쨌거나 판타지 세계다.
마차를 이용한다고 해도 그 수용인원엔 한계가 있을 테고.
역시.
“여기서 마력열차 정거장까지 이동해서 움직이려나?”
다만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역 앞에서 모이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을 곰곰이 떠올리고 있을 무렵.
“스승님!”
저만치 멀리서, 아르민을 발견하고는 반색한 얼굴로 달려오는 아가씨가 보였다.
“엘레노아, 그리고 조슈펠이냐.”
이른 아침, 아르민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의 얼굴은 꽤 대조적이었다.
엘레노아가 무척이나 즐거운 기색인 것에 비해, 조슈펠은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고 있자니.
“이거, 저번에 내주신 과제물입니다!”
엘레노아가 척하니 양피지 뭉텅이를 건네왔다.
“벌써 끝냈다고?”
아르민은 순수하게 놀란 듯이 입을 열었다.
과제를 내준 것이 엊그제다.
그 과제의 내용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마탑 기본 1서클 마법의 이해>로.
저번 강습 때 아르민이 제시한 시점을 기본으로, 상아탑에서 쉬이 접근이 가능한 일곱 마탑의 1서클 마법을 상세히 조사 분석해서 가져오란 과제였는데.
눈앞의 아가씨는 그 방대한 과제물을 단 이틀 만에 해결해서 가져온 것이다.
“엘레노아 양은 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과제에 매달려 있더군요.”
옆에서 조슈펠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둘이 같은 방을 쓴다고 해썬가?’
어쩐지, 조슈펠의 얼굴 위로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온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연 스승님이 내준 과제답게, 조사하는 내내 새로운 시점에서 마법체계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두근거림이 가시질 않아요! 바로 봐주실 수 있나요? 혹시 틀린 점이나, 스승님이 보시기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알고 싶습니다!”
순수한 열정이라고 할지.
눈이 부시기까지 한 그 모습에, 아르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제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 참.”
“······뭔가 문제가 있나요?”
아르민이 가볍게 내뱉은 탄식에, 엘레노아는 슬며시 불안감이 깃든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완벽하다. 이번 과제는 합격점을 주마.”
“······!!”
단숨에 기쁜 얼굴이 되어 활짝 웃는 모습이, 그 나이대 또래 아가씨 다운 모습이라 퍽이나 귀엽다는 건 그렇다 치고.
‘······단시간에 여기까지 오다니.’
아르민은 과제물을 훑어보며 감탄을 흘렸다.
고작 딱 한 번이다.
단 한 번 세상을 달리 보는 ‘시점’을 아르민은 그녀에게 제시했다.
그런데 엘레노아는 그 단초를 계기로, 이 세계의 1서클 마법들을 단번에 현대 마법에 가까운 형태로 재해석해서 과제물로 제출한 것이다.
‘이 정도라면 조금만 손을 본다면, 충분히 현대 마법으로 운용할 수 있을 수준이야.’
청색 마탑의 지식에 이르러선, 원래 적을 두었던 영향도 있는지. 이런 방식의 마법 운용은 어떠할까. 라고.
직접 술식을 제시한 부분까지 있었다.
아르민은 순진하게 기뻐하는 엘레노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래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그녀는 천재다.
그것도 아르민의 예상조차 뛰어넘을 정도로, 현대 마법을 배우기에 특화된 천재.
아르민의 시선을 옆에서 지켜보던 조슈펠이 순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조슈펠.”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그 말을 듣자마자, 웃고 있던 엘레노아의 얼굴이 단숨에 험악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나 같은 반쪽짜리가 과제를 풀어낸 게···?”
적의가 담뿍 담긴 눈동자로 엘레노아는 조슈펠을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설마요. 저는 당신에겐 그저 감탄하고 있을 뿐이에요. 감쳐둔 실력···이라는 말은 어폐겠죠. 단지 올바른 교사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실력이 일취월장하다니. 그 부분에선 순수하게 당신을 존경하고 있답니다.”
순순히 흘러나온 칭찬의 말.
아마, 그것은 엘레노아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들어본 칭찬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
엘레노아는 당황한 얼굴로 이해가 되지 않는 외계어를 들은 사람마냥 당혹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여전히 당신의 가르침이 납득이 가지 않아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슈아악.
조슈펠이 뻗은 손으로부터 흩날리는 물방울들.
청색 마탑 특유의 과장된 어휘로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고리타분한 영창 ‘따위’가 없이.
그녀는 아르민이 가르쳐준 마법 이론을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만든 술식을 발동시켰다.
“어휘와 마력의 운용만으로 마법을 구현하지 마라. 시각을 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전부 이용하라. 당신은 말씀하셨죠.”
– 너의 머리카락을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인 마력의 운용이 가능하다. 주어진 도구를 썩히지 마라. 그걸 이용하면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던질 수 있다.
라고.
“확실히 당신 말대로예요. 설마 영창 없이 마법사용이 가능할 줄이야······.”
‘뭐, 나로선 짐작치 못한 시점을 깨워준 것에 불과하지만.’
기존의 조슈펠은 마은의 머리칼이라 불리는 가문의 유산을 가지고도 어째선지 여전히 고전 마법에 얽매이는 면이 있었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육체의 한계가 명확한 일반인에게나 어울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브랑슈아 가문의 비법으로 제조된 마은의 머리칼.
그건 현대 마법으로 따지자면 마력신경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물건이다.
‘심장의 마나만으로 부족하다면, 머리카락에 마력을 입혀 보조 에너지원으로 쓴다. 그 이념만큼은 현대 마법과 맥이 닿아있어.’
다만 그걸 다루기 위한 방법론이 여전히 이 세계의 고전 마법에 의존하고 있으니, 이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위다.
때문에 아르민은 그것을 지적하고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그야 마은의 머리칼을 이용한다면, 고전 마법이라고 할지라도 과정을 수단계 단축시킬 수 있으니까. 당연한 일일 뿐이야.”
그래. 말 그대로.
“너의 육체는 그러한 방식으로 ‘설계’된 셈이니까.”
설계란 한 마디.
그 말에 조슈펠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 가슴에 진 응어리를 아르민 또한 약간은 짐작하고 있었다.
‘조슈펠은 귀족으로서 의무를 지고 있다. 자기 입으로 말했었지.’
가문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소녀.
그 현실은 어떤 형태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을까.
“······아르민 교사. 당신도 역시나 저를······.”
만들어진 존재로 보느냐, 뭐, 그런 류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내 말은 아직 안 끝났어. 멋대로 착각하지 마라.”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네 입으로 귀족의 의무를 운운했었잖아? 그럼 그에 걸맞은 우수한 실력을 지니란 말이다. 그래야 간신히 내 마법의 기초를 이해하고, 날 따라올 수 있을 게다.”
요컨대.
“내게 한방 먹여주고 싶다면, 그만큼 성장하란 거다. 나는 제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거든.”
최근 들어, 조금은 그런 취미가 생겼다고. 아르민은 말했다.
“제자······라니, 당신의 마법을 깨부수겠다고 선언한, 저 같은 이조차 말인가요?”
“제자의 귀여운 도전쯤이야,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는 주의라서 말이다.”
뭐, 램버트의 유치한 적개심은 별개지만.
그렇지 않아도 슬쩍 시야 끄트머리에서, 모여있는 자신들을 보고 눈을 부라리는 램버트가 보였다.
참.
‘피곤한 놈이구만.’
“스, 스승님! 저는요? 저도 우수한 제자인가요?”
경쟁하듯 뒤늦게 발돋움하며 입을 연 엘레노아에게 아르민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이.
“아, 교통수단이 도착한 모양이에요.”
조슈펠의 말을 듣고서, 아르민은 광장의 정문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아르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 저게 뭐야?
– 마차인가?
학생들의 놀라움에도 개의치 않고, 육중한 몸을 이끌고선 광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물건.
“······진짜냐.”
그것은 농담 하나 섞지 않고서, 아르민 또한 잘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 세계에서 버스라니······.”
수학여행 하면 당연 떠오르는 고속버스의 모습.
누가 손을 썼는지는 뻔했다.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에서 아스트리엘은 놀라워하는 아르민을 향해 장난기 담긴 눈빛으로 찡긋 웃어보였다.
이것 참 뭐라고 할까.
“이세계를 만끽하고 계시는 구만.”
허탈한 중얼거림과 함께, 수학여행지로 떠나는 버스가 출발했다.
< 83장 – 별이 머무는 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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