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67)
내 마법이 더 쎈데-167화(167/203)
< 제83장 – 별이 머무는 땅 (3) >
눈을 뜬 순간부터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이해하고 있었다.
– 죽음을 관장하며, 세계를 지켜본다.
세계의 수호자.
혹은 감시자로서 죽음을 담당하라 명받은 그는, 동시에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들을, 즉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들을 지켜보아왔다.
생명이라면 누구라도 생으로서 피어나고, 삶이라는 과정을 거쳤으며, 죽음이라는 일몰을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다.
여기엔 요정도, 난쟁이도, 짐승도, 심지어 가장 위대한 신의 손으로 태어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 전부가 오롯이 신께서 부여한 운명이었기에.
‘그’가 지켜보아온 세계는 늘 그러한 법칙 속에서 돌아갔다.
그렇게 지켜보기를 무려 천 년.
아득하기만 하여, 영원이라는 말이 더욱 가까이 존재하는 시간을.
그는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켜보아오기만 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불현 듯, 영원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찰나에 가까운 순간.
‘그’는 감시자로서는 가져서는 안 될, 아주 자그마한 의문을 가슴에 품었다.
– 내가 이들을 지켜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신의 대리자, 세계의 수호자에겐 허락되지 않는 질문이었을 터다.
원래라면 가질 일도 없었을 의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예외는 있다고 하던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우연히 이 세계를 만들어낸 신이 하필이면 세계에서 자취를 감춘 순간,
기적처럼, 혹은 비극처럼.
시스템에서 생겨난 작은 버그가 ‘그’의 가슴에 자리 잡고야 말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어떤 의미로 보면 ‘그’의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의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켜보고 있어도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지 위를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생과 사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니까.
그것을 비유하자면 회색빛이라고 할 수 있겠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
그건 아무런 색채도 지니지 못한 채, 회색빛으로 썩어 문드러져가는 광경이었다.
대체 이 무의미한 회색빛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한 번 의문을 떠올려버린 이상,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을 지켜보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게 아니다.
반대로.
– 내가 지켜보는 생 그 자체에, 혹시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가까스로 도달한 의문.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그제야 간신히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다.
지켜보는 와중에서 ‘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까마득한 시간 동안 지켜보아온 생명체들의 생 대부분은 그저.
– 실로 하찮다.
의미가 없는, 정크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고, 그 어떠한 유의미한 수치의 정보도 지니지 않는 쓰레기 더미.
단순한 회색.
처음부터 그건 어쩔 수 없던 걸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 태어난 것들은 신의 의도로 인해, 그 육체에 한계가 명확한 자들이다.
신좌에 도달할 가능성은 진즉 닫혀 있고, 그들이 보다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주어져야할 계단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가?
지켜보는 행위 그 자체에, 저 대지 위를 살아가는 저 생명체들에게도,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았단 말인가?
차라리 이럴 것이라면, 지켜보는 일은 처음부터 무의미했던 것이 아니겠느냐고.
나아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까지 거슬러 올라가, 부정하고, 의심하려는 바로 그때.
[나는 마법을 배우고 싶어.]회색빛 세계에 처음으로 푸른색을 가진 것이 나타났다.
‘그’가 기억하는 신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고 완벽한 육체를 지닌 존재가.
기적처럼 등장한 ‘그녀’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으니.
그것이 바로 그녀와 그의 첫 만남이었다.
****
“수학여행인지 뭔지, 무슨 행사인지는 몰라도. 이건 기회다. 흑마법사······! 상아탑의 결계 밖으로만 나간다면, 그 놈의 조슈펠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거라고!”
기쁨에 겨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
그걸 듣고 ‘그’는 상념에서 빠져 나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흥분으로 점철된 표정을 지은 청년.
이름이 램버트라고 했던가.
불쌍하게도 그는 색채를 지니지 못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아도 마탑은 그대를 중히 여기고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신화를 증명해라. 그대가 마탑에 있어,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차기 마탑주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어라.]그는 누구보다도 이번 계획에 어울리는 남자다.
“크흐흐? 그래? 역시 그놈의 엉덩이가 무거운 마탑 놈들도 내 진가를 알아보는구만. 이것도 전부 당신 덕분이야. 흑마법사. 조슈펠을 쓰러트려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어디 당신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지. 당신도 마은의 머리칼이라는 거에 흥미가 있다고, 저번에 말한 적 있었지? 물론 내가 흥미가 있는 부분은 머리카락 따위 보단 몸뚱이 쪽이지만!”
킬킬 웃기 시작하는 램버트를 바라보며 ‘그’는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램버트, 그는 모른다.
자신이 어째서 이번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위치에 발탁되었는지.
색채는 지니지 못했지만, 그가 가진 감정은 진짜다.
열정과 분노, 질투, 이 강렬한 감정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악의와 질투심으로 조슈펠을 증오하는 램버트는 계획에 딱 걸맞은 적임자다.
진득하니 흐르는 죽음의 기운.
내가 보는 세계에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러니 보여 다오.
[내게 신화의 끝자락을 보여 다오. 나는 지켜보는 자. 네가 도달할 결말을 지켜보겠다.]****
덜컹, 푸쉬익.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학생들이 우르르 내려선다.
– 와, 마차보다도 훨씬 편한데?
– 이게 아스트리엘 교학장님이 만든 아티팩트라면서?
– 이런 건 귀족 모임에서도 본적이 없다고.
저마다 버스의 편안한 승차감이나, 문명의 이기가 가진 안락함에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그야말로 이세계 문명 만만세구만.’
저 반응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아르민이 느낀 버스의 승차감은 마차에 비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쾌적했다.
‘오는 내내 마력으로 구조를 살펴보니, 엔진 부분만 마력엔진으로 대체한 현대 고속버스란 느낌이었지.’
물론 이 세상에서 마나 엔진은 이미 마력열차에서 쓰이는 보편저인 기술이다.
다만 그 출력 문제에서 마력 열차쯤 되는 거대한 탑승물이 아니면 실용화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거늘.
아스트리엘은 마나 엔진을 고도로 집적화 하는 것으로, 고속버스에 탑재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스트리엘이 상아탑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교학장이기에 가능한 일일 터다.
‘양산할 수 없는 이상, 아직 마차를 제치고 주류 교통수단으로 정착할 수는 없을 테지.’
그야말로 부자의 취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나름대로 그런 분석을 내리는 사이.
버스에서 내린 학생과 교사들은 전부 숙소로 준비된 대저택으로 향했다.
“호화스러운 걸.”
“그렇죠? 제가 힘 좀 썼죠.”
아르민의 혼잣말에 아스트리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왕이면 기념비적인 상아탑의 첫 수학여행이니,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그러셔.”
히죽 웃어 보인 아스트리엘은 손뼉을 치며 좌중의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여러분, 목적지에도 도착했으니. 지금부터 수학여행이 무엇인지, 보다 자세히 설명드리겠어요.”
****
수학여행.
말 그대로 공부를 위해,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을 받아 특정한 관광지나 유적지 따위로 여행을 떠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르민이 기억하는 지구 시절의 이야기고.
학교라는 개념보다는 개인 가정교사 따위로 학문을 배우는데 익숙한 이 세계의 문화와는 아귀가 안 맞는 점이 있다.
때문에.
“여러분에게 수학여행이라는 것이 낯설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스트리엘이 나지막이 흘리는 목소리를, 학생들이 조용히 경청한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요. 집을 떠난 자만이 뜻을 이룰 수 있고,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법이라고. 내가 머무르고만 있던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그 과정에서 옆에 있는 친구와 신뢰와 우정을 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멋진 일이 될 거라고, 저 교학장은 생각하고 있답니다.”
말은 그럴듯할지 몰라도, 그걸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정작 시큰둥했다.
그야 이제까지 각자 다른 마탑의 소속으로, 서로 반목하고 경쟁해온 그들이다.
아무리 먼 곳까지 왔다한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란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테지.
그래도.
“부디 이번 일을 기회로, 교양을 쌓는 상아탑의 학생이 되도록 합시다.”
아스트리엘은 그리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얼굴로, 수학여행 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우리는 내일부터 별이 머무는 땅의 근방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집합시간은 내일 오전 9시. 그때까지는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쓰셔도 됩니다. 관광지로 나가 쇼핑을 하건, 친구와 돈독히 우정을 다지건. 각자 성인인 이상, 알아서 할 거라 믿겠어요.”
모든 일정은 내일부터 시작이니, 그때까지는 자유시간이란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적잖이 동요가 흘러나왔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정에 들어갈 줄 알았건만.
느닷없이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즐기라는 미션을 받은 셈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도록 해요.”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끝으로, 아스트리엘은 정말 숙소 안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어안이 벙벙한 분위기가 남겨진 학생과 교사들 사이로 돌기 시작했다.
‘뭐, 샤오메이답다면 다운 일이지만.’
그럼 이제부터 어떡할까.
‘어차피 시간이 생긴 이상, 바로 돌아볼까?’
아르민도 아무런 계획 없이 이곳을 찾은 건 아니었다.
사전에 별이 머무는 땅에 도착하면, 홀로 해야 할 일을 미리 정리해두었던 것이다.
아스트리엘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라고 판까지 깔아준 마당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아르민이 움직이려는 찰나.
“스, 스승님!”
엘레노아가 다급히 아르민을 불러 세웠다.
“음? 무슨 일이지? 엘레노아.”
엘레노아는 망설이는 기색이 잔뜩 담긴 태도로, 어물거리듯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배운 걸로 불어보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데. 시, 시간 좀 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정중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녀다운 부끄럼이 담긴 제안이었다.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얼마나 무리해서 말을 꺼낸 건지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서 귀여운 제자랑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미안.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 그러신가요······.”
아르민의 말에 엘레노아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귀염성 느껴지는 태도에 피식 웃으면서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 볼 일을 끝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같이 움직일 수 있을 테니. 그때 보도록 하지. 내일까지 내가 가르쳐준 술식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도록.”
슬쩍 꺼내본 말을 듣고서, 단번에 엘레노아는 반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어디, 귀여운 제자를 뒤로한 채.
아르민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지금부터 내일까지는 개인 자유시간이다.
교학장 아스트리엘이 꺼낸 말로 인해, 단숨에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상위의 마법사가 건네주는 퀘스트 따위를 수행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그들에게, 난데없이 주어지는 자유란 그만한 혼란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때 마탑 출신의 마법사들이 어찌 반응하고는 하는지, 조슈펠은 그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로.
“조, 조슈펠 님! 예전부터 존경하고 있었어요!”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저희와 같이 다니시지 않겠나요?”
녹색 마탑의 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둘이 주저하는 태도로 조슈펠에게 다가왔다.
겉으로 보기엔 예전부터 선망하고 동경하던 상대에게 어렵사리 말을 건넨 풋풋한 소녀들처럼 보일 뿐인 모습이지만.
“잠깐! 조슈펠 아가씨가 너희 녹색 마탑하고 어울려줄 만큼 한가한 줄 알아?”
“우리 청색 마탑을 내버려두고 멋대로 접근하다니, 주제를 알아야지!”
조슈펠도 낯이 익은 청색 마탑 출신의 학생들이 나타난 순간.
삽시간에 녹색 마탑 소녀들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미 거기엔 풋풋한 소녀의 인상 따윈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으니.
오로지 미치 숨기지 못한 욕망만이 버젓이 드러난 얼굴을 보고, 조슈펠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었다.
‘또 인가요.’
또.
조슈펠의 가슴에 파문이 일어난다.
그랬다. 이런 경험은, 그녀에게 있어 고작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청색 출신으로서, 이번 여행지를 같이 다니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이번에 말을 걸어온 건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던 청색 마탑의 청년이었다.
녹색 마탑에 비하면야 낯이 익을지는 몰라도, 결국 이쪽도 파고드는 분파가 다른 이상.
동문이라기보다는 타인에 가까운 존재였다.
아무리 호의가 가득 담긴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한들, 조슈펠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저들과 다르지 않다.
저 친근한 척 하는 미소 뒤에 숨겨진 본의.
그걸 모를 만큼 조슈펠은 어수룩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늘 이랬죠.’
조슈펠 브랑슈아.
브랑슈아 가문의 기린아(麒麟兒).
어딜 가든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그녀를, 개인이나 집단은 늘 가만히 두지 않았다.
청색 마탑에서도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문가의 위세를 노리는 자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으니.
친해진다면 혹시라도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흑심을 품은 이라면 차라리 양반이다.
‘개중에서는 더 심한 짓을 일삼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아예 조슈펠이 한창 때의 여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선,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서슴없이 호의를 표해오는 남성진이야말로 조슈펠이 가장 꺼리는 상대였다.
조슈펠만 자신의 것으로 삼으면, 그 가문의 위세를 쥘 수 있다고 착각하는 멍청이들.
늘 이러했다.
조슈펠의 주변은, 늘 이러한 자들로 투성이였던 것이다.
나 개인이 아닌, 가문의 위세, 그 권력에 눈이 먼 자들.
그들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그들과 마주하는 인생에 조슈펠은 이미 충분하리만치 지쳐있는 상태였다.
‘조금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순간, 조슈펠의 머리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금발과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던 남자.
조슈펠이 어떤 모습을 보이건, 자기가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남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심한 태도를 고수하던 남자의 얼굴이.
‘······왜 하필 이런 때에 그 남자가······.’
조슈펠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워냈다.
어쨌거나 이대로 있다간, 결국 원치도 않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참이었다.
그러니.
마침 저 멀리서, 홀로 외로이 떨어져 걷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발견한 순간, 조슈펠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슈펠은 주변 사람들에게 입을 열었다.
“어머, 이런 제게 분에 넘치는 제안을 해주시다니. 고마워요. 여러분.”
“그럼 역시 저희와······!”
“아니지! 우리들이랑···!”
“아뇨.”
조슈펠은 고개를 젓고선.
“마침 볼일이 생각났거든요.”
““예?”“
당황스러워하는 그들을 두고, 조슈펠은 저 멀리 보이는 엘레노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엘레노아 양. 잠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앙?”
삽시간에 일그러지는 엘레노아의 표정이, 오히려 가식 한 점 보이지 않아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조슈펠은 다른 이들을 내버려두고 올곧게 엘레노아를 향해 걸었다.
– 엘레노아?
– 조슈펠 아가씨가 왜 저런 녀석이랑?
– 뭐지?
수많은 의문의 목소리가 꼬리를 잇지만.
오히려 상대가 엘레노아라면, 그녀를 백안시 하는 다른 이들은 끼어들 이유를 만들지 못할 터.
조슈펠은 간만에, 한 점 어두움 없이 즐겁게 웃으며 엘레노아에게 다가갔다.
< 제83장 – 별이 머무는 땅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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