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7)
내 마법이 더 쎈데-17화(17/203)
< 제7장 – 신성기사단 : 단애의 칼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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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안에는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인 킬레인 일레인스 백작과 장남 카일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아르민에게도 생경한 이들이었다.
먼저 한쪽은 머리칼을 말총머리 형태로 묶어 내린 은발의 여기사였다.
순백의 갑옷을 걸친 모양새나, 허리춤으로 은검을 차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기품이 느껴지는 것이.
아마 아르민의 짐작이 맞다면.
‘신성기사단의 기사단장이겠지.’
다른 한쪽은 검은색 단발머리에 가벼운 경장차림으로, 한 손에는 주경서(主經書)라 불리는 신의 말씀이 담긴 책을 들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쪽은 사제기사(司祭騎士)로군.’
신의 말씀으로 기사단을 축복하고, 신의 기적을 통해 기사단의 후열을 책임진다는, 신성왕국에서 마법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직책이다.
그렇게 아르민이 그들의 면면을 살피는 사이.
킬레인 백작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오히려 영지 내부 일일 터인데도 과감히 신성기사단을 불러주신 결정에 감사를 표합니다.”
기사단장으로 보이던 은발의 여성은 양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는, 신성왕국 특유의 예를 표했다.
“감사는 무슨, 원래부터가 제국과 신성왕국이 맺은 계약조건이지 않은가?”
제국이 일원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신성왕국과 동맹관계가 된 것이 어언 200여년.
당시 왕국과 제국은 한 가지의 밀약을 맺었다.
<변절자가 발견되면 제국은 그것을 신성왕국에 통보하여 신성기사단의 지원을 받는다.>
언뜻 보면 제국에게 마냥 유리할 것 같은 이 계약은 여러 정치적 이해가 얽혀 만들어진 계약이었다.
이교도 토벌을 우선으로 하는 신성왕국의 교리.
단순 군사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이교의 배제에서만큼은 그 힘이 달리는 제국.
제국보다 국력이 약한 소국으로서, 흑마법사 토벌을 전담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얻고자 한 신성왕국의 노림수 등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
지난 200년 간 제국은 흑마법사나 이교도가 나타날 때마다, 이렇게 신성왕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적들을 토벌해왔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걸 지키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모든 원칙이 지켜지는 건 아니다.
특히 흑마법사와 관련된 일이면, 그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의 위신과도 무관하지 않는 일이기에.
이런 민감한 문제는 도리어 은폐하려는 자가 많기도 했다.
그밖에도 영지 내부의 일을 바깥에 알리기 싫어하는 부류의 귀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규칙대로 신성기사단을 호출했다는 건.
‘그만큼 킬레인 백작이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귀족이기 때문이겠지.’
강직하다고 해야 할지,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지.
하긴 그런 양반이니 제국의 정치 싸움에서도 밀려났던 것이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 유명한 제7신성기사단이 직접 찾아와줄 줄이야. 그대들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네. 특히 세실리아 경의 무용담은 이 늙은이도 듣고선 깜짝 놀랐더랬지.”
제7신성기사단이라면 아르민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이교도가 모습을 드러낼지라도 걱정하지 말지어다.
바오르에는 일곱 자루의 칼이 있으니.
그중에서도 신성왕국 바오르의 얼굴 마담이자, 가장 많은 변절자를 토벌해온 것이 바로 일곱 번째 검.
제7신성기사단 ‘단애의 칼’이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신을 모시는 자로서 동포의 요청이 있다면 움직이는 것이 신성기사단. 저야말로 제국의 군신이라 불리는 킬레인 백작공을 만나 영광입니다.”
“변두리에 요양 차 내려온 몸일세. 영광이랄 것까지야.”
오고가는 덕담.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화기애애한 풍경이었지만.
어째선지 그 속에서 카일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럼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미첼.”
“네.”
세실리아의 지시에 미첼이라 불린 여성이 한 걸음 나섰다.
“우선 흑마법사의 흔적을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카일 경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까?”
“예. 이미 흑마법에 오염된 시체를 두 구 확보해놓았습니다.”
미첼의 질문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시체를 발견한 게 어떤 장소이며, 발견 당시의 상황은 어땠는지.
자잘한 대화들이 오가며, 조금씩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이 정도면 사전 정보는 다 확보한 것 같아요. 단장.”
만족스러운 듯 미첼이 미소 지으며 꺼낸 말에, 세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은 시체를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첼의 실력이라면, 시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흉수가 어떤 계열의 흑마법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딱히 뽐낼 생각은 아닌 듯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두터운 신뢰가 세실리아와 미첼의 관계가 어떤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흑마법사 토벌은 어떻게 잘 해결될 것 같습니까?”
카일의 질문에 대답을 꺼내든 건 미첼이었다.
“으음~ 이번처럼 증거가 확실한 경우라면 저희 단애의 칼이야말로 그 어떤 기사단보다도 일처리가 확실합니다요. 걱정 안 해도 되십니다요.”
신성기사단은 그 수가 일곱이나 되는 만큼, 각 기사단별로 특화된 분야가 달랐다.
흑마법사 색출에 가장 특화된 기사단, 복수의 집단과 치르는 난전에 특화된 기사단, 은밀 행동에 특화된 기사단 등등.
저마다 특색이 다른 기사단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제7신성기사단 ‘단애의 칼’이 특화된 부분은 딱 하나였다.
<소수 흑마법사의 완전 토벌>
그 흔적, 연구 시설, 만들어낸 괴물 할 거 없이.
흑마법사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데 있어서만큼은 단애의 칼을 따라올 기사단이 없었다.
“앞으로 삼 일. 그 사이에 완벽하게 이교도를 토벌하겠습니다.”
독실한 신자로서, 그 손에 수많은 변절자의 피를 묻혀온 세실리아는 그리 단언했다.
달칵.
세실리아와 미첼이 퇴장한 후.
아르민도 이만하면 들을 거 다 들었다 싶어 하늘의 귀를 회수하려고 했을 때였다.
“정말 이대로 신성기사단에게 전부 맡기실 생각입니까?”
침묵을 참지 못한 듯.
카일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내었다.
“예로부터 정해진 밀약이지 않느냐?”
“이래서는 신성왕국이 활개를 치고 다닐 겁니다. 특히 이번 토벌이 성공할지라도, 저희 일레인스 가문은 신성왕국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리 태고의 맹약이 있다고 한들, 귀족가가 타국에게 빚을 지는 게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차라리 제가 직접 비룡 기사단을 이끌고 오겠습니다.”
“상대는 흑마법사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떤 피해가 날지 몰라. 네놈은 가문의 위신과 제국의 안위만을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겠다는 말이냐?”
“······!!”
“더구나 나는 제국의 중심에서 밀려난 몸이다. 일레인스 가문에서 사사로이 기사단을 불러들였다간 ‘그들’에게 빌미를 주게 될 테지. 그건 네 앞길에도 좋지 않다.”
“아버지······!”
“됐다. 눈을 떠라 카일. 부하를 아끼는 상관이 되고 싶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행위가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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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체 보는 게 기대돼요~”
“······가벼운 언행은 삼가도록. 미첼.”
방 밖으로 나온 아르민은, 그렇게 집무실에서 퇴장한 신성기사단의 두 명과 마주쳤다.
히죽거리며 말을 하는 미첼이나, 차가운 태도로 그런 부하를 제지하는 세실리아까지.
‘그림에 그린 듯한 기사님들이로구만.’
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뒤늦게 아르민을 발견한 두 사람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아르민을 지나쳤다.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었을 때.
“방금 쟤가 걔죠? 사전에 일레인스 백작가에 대해 조사했을 때 튀어나왔던, 그 망나니라던 셋째.”
“·········.”
“음~ 저 인간이 가문에 악심을 품고 흑마법사를 고용했다는 전개면 재미있을 텐데~”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면, 앞으로 볼 시체에나 집중하도록.”
둘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서야, 아르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아마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험담을 한 거겠지만.
미첼이라는 저 여자, 어지간히도 싸이코다.
‘종교인이라는 게 원래 죄다 그런 놈들 투성이긴 하다만은.’
그것보다 사전 조사라.
역시 흑마법사를 토벌하는 입장에서, 아예 의뢰한 귀족가와 흑마법사의 관계부터 의심했던 것이겠지.
실제로 권력과 재력을 지닌 귀족가가 흑마법사와 붙어먹는 경우는 왕왕 있는 모양이니까.
저런 철두철미한 점이, 단애의 칼이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겠지.
그나저나.
‘잘됐군.’
지금 아르민에게 가장 부족한 건 놈의 근거지의 규모와 가지고 있는 병력을 파악하기 위한 눈과 손이었다.
개인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건 이용해먹을 수 있겠는데.”
아르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름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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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아르민은 방에 준비한 작은 플라스크와 실험 도구.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나가 사다준 싸구려 반지를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분명한 진실이여, 가장 확고한 진실로서 모습을 드러내어라(Verum, sine mendacio, certum et verissimum).”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로서 외우는 연금술의 첫 문장.
에메랄드 타블렛에 새겨진 주언을 읊으며.
“······지금부터 ‘무기’를 만들어야겠지.”
아르민은 아티팩트 제작을 시작했다.
< 제7장 – 신성기사단 : 단애의 칼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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