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79)
내 마법이 더 쎈데-179화(179/203)
< 제88장 – 증오의 고치 (2) >
바깥에서 감도는 폭력적이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교학장실 내부로는 싸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그긍.
방안의 마력이 공명한다.
마력신경이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아르민만이 아니라 샤오메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세상에서 꽤나 순도 높은 마력신경을 구축했군.’
아르민이 온전한 마력신경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마계에서 마기를 이용해 몸을 재구축하는 기연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러한 과정을 겪지도 않았을 그녀가 아르민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신경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추측컨대.
‘신성을 반납한 대가인가.’
경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녀가 교학장으로서 보여준 실력도 전부 마력신경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을 터.
그리고 그 말은 곧.
‘여기서 한바탕 붙게 된다면, 그냥 투닥거리는 싸움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작금의 샤오메이는 강하다.
허투루 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인식 하에 아르민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방금 전에 그녀가 했던 말에 대해서.
“엘프만이, 네가 지키고자 하는 자식이라고?”
“예.”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참으로 시원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착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적, 그녀가 아랫것들에게 보인 사랑을 아르민은 순전히 절대자로서 피조물에 대한 애정과 애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약간 달랐다.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서 각 종족들은, 칠영웅들이 제각각 담당해서 디자인한 모델케이스라고 했었던가.’
예를 들어 인간은 주신 아르카디아가.
수인족은 블라디미르가.
그리고 엘프들을 담당해서 제작했던 건 샤오메이라 하였다.
그밖에도 아르민이 알지는 못해도, 드워프나 하플링 따위들도 각각 다른 영웅들이 디자인한 종족이겠지.
때문에 샤오메이가 사랑하고 보살피고자 하는 종족은 오로지 엘프.
그녀의 손이 닿은 종족들뿐.
그 외에.
“엘프가 아닌 다른 종족의 멸망 따위는 그저 손 놓고 지켜보겠단 말이냐.”
“·········.”
대답은 없지만 설핏 샤오메이가 입가에 띠는 비릿한 조소를 보아하니 긍정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이해가 되질 않아. 이 사태가 벌어진 건 마탑주들이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왜 너는 그들에게 협력해준 거지?”
이제껏 샤오메이가 보여준 행동들은 단지 인간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엘프만을 신경 쓴다면, 인간이 멸망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 네가 왜 직접 교학장까지 되어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한 거냐?”
이래서야 단순히 지켜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인간들이 멸망하는 걸 옆에서 거들어주는 꼴이라니, 지금까지 샤오메이가 보여준 행동들은 마치.
“인간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넘어서, 직접 그들이 어서 멸망하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정답.”
“······뭐?”
순간 알아듣지 못해 의문성을 토해낸 아르민이었지만.
샤오메이는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답이라고 말했어요. 강재민.”
“어째서······.”
“어째서 그들이 멸망을 자초하는 일에 협력했냐고 묻는다면, 간단한 이야기에요.”
앞뒤 부차적인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오해할 여지도 없이 지극히 간단한 이유,
“저는 인간이란 존재를 증오하니까요. 그들이 어서 멸망해줬으면 하고 바랬을 뿐이랍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샤오메이의 요야한 미소가 반짝였다.
****
“과거의 이야기에요.”
샤오메이의 손가락이 원을 그리자, 호수의 수면 위로 파문이 일 듯 방안의 풍경이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억과 심상세계를 이 방에 덧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아르민의 눈앞에 드러난 건, 낯이 익은 빈민가의 풍경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투는 중국어 특유의 성조가 섞여 있는 대화들이었으니.
‘아.’
이곳이 어디인지 아르민은 금세 깨달았다.
‘운남성(雲南省)의 구석. 소수민족이 살아가던 빈민가. 그곳이다.’
아르민이 눈치 챘다는 걸 알았는지, 조용히 샤오메이는 아르민을 이끌어나가듯 독백을 이었다.
“지독히도 가난한 동네, 이곳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어디나 그렇듯이 빈민가의 삶은 비참하고, 그러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인생은 처참하기 마련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
“평범한 세상이라도 그럴진데, 게이트가 열린 뒤의 삶은 더욱 더 힘든 법이었어요.”
그래, 샤오메이의 말대로다.
헌터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사회적 기반이나 과학 기술의 손조차 닿아있지 못한 곳이 바로 중국의 외곽 운남성 지역이었다.
혹여 근처에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하면, 중국 정부에서 파견한 헌터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 또한 부지기수.
그럼에도 빈민가의 사람들은 산골짜기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다.
“돈이 없고, 가진 것조차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러한 삶에도 한계는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아직도 기억나요. 구름이 많은 날이었죠. 피부가 가려워질 정도로 습한 날이었어요.”
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밖으로 나다니기도 꺼려하는 그때, 산으로 놀러갔던 샤오메이의 동생이 큰 상처가 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친구들과 나무를 오르다 떨어졌었나? 아니면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굴렀던 것일까.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동생을 걱정한 샤오메이는 금방 깨끗한 물을 가져와 동생의 상처를 돌보아주기 시작했다.
아파서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 아픈 거, 아픈 거 다 날아가라~
으레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버릇처럼.
그녀는 동생을 위해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쉬이익.
– 어?
아르민이 보는 앞에서 자연스럽게 동생의 상처가 아물었다.
“바로 이때······.”
“네, 맞아요. 이 순간 저는 능력을 각성했어요.”
샤오메이가 각성한 능력은 치유의 능력.
추후 중국의 곤륜파에서 도술을 기반으로 갈고 닦은 그녀의 힘은,죽음 직전에 몰린 사람까지 되살려낸다고 알려질 만큼 굉장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일의 이야기다.
“저뿐만 아니라, 제 능력을 동생이 알고, 가족들이 알게 된 뒤부터는 뻔한 전개였죠.”
하루하루 위험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빈민가에서 그녀의 능력이 환영받았을까?
전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희 가족을 손가락질하고, 모욕하고, 끝내 폭력을 휘둘렀어요.”
“·········.”
인간이란 그런 법이다.
가진 자를 질투하고, 핍박한다.
특히 헌터가 각성하는 기프트의 힘은 일반인이 보기엔 실로 이질적인 힘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자기들을 공격하는 괴물과 다를 바 없는 특별한 힘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세상 어디에나 있었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
그것이 샤오메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어주던 옆집 아주머니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죠.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가족을 악마라고 불렀어요.”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도움이 된다한들.
빈민가의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힘임에는 분명했다.
사람들은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러왔다.
“동생이 죽었어요.”
제일 약했던 동생이.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의 칼에 찔렸죠.”
그저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어머니가 도망치라면서 저를 놓아줄 때, 저는 전부를 잃었어요.”
다른 인간들에게, 자신을 질투하고 무서워한 타인에게 전부 빼앗겼다.
그렇게 간신히 마을을 빠져나와 도시로 도망쳐온 그녀는, 금세 중국 정부의 눈에 띄고 헌터로 육성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샤오메이의 과거다.
****
“제가 전혀 바란 적 없던 인생이 시작되었죠.”
샤오메이의 말처럼.
모든 헌터들이 원해서 헌터가 되지는 않았다.
아르민은 차라리 처지가 나은 편이었다.
그나마 상식이 남아있는 한국 정부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로 직접 헌터가 되기를 택했으니까.
하지만 당시의 중국은 달랐다.
‘나라의 규모가 큰 만큼,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도 중국이었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던 그 공산국가는 헌터를 자국의 병기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차라리 누군가를 공격하고 다치게할 수 있는 힘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이러니였다.
인간들에게 가족을 빼앗기고, 중국 정부에게 인생까지 송두리째 저당 잡힌 그녀가 각성한 힘은 결국 증오해 마지 않는 그들을 치료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증오를 품고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때 인생이 반전되는 계기가 있었다.
“당신이 절 찾아온 거에요. 강재민.”
‘칠영웅으로 삼기 위해서 접근했었다.’
사람들을 구하자고 직접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이 제게 보여준 풍경은 분명 눈부신 것들이었죠.”
샤오메이는 꽤 이른 시기에 동료로 삼은 케이스였다.
덕분에 아르민은 그녀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다른 칠영웅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너의 능력은 큰 도움이 되었지.”
“네,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이 구해주고, 제가 치료한 이들이 보여준 미소를 말이죠. 덕분에 증오심은 날로 커져갔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어요.”
“······참을 수 있었다고?”
“당신이 직접 발로 뛰고 노력하는 걸 보면서, 바뀌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된 이상. 나처럼 당신에게 영향을 받아 인간들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대감은 끝에 가서 무너졌어요.”
“······왜?”
“당신이 죽었으니까.”
“·········.”
마왕과 함께 동귀어진을 하듯, 최강의 헌터라 불렸던 강재민은 세상에서 퇴장했다.
“당신의 공을 두고, 다른 헌터들이 이전투구를 시작했죠.
서로를 헐뜯고, 공격하고, 국가를 불러 공을 가로채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강재민이 사라진 뒤의 지구란, 그런 세계였다.
“그 뒤에 제이크가 모노리스를 발견하고, 이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존재가 되자고 했을 때 냉큼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그걸 통해 신좌에 오르고.
“엘프를 창조한 것은, 완전무결하고 고결한 존재만이 우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아라.
“나의 자식들을 상대로, 인간들이 벌인 짓을 기억하나요?”
샤오메이가 손을 흔들자, 눈앞에 참혹한 풍경이 들어났다.
늘어서 있는 철창, 그 안에 누더기 옷만을 걸친 채 갇혀 있는 고귀한 종족들.
– 제발······, 살려주세요.
– ···무, 물 좀······.
제국의 노예시장.
인간들이 엘프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풍경.
그야말로 추악한 광경이었다.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저 아이, 엘레노아를 만난 거죠.”
샤오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엘레노아는 저랍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타인의 욕망에 의해, 그 손길에 의해 비틀린 인생을 살아가게 된 존재.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이 바라는 대로 운명이 결정된 존재, 그녀는 저처럼 수많은 인간들을 향해 증오를 품고 있겠죠.”
“그래서 도와줬다고?”
“예, 그녀라면 필시 제가 해내지 못했던 일이 가능할 테니까.”
아르민은 눈을 감았다.
샤오메이가 미처 해내지 못한 일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그것.
“인간의 멸망인가.”
그때였다.
순간 샤오메이가 질문을 던져왔다.
“아르민······. 아니, 강재민. 당신도 증오하지 않나요?”
샤오메이는 아르민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긴 것을 짓밟아버린 옛 동료들을, 나아가 당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인간들에게 실망하지 않으셨나요?”
지구는 아르민이 직접 희생까지 해가며 지켰던 세상이었다.
칠영웅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을 구하기를 바라며 장난스럽게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였던 아르민.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저만은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퇴장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부디 남은 칠영웅들이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를 바라며, 그 남자는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제이크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모리오카. 그들은 전부 당신의 마음을 저버리고, 이 세계를 만든 셈입니다.”
결국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진흙창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와도 같은 오물이다.
“아르카디아에 이르러선, 당신을 배신한 것을 당연히 여기고 모욕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죽이기를 서슴지 않고, 희롱하기를 즐겨하는 그들은 당신의 인생을 모독한 끝에 이런 더러운 세상까지 만들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샤오메이는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똑같이 버림받은 인생을 살아, 이 자리까지 도달한 아르민에게 물어온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만든 세상에서, 여전히 벌레처럼 살아가는 인간들 따윈 멸망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이 세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서 샤오메이는 적극적으로 마탑주들에게 협력해온 것이다.
증오해 마지 않는 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고, 멸망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르민은 침묵했다.
그리고 기나긴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
샤오메이의 말을 두고 동의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역시······!”
샤오메이의 얼굴 위로 화색이 돌았다.
“당신이라면 역시 저를 이해해줄 줄······!”
“하지만 말이야.”
덜컥 샤오메이의 말이 멈추었다.
아직 아르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보아온 인간들은, 샤오메이 네가 말하는 것처럼 쓰레기들만 있는 건 아니었어.”
따악.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지러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을지도 몰라.”
처음으로 이 세계가 칠영웅들의 과오와 그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 태어났다는 걸 알았을 때 아르민은 맹세했었다.
그들의 잘못을 수습하는 것이, 그 세계에서 한 발짝 먼저 떠나온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그걸 위해, 나는 이 세계를 여행해왔지.”
그녀가 보여주는 광경이 빛으로 물들어간다.
아주 짧은 그 순간에 아르민이 샤오메이의 도술을 역산해서 해킹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풍경은 아르민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여전히 쓰레기 같은 인간이 많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저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인간들을 몇 명이나 만나왔어.”
처음으로 보인 풍경은 묘지였다.
날아드는 암흑의 마력 앞에서, 스스럼없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 않는 시골 처녀가 그곳에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말이지.”
두 번째로 나타난 풍경은 축제의 열기로 뜨거워진 도성의 풍경이었다.
신이 되고자 망상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고 비통을 토하는 여성이 있었다.
“지구에 있을 적의 우리처럼, 누구나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세 번째로 보인 풍경은 하늘에 흑문이 열린 광경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괴물들 사이로,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도망치는 도시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부모와 아이를 위해 칼을 들고 거리를 내달리는 영웅들이 있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네 번째 풍경은 아비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기보다도 커다란 남자와 맞서 싸우는 딸이 있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면서 고쳐나가는 이들이 있었지.”
다섯 번째로 보인 풍경은 오로지 동생과 가족의 안전을 바란 끝에, 죽어서까지 피아노 연주를 멈추지 않는 형제가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아.”
여섯 번째로 보인 풍경 속엔, 인간들의 미래를 덧그리기 위해 이 세계가 바뀌기를 기도하던 상인 또한 있었다.
그래,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다.
“이 세계엔 쓰레기 같은 인간의 숫자만큼이나 별처럼 반짝이는 이들로 가득해.”
인간이란.
“그런 존재거든.”
아르민이 보아온 세계란 그런 것이었다.
그 두 눈에 끊임없이 새겨온 세계란 그러한 것이었다.
풍경이 잦아들고, 이내 샤오메이와 아르민이 서 있는 공간은 다시금 교학장실로 돌아왔다.
샤오메이는 창틀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다.
그녀는.
“거짓말.”
아르민의 말을 부정했다.
“그건······. 설사 당신이 보아온 것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건 수많은 우연 속에서 간신히 태어난······. 오류에 불과해요.”
인간의 본질이란 결국 다름이 없노라고.
“오류······.”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수많은 관측과 예측, 계측이 있던 끝에 태어난 오류.
세상에 몇 번 나타날 리가 없는 거짓된 데이터.
하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수많은 계산이 오고간 끝에 오류들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건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필연인 셈이겠지.”
오류가 이어진 끝에 자아를 획득하고,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스템의 파편처럼.
아르민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떨고 있는 샤오메이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물론 단순히 말로만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
아무리 이런 걸 보여준다 한들, 그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등을 밀어주지 않으면 납득시킬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샤오메이, 당신이라면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도 해.”
그녀는 물론 쾌락주의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샤오메이, 당신이 단순히 증오로 모든 걸 미워하고 파멸하기를 바라고, 거기에서 희열을 느끼는 광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다른 누구보다도 아르민이 가장 그녀를 잘 알고 있다.
샤오메이의 마음 속에는 굳은 심지와 그에 걸맞은 결의가 있다는 것을.
“당신이 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모를 리가 없지.”
당연한 이야기다.
아르민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마음을 토해낸 괴로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샤오메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칠영웅의 시스템을 만들고, 널 끌어들인 게 바로 나야.”
중국 정부로부터 최고의 치유술사에 대해 듣고.
그녀가 어떠한 인격을 가진 자인지, 이미 과거의 인간들이 대부분 스러지고 몇 남지 않은 이 순간에 샤오메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아는 건.
“나 정도밖에 없다는 이야기지.”
“무슨 궤변을······.”
궤변이라고 해도 좋다.
다만 샤오메이를 가장 깊게 이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르민은 질문을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 물어보마. 샤오메이. 물론 작금의 사태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벌인 짓이다. 이미 실패한 자들이 있음에도, 다시 한 번 신이 되고자 하는 오만함이 벌인 비극이야.”
그것은 진실이고, 바뀌지 않는 사실이라지만.
딱 하나.
“그 중심에 있는 엘레노아는······. 너와 닮은 삶을 살아가는 저 녀석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마탑주들처럼 똑같이 멸망하고 죽어야만 하는 인간인 거냐?”
창 밖 저 멀리 피어난 고치.
여전히 그곳에선 타인의 욕망에 의해 희생당한 소녀가 잠들어 있다.
그저 욕망이 가득한 인간들에게 휘둘렸을 뿐인 그 소녀조차 너는 버릴 생각이냐는 말에.
“·········그럴 리가 없잖아요.”
샤오메이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고개를 푹 숙였다.
어리석은 인간이라 떠들기 이전에, 누가 뭐라해도 엘레노아라는 소녀는.
그녀가 느낄 고통에서 눈을 돌리고, 꾹 참고 샤오메이가 직접 자기 자신까지 속이며 저런 지경까지 밀어 넣어버린 그 아이는.
“저의······. 소중한 제자인걸요······.”
대화가 사라졌다.
침묵이 이어지는 끝에, 그저 샤오메이의 흐느낌만이 이곳에 울렸다.
그래, 처음부터 아르민은 알고 있었다.
인간을 증오하고, 죽여야한다 말하며 그들의 멸망에 일조한 샤오메이지만.
그러한 그녀가 가슴에 품고 있는 감정은 이처럼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애달픈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만들었다면, 좋다.
“샤오메이, 아직 늦지 않았어.”
실수를 바로 잡을 시간은 아직 있다.
그러니.
“날 도와줘.”
서로가 소중히 여기고 있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아르민은 손을 내밀었다.
****
< 제88장 – 증오의 고치 (2)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