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82)
내 마법이 더 쎈데-182화(182/203)
< 제89장 – 인간으로서 (3) >
콰아앙!
폭발과 함께 화염이 치솟고 분진이 일어난다.
광장 위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아수라장이 되었다.
– 어, 어찌된 상황이냐!
로드 화이트가 당혹스러워 하며 악을 써대고 있으려니, 주변에 퍼져 있던 마법병들에게서 보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 지, 지금 파악 중입니다!
– 현재 동쪽에서 접근하는 거동수상자 두 명을 발견!
– 북쪽에서도 셋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 남쪽에서 둘! 아니, 셋, 아닙니다! 다섯······! 점점 늘어나는 중이라고···?!
– 서쪽도 넷 이상이······!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은 게 탈이었을까.
폭발 이외에도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보고에 로드 화이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건 로드 화이트뿐만이 아니었다.
– 이럴 게 아니라 먼저 서쪽을 지원해야······!
– 배치된 마법병의 숫자가 가장 적었던 건 남쪽이오!
– 모두 진정하세요! 동서남북을 각 마탑주들이 담당하면 습격자는 금방 물리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대업을 방해하는 괘씸한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뭇사람들에게는 반신(半神) 혹은 초월자라 불리며 경외의 대상이 되던 마탑주들이건만.
정작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건 그들도 똑같았다.
그렇게 극심한 혼란으로 소란스러워진 광장의 풍경을, 샤오메이는 높이 솟아오른 광장의 첨탑 꼭대기에 올라선 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마탑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던 샌님은 결국 이런 꼴이군요.’
샤오메이는 혀를 찼다.
아무리 마탑에서 그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예지의 극한까지 쌓은 자들이라고 해도 실전에서는 이런 꼬라지다.
차분히 상황을 살피기만 해도 이번 폭발이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걸 쉬이 눈치 챌 수 있을 터이거늘.
‘다수의 폭발형 호문쿨루스를 즉석에서 제조해, 양동작전으로 쓴다. 역시 그 선배의 그 후배라고 해야 할지.’
샤오메이는 작게 감탄했다.
사방에서 광장으로 밀어닥치는 것들은 전부가 인조 골렘의 외형을 띠고 있었다.
겉은 단단한 진흙과 돌로 이루어져 있고, 적대하는 공격이나 장애물과 부딪친 순간 폭발한다.
골렘을 일일이 인간으로 변모시킬 여유가 없었을 테니, 이번 습격을 인간의 자율습격으로 포장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그 반대로.
‘자신들이 직접 골렘으로 분장해, 적들의 눈을 속인다······. 제법 머리를 썼네요.’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요컨대 작금의 폭발은 단순한 눈속임.
고치로 향하는 아르민 일행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마탑주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취하는 양동작전인 셈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보조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라, 이거죠.”
광장의 끄트머리에서 고치를 향해 달리는 이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서 달려가는 남자.
‘강재민······.’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샤오메이는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본심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그때와 전혀 변하지 않았네요.”
몸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저 남자는 그대로다.
궤변으로 사람을 구워삶아 끝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던 사람.
다만 그것은 단순한 궤변이 아니었다.
‘자신이 믿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보이던 신의(信義). 늘 당신은 그러했어요.’
그런 남자가, 여기까지 떨어진 자신에게 여전히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었다.
나를 믿고 있다고, 도와 달라 말해주었다.
그런 말까지 들어버린 이상.
“과거의 동료였던 이로서 응해줄 수밖에 없겠죠.”
그것이 한때 인간이었고 동료였던 자로서 참된 도리이리라.
조용히 샤오메이는 고개를 들고 손을 내밀며 주언(呪言)을 읊었다.
“······내가 그대들을 부릅니다.”
우웅.
마력이 공명한다.
마나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휘몰아친다.
“당신들을 추종하는 무녀로서 이곳에 나타나기를 간청합니다.”
공명하는 마력은 흐름을 만들고.
흐름은 곧 형태를 이룬다.
그것은 마법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법’과는 명백히 이질적인 형태의 현상이었다.
만약 이 근처에 마법에 익숙한 자가 있었다면 그 아름다운 광경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마력의 공명이 임계점에 이른 순간.
“흙이여.”
무녀의 부름을 통해 자연은 대답을 돌려준다.
스르륵.
가정 먼저 첨탑의 지붕으로부터 흙이 솟아나고.
그 뒤를 이어.
휘이잉.
주변으로 몰아치던 바람으로부터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그 다음으로는.
화르륵.
샤오메이의 오른손의 끄트머리에서 불꽃이 일렁이는가 하면.
마지막 네 번째 순서로서.
쪼르르.
반대되는 왼손의 끝자락에선 물방울이 샘솟았으니.
지수화풍(地水火風).
자연의 근원을 이루는 그들이 무녀의 바람에 응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짤랑.
아스라이 방울 소리가 울린다.
부름에 답해 모습을 드러낸 네 원소의 정령들.
그들은 실프나 노움, 운디네 등으로 대표되는 이 세계의 정령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메에.] [끼에엑.] [크르릉.] [미야오옹.]대지의 양과 바람의 매, 불꽃의 늑대와 물길의 고양이.
샤오메이가 발한 기적은 이 세계에 스며들기 위해 일부러 꾸며낸 마법이 아니었다.
보다 오래 전.
근원은 같을지언정 도달한 결말이 다른 또 다른 자연을 애타게 부르짖는 진언(眞言)의 결과였던 것이다.
“모두 오랜만이에요.”
샤오메이가 물고양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자, 갸르릉 고양이는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부벼왔다.
솔직히 샤오메이로서는 그들이 나타나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와는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자신.
지금의 나는 도술을 연마하던 그때의 나와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제 곁으로 달려와 주었어요.’
그 남자가 말했던 대로, 마치 내가 그때와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는 듯이.
“부탁드릴게요. 예전처럼 또 다시 힘을 빌려주세요.”
짤랑.
목소리에 섞여드는 탁령(鐸鈴) 소리에 답하듯.
[메에~]한 차례 커다란 울음과 함께 정령들의 호응을 받아, 그그그긍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탑주가 있는 저 광장까지 뻗어가는 자연의 줄기.
– 붙잡아라. 가로 막아라. 그리고 사로잡아라.
도사는 그렇게 자연을 향해 한 마디의 진언을 입에 올렸다.
“행하여 주시옵소서.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
광장 위로 달음박질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숫자는 여럿, 그것도 수십 단위의 숫자였으니.
간이골렘을 포함한 아르민 일행이 고치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눈속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
어차피 이건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최대한 고치에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저들이 우리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취하는 단순한 속임수.
게다가 아르민이 준비한 건 이 뿐만이 아니었다.
쿠구구궁!!
저 멀리서부터 대지가 뒤흔들리고 대기가 날뛰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저건······.”
“샤오메이의 도술이야.”
급급여율령.
자연에 간언하여 정령들을 부리는 전진의 도술.
즉 샤오메이가 이 세계의 법칙에 적당히 섞이도록 만든 간이 도술이 아닌, 자신의 진짜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녀석의 도술이라면 제법 오랫동안 마탑주들을 붙잡고 있을 거다.”
그 사이에 우리는 고치까지 가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샤오메이나 골렘만으로 모든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저기! 수상한 놈들이다!
– 저놈들이 습격자들인가!
– 잡아라!
괜히 정예가 아니라고 눈썰미 좋은 놈들이 있었는지, 아르민 일행을 눈치 채고 달려오는 마법병들이 있었다.
“저리 비켜!”
화르륵!
그런 놈들을 향해 헬레나가 주저 없이 신성의 불을 쏘아낸다.
– 으아아악!
– 크하악!
불길에 휘감긴 마법병들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단숨에 뼈조차 남지 않을 화염이었을 테지만.
쉬이이익.
혼절한 마법병들을 내버려두고 불길은 금방 꺼져갔다.
‘죽이지는 않는다.’
마법병이라고 해도 그들은 결국 마탑에 소속된 말단일 뿐.
어디까지나 세계를 개찬하겠다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윗놈들이다.
미리 일행에게도 손속에 사정은 두라고 말을 해둔 참이었다.
때문에.
‘여기서 필요한 마법은 살상력은 최대한 줄인 대신, 확실하게 놈들의 전력을 무력화시킬 마법이다.’
다시는 싸울 의지조차 들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폭력.
그것을 이미지하며 아르민은 마력신경에 불을 당겼다.
‘속성은 바람과 열기, 형태를 부여하는 대지의 세 가지.’
삼중속성을 부여하여 왼손에 쥔 채로.
‘이미지는 나선, 특성은 폭풍, 사방으로 비산하는 용오름을 더해.’
나선(螺旋)의 특성을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의 특성마저 오른손에 쥔 채 세공에 주의를 기울인다.
세심히 공을 들여 만들어내는 마법은 휘몰아치는 바람을 나선의 형태로 재가공하여 제련한 마법.
아르민은 달리는 와중에도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양손을 하나로 합쳤다.
쿠웅!
“······꿀꺽.”
그 광경을 본 민세희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만큼 아르민의 손안에서 날뛰는 마력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키잉.
마법의 합성이 끝나자 아르민의 손안에 자그마한 폭풍이 만들어졌으니.
부여한 속성 세 계, 세공을 해낸 특성이 세 개.
도합 여섯 개의 마력특징을 부여해 만든 헥사 액션의 마법은.
– 그르르릉.
마치 살아있는 짐승처럼 아르민의 손 안에서 조용히 울음을 토해낸다.
준비를 끝마친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 마법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잡아라!
– 모두 주의해라! 수상한 마법을 쓴다!
딱 좋을 때였다.
“모두 피해. 던진다.”
아르민의 경고 한 마디에, 민세희와 헬레나는 즉시 알아듣고는 재빠르게 전장을 이탈.
이스텔은 아르민을 지키듯 그 뒤로 바짝 붙었다.
유일하게 영문을 알 리가 없는 테트리오만이 갑작스러운 셋의 행동에 응? 하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이곳은 전장.
망설임은 결국 자기 피해로 돌아올 뿐이다.
“흐읍!”
주저 없이 던진 투구.
마법은 빠른 속도로 쏘아져 길거리의 중심에 착탄했다.
‘헥사 액션.’
줄곧 떠올렸던 이미지의 모티브는 적들을 잠재우는 음악.
과거 불후의 천재라 불리던 베토벤이 자아낸 소나타 제17번.
그 이름.
– 템페스트.
나선의 폭풍이어라.
모두를 잠재울 폭풍의 선율이 눈앞에서 울려 퍼졌다.
****
쿠우우웅!
순식간에 불어난 폭풍이 마법병들을 집어삼킨다.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그들은 정신을 잃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다.
“크, 학! 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위력을······!”
간신히 폭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테트리오는 경악한 얼굴로 아르민을 돌아보았지만, 아르민은 덤덤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엇보다 저 너머에서 날아드는 기척이 있었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른다.
대기를 찢는다.
공간을 비틀어버리는 수준의 공간전이로 아르민 일행에게 다가온 검은색 흉성(凶星).
그것이 아가리를 벌리며 아르민의 목덜미를 물어 뜯으러는 그때.
“적대 공격을 감지. 명령 없이 요격 자동방어 모드로 이행합니다. 마스터.”
카아앙!!!
마주 튀어나간 이스텔의 붉은 발톱이 흉성의 어금니를 튕겨낸다.
현존하는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 둘이 전력을 다해 부딪친 상황이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대로 퍼져 나갔다.
오버시어와 이스텔.
단 한 번 부딪쳤을 뿐이지만, 이미 둘의 모습은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있었다.
‘수화(獸化) 능력인가, 확실히 위력적이야.’
얼굴이 반쯤 파충류의 형태로 변모한 오버시어와 양손이 드래곤의 발톱으로 변화한 이스텔.
[역시 우리를 방해한 건 전부 네놈들의 짓이었나.]오버시어가 으르렁거리며 한 번 더 달려들려는 찰나.
“요격 개시합니다.”
“아니, 여기는 내가 맡지.”
대응하려는 이스텔의 앞을 테트리오가 막았다.
이스텔이 아르민의 명령을 기다리듯 물끄러미 시선을 던져온다.
“자신은 있는 거겠지?”
“물론.”
오버시어를 향해 걸어가며 테트리오는 말을 이었다.
“나 자신의 과오는, 스스로 바로 잡아야 하는 법이다.”
등 뒤로 보이는 기세에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쪽의 의견을 존중하지.”
아르민이 나머지 일행과 함께 오버시어를 피해 달리기 시작하자.
[내버려둘 줄 아느냐!]오버시어가 달려들었지만, 그것을 테트리오가 가로 막았다.
콰앙!
이미 인간의 모습에서 아득히 멀어진 둘의 발톱이 서로를 할퀴려 든다.
“네 상대는 나다.”
[우리의 일부였던 주제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다니!]다시 한 번 빈틈을 노리고 휘두른 각자의 발톱이 서로의 육신을 훑고 지나갔다.
촤아아악!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오버시어의 얼굴을 보며, 테트리오는 입가를 비틀었다.
방금 공격은 확실히 오버시어 쪽이 좀 더 데미지가 컸다.
[······전보다 마력이 더 강해졌다고?]그건 오버시어 입장에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직 [우리]로서 남아있는 오버시어는 시스템의 백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오류를 일으키고 우리에서 떨어져 나간 버그 따위가 우리와 맞먹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니?
“확실히 난 네놈들에게 있어선 버그 같은 걸지도 몰라.”
하지만 테트리오는 떠올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관측해온 지난 날.
처음으로 마음속에 이 자그마한 오류가 생겨난 건, 그 소녀가 청색 마탑에서 괴로워하며 간절히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랬던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였다.
“더는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 맹세했다.”
동시에 테트리오는 버그를 받아들였다.
나 자신이라고 인정했다.
‘나’라는 개인의 퍼스널리티를 획득하고, 또 다른 하나로 거듭났다.
“네놈은 세계를 지키는 시스템이겠지만, 나는 달라.”
차앙!
발톱을 뽑아내며 테트리오는 선언했다.
“내 이름은 테트리오. 수문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드래곤으로서 나는 그 아이를 지킬 뿐이다.”
두 마리의 드래곤이 부딪쳤다.
콰앙!
****
수많은 마력의 파도를 뛰어넘어 마침내.
“도착했다.”
아르민 일행은 고치 앞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샤오메이의 도술로 인해 마탑주들의 주의가 그리로 쏠렸기 때문에, 고치 앞에는 남아있는 자가 없다.
그리 생각한 아르민이었지만.
아니, 한 명.
얼굴을 알고 있는 이가 그곳에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근육으로 부풀어 오른 몸체.
만면 가득히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장을 보고서 민세희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프너겐 씨.”
“흘흘, 그대들이 올 줄 알고 있었다네.”
레프너겐의 말에 아르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신뿐인가?”
“다들 멍청해서 말일세. 언제나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착하고들 있지.”
뼈가 있는 말이라고 할까.
마탑주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세계의 비밀을 엿본 자가 바로 그였다.
“흐읍!”
날카롭게 가다듬은 호흡에 이어.
레프너겐의 철권이 아르민을 향해 쏘아졌다.
“요격 모드, 이행합니다.”
콰앙!
그 앞을 이스텔이 가로 막는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민세희는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애당초 그건 레프너겐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대들의 정체가 뭔지 모르네.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지. 이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솔직히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자네들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겠지.”
하지만.
“바로 그 날, 민세희 양. 자네가 내 앞에 나타난 순간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네.”
우리가 다음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그래서 행동했을 뿐이다.
“자네들이 손에 쥔 생명의 비밀을,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비밀을 나도 손에 넣고 싶을 뿐이라네! 그건 우리 인간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데려다줄 테지!”
요컨대 자신이 하는 일은 그저 온 세상의 인간들을 위한 절대적인 선(善)이라고 저 노인은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인간에겐 명백한 한계가 있어! 이대로는 불완전한 종족에 불과하지. 언제 육체에 걸린 한계가 우리의 목을 죄고, 생명으로서 멸망하게 만들지 모른단 말이네!”
그러니 나는 그저, 순전히 하나 뿐인 마음으로.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네! 그런데도 대업을 완수하려는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겐가!”
“······확실히 당신의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 옳은 걸지도 몰라.”
“선배······!”
민세희의 새된 비명에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저 말에 공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들의 육체에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그건 인간을 질투한 신이 부여한 되먹지 못한 저주이지 않은가.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이 부채질 당해,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당신이 범한 치명적인 실수가 있어.”
“호오······. 그게 뭔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인간들을 위한 행동? 우리를 자유롭게 할 대업? 여자아이 하나를 희생시켜서 얻는 자유에 무슨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거냐?”
그건 단순히.
“미치광이 변태 새끼의 헛소리다.”
“······그렇군. 잘 알겠네.”
레프너겐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군.”
“그야 그렇겠지. 나는 자기 손녀 뻘 어린애를 괴롭히는 취미 따윈 없어.”
잠깐의 침묵.
“좋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남은 건 주먹다짐으로 결판을 낼 뿐이지! 애당초 자네들은 내게 있어 시련이라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련.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레프너겐은 근육으로 맥동하는 철의 육체를 가지고서.
“흐으읍!”
콰앙!
바닥을 박차며 쇄도해들어왔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이미 그는 광인이나 다름없었다.
“선배······! 어서 고치로···!”
“응, 여긴 부탁하마.”
레프너겐을 상대하는 대신, 아르민은 등을 돌렸다.
동료를 믿고 고치를 향해 내달렸다.
“도망치는 겐가···!”
레프너겐의 철권이 날아들었지만, 그것을 이스텔과 헬레나, 민세희가 가로막는다.
도망치는 게 아니다.
아르민이 지금부터 하려는 짓은 그저 하나.
“내 소중한 제자를 구하려는 것뿐이야.”
한 걸음, 두 걸음, 세 번째 걸음에 도달한 고치 앞.
쿠웅. 쿠웅!
아르민은 망설임없이 약동하는 고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기다려라, 엘레노아.”
지금 바로 이 스승님이 구해주러 가마.
“해킹, 스타트.”
키이이잉!
일순 세계의 풍경이 변했다.
< 제89장 – 인간으로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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