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83)
내 마법이 더 쎈데-183화(183/203)
< 제90장 – 긍지 (1) >
소녀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폭력이 끊이지 않던 아버지.
술을 떼어놓질 못하던 어머니.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 본다면 열에 열 전부가 입을 모아 쓰레기 같은 부모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자들 아래에서 소녀는 태어난 것이다.
그런 소녀에게 인생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었다.
삶이란 그저 눈을 뜬 순간부터 시작되는 생존에 불과했다.
오늘은 아버지의 손에 맞아죽지 않기를 기도하고, 내일은 어머니가 술김에 던진 술병이 빗나가기를 간절히 바라야만 했던 삶.
그때마다 소녀의 가슴 속에서는 뭉글거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술렁술렁.
소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소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소녀는 꾹 참았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 먹을 양식과 내일을 버티게 해줄 빵이 필요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견뎌냈다.
그렇게 쓰레기 같은 부모 아래에서 간신히 버텨야만 했던 8년의 삶.
그것은 어느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 네 부모가 마차에 치여 죽었단다.
소녀가 삐쩍 마른 팔로 눈을 비비고 있을 때,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해준 말은 그러했다.
듣기로는 둘이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언쟁을 벌이다 미처 다가오던 마차를 보지 못했다던가.
그 말을 듣고 소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 다행이다.
라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던 목소리가 잠시나마 잦아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소녀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녀는 안심했다.
소녀는 생각했다.
– 부모라는 건 없어도 되는 거구나.
하지만 부모가 죽었다고 해서 소녀의 처지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부모가 가끔씩 가져오던 빵조차 사라진 이상, 처지는 더 어려워진 셈이었다.
더구나 마차의 주인이 마차가 더러워졌다며 신경질을 부리며 자기를 찾을까봐.
소녀는 아무도 모르게 빈민가에서 도망쳐 나왔다.
빈민가를 나오고 나니 차라리 생활을 하기가 편했다.
다행히 소녀의 머리는 총명했다.
8살의 나이로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 소녀는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비록 비를 맞아가며 길거리에서 자고, 몸살로 열이 올라 기침을 토해낼 때마다 주변에서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고.
더러운 것을 바라보듯 침을 뱉고, 가끔은 성질 나쁜 술주정뱅이가 발로 차기도 했지만.
그래도 소녀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고, 눈치를 보며 거리에서 삶을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 그늘에 몸을 웅크리고, 배고픔과 싸워가며 오늘은 어디서 밥을 찾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 이런데서 자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단다.]아주 우연히, 소녀는 기적을 만날 수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을 청색 마탑의 마법사라고 소개했다.
평소엔 몸이 약해 집안에만 있지만, 모처럼 산책을 나왔다가 소녀를 발견한 거라고.
[그래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거니? 혹시 집이 어디니?]악의 없는 질문 앞에서 소녀는 치밀어 오르는 목소리를 삼키고 고개를 흔들었다.
돌아갈 곳은 없다.
부모도 없다.
나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고.
그제야 그 순진한 여성은 소녀의 행색을 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강의 사정을 유추해낸 것이겠지.
소녀는 눈알을 굴렸다.
그런 소녀에게 여성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나는 몸이 약해서 자주 밖에 나다닐 수 없어. 하지만 마법 연구에 필요한 재료나 시약 같은 건 주기적으로 필요하단다. 혹시 네가 내 심부름꾼이 되어주지 않겠니?]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소녀는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자리와 머물 곳, 밥만 준다면 심부름꾼이 아니라, 노예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
그때부터 소녀와 여성이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정말로 단순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적힌 물건들 좀 사다주겠니?]여성이 건넨 쪽지를 받아든 소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글을 몰랐다.
[아······. 그럼 괜찮다면 나라도 글자를 가르쳐줄까?]아마도 그건 여성이 자상한 성격을 가진 인격자였기 때문이겠지.
글을 가르친다는 건 귀찮은 일이다.
빈민가 출신의 소녀에게 뭔가를 가르쳐봤자 그녀에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
심부름을 부탁하는 것도, 말로 해서 몇 마디를 외우게 하면 그만일 뿐인데도.
그녀는 친히 글자를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소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글자를 배웠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정말······. 전부 읽을 수 있는 거니?]여성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만에 소녀는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럼······. 혹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래?]기왕 글을 읽힌 거 썩혀두면 아깝다면서 여성은 책을 권해주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읽는 책에 흥미를 보이며, 일주일도 되지 않아 책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내용을 전부 이해했다고?]여성은 놀람을 넘어서 경악한 표정으로 그리 물어왔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세상은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며, 그 신비에 손을 대는 기초적인 마법 개론서.
흔히 말하길 청색 마탑의 마법 입문을 가르치는 입문서를 정말로 소녀는 단 일주일 만에 완전히 이해했다.
그때 여성의 태도가 조금 변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왔다.
[혹시 마법을 배워볼 생각은 없니?]마법.
무지렁이들이 보기엔 신의 기적이라고까지 비춰지는 그 힘을, 소녀에게 가르쳐주겠노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소녀는 전혀 몰랐지만.
총명한 소녀는 한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자기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라고.
그래서.
[그럼 지금부터 날 스승님이라고 부르려무나.]스···승님?
호칭에서 울리는 따스함.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네, 스승님.
소녀는 웃었다.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웃는 얼굴로 스승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 다음.
스승님이 죽었다.
****
병사(病死)였다.
원래부터 몸이 약한 사람이었다.
아마 소녀를 거둬준 순간부터 이미 그 목숨은 경각에 달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 그녀는 소녀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윙윙윙.
귓가에서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소녀는 입을 다물었다.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더욱 더 커졌다.
귀를 막고 싶어도, 목소리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소녀에게 노인 한 명이 찾아왔다.
– 흠······. 그 아이에게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다만, 정말로 이 논문을 쓴 게 네가 맞느냐?
새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스승님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준 숙제였다.
마법 입문서의 미진한 부분을 분석하고 수정해서, 첨삭한 뒤에 스승님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렸던 소녀의 보물.
어째서 그걸 저 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노인을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 놀랍구나. 놀라워.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원석이 있었다니! 나는 청색 마탑의 마탑주다. 너를 데리러 온 사람이지.
그리고 그때부터 소녀는 청색 마탑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승님과 함께 했던 때와 비교하면 실로 무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인생이었다.
– 바로 저 놈이야.
– 마탑주가 직접 데려온 천재라는 녀석이?
주변에서 의심의 눈길이 쏟아졌다.
개중에는 믿을 수 없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는 게 있을 거라는 모함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엔 괜찮았다.
마탑주가 데려온 아이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다. 하여 아무도 소녀를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소녀가 가진 재능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기까지, 고작 3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허어, 어째서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게냐?
탄식이 섞인 물음이 소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힌다.
소녀가 가진 재능은 가짜였다.
아니, 재능은 사실이었지만, 그 재능을 발휘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력의 부재.
마력을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게 밝혀진 순간, 지금까지 소녀에게 향하던 질투의 시선들이 전부 음습한 괴롭힘으로 바뀌었다.
윙윙윙.
가슴 속에서 샘솟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소녀의 귀를 틀어막고 그 가슴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 어째서.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그건 어린 마음에도 소녀의 가슴을 좀먹고, 괴롭힌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래도 버텨냈다.
스승님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녀가 가르쳐준 이 길을 계속 걷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도중.
– 상아탑에 보낼 인재가 정해졌다.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소녀는 상아탑으로 향하게 되었다.
뭇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제치고, 소녀가 뽑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괴롭힘은 더욱 더 심해졌다.
그래도 소녀는 견뎌냈다.
괴롭힘 따윈 전혀 괴롭지 않았다.
상아탑에서 반드시 마법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견뎌냈다.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렇게 소녀는 상아탑으로 들어와.
– 이름이 엘레노아라고 했던가. 가르쳐주지. 네 녀석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말이다.
두 번째 기적을 만났다.
****
스승님.
또 한 명의 스승님.
그 분은 진정으로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었다.
처음으로 손끝에서 마력이 빛을 발했을 때의 벅찬 감동.
그것은 나로 하여금, 다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내게 두 명의 스승님이 생겼다.
이 길로 이끌어준 첫 번째 스승님과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스승님까지.
아마, 지금의 스승님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스승님이라 부르는지 전혀 모를 테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는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 그저 친구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런 친구를 내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제가 어리석진 않기 때문이죠.
소중한 친구라며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생겼다.
가슴이 고동쳤다.
목소리가 멎었다.
가슴 깊은 곳까지, 목소리를 틀어막는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기뻤다.
울고 싶었다.
순수하게 나는 지금에 만족하고, 이대로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이시여.
만약 이 세상에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약속드립니다.
이 이상의 행복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 행복이 변치 않기를.
내게 더는 슬픔을 가져다주지 않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툭.
바닥으로 친우의 머리통이 떨어진 순간.
아아, 그렇구나.
나는 그제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쩌적.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묻어두기 위해, 마음 안에 만들어둔 항아리에 균열이 간다.
윙윙.
가슴 속에서 윙윙대는 목소리가 커진다.
깨지고, 그 틈새 사이로 그것이 흘러나온다.
이제까지 외면하고, 또 외면하며 직시하지 않으려 했던 목소리가 속삭여온다.
나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시하려고 애써왔던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목소리가 내게 말하려고 했던 내용이 마침내 들려왔다.
– 어째서.
목소리는 말한다.
나를 향해 똑바로 직시한 채 물어온다.
이 말을.
– 어째서 모두가 나만 괴롭히는 거야?
세계가 나를 미워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강요되어온 인생.
나는 평생 그것을 불운하다, 괴롭다고 생각해본 적 따윈 없었다.
그러한 인생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슬프거나 힘들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걸 알고 있나요?
평생을 진흙탕에서 굴러온 이들에게, 진흙탕이란 괴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
평범한 하루.
그저 배를 곪고, 몸이 호소하는 고통에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 ‘평범함’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쥐어주고서, 그 이상의 기쁨을 알려주고서.
다시금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갈 뿐인 인생이라니.
신이시여 당신이 바란 제 생의 의미란 고작 이런 것이었나요?
제가 살아가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정녕 당신의 바람이었나요?
가슴 깊은 곳의 목소리가 내뱉는 말들.
그건.
– 증오였다.
세계가 나를 미워한다.
그 누구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무도, 정말 그 누구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를 도구로만 볼 뿐인 자들 투성이다.
– 신이 되어 우리를 다음으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마탑주들이 내게 요구하는 신성, 신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대업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힘의 편린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내게 되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이해했다.
그렇다면 좋다.
평생을 내가 괴로워하기를 바라며, 그에 걸맞은 인생을 쥐어주겠다면.
그들이 바란 대로 해주겠다.
이 어둠을 그들의 바람대로 물들여주겠노라고.
– 전부, 전부 끝내주겠어.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전부 의미 없는 세상으로 바꿔주겠다고.
세상을 가득 채운 암흑천지 속에서 나는 천천히 침잠해들어간다.
신성의 편린이 내 육을 잠식해가는 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도 목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아니, 목소리의 내용은 이미 바뀌었다.
왜 내가 괴로워야 했냐고 묻는 목소리는 이미.
– 복수하겠어.
내가 느낀 고통을 그들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겠다고.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쁨을 잃어버리는 세상을 가져오겠노라고.
그 누구도 날 이해해주지 않겠다면, 나 또한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해줄 뿐이다.
그러니.
“전부·········!”
죽여 버리겠다.
그것을 입에 올리기 직전이었다.
파아앗.
어둠이 갈라진다.
그 사이로 빛줄기가 스며든다.
빛줄기 속에서 걸어 나온 자는 소녀이자, 엘레노아에게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멍청한 녀석. 그 누구도 널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단단히 착각하고 있구나.”
저벅, 저벅.
걸어오는 저 사람은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여태까지 몇 없던 소중한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스승님은 누구보다 널 이해하고 있단다. 엘레노아.”
나를 위해, 내 앞에 나타나주었다.
****
< 제90장 – 긍지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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