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9)
내 마법이 더 쎈데-19화(19/203)
< 제8장 – 아르카스의 신도 (1) >
“누구십니까?”
아르민이 던진 질문에 노인은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일레인스 수도원의 원장인 안톤이라 합니다.”
‘아, 이 사람이었군.’
안톤.
이름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킬레인 백작이 이곳으로 좌천되기 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수도원장.
무려 신성왕국 바오르에서 직접 공부를 마치고 왔다는 유능한 사제였다.
그는 일레인스 마을에 수도원을 세우고, 솔선해서 마을 사람들을 도우며 촌장과 함께 마을의 대소사를 관리해온 마을 어르신격 되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기도 했다.
“아르민 일레인스입니다.”
“아···! 일레인스 가문의 도련님이셨군요. 평소 도움은 자주 받고 있습니다.”
아르민의 이야기에 안톤은 급하게 다시 한 번 예를 갖추었다.
‘신분이 깡패는 깡패군.’
수도원이란 신을 찬미하기 위한 장소이긴 했으나.
현실적으로 귀족의 지원 없이는, 그 몸통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규모가 있는 집단이기도 했다.
‘지구로 따지자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재단과 비슷한 느낌이던가.’
아르민은 천천히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수도원 안쪽은 겉보기보다 아름답군요.”
스테인드글라스나 촛대.
벽면에 있는 오르간과 비슷한 악기에서조차 신성에 어울리는 품위가 느껴졌다.
안톤의 허름해 보이는 의복이나, 의자 같은 곁가지 소품과는 확실히 질부터가 달랐다.
아르민은 그것들을 손으로 천천히 쓸어보며 감촉을 음미했다.
“하하하. 별것 아닙니다. 신을 찬미하기 위한 물건만큼은 허투루 다룰 수 없으니까요.”
안톤의 목소리에선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내부를 한 번 둘러보고 난 뒤.
아르민은 문득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성상에 새겨진, 저것은 무엇입니까?”
성상을 보자마자 들었던 궁금증.
여신 아르카디아의 성상에는, 그 두 개의 눈동자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저건 일광(日光)의 증거입니다.”
“일광이라 함은?”
귀족이 신에게 관심을 가져줬기 때문일까.
안톤을 살짝 흥분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여신 아르카디아께서는 조물주, 만물의 신, 태양의 신이라 불려왔습니다. 일광의 증거란 아르카디아의 신성을 나타내는 증표이지요.”
실제로.
“신성왕국에서는, 오로지 태어날 때부터 일광의 증거를 품고 태어난 소수의 신실한 이들만이 특별한 위치로 올라갈 수 있다 알려져 있지요.”
그들이 바로 바오르의 고위 사제들이라며.
일광의 증거를 가지고 있기에, 여신의 기적을 대신해서 행사할 수 있는 위대한 이들이라고.
안톤은 설명했다.
‘신을 빛이나 태양으로 은유하는 건, 지구에서도 곧잘 있는 이야기였지.’
때문에 범인은 그 위대한 존재를 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버린다던가 하는 야사도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신의 축복을 받고 안 받고로 명암(明暗)이 갈리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니.
‘······내가 알던 그 어떤 신화나 전설과도 모양새가 다르다.’
주신 아르카디아(Arcadia).
아르카디아란 지구에서 흔히 이상향이자, 무릉도원으로 그려지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그것을 이곳에선 주신으로 기리고 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르민이었지만, 일광의 증거라고 하니 여기서 떠오르는 키워드가 하나 있었다.
그림자가 지껄였던 그것.
“혹시 화인의 증거라는 걸 아십니까?”
“·········!”
잠깐이나마 안톤은 동요한 모습을 보였다.
‘뭔가 있다.’
안톤은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언뜻 책에서 읽었을 뿐입니다.”
둘러대는 아르민의 말에, 노인은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후우. 화인(火印)의 증거란, 이제는 권좌(權座)에서 내려온 불의 신 아르카스의 증거입니다.”
아르민에게 밉보이면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의외로 순순히 안톤은 대답을 내어놓았다.
“아르카스······?”
권좌에서 내려왔다는 저 표현이, 아르민의 마음에 걸렸다.
“본디 아르카스는 여신 아르카디아의 형제로, 함께 세상에 빛을 가져왔다고 알려진 신입니다.”
하지만 불의 신 아르카스는 태곳적부터 자신의 누이가 되는 아르카디아를 질투했다고 한다.
태양에 비해 미약한 불의 신은, 태양을 질투하고 그 권좌를 넘보았다.
“하지만 여신 아르카디아는 그걸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불은 태양에게 밀려, 그 신성을 잃고 악신으로 추락했다.
“지금에 이르러서 아르카스는 이교도만이 숭배하는 악신이라 불리고 있지요. 화인의 증거를 품은 이들 또한 악신을 숭배하는 이교도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르카스를 상징하는 화인의 증거란, 질투와 배교의 증표가 된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은, 어디 가서 화인의 증거에 대한 말씀은 안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국 또한 결국엔 일원교의 영향권에 있으니, 남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란 소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신체에 새겨진 ‘신의 증거’라는 것으로 차등이 결정된다니.‘
심지어 그것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란 말이 아닌가.
단적으로 말해.
‘이상하군.’
그것은 현대 마법에서 각종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마법을 익혀온 아르민에게 있어선, 근본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교리였다.
정말 이것이 이 세계의 종교란 말인가?
‘놈이 말하던 그 분이란, 역시 아르카스를 가리키는 것이었나?’
원래 신이었던 자가, 질투로 미쳐버려 신성을 잃고 타락한 마기를 다루는 악신으로 변질되었다.
그러한 이야기라면 지구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다.
“어떻게 질문에 대한 답은 만족하셨습니까?”
그리 묻는 안톤에게.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할 게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 원장님 말고 또 다른 ‘사제’가 있습니까?”
난데없는 그 질문에, 안톤은 이상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음······. 아니요. 여기엔 저 말고는 신성왕국에서 함께 해온 자매 수녀 세 분이 같이 계실 뿐입니다. 지금쯤이면 아이들과 함께 밭에 가 있겠군요.”
그렇군.
그렇다면 이걸로 확정이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이용당할 뿐인 인간이다.’
아르민이 그리 판단한 순간.
덜컹.
끼이이익.
등 뒤로 굳게 닫혀 있던 나무문이 열리고.
“거기까지입니다. 멈추십시오. 아르민 일레인스.”
은발의 여기사가 검을 겨눈 채로 등장했다.
****
아르민 또한 바깥의 인기척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세실리아가 여기 있는 거지?’
통찰의 룬은 아직 발동하고 있었다.
카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신성기사단과 함께 던전에서 피가 튀고 체액이 흩날리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 룬 너머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아니, 잠깐······.’
카일의 시선에서 감지한 위화감.
‘그러고 보면 카일이 마지막으로 세실리아와 만난 건 출발하기 직전뿐이었나.’
통찰의 마법이라고는 해도, 결국 카일의 시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마법이었기에.
정보가 한정된 탓에 파악이 늦어졌다.
“그 제복은······. 서, 설마! 신성기사단의······!”
안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아르민으로선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지만.
그 이유를 세실리아가 입에 담았다.
“안톤 사제, 20년 전, 당신이 신성왕국에서 본교의 자매에게 음행을 저지르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뭐야. 유학파 출신이라더니. 그런 거였어?”
아르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세실리아는 단호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거주한 마을마다 아르카스 신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 또한 이미 저희 단애의 칼은 파악하고 있는 바.”
세실리아의 날카로운 칼날이 안톤을 겨누더니.
“제7신성기사단 단애의 칼 단장, 저 세실리아 바오르. 당신을 배교 혐의로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하겠습니다.”
그 말에 안톤은 펄쩍 뛰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아르카스의 신도라니! 그 무슨 터무니없는 오해를······!!”
“숨겨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또한 당신의 짓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세실리아의 말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아르민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섣부른 행동은 그만두십시오. 아르민 일레인스. 당신 또한 이 자와 공범자라는 의혹이 걸려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이랑?”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했다.
“증거는?”
“수도원으로 흑마법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진즉 파악했습니다.”
‘벌써 거기까지 조사를 마쳤단 말인가.’
그렇다는 건, 던전으로 향한 쪽은······.
‘단애의 칼은 흑마법사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는데 특화된 기사단이라고 했었지.’
기사단이 흑마법사의 덫을 지우는 사이, 그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단장은 흑마법사의 목을 친다.
어쩌면 단애의 칼은 그런 구조로 돌아가는 기사단인지도 몰랐다.
빠른 일처리나, 여러 단서로 여기까지 도달한 저 실력까지.
괜히 신성왕국의 톱클래스 기사단이 아니라는 거겠지.
아르민의 생각보다도 유능한 듯 했다.
“흑마법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에 당신이 있다는 게 공범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입니다. 아마 당신이 흑마법사가 자리 잡는데 협력한 것이겠지요.”
그야 남들 눈으로 보기엔 아르민은 평범, 아니 그보다도 아래를 밑도는 인물일테니
의심하는 거야 이해는 갔다만.
“내가 왜 흑마법사 따위한테 협력을 하는데?”
“······귀족들 사이에서 가족에 대한 증오로 흑마법에 투신하는 이들의 비율이 적지 않지요.”
나보고 망나니라 이거냐.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그래서였다.
“틀렸어.”
그 한 마디에, 세실리아의 고운 아미가 꿈틀거렸다.
그랬다. 틀렸다.
애당초 수도원장인 안톤이 흑막이라니, 그랬다면 아르민이 이렇게 순순히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리 없잖은가.
‘추적 마법의 낌새는 바깥에서 느껴지고 있다.’
때문에 그 틈을 노려, 아르민은 이곳을 방문했다.
사전 ‘작업‘을 하기 위해서.
애당초 이건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증거가 있고, 거기에 용의자가 있으니 범인이라는 식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전 경고했습니다!”
챠앙!
순간적으로 세실리아로부터 검격이 날아들었다.
그 궤도는 아르민이 아닌, 그 발치를 노린 견제에 불과했지만.
느껴지는 기세 자체가 무시무시했으니.
솔직히 말해, 아르민은 여기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상대는 신성기사단에서도 톱클래스인 기사단장이다.’
저렇게 단독으로 흑마법사를 잡으러 쳐들어온 것도 거기서 비롯된 자신감일 터
하지만 그에 반해, 아르민은 이제 갓 현대 마법을 이 육체에 욱여넣기 시작한 입장.
이런데서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사람 말 좀 들어라. 멍청아!”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을 발동했다.
사전에 케이프에 새겨두었던 방어의 룬이 발동되어, 그대로 방어 마법이 전개되었다.
콰앙!
키이이잉!
참격의 후폭풍이 몰아친다.
“방금 그건?”
세실리아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무리 견제공격이라고는 하나, 설마 막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역시······. 당신도 흑마법을 배운 겁니까?! 귀족으로서, 킬레인 백작공이라는 아들이라는 긍지조차 버리고서?!”
확실히 겨우 이틀 만에 이곳까지 도달한 단애의 칼은 유능했다.
하지만.
저 벽창호 같은 태도에 마침내 아르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야이, 미친년아. 눈이랑 귀가 있으면 좀 봐라! 방금 거기서 마기가 느껴지든?”
짜증이 치밀어 오른 나머지, 절로 튀어나오는 욕설.
머리가 굳어도 어지간히 굳어 있어야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서 이런 헛다리다.
“무슨 일이신가요?!”
“원장님!”
하필 세실리아가 일으킨 소란으로, 바깥에 있던 수녀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들었다.
그 숫자는 총 세 명.
얌전히 준비를 마치고 이쪽에서 먼저 손을 쓰려고 했던 것이, 세실리아의 난동으로 틀어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마기의 기척이······?!”
세실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더불어, 아르민이 슬쩍 시선을 준 곳.
달려온 수녀 한 명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다.
푸각.
“·········음?”
안톤은 순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그림자의 칼날.
그거 하나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다른 수녀 둘은 물론, 아르민과 세실리아를 향해서까지 쇄도해온 그림자를.
“방호, 상쇄.”
아르민은 방어의 마법으로.
“큭···?!”
세실리아는 은빛 섬광으로 쳐내어, 무력화 시켰으니.
콰아앙!!
한 차례의 폭음이 가신 뒤에서야, 꿀럭꿀럭 피를 쏟아내는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다 던진 정체불명의 수녀는.
이내 허스키한 중성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지껄였다.
“던전에서 잘 잡아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쥐새끼들이 숨어들었구나.”
보란 듯이 등장한 흑막의 정체.
딱딱하게 얼어붙은 세실리아를 향해, 아르민은 빈정거리듯 입을 열었다.
“내 말 맞지? 난 범인 아니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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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 – 아르카스의 신도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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