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91)
내 마법이 더 쎈데-191화(191/203)
< 제93장 – 그것은 오만이다. (2) >
‘마력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화살은 빗나갔다.
아무리 신화급에 준하는 마법일지라고 해도 그것이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뭣보다 준비가 너무 미흡했다.
애당초 엘레노아를 구하기 위해 신화급 마법 [성탄]을 사용한 직후였다.
아무리 아르민일지라고 해도 연이은 신화급 마법은 마력신경에 어마어마한 부담을 준다.
더구나 아르민이 발동한 마법을 레프너겐의 지시를 받은 마탑주들이 질서정연하게 방벽까지 세워 막아버렸으니.
쏘아낸 화살은 결국 마력의 흐름을 멈추지 못했다.
게다가.
욱신!
“윽.”
일순 팔꿈치에서 전신으로 흐르는 고통에 아르민은 팔을 움켜쥔다.
‘······슬슬 한계인가.’
마력신경이 비명을 내지른다.
마력신경도 결국엔 신체의 일부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피로도가 누적되고, 그것이 한계치를 넘어가면 단선 되거나 나아가 괴사까지도 하는 신체장기인 것이다.
아마도 추후 며칠 간 일정 규모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제한이 걸릴 터.
그렇게 아르민이 고통에 이를 악물고 바라보는 저 건너편에서.
쿠우우웅!
마력이 이동한 방향에서 어마어마한 떨림이 대지를, 그리고 천지를 뒤덮었다.
“반신반의했지만, 정말로 성공했나!”
아르민에게 제압당한 상황 속에서도 레프너겐은 무엇이 그리 유쾌한지 껄껄 웃어대며 외쳤다.
신이 앉아 있다는 별의 대해를 향해 강제로 앵커를 던져, 신을 끌고 내려온다는 마법.
알로스린 대공이 제안하고, 레프너겐이 조합해낸 술식이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다.
휘유우우우우!!!
“선배······! 신성이······!”
후배 민세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소리치고.
“······신성의 강림, 아니······. 이건 오히려 강제퇴거에 가까울까?”
꿀꺽.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에, 진즉 신좌에서 떨어져 나온 헬레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불안이 담긴 목소리를 흘렸다.
바로 저곳에.
신이 내려오고 있었다.
“모리오카······.”
그 천살성이 지상에 내려온다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차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때.
훅.
피부를 저밀 정도로 흉포하던 신성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갑자기, 없어졌다?”
헬레나가 흘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냐, 없어진 게 아니야.”
인간 하나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모여든 마력.
신 하나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마력이다.
이만한 거대 마력 덩어리가 움직였을 때 흔적을 남기지 않을 리가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키이잉.
저 멀리, 이곳에서 보다 멀리 떨어진 장소.
서쪽으로 한참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장소에 고작 0.1초의 타임랙이 지나고 나서 그 ‘마력덩어리’가 출현했음을 아르민은 깨달았다.
“제국의 황궁이다. 모리오카는 그쪽으로 향했어.”
“역시 대공을 노리고? 하지만 왜?”
왜냐고?
이유는 뻔하다.
“서쪽 용병국가 포리네에서 대공은 암살교단과 손을 잡고 탐욕의 신물을 노렸어.”
하지만 그 과정을 막는 사이에, 아르민은 암살교단이 그저 대공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알아냈다.
대공은 결코 그들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 따윈 쥐뿔도 하지 않았을 테지.
녀석에겐 오로지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대공의 목적······. 그건······.”
꾸욱.
민세희는 품에 안고 있던 엘레노아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래. 저 소녀조차도 대공에게 이용당할 뻔하지 않았느냐고.
“지금까지 대공의 목적은 순전히 황궁을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
그걸 위해 금빛 황금 상단을 회유하고, 제국의 젖줄을 틀어쥐고, 황자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멋대로 권력의 전횡을 일삼아왔다.
그렇게만 생각했던 아르민이지만.
그 전제조건이 바로 지금 무너진 참이다.
“암살교단이 이용당했다는 걸 모리오카가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니 강림하자마자 놈은 그리로 향했다.
자신을 엿 먹인 대공을 끝장내기 위해서.
“그럼 황궁이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요! 어떡하죠?!”
세희의 말이 맞았다.
황궁으로 찾아간 모리오카가 대공만 죽이고 복수극을 끝낼 리가 없다.
애당초 수백, 수천, 수만명을 죽여 자신의 신성.
자신만의 신화(미솔로지)를 만들려고 하던 이가 모리오카다.
“이대로 있으면 미네르바 황녀도······!”
“알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거리는 멀다.
마력열차를 탄다고 해도 하루.
마차로만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다.
공간도약의 마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만한 술법을 구현하기 위해선 아무리 아르민이라고 해도 준비가 필요했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의 마력신경 상태로 축지의 술을 구현하려면 최소 2시간은 걸려.’
그럼 과연 칼센 제국의 황궁까지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설사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강림한 모리오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레프너겐의 술식으로 인해 태어난 그 존재를, 신화급 마법을 쓸 수 없는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잠깐.”
아르민의 눈이 반짝였다.
“레프너겐, 제미니의 육에 강림한 신성은 당신의 마법으로 태어난 존재야. 그건 확실하지?”
“허허, 그게 어쨌단 겐가? 어차피 전부 늦어버렸지 않은가?”
입가를 비틀고 한껏 유쾌하다는 듯이 떠드는 노인네지만.
아르민은 그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레프너겐은 술식의 완성이 이 땅.
별이 머무는 땅에 있다고 했다.
놈이 발현한 마법이 진정으로 토지의 영맥, 거기 서린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구현해낸 현대 마법을 흉내낸 기적이라면.
“······모리오카, 녀석은 돌아온다.”
아니, 모리오카가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게 아니다.
알로스린 대공, 그의 우수함을 높이 사고.
이번 사태를 자아낸 그 자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아직 술식은 ‘완성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그 이후의 전개를 위해서라도 알로스린 대공은 모리오카를 데리고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아르민은 천천히 가라앉은 눈동자로 레프너겐을 바라보며.
“내 말이 틀린가?”
물었다.
그러자.
“크, 크크큭. 크하하핫! 정말로 놀랍군! 자네의 통찰력은 정말 탄복스러울 정도야!”
레프너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술식은 거의 완성됐네. 하지만 마법에서 ‘거의’라는 말은 의미가 없지. 진정으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이 대지가 필요하네. 알로스린 대공이 그걸 놓칠 리가 없다네.”
때문에 그 남자는.
“회유를 하든, 협박을 하든, 혹은······. 자기 자신을 ‘미끼로 삼든’ 간에 이곳으로 돌아 올 걸세.”
그래야만.
“비로소 대공의 아내가 완전히 되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꽤나 순순히 불어주는 걸.”
“그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끝이 났네. 이제부터는 내 손을 떠난 이야기지.”
레프너겐이 말하길,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남은 건.
“내 평생을 담아 자아낸 술식이 진실로 ‘정답’인가를 이 두 눈으로 확인할 뿐이라네.”
즉 저 노인네는 이제 지켜보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우웅!!
하느링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거칠게 흔들리고 일그러지던 마력이 한데 뭉쳐, 커다란 문을 만든다.
마력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고작 10분이나 지났을까.
바람이 분다.
짙은 색깔로 하늘이 물든다.
이윽고.
“······진짜로 도착했군!!”
레프너겐의 낄낄거리는 외침과 함께.
“뭔가, 온다.”
거울상에 비친 풍경처럼.
세상이 반전했다.
****
반전한 풍경 너머에서 찾아온 일단의 무리.
그들 전부가 동일한 신성(神聖)의 기운을 뿜어내는 걸 보고서 아르민은 확신했다.
“그 짧은 10분 사이에 암살교단까지 대동하고 행차하시다니, 어지간히도 빅한 이벤트구만.”
“아르민 일레인스.”
무리의 중심에 서 있는 여성은 아르민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제미니의 얼굴을 한 채, 그녀와는 전혀 다른 기운을 흘리는 자의 이름.
“오랜만이군. 모리오카. 아니, 여기에선 신명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타카마가하라라고 불러드릴까?”
“······여전히 네 혓바닥은 길기만 하구나.”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파직.
아르민과 모리오카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앗! 미네르바 황녀 전하!”
세희의 목소리가 비명 같이 터져 나온 것이다.
“······세희, 아르민 경······.”
미네르바 황녀는 암살교단원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 목에 흉기를 대고 있는 자는 다름이 아닌 앙칼라 백작이었다.
“황녀 편이라는 얼굴로 얌체 같이 곁에 서있던 주제에, 어디 마음의 변화라도 겪은 모양이지? 앙칼라 궁정법.”
황녀의 곁에서 궁정 마법사 노릇을 하던 남자가 변절자가 되어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은 얼굴로 말하는 아르민의 비아냥거림에.
참지 못한 앙칼라가 고함을 내질렀다.
“네놈은······! 네놈만큼은 내 심정을 모를 테지! 아르민 일레인스!”
분을 못 참고 부들거리는 앙칼라 백작의 손짓에, 스윽. 놈이 들고 있던 날붙이가 미네르바 황녀의 백옥 같은 목피부에 생채기를 낸다.
주르륵 흐르는 혈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네놈과 처음 만났던 그 날, 네놈은 가볍게 날, 그리고 우리를 능가하는 힘을 보여주었지.”
아르민은 떠올렸다.
앙칼라 백작, 보그너 백작과 처음 만났던 날.
그들의 기세를 눌러주기 위해 가볍게 마력을 흩뿌렸던 것을.
아르민 입장에선 그저 대화의 수단으로 고른 것 뿐이지만.
“고작 20대 중반의 새파란 풋내기 따위에게 내 경지가 밀렸을 때 찾아온 열패감. 그것을 네놈이 이해할 수나 있겠느냔 말이다!”
앙칼라의 눈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평생을 마법에 종사해온 궁정 마법사가 눈앞에서 도저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벽과 맞닥뜨렸다.
“이미 이 육체는 한계에 이르렀다. 더 높은 경지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넌 아주 가볍게 날 찍어누른 것이다!”
그렇게 절망의 끄트머리에 몰린 그때.
“신께서······. 내게 말씀을 내려주셨다.”
환희에 찬 듯이 떠드는 말.
아르민은 슬쩍 모리오카를 바라보았다.
모리오카가 내렸다는 목소리가 우연의 산물일 리가 없으니까.
“전부 지켜보고 있었군.”
“······후후, 좋은 기회였지. 날 엿 먹인 대공을 감시하며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자고 생각했으니까. 덕분에 그 점에는 감사하고 있다. 아르민.”
모리오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혹적인 손놀림으로 자신의 육체를 쓰다듬으면서, 그것에 혹한 듯. 반한 듯.
그녀는 제미니의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육체의 주인은, 네가 제법 총애하는 계집의 것이렷다? 네 마법의 힘은 놀라우리만치 굉장하지만. 보아하니 이미 육체의 마력신경은 한계에 이른 듯 하고. 섣불리 네가 애호하는 이 육체의 주인을 상처 입히는 것도 망설여질 테지.”
총애라.
낯간지러운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르민의 반문에 모리오카는 히죽 웃었다.
그야.
“네놈은 예전부터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
아르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겉으로는 냉정한 척. 냉철한 척. 네놈이 냉혹한 마법사를 연기해왔다는 건, 칠영웅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야.”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버리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비극에서 눈을 돌린다.
아르민이 걸어온 길은 그러한 길이었다.
칠영웅이라는 조직을 짜고, 솔선해서 앞으로 나서는 저 남자의 등을.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모독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지. 강한 힘을 지닌 주제에 그 누구보다 인정에 끌려, 그 어떤 자보다도 열심히 세계와 인간을 구하려고 든 이가 누구인가를.”
“얼굴에 금칠을 해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는 걸.”
아르민의 말에 모리오카는 어깨를 떨어댔다.
“칭찬? 그럴 리가. 난 그걸 어리석다고 말하는 게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무엇이지? 희생을 선택하고는 죽어버린 것이잖아? 우리처럼 신의 힘을 갖지도 못한 채, 범용한 인간으로 환생했을 뿐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아라.
모리오카는 자신을 가리키며, 이 대지에 발을 내딛으며 소리쳤다.
“남은 승리자가 누구인지를 보아라. 조용히 웅크려 신좌에서 버텼기에 비로소 마지막으로 승리한 건 바로 이 몸이다. 온전한 신성을 가진 채로 지상에 내려왔다. 나만이 신의 힘을 지닌 채로 여기 서게 된 것이다. 강재민!”
모리오카가 손을 흔들자.
후우웅!
마력의 기파가 단숨에 아르민을 향해 내달렸다.
‘더블 액션.’
키잉.
마력신경이 내지르는 비명을 무시하며 아르민은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수도의 형태로 내리쳤다.
스가아악!
하지만 그 위력이 너무 약했던 것이 탈일까.
미처 해소하지 못한 마력파가 아르민의 명치와 복부를 후려쳤다.
퍼억!
뒤로 튕겨져 나가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아르민은 이내 기침을 하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 광경을 목도한 모리오카는 실로 유쾌하다는 듯이 웃어댔다.
“좋아. 정말 좋아. 네놈의 그 무력한 모습! 칠영웅 때 리더랍시고 내게 보여주던 거만한 모습은 티끌조차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한 모습! 좋구나! 이제 알겠나! 아르카디아조차 물리친 네놈은, 결국 오롯이 신성을 가진 내겐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휘익!
모리오카가 그림자를 타고 넘나든다.
아르민이 거기에 맞춰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마법을 쓴다면 그대로 황녀를 죽여버리겠다!”
움찔.
아르민의 몸이 멈춘 틈을 노려, 모리오카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아르민의 목을 틀어쥐었다.
“선배······!!”
“움직이지 마라! 섣불리 움직이는 놈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이 새끼의 목을 비틀어버릴 테니까!”
“·········!!”
모리오카가 토해낸 서슬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민세희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곳을 노려보는 헬레나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르민 경······!”
미네르바 황녀조차도 아르민이 보여주는 무력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 때문이었다.
멍청하게 인질로 잡힌 나의 안위를 걱정해, 저 남자는 그저 당하고만 있었다.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게! 아르민 경! 나는!”
“그 입 다물어 주시지요.”
– 그 요란을 떨어대는 입이여, 더는 지껄이지 말거라.
“사일런스.”
“······읍!”
지잉.
앙칼라 백작이 발동한 침묵 마법이 황녀의 말문을 막았다.
그 광경을 아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르민을 향해.
“자, 어떤 기분이냐. 강재민! 전신으로 맛보는 무력감. 한때 전능한 자라고 불렸던 주제에, 지금 어떤 기분이지?!”
모리오카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네놈만 없다면 이 세계에서 전능한 것은 나 혼자 뿐. 이대로 팔다리부터 찢어줄까? 아니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 마력신경부터 불태워야하겠지!! 마법을 쓸 수 없는 너 따윈 그저 가치 없는 고기인형에 불과할 테니까!”
모리오카가 손을 들었다.
그 손에 맺힌 신성을 아르민의 심장에 박으려고 들었다.
마력신경을 불태우면, 아르민은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게 된다.
외부 조정을 통해 다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더라도, 그 출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때문에.
“재민 선배·········!”
이어 모리오카가 신성으로 아르민의 신경을 불태우려는 바로 그 순간.
“······이래서 몸만 쓰는 육체파 놈들이 안 된다는 거야.”
“뭐?”
우뚝.
모리오카의 손이 멈추었다.
****
“이런 상황에서조차 너는 무슨 간교한 헛소리를 하려고······.”
“헛소리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네놈의 머릿속이 텅텅 비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아르민이 떠드는 말에 모리오카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대체 무얼 근거로 이 남자는, 이 위급한 상황 속에서.
제발 살려달라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이런 거만한 태도를 취하는가.
너무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머리가 돌아버린 것일까?
하지만 그때.
– 혹시.
아르민의 진가를 알고 있는 그녀였다.
누구보다도 칠영웅으로서 그의 실력을 보아왔던 모리오카였기에.
단 한 순간.
망설임이 있었다.
혹시, 정말로 만약에.
무언가 저 남자가 이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버린 순간.
그 의심이 명암을 갈랐다.
“너도 알다시피 그 육에 새겨진 술식은 별이 머무는 땅. 즉 신을 끌어내린 이 자리에서 ‘완성’되기 위해 준비된 마법이다.”
“·········완성?”
그래, 완성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대공이 자신의 모든 걸 걸어 준비한 마법.
어디까지나 그녀가 강림하는 건 술식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 마법은 이미 끝났······.”
“앞에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 건가? 네가 강림한 것은 그저 과정일 뿐이지.”
대공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건 단 하나다.
“이 자리로 돌아온 건 네놈의 실수다.”
바로 그 행위가.
“술식에 마침표를 찍는다.”
소리는 없었다.
마력이 일어나는 기척도 없었다.
극적인 변화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떠든 헛소리인가.
‘소용없다.’
모리오카는 양껏 아르민은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앗.”
아.
아.
하지만 입에서 토해내는 건, 단순한 탄성 뿐.
아, 앗. 아.
“뭐, 뭐냐. 이게.”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의식이 명멸한다.
마치.
“나, 내가. 사라지고, 있다, 고”
사고가 이어지지를 않는다.
마치 나 자신이 덧씌워지는 듯한 감각.
나 자신의 존재가 육체로부터 사라지는 것만 같은 실감.
정신이 능욕당하고 있었다.
“무, 무슨 짓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르민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스르륵 힘이 풀리고, 모리오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시, 신이시여······?!”
앙칼라 백작이 당황한 듯 소리치고, 주변에 있던 암살교단원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간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신의 은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단 것을.
“······난 아무것도 안했어. 너도 알다시피 네 몸과 정신에 그 마법을 박아 넣은 건 알로스린 대공과 레프너겐 마탑주다.”
“무, 무슨······.”
털썩.
모리오카는 무릎을 꿇었다.
“오, 오롯이 신이 된 내게 무슨 짓을 했단 거냐!”
아무것도 안했다.
그저.
“이 땅은 신이 떨어진 땅. 신이 신성을 잃어버렸다는 전승이 남아있는 땅이다.”
즉 그녀가 이리로 돌아온 순간.
미리 짜여져 있던 마법의 술식 대로, 단지 그녀가 신성을 잃어버린다는 과정의 나머지가 실행될 뿐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의, 의식이. 아냐, 잡아, 잡아먹지 마. 그만. 힘이, 사라진다. 제발. 아냐. 싫어. 이런 말로 따윈······! 날, 날 죽이지 마라! 그만 둬! 멈춰줘! 히, 힘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만!”
아르민은 생각했다.
앞서 그녀는 다른 신들의 말로를 비웃었던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자와 싸우고, 거대한 음모를 세우고, 끝내 스러진 그들을 약자라 비웃었던가.
하지만 이걸 어쩌나.
“그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너다. 모리오카.”
대공의 원래 계획대로 그녀의 신성은 단지 다른 영혼을 되살리기 위한 비료로 소모되는 것이다.
“시, 싫······!”
최후의 비명조차 미처 외치지 못한 채, 그녀의 정신은 완전히 바스라졌다.
“아, 아아·········.”
다시금 눈을 뜬 모리오카, 아니 제미니의 육엔 새로운 지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간신히······. 간신히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침묵으로 가득 찬 공간 속으로, 알로스린 대공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제93장 – 그것은 오만이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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