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
내 마법이 더 쎈데-2화(2/203)
< 제1장 – 기억 났다. (2) >
아르민은 기울이던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난데없이 전생의 기억이라고?’
떠오른 기억은 마치 한 편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본 것처럼 현장감이 있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니······.’
아르민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르민이라는 소년이 알 리가 없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비유로 써먹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방금 떠오른 기억은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진즉 자기 머리가 맛이 가버렸던가.
‘나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기는 싫으니, 기억이 진짜라고 보는 게 맞겠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르민은 평소처럼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과 잔소리를 피해, 저택에 마련된 서고에 찾아와 영웅 소설을 읽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구에서 강재민으로 살던 시절의 기억을 추체험한 직후인지라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아르민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자, 금세 관련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이름은 아르민 일레인스.
나이는 18세. 칼센 제국에서도 명문가로 손꼽히는 일레인스 백작가의 차남(次男)이었다.
‘일레인스 백작가란?’
칼센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군인 집안으로, 전쟁 통에 세운 공적을 인정받아 백작위를 받고, 육대 전부터 줄곧 제국의 황제를 보필해온 가문이었다.
그렇게 백작가로서 명성을 떨쳐온 집안이었으나.
‘고지식한 아버지가 파벌 싸움에서 밀려난 탓에, 15년 전에 지방 변두리로 좌천되었지······. 군인다운 이야기구만.’
실제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발전된 칼센 제국의 수도 ‘카라클’의 풍경이 아닌, 언덕 아래로 논이 내려다보이는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었다.
‘강재민일 때는 이런 거 보기 힘들었는데.’
재민이 살던 서울은 매번 미세먼지니, 도시공해니 해서 별 하나 보기도 힘든 콘크리트 정글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강재민과 아르민인가.’
강재민이라는 과거의 자의식과 아르민이라는 현재의 의식이 상충한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스러져버린 과거의 인생에 대해 미련과 회한을 가질 만도 하건만.
“뭐, 이미 지난 일이면 어쩔 수 없지.”
아르민은 깔끔하게 납득하고 잘라냈다.
애당초 자기 멋대로 살아온 재민이었다. 지구에 두고 온 미련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이미 끝나버린 인생을 붙잡고 있을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좀 더 정보를 떠올리기 위해, 조용히 정신을 집중한 찰나.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민으로서 입에 익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마리나입니다. 도련님. 그······. 주인님께서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도련님이 오시지 않았다 하여, 모시러 왔습니다.
문 너머에서 하녀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말투에선 아르민을 어려워하는 기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제국 수도에서 아버지와 형님이 돌아왔었지.’
군부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형님이 드물게 함께 휴가를 받은 겸 집으로 돌아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삼일 전.
집으로 찾아온 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어느 전장에서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고 하녀가 알려준단 말이냐? 내가 있는 동안, 자기 밥은 자기 손으로 챙겨라. 아르민.
그 말을 떠올린 아르민은 퍼뜩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불의 기운이 가장 강해진다는 시간.
지구 시간으로 따지자면 정오가 되는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는 걸 확인한 순간, 아르민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미 늦었군.’
전생의 기억에 몰두하고 있다 보니, 깨닫는 게 늦어졌다.
“하는 수 없나.”
하녀까지 찾아온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기억을 정리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아르민은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금방 가마.”
****
저택 1층 구석에 마련된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토록 말했건만, 식사시간에 늦다니! 아르민! 좀 더 일레인스 가문의 핏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지 못하겠느냐!”
쩌렁쩌렁.
귀를 후벼 파는 호통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지난 날 아르민은 이 목소리를 얼마나 두려워했던가.
호통의 주인은 식당의 상석에 앉아있는 남자였다.
반백으로 물든 머리칼을 군인답게 짧게 쳐낸 중년으로, 얼굴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채로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킬레인 일레인스 백작······. 나이는 51세. 계급이 소장(少將)이었지, 아마.’
그가 바로 제국 군부에서도 알아주는 강직한 군인이자, 일레인스 백작가의 주인이며, 아르민의 아버지가 되는 남자였다.
그 옆에는 또 한 명의 청년이 앉아있었다.
“·········.”
무심한 시선으로 아르민을 바라보는 금발 청년은 귀족들이 즐겨 입는 고급스러운 튜닉을 입었음에도, 그 위로 단단한 근육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몸이 좋았다.
그야말로 남자답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생김새인 것이.
‘제이크 같이 생겨먹었군.’
여자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처럼 생긴 남자의 이름은 카일 일레인스.
‘일레인스 백작가의 장남, 나이는 30세. 내 형님 되는 사람이란 말이지······.’
카일은 아버지와 함께 제국 수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교이기도 했다. 계급은 대위라고 했던가.
막말로 일레인스 가문의 대들보,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진짜배기 능력자인 것이다.
다만 아르민을 바라보는 저 무심한 눈동자.
절로 거북함이 솟구치는 그 눈빛은, 좋게 봐줘도 동생을 바라보는 형님의 눈빛의 아니었다.
‘······쓰레기를 볼 때의 눈빛이다.’
재민에겐 익숙한 눈빛이었다.
재민이 각성하기 전, 고아로 전전하던 시절 곧잘 저런 눈빛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르민은 변명을 입에 담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멍청한 놈!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주제에 할 일 이라고?!”
분에 못이긴 듯, 킬레인 백작은 은제 컵을 들어 아르민에게 던졌다.
와장창!
아르민을 지나쳐 컵이 벽에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에 시중을 들던 하녀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얼간이 같은 놈! 낮부터 술이나 처먹는 그 버릇은 대체 언제 고칠 생각이냐?! 영지민들이 네놈을 두고 뭐라고 쑥덕대는 줄 아느냐? 일레인스 가문의 수치! 망나니 아르민이라고 부른단 말이다! 네놈에겐 일레인스 가문의 이름이 아깝다!”
킬레인의 말에 아르민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도 아니군.’
강재민으로서의 기억이 떠오르고 나니, 아르민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까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아르민은 망나니가 맞았다.
‘대낮부터 술이나 퍼마시다가, 흥에 겨우면 마을로 내려가 노름판에서 깽이나 놓는 놈이었던가.’
애당초 군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주제에, 아르민은 재능이랄 것이 없었다.
형이나 누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볼품없는 육체, 나약한 정신은 결국 아르민으로 하여금 겉돌게 만들었다.
‘군인이 되는 건 관심도 없고, 욕을 먹을 때마다 하녀나 영지민에게 되도 않는 분풀이를 해댔나······.’
그야말로 싸가지 없는 재벌 3세가 따로 없다.
떠올린 정보를 정리하고 취합한 재민은 아르민의 행동을 딱 잘라 평가했다.
‘인간 쓰레기였다.’
물론 아르민이 처음부터 쓰레기는 아니었다.
‘10년 전, 아르민이 8살이던 때. 어머니가 죽었던가.’
한창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라야할 나이에, 어머니인 릴리아나 일레인스가 병으로 죽었다.
그게 계기가 되었던 것이겠지. 그 시절부터 아르민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땐 킬레인과 카일이 이미 카라클의 군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르민의 정신머리를 뜯어고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누나인 릴리에 일레인스가 있긴 했지만.
‘누님도 학업으로 바빴었지.’
그리고 릴리에마저 작년 카라클의 사관학교로 진학한 지금.
저택에서 생활하는 건 하녀 몇과 아르민이 전부였다.
‘아버지로서는 잘못된 아들을 바로잡고 싶지만, 아르민 입장에선 가족들이 자길 싫어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고.’
그렇게 오해와 엇갈림들이 겹치고 겹치다 보니, 어느덧 아르민의 가족 관계는 되돌릴 기회도 없이 파국으로 치닫고야 만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방금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지금.
여기 있는 건 예전의 아르민이 아니었으니까.
한창을 씩씩거리던 킬레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혀를 찼다.
“음식이 식겠다. 그 무거운 궁둥이나 붙여라.”
“······예.”
역정을 내는 킬레인의 턱짓에 따라 아르민은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술을 퍼마신 나머지,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식사가 끝이 나고, 영지 시찰을 이유로 킬레인과 카일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르민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후우······.”
대강의 상황 파악은 끝이 났다.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현재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집안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세계가 어떤 분위기인지.
그 중에서도 아르민의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진짜 판타지 세계인가.”
일단 자기부터가 일레인스 백작가의 귀족이라지 않는가.
근세 유럽 정도 되는 배경 속에서 제국과 왕국 등이 지도를 채우고, 검과 마법이 실존하며, 몬스터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냐고 반문하고 싶지만.
‘자칭 마왕하고 싸운 입장에서 할 말도 아닌가.’
아르민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왕성에서 벌어진 최후의 싸움.
거기서 부에르는 변방의 차원이니, 원계니 하며 다른 세상을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더랬다.
그 마왕부터가 다른 세상에서 찾아온 침략자였던 셈이다.
진짜 다른 세계가 있다 해도 놀라울 건 없을 테지.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앞으로 아르민이 무얼 하느냐가 중요했다.
이미 망나니라고 불리는 아르민은 집안에서 기대 따윈 받지 않는 몸이었다. 어디서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일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르민에게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뭘 하든, 신경 쓸 사람이 없다는 말이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아르민이 어떤 인생을 살건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다는 소리이긴 했지만.
어차피 재민이던 시절에도 혼자 살아왔던 그였다.
그러고 보니.
‘미련···이라.’
앞서 지구에 남겨두고 온 미련이 없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 하나.
이 가슴에 남아있는 후회가 있다는 걸 아르민은 깨달았다.
“마법의 끝···을 본 적이 없었지.”
진리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후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르민은 마음을 정했다.
자신이 아르민 일레인스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상, 여기서 어디 한 번 제대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망나니가 아닌 마법사로서, 미련이 남지 않도록, 이번에야말로 화려하게 불살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더구나.
“판타지 세계에서 환생이다.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겠지.”
무려 검과 마법이 실존하는 세상이다.
이런 곳이라면 좀 더 ‘마법’이라는 것의 끝을 보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심했다.
──다시 한 번 이 손으로 마법을 익힌다.
“지구에서 배웠던 마법을 다시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누구나 그렇듯, 한 번 걸어본 길을 다시 걷는 건 이전보다 쉬울 터.
아르민의 입가가 기분 좋게 호선을 그렸다.
자, 현대 마법을 다시 복습할 시간이다.
< 제1장 – 기억 났다.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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