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4)
내 마법이 더 쎈데-24화(24/203)
< 제11장 – 2년 후 (2) >
비룡 기사단 부단장 직속 보좌 마법기사.
다밀라 크로넨 중위.
다크 엘프 여성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즉 카일의 직속 심부름꾼이란 말이군.’
만약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지금쯤 열나게 커피를 타고 있었을 직급이다.
그런 사람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싶던 아르민이었지만.
다밀라 중위는 아르민에게 편지 한통을 건네주었다.
“카일 대위 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형님의 전언?”
편지봉투 위에는 ‘아르민 일레인스에게.’라는 글귀가 단출하게 적혀 있을 뿐.
그 냉혈남이 직속 부하까지 동원해서 보낸 메시지라고 하니, 아르민은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읽지 않을 수도 없었다.
찌익.
아르민은 한숨을 내쉬며 편지 봉투를 찢었다.
****
편지의 첫 문장은 상투적인 인사조차도 없이, 그저 “아르민 일레인스에게 알린다.” 라는 단조로운 문구로 시작하고 있었다.
– 최근 영지민들 사이에서 어떤 말이 돌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도 듣고 기뻐하시더구나.
첫 내용은 아르민을 공치사하는 내용이었다.
요컨대 잘하고 있다. 아버지도 네 성장에 감탄하더라, 하는 이야기.
아르민으로선 “이 인간이 왜 안하던 짓을 하지?” 싶은 생각이 들 뿐이었지만.
이어 읽은 문장에서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
– 네 나이도 어느덧 스물이다. 슬슬 가문에 손을 보태기 위해서 네 누이처럼 학교에 진학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고 보면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칼센 제국은 군사국가다.
그만큼 실력만 있다면 성별, 나이, 종족, 신분을 불문하고 기용하는 철저한 실력주의 국가이긴 했으나.
‘그게 또 요직에 들어갈 수 있느냐와는 다른 이야기지.’
어떤 국가나 조직이든 그렇겠지만.
칼센 제국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직에 오르기 위해선 무조건적으로 황립 사관학교에 진학할 필요가 있었다.
학연, 혈연, 지연은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특히나 일레인스 가문은 15년 전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난 가문.
카일로선 어떻게든 그걸 되돌리고 싶어 했으니.
‘카일은 야심가다. 손이 하나라도 아쉬운 지금, 나까지 끌어들여서 판을 키우고 싶을 테지.’
2년 전. 흑마법사 사건 때.
카일이 괜히 신성기사단의 개입 문제로 분통을 터트렸던 게 아니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차갑지만, 속으로는 권력에 대한 뜨거운 야망을 품고 있는 남자.
그게 바로 카일이었다.
만약 아르민까지 사관학교에 입학한다면, 카일에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늘어나는 셈이니.
이렇게 대놓고 입학을 종용하는 것이다.
이거 참.
‘귀찮군.’
파벌 싸움이니, 권력 투쟁이니.
솔직히 아르민에겐 전부 귀찮은 이야기였다.
마법을 배우고 연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뭘 그런데 신경을 쏟는단 말인가?
권력 다툼이 하고 싶다면, 자신을 빼고 자기들끼리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이제 와서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도 좀 그렇단 말이지.’
물론 사관학교에 가면 이 세계의 마법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점에 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거 하나 때문에 사관학교 학생이라는 신분에 얽매이는 건 사양이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르민은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 또한 황제폐하의 칠순 탄신일이 세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명이다. 입학 준비와 더불어 폐하의 탄신일 준비를 위해 제도(帝都) 카라클로 올라 오거라.
‘······황제의 생일이란 말이지.’
이반 프리드리히 폰 칼센 2세.
현 대륙 최고의 강국이라 불리는 칼센 제국을 이끌고 있는 명실상부한 절대지존.
제국의 황제는 대대로 황가의 핏줄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실력을 가진 기사가 맡아왔고, 그건 이반 황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노인이 된 몸으로도 아직 손에서 검을 놓지 않는다고 했던가.’
으레 제국의 황제라고 하면 골골거린다거나, 그 밑의 자식들이 죽어가는 아비를 두고 정치 암투를 벌인다던가 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칼센 제국에 한해서는 그런 걱정이 필요 없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전장에 나선지는 좀 되었지만, 황제의 정력적인 활동은 여전해서, 들리는 말에 따르면 지금도 제국의 기사단들을 손수 그 검으로 지도한다는 소문이 떠도는 게 이반 황제였다.
그런 인간의 칠순 생일이라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형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제국 각지는 물론, 외국에서도 대단하신 분들이 찾아들 터였다.
‘듣기로는 어전시합 따위의 행사도 한다던데, 여기서 눈도장 찍으면 그대로 엘리트 코스 직행이겠구만.’
카일이 안달을 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터였다.
어쨌거나 그야말로 편지의 기본예절 따윈 내다버린 일방적인 정보통지에 아르민은 쓴웃음을 삼켰다.
‘이래서 급하게 전령을 보낸 거로군.’
개인적인 용도로 자기 보좌관을 쓴 거야.
직업 윤리적으로 이 세계에선 어떻게 비춰질지 잘 모르겠다만.
카일이 하고픈 이야기는 잘 알 수 있었다.
‘자기 있는 데로 와서 고생하란 말이잖아.’
심지어 사관학교 입학 이야기는 말이 학교지, 군대에 입대하란 소리다.
결국 이 편지는 일종의 입대 영장이기도 했다.
‘군대를 또 가라고?’
지구에서 정부 소속 마법사로 4년의 의무 복무를 마친 아르민으로선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부터 튀어나올 이야기였다.
군대 두 번 가기만큼은 안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황제 탄신일 때문이라도 카라클로 가야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건데.’
심지어 가주이기도 한 아버지의 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르민이 잠시 고민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자, 와이번이 마당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밀라의 요청에 하녀들이 가져다준 고깃덩이와 물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이렇게 보고 있으면 용이라고 해도 제법 귀엽다고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밀라는 자신을 마법기사라고 소개했다.
비룡 기사단에서 마법으로 후열을 책임지는 직책이라던가.
때문에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다밀라 씨도 제국 사관학교 출신이십니까?”
“예? 아닙니다. 저는 마탑 출신입니다.”
‘······마탑?’
그 말에 아르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
“여기, 커피 드세요.”
“감사합니다.”
다밀라는 마리나가 챙겨온 커피를 그대로 호쾌하게 원샷을 때렸다.
다크 엘프들은 다 저렇게 화끈한 이미지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아르민이지만, 이어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탑이라면, 비발트 출신이란 겁니까?”
마도공화국 비발트.
대륙의 모든 마탑들이 모여 있다는 나라다.
제국이나 다른 왕국에도 마탑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발트에서 파견한 지부일 뿐.
진정한 상아탑은 비발트에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대륙 최고의 선진문물, 기술력, 마법 문화가 꽃피는 곳이 바로 비발트이기도 했다.
“예. 비발트의 마탑에서 학업을 마치고, 제국으로 귀화했습니다.”
다크 엘프라고 해도 차별없이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칼센 제국이었기에.
최적의 직장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 아르민은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을 질문해보았다.
“혹시······. 그 옆구리에 찬 물건 말입니다만.”
“아, 이것 말입니까?”
새삼스레 다밀라가 꺼내든 건.
“······총(Pistol)?”
“예? 이거라면 비발트에 있는 드워프 공방에서 직접 의뢰하여 제작한 마력포(魔力砲)입니다만.”
마력포라 불린 그것의 생김새는 리볼버 권총을 닮아 있었다.
“어떻게 쓰는 겁니까?”
“보통은 이런 식으로, 마탄을 장전해서 사용합니다.”
찰칵. 찰칵.
다밀라는 솔선해서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서 총알을 빼내 장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탄을 만드는 게 꽤 고생스럽지만, 공중전투에선 제법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격렬히 공중기동중인 와이번 위에서는 마법을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보조도구들을 사용한다고 다밀라는 설명했다.
“카일 대위 님께선 잔재주에 기대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도구는 쓰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지요.”
“그건 그렇죠.”
아르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밀라는 불쑥 아르민의 손을 붙잡고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알아봐 주시는 겁니까?!”
“예에, 뭐.”
아르민도 비슷한 생각이었으니, 공감 못할 것도 없었다.
현대 마법사도 결국엔 뭐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입장이니, 피차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나저나 총기류가 있단 말이지.’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소수에게만 공개된 기술인가. 어쩌면 일반인으로선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과연 기술의 메카라는 건가.’
그야말로 선진문물의 보고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 더 마도공화국 비발트를 향한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비발트의 마탑에선 보통 어떤 마법들을 연구합니까?”
“음, 보통 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적색 마탑이나 청색 마탑처럼, 속성의 심화에 대해 연구하는 집단도 있습니다만.”
개중에는 좀 더 다양한 분야로 나아간 집단도 있다며, 다밀라는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자면.
“생명체를 연구하거나, 합성수를 주로 연구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몬스터의 생태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파도 있지요. 뭐, 이런 학파는 거기서도 괴짜 취급을 받습니다만.”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더 구체적인 계획이 머릿속에서 새겨지기 시작했다.
타국, 그것도 움직임이 부자유스러웠던 아르민이 고려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책.
‘이거라면 혹시······.’
그렇게 한동안 다밀라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언도 전했으니, 이만 복귀하겠습니다.”
아르민은 다밀라를 배웅하며 그녀와 악수를 했다.
그때 잠시 무뚝뚝한 시선으로 손을 내려다보던 다밀라는.
“대위 님께선 만약 아르민 님이 마음 상할 이야기를 하더라도 참으라고 하셨습니다만.”
내 신뢰도가 그것 밖에 안 되나? 싶은 심정으로 바라보는 아르민에게, 다밀라는 은은한 미소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이걸 알아봐주시는 안목에 감탄했습니다.”
리볼버를 가리키며 미소를 짓는 것이, 그야말로 속마음이 줄줄 새고 있었다.
생긴 건 헐리우드의 섹시 미녀 배우 뺨치게 생겼는데, 정작 행동은 뭔가 집에서 키우는 골든 리트리버 같은 것이.
어째 묘하게 호감이 가는 아가씨였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뵙겠습니다.”
쿠우우웅!!
다밀라를 태운 와이번이 자리를 박차며 허공으로 날아든다.
멀어지는 와이번의 실루엣을 한동안 지켜보던 아르민의 머릿속으로.
“······그런 방법도 있다 이거지.”
하나 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되어 졸지에 아르민은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주인님이 부르신 거면 얼른 움직여야죠!”
이때 가장 먼저 흥분해서 달려든 것이 바로 마리나였다.
아르민의 시중 담당이니, 그녀도 함께 카라클로 향하게 된 것이다.
“제국의 수도 카라클이라니! 살아생전에 가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게 그렇게 기대 돼?”
“소문으로는 매일 밤마다 파티가 열리고, 하늘에서는 별이 내린 대요!”
“아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하여간 각종 문화가 꽃핀 제국의 수도를 동경하는 한창때 아가씨의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처음으로 마을을 떠나보는 건가.’
세 살 무렵에는 아르민도 카라클에서 살았던 모양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있을 리도 없고.
아르민에게도 이번 여행이 첫 도시행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대륙 최고의 제국 수도 풍경이 어떨지, 아르민도 관심이 생기긴 했다.
당분간 영지 업무는 대리 관리인에게 맡겨둔 채.
여행 채비를 마친 아르민과 마리나는 곧장 마차를 타고 일레인스 영지에서 3일 거리에 떨어진 도시 빈투크로 향했다.
“여기에서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던가?”
“네! 카라클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중계지점으로 향하는 특등열차가 있을 거예요.”
빈투크에 도착하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물류들이 오가며 발전을 이룩한 전형적인 유통 도시의 풍경이었다.
‘그나저나 마력 열차라니,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군.’
그야 마법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세계니까.
그걸 이용한 기술도 당연히 진보했을 터. 소수지만 제국의 핵심을 연결하는데 열차가 쓰인다는 것 정도는 머리로 알고 있긴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레인스 영지를 빠져나와서야 간신히 기술의 결정체인 열차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새삼 일레인스가 얼마나 변두리에 있는 시골 마을인지 실감한 아르민이었다.
“그럼 마리나, 표 좀 사다줄래?”
날도 춥고, 이런 일은 역시 하녀를 시키면 편하겠지. 하는 마음에 아르민이 그리 말하자.
“넵!”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리나는 솔선해서 여관을 빠져나와 역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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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등석······. 특등석······. 아, 찾았다!”
역사에 들어선 마리나는 오래 가지 않아 원하던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거의 열흘 정도 걸린다고 했었죠.’
앞으로 카라클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설레는 가슴을 끌어안고서 돌아온 마리나는 아르민이 잡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도련님! 표 사왔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어디 나가셨나?’
아직 저녁을 먹을 시간은 되지 않았다.
혹시 피곤해서 주무시는 걸까? 아니면 외출을 한 걸까?
마리나가 여러 추측을 하며 망설이는 사이.
끼이익.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건지, 문이 저절로 안쪽으로 열렸다.
“도련님?”
뭔가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마리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응?’
쪽지에는 이런 글귀가 하나 적혀 있었다.
[세 달 뒤에 카라클에서 보자. 그때까지 잠깐 관광 다녀오마.]“······도련니이임?!”
마리나의 절규와 함께.
아르민이 사라졌다.
****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
“어디 보자, 비발트행 열차 표는 어디서 사면 되는 거지?”
그렇게 아르민 홀로 시작한 여행.
그 목적지는 마도공화국 비발트였다.
< 제11장 – 2년 후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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