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33)
내 마법이 더 쎈데-33화(33/203)
< 제16장 – 신좌는 비어있다. (1) >
마도축제가 열리기 이틀 전.
필리푸스 영지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그곳에서 ‘남자’가 눈을 뜨자, 곧장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메디진 님, 나이트 코넬리우스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연락을 담당하는 하급 흡혈귀였다.
정기연락을 취할 시기가 되었건만, 그 회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메디진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놈이 데려간 다른 흡혈귀들은?”
코넬리우스 본인이 아니더라도 부하가 있을 테니, 연락 자체는 취할 수 있을 터.
그러나
“그게······. 나머지 인원과도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메디진의 몸이 멈추었다. 잠시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그 위압감에 하급 흡혈귀는 몸을 떨었다.
그는 메디진이 얼마나 불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메디진은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코넬리우스는 분명 도망친 영애를 잡으러 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 계집의 소재지는 파악했나?”
흡혈귀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여전히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못난 놈 같으니!”
쿠웅!
메디진의 고함에 사방으로 마력이 뻗어져 나갔다.
마력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그 어떤 간부 흡혈귀보다도 유능한 메디진이었다.
그가 내뿜는 마력파에 하급 흡혈귀는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했다.
“메, 메디진 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고작 도망친 인간 계집애 하나 붙잡는 걸 실패해?”
메디진은 평소 코넬리우스의 일 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는 유흥을 즐기기 좋아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남자였다.
‘특히 놈은 필리푸스 영애가 관련된 일에서는 늘 자기가 뭐라도 된 듯이 굴었었지.’
그럼에도 메디진이 그걸 참아주었던 건, 오로지 코넬리우스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드 알트바리아 휘하의 간부 흡혈귀는 총 셋.
나이트 코넬리우스.
룩 메디진.
비숍 카므릴라.
그 중 코넬리우스는 간부 중에서 순수하게 육체 전투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개체를 잡아먹음’으로서 자신의 육체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설마.
‘신성기사단이 냄새를 맡았나? ······아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만큼 그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여왔다.
애당초 알트바리아 클랜이 필리푸스 영지를 점찍은 건 우연 따위가 아니었다.
알트바리아 클랜의 역사는 20년.
그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클랜이자, 로드의 목표는 늘 한결 같았다.
‘태양을, 우리 흡혈귀의 약점을 극복해 보다 완전해지는 것.’
블러드 문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복용하면 일단 흡혈귀에게 태양으로부터 면역성을 부여하지만, 장기간의 복용은 결국 신체를 무너트리고야 마는 것이다.
때문에 그걸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자색 마탑과 연이 있는 필리푸스 영지를 접수한 것인데.
‘정작 영지에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예상과 달리 오르펜 교수의 연구 결과는 오로지 마탑에만 남겨져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최근엔 방법을 달리하여 접근하고 있었거늘.
“······로젠 상회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대업 자체는 순조롭게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대신 비숍 카므릴라가 로스웰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면서, 간섭하지 말라고······.”
콰앙!
분을 참지 못한 메디진이 책상을 내리치자, 하급 흡혈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움찔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단 말이냐!”
당장 대업(大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그놈의 카므릴라는 로드의 총애를 받겠답시고, 메디진을 배제하려고 드는 것이다.
로드의 명을 받았다고?
그게 사실일지라도 공유할 건 공유해야만 했다.
“로, 로젠 상회 측에선 로드의 육체는 순조롭게 재생 중이며, 부활엔 문제가 없다고 연락을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만약 도망친 영애가 오르펜 교수에게 도착하는데 성공했다면? 그래서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잠적이라도 한다면? 로드께서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나?”
하급 흡혈귀는 입을 다물었다.
연구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설사 대업에 성공한다할지라도 그건 반쪽짜리가 되어버린다.
메디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실을 로드께서도 알고 계신가?”
“아직······,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보고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러면 아직 바로 잡을 기회는 있었다.
‘카므릴라가 로젠 상회와 함께 무사히 연구 결과를 손에 넣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실패한다면?
그럼 뒤는 없다.
그 미친년만 믿고 있기엔 사태가 심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직접 움직인다.”
“하, 하지만 그러면 필리푸스 영지는······.”
하급 흡혈귀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지만.
“어차피 필리푸스 영지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진짜 무대는 로스웰이 될 터.”
더는 필리푸스 영지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로드가 완전한 육체를 되찾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 알트바리아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직접 로스웰로 향한다.”
****
“이게 뭐야?”
로드 알트바리아의 육체가 모셔져 있다고 해서 찾아온 아르민이었다.
제 딴에는 엄중한 결계로 보호까지 되고 있는 걸 보아하니,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건 예상했지만.
정작 이곳에선 전혀 예상외의 풍경이 아르민을 맞이해주었다.
“······관이라고?”
한 두 개가 아니다.
당장에 눈에 비치는 것만 해도 족히 수 백 개는 될법한 관의 숫자에 아르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히, 히익, 뭐, 뭐야······?!”
따라온 상인 남자에게도 그건 충격적인 풍경이었는지, 꼼짝없이 얼어붙은 남자는 내버려둔 채.
아르민은 싸늘한 냉기가 고여 있는 내부로 발을 들였다.
쿵.
관을 발로 차서 열어보자, 그 안에는 삐쩍 마른 시체가 들어있었다.
그 뿐이랴.
그 시체의 목에는 기다란 튜브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마치 체내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위한 것처럼.
“어이, 왜 시체가 여기에 있냐?”
아르민의 질문에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요! 어, 어째서 여기에 이런 게 있는 건지 전혀······!”
아르민이 해코지 하리라 생각했는지, 그야말로 필사적인 그 행동에 아르민은 추궁하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놈이 모른다는 건, 로젠 상회와는 별개로 알트바리아 클랜에서 준비한 시설이라는 건가?’
자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시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때 아르민은 관에서 제각기 뻗어 나온 튜브들이 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는 걸 발견해냈다.
“안쪽으로 이어져 있나.”
뚜벅뚜벅.
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방을 지나, 보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수조?”
그 안쪽으로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수조와도 비슷한 것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아르민은 그 안에서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콰아앙! 쨍그랑!
아르민의 마법 발동에, 수조벽이 깨져 나갔다.
아르민은 바닥에 점점이 고여 있는 액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붉은색의 액체라니······. 설마.”
끈적이는 이 내용물은 아르민의 기억에도 있는 것이었다.
“블러드 문.”
그제야 주변에 늘어서 있는 각종 장비와 기구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르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긴 로드 알트바리아의 안식처 따위가 아니었다.
볼 것도 없이.
“블러드 문을 만들던 장소란 건가.”
“하, 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요! 블러드 문은 분명 필리푸스 영지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거라고······!”
“처음부터 전부 쌩구라였단 소리지.”
있어야 할 로드 알트바리아가 없고.
있을 리가 없는 블러드 문의 제조시설이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대체 로드 알트바리아의 육체라는 건 어디 있다는 소리일까.
그리고 또 하나.
“여기서 만들던 블러드 문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내부 그 어디에도 제조한 블러드 문을 모아놓은 시설 따윈 없었다.
마도 축제를 코앞에 둔 지금.
로젠 상회의 지하에 마련된 제조 시설.
그리고 사라진 블러드 문의 행방까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아르민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투웅.
“이건.”
자신의 마력신경에 전해져 오는 ‘경고’를 캐치한 아르민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경고가 전해져 오는 방향은 바로 자색 마탑이 있는 곳이었으니.
“······제미니.”
사전에 코넬리우스에게 목표로 노려지고 난 뒤, 또 비슷한 일이 있을까봐 아르민이 설치해둔 수호 마법이 발동한 것이 분명했다.
아르민은 몸을 일으켰다.
“야, 남은 미스릴은 어디 보관하고 있냐?”
“예, 예에?”
남자를 다그쳐 나머지 미스릴의 위치를 알아낸 아르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젠 상회의 지하를 나섰다.
필요한 것을 손에 넣은 채, 아르민은 제미니가 있는 장소를 향해 내달렸다.
****
야심한 시각.
제미니는 여전히 잠에 들지 못한 채,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후우웅.
어째 창밖에서 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유난스러운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최근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아버지.’
할아버님이나, 자신을 구해준 에드윈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써 밝게 행동하고자 했던 제미니지만.
‘지금 내가 이러는 순간에도 아버지와 영지는······.’
필리푸스 영지는 지금도 흡혈귀들에게 착취당하고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 한켠이 썩어 문드러지듯 아파왔다.
블러드 문이라는 약을 빼내어, 여기까지 도망쳐 오는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그걸로 충분한 걸까?’
제미니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졌다.
뭔가 좀 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로, 가슴 한구석에서 꾹 하고 올라오는 고통에 입술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제미니, 네가 데려온 청년은 정말 굉장하구나.”
“······할아버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제미니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방문 앞에 오르펜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할아버님이 여기에?’
어딘지 모르게 할아버님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달랐다.
평소처럼 허허롭고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그것이 아니라.
할아버님의 두 눈동자는, 어째선지 제미니를 바라본 채 묘한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저, 할아버님. 여긴 어쩐 일로······.”
제미니가 목소리를 내어보았지만, 할아버님은 대답하는 대신 홀로 중얼거리듯 말을 툭 내뱉었다.
“이래서야······. 내가 공들여 준비한 게 전부 소용이 없어졌구나. 코넬리우스도, 카므릴라도······.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로젠 상회를 이용해 연기하려고 했던 행동이 전부 수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할아버님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카므릴라가 당했다. 그때 보았던 마법은······ 그야말로 상식 외의 것이더구나. 정말로 굉장해. 대체 저런 재목을 어디서 만난 것이냐? 제미니.”
“하, 할아버님······.”
한 걸음, 두 걸음.
오르펜은 제미니에게 다가들었다.
낯선 분위기에서, 제미니는 저도 모르게 공포심을 느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알던 할아버님이 아니라고.
대체.
“다, 당신은 누구죠?!”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제미니. 나는 네 할애비지 않더냐?”
그 손이 다가왔다.
제미니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곤, 침대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툭 하고 침대 등받이에 몸이 부딪쳤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일생의 이해자를 만난 걸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그 청년이라면, 그처럼 대단한 마법사라면 신좌에 이르고자 하는 날 이해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전부, 제미니. 너의 덕이라면서.
“나의 사랑스러운 걸작, 제미니······.”
“하, 할아버님!”
제미니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와 더불어, 오르펜의 손이 그녀에게 닿은 순간.
파직!
강렬한 스파크가 튀기며, 오르펜은 두 어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오르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결계? 크흐흐. 놀랍구나. 에드윈 군은 설마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안배해놓았다는 겐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면서.
“좋다. 어차피 오늘 낮이면 모든 것이 판가름 날 터, 너도, 에드윈 군도 허무하게 끝을 내고 싶진 않겠지.”
오르펜은 몸을 돌렸다.
방문을 떠나기 직전.
“에드윈 군이 온다면 내 실험실에 들러보라고 말을 전해주려무나. 그렇다면 그 청년 또한 내 대업을 이해할 수 있을 테지.”
그 말을 끝으로 오르펜 교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사라질 때까지, 제미니는 그저 침대에 주저앉은 채로 거친 호흡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할아버님이 보여준 그 낯선 모습 속에서.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
아르민이 마탑에 도착했을 때, 제미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였다.
“하, 할아버님이······.”
아르민은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님의 반응과 태도가 뭔가 이상했다면서.
모든 설명을 들은 아르민은 제미니에게 자신이 추측하던 말을 건넸다.
“이번 흡혈귀 사태는, 아마 댁의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
“······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제미니는 반문을 했지만.
아르민으로선 이미 거의 확신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건.
“직접 자기 입으로 실험실로 찾아오라 했다. 이 말이지.”
대체 오르펜이 무엇을, 어떻게 노리고 있는지가 의문일 뿐.
아르민은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실험실로 가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며?”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찾아가서, 아르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혹을 풀 생각이었다.
“넌 어쩔 생각이냐?”
아르민의 질문에 제미니는 여전히 충격 받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 는······.”
그녀는 망설이는 얼굴로 주저했다. 아르민이 말한 할아버님과 흡혈귀과 관련 있다는 말을 믿기 힘들었으니까.
다만.
“진실을 확인하는 건 어디까지나 네 몫이다.”
아르민의 그 단정에, 제미니는 망설임을 끊어내고 비틀거리는 걸음이긴 하지만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이 두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제미니는 아르민의 뒤를 따랐다.
****
아르민과 제미니는 실험실에 도착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아르민은 오르펜 교수가 말했던 자료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오르펜 교수가 행해온 실험을 기록해온 실험 일지였다.
그것도.
“20년의 분량이란 말이지.”
오르펜 교수는 어째선지 이것을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아르민이라면 이걸 읽고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에드윈 씨, 그게······.”
“그래, 댁의 할아버지가 쌓아온 20년의 기록이야.”
아르민은 천천히 첫 책장을 열어보았다.
그 시작 문구는 이런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20년 전 그날.
– 더 이상 마력 서클이 성장하지 않는다.
팔랑.
– 내 육체와 정신은 성장을 멈추었다. 어째서, 몇 번이나 타개책을 찾고 방법을 궁구해보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팔랑.
– 내 육체는 한계를 맞이했다. 자색의 마탑주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던 내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생명체란 선고를 받은 것이다.
팔랑.
– 나를 제치고 마탑주 자리에 앉은 그를 축하했다. 재능이 뛰어난 자. 마치 대지를 향해 끊임없이 따사로운 은혜를 내리는 태양처럼. 마르지 않는 마력을 지닌 그는 말 그대로 태양과도 같은 자, 나보다도 더욱 완벽에 가까운 생명체였던 것이겠지.
팔랑.
– 하지만 포기할 생각 따윈 없다. 생각을 바꾸면 될 일이다. 나 자신이 태양이 될 수 없다면,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달처럼.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내 육체가 완전하지 않다면, 반대로 완전한 육체를 내 손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팔랑.
– 무작정 생명체를 만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나는 순서를 정했다. 완전한 생명체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팔랑.
– 첫째. 생명체로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둘째. 마법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지 알아내고 싶다. 셋째. 마법사에겐 반드시 필요한 마력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어야만 한다.
팔랑.
– 운이 좋았다. 죽어가는 흡혈귀의 사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걸 이용한다면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수 있겠지.
팔랑.
– 자, 나는 내가 만들고자 한 것들의 이름을 정했다.
타 개체를 섭식함으로서 능력을 흡수하는 자 : 코넬리우스.
초월종으로서 마법과는 궤를 달리한 뛰어난 힘을 보유한 자 : 카므릴라.
마력을 조종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마법사로서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벼린 자 : 메디진.
팔랑.
– 내 정체를 드러낼 순 없었다. 지금의 지위를 잃을 순 없으니까. 대신 이 놈들을 이용해, 완전 생명체로 향하는 약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름은 정해 놨다. 블러드 문. 태양에 이르기 위한 달의 이름이다.
팔랑.
– 아아, 드디어 내 이상에 가장 가까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었다. 쓸모없는 아들놈이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지금부터 담금질 해나간다면 충분히 완전한 생명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을 터. 추후 내 인생을 전부 쏟아 부울 이 역작을.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팔랑.
– 나의 사랑스러운 걸작 ‘완전생명체(完全生命體) 제미니.’ 라고.
“아···, 아아······.”
책장을 넘겨 도달한 그 문구 앞에, 제미니는 주저앉았다.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채, 대체 자신이 읽은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책장을 넘긴 아르민이 도달한 맨 끝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실험은 전부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이 결과를 토대로 대업을 치르는 그날, 나는 마침내 완전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을 터.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을 통해.
– 나는 태양의 뒷자리를. 비어있는 신좌(神座)를 획득한다.
인간조차 뛰어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광기의 집념이 새겨진 말은, 이렇게 끝맺음하고 있었다.
– 이윽고 나는 신(神)이 된다.
< 제16장 – 신좌는 비어있다. (1)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