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39)
내 마법이 더 쎈데-39화(39/203)
< 제19장 – 착각과 흔적 (1) >
“뭐······?”
위대한 존재? 그게 뭔데?
아르민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아르민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자신을 그레이시아라고 밝힌 하이엘프는 더욱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숲의 인도자란 이름을 자처하면서도 마법의 종주이자, 모든 생명체의 우두머리라 불리는 용족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제 자신의 미욱함을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위대한 존재란 웃기지도 않는 수식어는 드래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마법의 종주라니, 무진장 거창하구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거 참.
이 아가씨.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날 용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예?”
설마 그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혹은 이걸 자신을 시험하는 모종의 시련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레이시아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주문의 영창 없이 순수하게 의지와 말로써 마력을, 그리고 자연의 정령을 따르게 하는 용언(龍言)은 필시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기적······!”
그건 당연한 상식이라고 떠들어대는 엘프 아가씨였지만.
‘말로 마력을 움직이는 건 현대 마법에서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닌데 말이지.’
오히려 마법 중에는 도구나 외적인 요인이 배제되었을 때 사용 가능한, ‘말만을 이용해 마력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 있을 정도다.
여기에 용언이니 뭐니, 해봤자 아르민으로선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실제로.
‘정령을 멈추게 한 것도 단순히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로서 4대 정령에게 간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상위 연금술사로서 가진 기호를 이용한 단순한 언질.
이 또한 아르민에겐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 그리고 또···! 이렇게 미처 자연스럽게 위엄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고, 위대한 존재이신 걸 확신했습니다!”
아첨이라도 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이엘프의 갖다 붙이는 듯한 그 말에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위엄은 무슨.’
그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동태 눈깔이냐고 묻고 싶어질 정도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바로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바로 그 뒤로.
“감히 아는 척을 한 것은 죄송합니다. 하오나 150년 전을 기점으로 위대한 존재들께선 전부 하계의 일에서 손을 떼셨다고 들은지라, 예언 덕분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위대한 존재를 뵙게 된 것도 전부 세계수의 인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르민의 몸이 멈추었다.
“예언?”
“예. 저희 하이엘프 일족 또한 일주일 전, 생명의 어머니 세계수로부터 예언을 받았습니다.”
아르민의 반문에 그제야 알아주었다는 듯이 반색한 그레이시아였다.
아르민은 그녀를 향해 떠보듯 물어보았다.
“······너희에겐 어떤 식으로 예언이 내려왔지?”
“아, 예언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 북방의 얼어붙은 땅에서 불길한 별이 떠올랐다. 숲의 아이들이여, 위협에 대비하여라.
라고.
“그 예언을 확인하기 위해, 제가 숲의 대표로서 이렇게 인간 용병으로 위장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그 인도를 따르는 길에서.
“위대한 존재께서도 함께 하고 계셨다니. 여전히 하계를 굽어 살피고 계셨군요!”
그 감격스러워하는 태도에 아르민은 차마 초를 치는 말을 꺼내기가 뭣했다.
게다가.
‘드래곤이 150년 전에 자취를 감추다니?’
그것부터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드래곤은 신화속의 존재가 아니었나?
아르민이 기억하기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족히 수백 년은 지난 이야기였다.
무려 제국의 건국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아르민이 자기 눈으로 보았던 용이라 해봐야, 인간이 길들였다는 와이번 정도였지만.
사실 그건 진짜 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공룡하고 악어 정도의 차이쯤 되려나.
‘아니, 공룡은 악어가 아니라 새랑 비교해야 되던가?’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 따위야 아무래도 좋지만.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하이엘프 일족은 150년 전까지만 해도 드래곤과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연을 수호하고, 그 누구보다 비밀스러운 종족으로서 베일에 쌓여있는 이들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거나.
‘자취를 감춘 드래곤에, 세계수의 예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때마침 자신이 향하는 더블린과 관련된 화제다.
이래서야 흥미가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르민은 코를 벌름거렸다. 냄새를 맡았다.
그건 호기심의 냄새였다.
“흠······.”
흥미롭다는 듯이 흘린 침음에, 앗 하고 그레이시아는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위대한 존재를 뵌 게 너무나도 기뻐, 이렇게 갑작스럽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심기를 거슬렀다면 부디 용서해주시길······!”
그 예민한 반응 덕에, 아르민의 촉이 움직였다.
아직 진실을 정정해둘 기회는 있었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인간······. 아니, 생각해보면 환생까지 한 입장에서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에도 어폐가 있지만.
일단 드래곤 같은 게 아니라고 진실을 알릴 수야 있겠으나.
‘그냥 내버려둘까.’
그레이시아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게, 불온한 마음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면 내버려둬도 문제가 없을 터.
오히려.
‘착각한 채로 냅두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고.’
알아서 용 취급해주겠다는데, 여기에 대고 찬물을 끼얹기도 뭣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래서 그 예언을 확인하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예!”
어디 한 번, 이 흐름에 올라 타보자고.
“그리고 너는 그 예언이 말하는 불길한 별이라는 게, 더블린에 나타난 던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예, 정보를 모으다보니,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군.”
“위대한 존재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매우 든든할 겁니다!”
그레이시아는 꼼짝없이 아르민 또한 그 예언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거기에 맞춰 움직여볼까.
그나저나.
‘대체 더블린에 뭐가 있다는 거지?’
어째, 점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
거츠 상단은 거침없이 더블린이 있는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계절은 겨울.
더구나 점점 더 북쪽으로 달리고 있던 만큼, 상단의 일행은 매서운 추위, 그리고 싸늘한 한기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래봤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르민은 보온 마법을 통해, 마차 구석에 앉아 홀로 쾌적한 여행을 즐겼다.
그런 아르민을 보며 그레이시아, 아니, 이제는 그렉으로 다시 위장한 하이엘프 아가씨가 묘하게 감탄하는 것이.
딱 봐도 ‘역시 위대한 존재께서는 추위도 타지 않는 군요!’ 라고 생각하는 게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하하! 상단에 마법사가 찾아와주다니, 든든하군!”
평생을 칼밥을 먹고 온 게 분명한 중년 용병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렉이 있긴 하지만, 원거리 원호가 가능한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남자 또한, 칼을 쓰는 용병이었으니.
야영지를 만든 지금, 자기 전에 할 일도 없겠다.
각자 사는 이야기나 해보자고, 용병들이 한 자리에 모여든 것이다.
“더블린까지는 이제 삼일 정도 남았던가?”
“추워서 그런지 가는 길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구만.”
“크으, 몬스터라도 만나면 내 화려한 검술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화려한 검술은 무슨, 그 둔해빠진 몸뚱이로는 설원곰이랑 씨름도 못할 것 같구만. 형씨!”
“뭐시라?”
“푸하하하!”
추위를 이기기 위한 술이 한 잔 돌고, 절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용병들이 저마다 걸쭉한 욕설과 저질스러운 개그를 섞어가며 떠들어댔다.
‘용병이란 어딜 가든 비슷하군.’
아르민이 술을 홀짝이며 그런 생각을 할 쯔음.
“고상한 도련님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마법사 나으리!”
용병 하나가 아르민의 등짝을 쳐대며 낄낄거릴 때라면.
“······그만두십시오.”
은근슬쩍 그렉이 끼어들어 방해하려고 드는 등.
묘한 해프닝이 잠깐씩 일어나긴 했지만.
“오늘따라 그렉이 왜 저러지?”
“최근에 묘하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행동하더란 말이지.”
그때마다 용병들은 안 그러던 놈이 저런다며, 웅성거리고는 했다.
뭐, 아르민을 드래곤으로 착각하고 있는 만큼, 용병들이 하는 행동에 애가 탔던 것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아르민은 피식거리며 지켜볼 뿐이었다.
‘딱히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없군.’
용병들이 떠드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개 대수로울 게 없었다.
세상을 유랑하며 겪어온 이야기를 적당히 허풍을 섞어 떠들거나, 어디선가 들었다면서 출처도 알 수 없는 뜬소문을 떠들 뿐인 시간.
“요즘에 칼센 제국 쪽에서는 노예 무역이 성황이라는 모양이더군.”
“도망치는 노예를 붙잡으려고 추노꾼도 많이 고용한다지? 이번 일이 끝나면 그쪽으로 가볼까.”
“조만간 황제 탄신일이 다가온다 하니, 일거리도 많을 거야.”
그런 말이 오고갈 때마다 그렉의 기세가 슬금슬금 요동치는 걸 보면.
‘용케도 참고 있구만.’
그녀로선 노예니 하는 이야기를 참기 힘들었던 것이겠지.
엘프 특유의 인간을 향한 적대감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참 힘들게도 산다. 싶어 아르민이 피식 웃고 있는데, 문득 용병 하나가 이런 말을 꺼내들었다.
“헌데 그 소문 들었나? 이번 더블린 건수가 원래 예정에 없던 거라고 하더군.”
“예정에 없었던 거라니?”
얼큰하게 취한 용병이 입을 열었다.
“바로 얼마 전에 거츠 씨 거래가 삐걱거렸나 보더라고, 듣기로는 로젠 상회랑 거래하려던 게 파투가 났다고 하던데.”
‘음?’
로젠 상회.
알트바리와 흡혈귀 클랜과 엮여 있었기에, 아르민이 직접 자기 손으로 박살낸 상회였다.
어째서 갑자기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나 했더니.
“그래서 축제 때 크게 한 건 잡으려고 한 게 제대로 안 풀렸다나 봐, 그때 딱 더블린 이야기를 들었다. 이거지. 더블린에 엄청난 던전이 나타났는데, 아직까지도 공략에 성공한 이들이 없다고 하던가.”
“원래 던전이라는 게 공략하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리잖나.”
다른 용병의 첨언에도 먼저 말을 꺼낸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듣기로는 이번 일은 특히나 더 심상치 않은 것 같다면서.
“더블린과 관련해서 조금 껄끄러운 이야기가 돌고 있더란 말이지. 그쪽으로 향한 상단이나 용병단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나? 제대로 정보나 돈이 돌지도 않는 모양이고. 거츠 씨가 실패를 만회하려고 그걸 노리는 모양일세.”
“······그러고 보면, 이번 상행은 이상할 정도로 서두르는 모양새이긴 했지.”
“에이, 그래도 단순한 소문 아닌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를 걱정을 술잔에 흘려보내며, 용병들이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는 사이.
‘······소문이라면, 예언과 관계가 있는 일인가?’
아르민 또한 그런 의문을 떠올렸지만.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이상, 달리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이내 달은 저물고, 상행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졌다.
****
마침내 더블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보름의 상행은 별 다른 해프닝 없이, 무사히 그 끝에 다다른 것이다.
“자! 이곳 평원만 지나치면 더블린이라네! 모두 힘내주시게!”
거츠의 독려를 들으며, 상단이 얼마나 나아갔을까.
상단 앞에 이상한 흔적들이 나타났다.
“······이게 뭐야?”
“마차의 잔해······?”
“시체들도 있습니다!”
더블린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째선지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잔해와 얼어붙은 시체 따위가 나타난 것이다.
이건.
“무장의 상태를 보아하니, 앞서 움직인 상단이 틀림없습니다. 용병패도 발견했습니다.”
용병 하나가 흘린 말에, 상단 사이로 동요가 퍼져 나갔다.
소문으로만 알음알음 돌고 있던 이야기가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이다.
결국 상단은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나아가긴 위험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인가!”
용병들의 아우성에도 거츠는 단호히 대처했다.
“용병이 계약을 했으면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애당초 이건 계약에 없던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소문을 모를 줄 아십니까! 여기엔 뭔가 있습니다!”
뭔가가 있다.
모두가 은연중에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자.
단숨에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바로 이때,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며 점차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야 합니다. 최소한 저희들만으로 더 이상 진행하긴 무리입니다.”
그렇게 용병 단원이 단호히 상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였다.
두두두두!!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진동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 게 상단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얼마나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까.
용병들은 그 진동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원곰 무리다!”
“놈들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제길! 마차를 가도 옆으로 물려! 용병들은 전투 준비를 서둘러라!”
노회한 용병의 지시로 용병들은 서둘러 준비를 마쳤지만, 그것도 허무하게 설원곰 무리는 용병들과 부딪치기보단, 장애물을 피하듯 옆으로 빠져나가 도망쳐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용병들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가슴에 묵직하게 올라온 위화감을.
“에드윈 씨······.”
그레이시아가 아르민의 가명을 입에 담았다.
그녀 또한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것이리라.
바로 그때.
쿠웅
진동이 울렸다.
쿠웅.
쿠우웅!
그 둔중한 진동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처음엔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당황하던 상단의 인원들이었지만.
바로 저 멀리에서.
쿠웅!
진동과 함께 다가오는 ‘그것’을 목도한 용병단 사이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고, 골렘인가?”
“하지만 저런 크기의 골렘은 본적이 없습니다!”
휘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며 다가드는 것은 움직이는 거인이었다.
크기는 4M쯤 될까.
전체가 묵빛으로 번뜩이는 동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하며 위압적이었다.
그가가가각! 쿠웅!
놈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동에 용병단은 무게 중심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저, 전투를 준비해라!”
“저 괴물하고 싸울 생각이십니까······?!”
용병들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도 아르민은 그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민은 저것의 정체를,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현대 마법이 이룩한 성과 중 하나라고 칭송 받던 그것은.
“······저건 기간테스잖아?”
난데없이,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흔적과 마주쳤다.
< 제19장 – 착각과 흔적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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