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2)
내 마법이 더 쎈데-42화(42/203)
< 제21장 – 제국으로 향하는 길 (1) : 조우 >
기록의 확인이 전부 끝났을 때.
“······방금 그 목소리는 뭐였을까요?”
그레이시아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리 입을 열었다.
마력기록장치를 모르는 그녀로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나 아르민은 정확한 답을 주는 대신.
“글쎄다.”
은근슬쩍 그런 말로 얼버무렸다.
굳이 진실을 알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까.
“방금 그게 생명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과 관계있는 걸까요?”
그녀가 얼어붙은 북방의 대지까지 찾아온 이유.
그건 애당초 하이엘프가 모시는 세계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 북방의 얼어붙은 땅에서 불길한 별이 떠올랐다. 숲의 아이들이여, 위협에 대비하여라.
아르민 또한 그 예언의 의미가 궁금하던 참이다.
‘우선 북방이라는 말부터가 너무 모호해.’
그녀는 더블린에 나타났다는 던전이 의심스럽다고 여겨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지만.
정작 이곳에서 아르민이 발견한 건, 후배 민세희의 흔적일 뿐이었다.
‘설마 위협이라는 게 민세희를 가리키는 걸까?’
잘 모르겠다.
별 다른 정보나 단서가 없는 지금으로선 속단하는 것부터가 금물일 터.
결국 아르민은 아무런 결론도 내지 않은 채로.
‘잠깐 보류해둘까.’
포기할 건 포기하고, 곧장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지금 아르민이 우선해야할 일은 따로 있었다.
민세희를 만난다면, 뭐든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 뒤로 아르민은 공방 내부를 뒤져보았다.
‘제대로 남아있는 물건은 없나.’
다만 막상 쓸만한 건 찾지 못했다.
애당초 공방의 시설 자체가 워낙 노후화된 데다, 이미 쓸만한 건 앞서 후배가 전부 챙겨간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아르민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마력기록장치만을 챙겼다.
‘나중에 만났을 때를 대비한 연결 고리 정도는 필요할 테지.’
직접 이동해온 것으로 보이는 민세희와는 다르게, 아르민은 강재민이자 강재민이 아닌 입장이었다.
‘나야 녀석을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겠지만.’
이 세계에서 환생한 아르민은, 전형적인 귀족 도련님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모습이 달라졌어도 서로의 진정한 영혼을 느낀다! 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꿈 같은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는 것부터 빡셀 거란 말이지.’
그러니 최소한 마력기록장치를 작동시키는 모습이라도 보여준다면, 그녀를 설득하는데 보탬이 될 거라고.
아르민은 판단했다.
“이 정도면 됐나?”
챙길 건 전부 챙긴 뒤, 공방을 떠나기 직전 아르민은 공방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생활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장소.
다른 세계로 떨어진데다, 자신이 머물던 마을에서 도망친 끝에 도착한 이 폐허와도 같은 장소를, 후배는 지난 수십 년 간 보금자리로 이용해왔다.
그래서일까.
“······떠나기 전에 적당히 공방이나 강화해둘까.”
이대로 떠나는 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 아티팩트 제작 쪽은 유능하긴 했는데, 마법진 설치 쪽은 영 꽝이었단 말이지.’
실제로 이곳 공방에서 작동하는 미로숲 마법은 아르민에게 있어선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물건이었다.
만약 아르민이었다면 단순히 헤매다가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이 공방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미로를 구축했을 것이다.
‘그럼 여기에다 인식 저해 마법을 추가하고, 아예 망각 마법을 강화하는 쪽이 낫겠군.’
다행히 공방의 핵을 이루는 시설 자체는 살아있었으니, 이런 추가 업그레이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아르민이 이러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고······.’
뭣보다 후배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던가.
선배로서 대견스러운 것도 있었고, 어쩌면 이곳이 지금 세계에서 후배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안식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걸 존중해서라도 머문 자리는 깨끗하게 해두는 것이 문명사회 일원의 예의겠지.’
두우웅.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마력의 기파를 마지막으로, 아르민은 그레이시아와 함께 공방 밖으로 나왔다.
****
밖으로 나오자 아르민은 던전 근처를 배회하던 거츠 상단과 만날 수가 있었다.
처음엔 마법 효과로 비몽사몽하던 그들이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자.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자기들이 던전을 공략했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런 소득도 없다니······.”
거츠가 세상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그리 떠들어대는가 하면.
용병들이 저마다
“던전 공략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는데?”
라며 기뻐하는 걸 보면 미로숲 마법의 효과가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이게 에드윈 님이 말씀하셨던 함정 마법의 효과로군요.”
그레이시아가 마법의 효과를 꿰뚫어본 아르민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며 “역시 위대한 존재십니다!” 라며 감탄하는 바람에 괜히 낯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사소한 해프닝과 함께 일행은 더블린으로 복귀했다.
“한동안 내가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며 던전 근처로 접근하는 이들을 막을 생각이네.”
사냥꾼 필머는 이후로 있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직접 움직이겠다고 말을 전해왔다.
거츠 상단 덕에 더 이상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기도 했거니와.
“자색 마탑주마저 실종되었네. 더블린의 주민이 되어서 더 이상 희생이 일어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아무래도 필머는 사명감 비슷한 걸 느낀 모양이었다.
미로숲 마법을 아르민이 보강하여, 앞으로는 던전 입구를 찾는 것부터 불가능해질 테니.
필머의 저런 행동은 무의미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버려둘까.’
알아서 조심해주겠다는데, 딱히 초를 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또 하나.
“전부 여기에 모여 있었구만.”
더블린에서도 제법 거리가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
그곳에서 아르민은 사라진 기간테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이런 깊숙한 구석에 모여 정지해있는 걸 보면, 처음부터 민세희는 이걸 노리고 있었던 것이겠지.
아마 기간테스를 이용해, 공방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을 사전에 막은 뒤.
이후에는 무의미하게 피해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자동으로 기간테스들이 폐기 되도록 타이머를 맞춰둔 것이리라.
아르민이 기억하는 민세희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놔둘 수는 없겠지.’
깊은 숲속이라고는 하나, 다른 누군가의 눈에 띌 가능성이 아예 제로는 아니었다.
“은폐.”
따악.
손가락을 튕기며, 아르민은 직접 자기 손으로 기간테스들에게 은폐 마법을 걸어 흔적 자체를 지웠다.
추후 다시 쓰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 그때까지 적당히 숨겨둘 요량이었다.
이런 식으로 더블린에서 뒤처리를 하는 데만 꼬박 하루를 쓰고 나서야.
다음날.
마침내 아르민은 더블린을 떠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
다각. 다각.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가도 위를 이두마차 한 대가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다만 놀랍게도 마부석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으니.
만약 지나가던 여행객이 이 광경을 보면 귀신 들린 마차라면서 기겁이라도 할 테지만.
“사람이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걷는다니,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까 신기한 걸.”
아르민은 흘낏 앞서 묵묵히 걷는 말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동물들은 말해주면 잘 알아듣는 편이거든요. 말해도 못 알아먹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비해선, 차라리 이 아이들이 더 똑똑한 법이지요.”
이런 조화를 부린 것은 당연하게도 하이엘프인 그레이시아였다.
인간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야 그렇다 치고.
아무래도 하이엘프들에겐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스킬이 있는 모양이었다.
‘엘프는 대개 자연의 인도자라고 불리곤 했었으니까.’
드워프가 장인으로서 가진 스킬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리라.
새삼 이종족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실감하면서.
아르민은 눈이 소복히 쌓인 가도를 내다보았다.
용병들과 헤어져, 더블린을 떠나온지 어느덧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지금부터 제국으로 향하려 한다는 아르민의 말에, 용병들이 깜짝 놀란 모습으로 만류했다.
“북방의 대지를 마차만 타고 뚫고 지나가겠다고? 차라리 로스웰로 돌아가서 열차를 타는 게 낫지 않나?”
확실히 무모한 도전이긴 했으나.
한시라도 바삐 후배의 뒤를 쫓으려는 아르민에겐 돌아갈 시간 자체가 없었다.
때문에 대충 혼자라도 움직일 생각이었으나.
“제가 따라가겠어요!”
바로 거기에서 달라붙은 것이 바로 하이엘프 아가씨인 그레이시아였다.
“아직 예언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이상······. 위대한 존재의 여정에 함께 하면서, 그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요.”
괜한 혹을 달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 처음엔 거절할까 생각한 아르민이었지만.
그레이시아는 의욕적으로 눈을 빛내며 자신을 어필해왔다.
“분명 제가 도움이 될 테니까요!”
“도움이 된다고? 네가?”
“네! 도움이 된답니다!”
‘하이엘프라는 놈들은 전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아르민이 하이엘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라고 해봐야, 고귀한 혈통인지라 제국이나 왕국에서도 높으신 분들과만 어울리는 대단하신 존재란 느낌이었는데.
막상 여기서 만난 그레이시아를 보고 있자면.
‘왠지 연구실에서 다른 녀석이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난단 말이지.’
이름이 바둑이였던가.
최소한 하이엘프라면 여행에 있어 도움이 될 때가 있긴 있겠지.
까짓것 카라클로 향하는 동안 심부름꾼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아르민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도움 안 되면 알아서 해.”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였다.
이 아가씨는 아르민의 으름장처럼.
도움이 되지 못하면 위대한 존재가 자기를 두고 갈 것이라고 위기감이라도 느낀 모양인지.
매사 필사적으로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으니, 아르민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그저.
‘조금만 이대로 내버려둘까.’
하는 행동이 귀여워, 잠깐 동안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기로 마음 먹은 참이었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지금부터 민세희의 뒤를 쫓는 건데.’
아르민은 가는 동안 후배를 수소문해볼 생각이긴 했지만, 과연 소득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북방의 땅 자체가 워낙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역인지라, 사람을 접하는 것부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그 왜,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고.
애당초 민세희는 3일 전에 먼저 출발한 입장이다. 억지로 따라가려고 해봐야 엇갈릴 가능성도 높았고.
싫어도 카라클에 도착하면 만날 수 있을 테니, 아르민은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딱 한 가지.
기록에도 녹음되어있던 것처럼, 후배가 과연 카라클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건지.
그게 우려가 되긴 했지만.
‘녀석은 나보다 더 합리적인 놈이니까.’
기간테스가 정지한 모습을 보고, 아르민은 지난 150년 간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민세희는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는 후배 그대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런 부분에선 안심해도 되리라.
남은 건 카라클로 향하는 것 뿐.
‘가는 사이에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보통 그런 기대를 하면, 언제나 배신당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사라고들 하던가.
마차를 타고 느끼던 조용한 겨우내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두두두두.
묵묵히 얼마나 마차를 타고 가도를 달렸을까.
쏴아아아~
저 멀리서부터,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와 함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눈의 숲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아르민의 귓가에 닿았다.
이건.
“······에드윈 님.”
“그래, 쫓아오는 놈들이 있군.”
마력신경 바깥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인기척.
그건 숲에서 전해져 오는 기척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 기척들이 숲에서 매복을 하고 있다거나 한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나무에서 나무를 타고 움직이듯, 야생동물과도 같은 움직임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평범한 산적 같은 게 아니다.
그 이전에 이런 얼어붙은 대지에서 산적질을 하고 살아가는 얼간이가 있지도 않겠지만.
그렇다면 이건.
“동포의 기척이에요.”
“······뭐?”
그때, 그레이시아가 꺼낸 말에 아르민은 의외라는 듯이 목소리를 흘렸다.
동포라면? 그 동포?
“같은 엘프라고?”
“네.”
그리고
– 멈춰라.
경고와 함께, 말들이 저절로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또한 엘프의 스킬로서 말에게 직접 말을 건넨 것이다.
‘어째서 엘프가 우리를 가로 막는 거지?’
아마도 상대는 북방에서 살아가는 엘프일 터.
하지만 그런 그들이 왜 지나가던 마차를 붙잡는단 말인가?
‘차라리 전부 박살내고 가버려?’
슬쩍 아르민이 그런 과격한 생각까지 했을 때였다.
“여기는 제게 맡겨주실 수 있나요? 에드윈 님?”
그레이시아가 의욕적으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상대가 엘프라면, 하이엘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을 테니까요.”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기보단, 엘프로서 고귀한 핏줄이 가진 발언권을 이용하겠다며.
그레이시아가 보여준 자신만만한 태도에, 아르민은 깊은 흥미를 느꼈다.
‘엘프들이 핏줄의 고귀함에 따라 명령을 강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르민이 보인 그 모습을 허락이라고 판단한 건지.
“지켜봐주세요···! 제가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드리겠어요!”
그레이시아는 다급하게 마차에서 내려서려다.
그대로 발이 마차 문턱 걸려 중심을 잃었다.
“꺄악!”
귓가를 스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얼씨구.’
아르민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람이 일었다.
< 제21장 – 제국으로 향하는 길 (1) : 조우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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