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3)
내 마법이 더 쎈데-43화(43/203)
< 제21장 – 제국으로 향하는 길 (2) : 계획 >
슈아아악.
아르민이 마법으로 일으킨 바람이, 때 마침 발이 걸려 넘어지려던 그레이시아를 감싸 안는다.
“아.”
꼼짝없이 넘어져서 아픈 꼴을 당하리라 생각했던 그레이시아가 그 따스한 바람에 잠시 놀라 넋을 놓은 사이.
아르민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멈춰라. 인간.”
주저앉은 그레이시아 대신, 아르민을 향해 경고를 발하는 이들이 있었다.
마차가 나아가던 가도 건너편.
거기엔 세 명의 엘프가 경계심을 품고서 아르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 그레이시아와는 분위기부터가 다르군.’
하이엘프였던 그레이시아가 기다란 귀에 금발을 가진, 전형적인 엘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르민을 가로막은 그들은 거친 분위기를 풍기는 사냥꾼과도 같은 이들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은발이라니, 북방의 엘프들은 다 이런 생김새인가?’
그밖에도 눈이 많이 오는 지형에 맞추어, 새하얀 색으로 물들인 두꺼운 옷감과 더불어, 날카롭게 벼려낸 칼과 화살촉을 보고 있노라면.
딱 봐도 그들이 호의를 가지고 접근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당장 여기서 보이는 엘프는 세 명이었지만.
‘숨어있는 기척은 대강 열다섯 정도인가.’
나름 숨는다고 숨은 모양이지만.
가도 옆으로 펼쳐진 숲속 너머에서 마력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기척이 있었다.
어지간히도 경계하고 있구만, 하는 감상을 머리 한구석으로 떠올리면서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나가던 사람을 멈춰 세우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아르민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불평 어린 한 마디였다.
무슨 볼일인지는 몰라도, 저 엘프들은 결국 강제로 아르민의 앞길을 막은 것이지 않던가.
그나마 대놓고 적의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을 뿐.
상황에 따라서는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까지 하고 있는 아르민이었다.
그런 아르민의 생각 따윈 전혀 짐작도 못한 채,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내들었다.
“잠시 마차를 확인하겠다.”
세 명의 엘프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그리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 말을 따라야 하지?”
아르민의 대답에 가도 주변으로 싸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아르민으로선 당연한 응대였다.
당장에 협박을 해온 건 저치들이고, 꿀릴 게 없는 아르민이 거기에 얌전히 따라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엘프들은 설마 한낱 인간 따위가 이런 고자세로 나올 줄 몰랐는지.
“······우린 단지 마차만 확인할 뿐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냥 보내줄 거다. 혹여 쓸데없이 저항이라도 하려 한다면.”
스윽.
남자는 아르민에게 잘 보이도록 활을 들어보이고는.
“아픈 꼴을 보게 될 거다.”
그렇게 협박에 가까운 지껄여댔으니, 그게 아르민의 신경을 건드렸다.
저 고압적인 태도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거참 대단하신 분들이구만.’
엘프답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권위가 느껴진다고 생각하면 편견인 것일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시비를 걸어온다면 응당 대꾸해주는 것이 아르민이라는 남자였기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마. 아픈 꼴을 보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뒤져봐.”
해볼 테면 해보라는 도발.
아르민은 오른손을 내밀며 핑거스냅을 준비했다.
진심으로 덤벼들면, 이 자리에서 박살을 내줄 생각이었다.
“감히······!”
“인간 주제에······!”
일촉즉발의 상황.
먼저 움직이는 쪽에게 공격이 향한다.
그런 암묵의 흐름 속에서, 아르민이 먼저 손가락을 튕기려는 바로 그때였다.
“잠까아아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 싸늘한 분위기를 정면으로 부수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레이시아?”
자신을 방해하는 그 행동에, 아르민이 슬쩍 눈썹을 찌푸릴 무렵.
“북방의 엘프들이여, 제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세요.”
두웅.
소리 없이 퍼져나간 ‘무언가’.
‘흐음?’
그것을 캐치한 아르민의 눈동자가 잠시 반짝였다.
방금 그 발언이 단순한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란 걸, 곧장 눈치 챈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던 언령(言令)의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고작 이런 말 한 마디로 뭐가 바뀌겠냐 싶은 아르민이었지만.
아르민의 그런 생각은 직후 엘프들이 보여준 행동에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하, 하이엘프?”
“고귀한 혈족이 어째서 여기에···?”
삽시간에 엘프들 사이로 동요가 퍼져나간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이 분은 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은인이자, 동료입니다. 아무리 같은 동포들이라고 한들, 제 동료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자는, 제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 생각하겠어요.”
사전에 아르민은 그레이시아에게 자신의 정체를 함구하라고 언질해둔 참이었다.
실제로 위대한 존재도 뭣도 아니었던 데다가, 이 이상 오해를 불러일으켜봤자 좋을 게 없으니. 그녀 한 명만 골려줄 생각으로 그리 처신한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도 그레이시아는 아르민을 인간으로서 엘프들에게 소개했다.
이 자는 자신의 동료다.
그러니 예를 갖추어라. 라고.
평소의 허당 같은 모습이 아닌, 고고하고, 어디까지나 고결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그레이시아의 모습에 아르민이 살짝 놀라고 있으려니.
“제 말을 듣지 않을 생각인가요?”
바로 그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투둑.
엘프들은 각이 잡힌 군인들 마냥, 질서정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을 해댔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고, 응당 그래야한다는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그들의 태도에, 아르민은 호오. 하고 감탄했다.
아르민을 돌아보며 뿌듯한 얼굴로 ‘저 잘했죠?’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가씨를 보면서.
“그놈의 핏줄이라는 게 엄청 대단하긴 한가 보네.”
아르민은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
결국 아르민과 그레이시아는 엘프들의 안내를 받아, 그들의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중간에 붙잡히게 된 셈이었지만.
– 저희들의 무례를 사과할 겸, 촌장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라며, 기어코 북방의 엘프들이 아르민, 아니, 정확히는 그레이시아를 붙잡은 것이다.
어차피 급하게 움직일 생각도 없겠다.
‘그럼 여기서 보급이나 하고 갈까.’
그럴 속셈으로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자고, 아르민은 판단했다.
‘그나저나 마을이 꽤나 화려하구만.’
북방의 엘프를 따라 들어선 마을은, 밖에서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결계로 뒤덮여 있는 보금자리였다.
사방이 우거진 나무와 그런 나무를 장식하고 있는 눈 결정으로 반짝이고 있는 것이, 어째 잘 만든 게임맵 같다는 시시한 감상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주변으로 느껴지는 시선들이 있었다.
‘신기하게 쳐다들 보는 군.’
마을 여기저기서 하얀 머리칼을 가진 엘프들이 저마다 아르민과 그레이시아를 신기하다는 듯이 흘낏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 하이엘프다.
– 고결한 혈족이 왜 여기까지 온 거지?
– 저 옆에 있는 건 인간 아냐?
– 드디어 범인을 잡은 건가?
– 하지만 한 명이잖아?
등등.
가만 듣고 있으려니, 어째 다른 내막이 느껴지는 듯한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이거.
‘뭔가가 있는 모양인데······.’
아르민이 나름 그런 추측을 하고 있는 사이.
“바로 이곳입니다.”
마침내 그들의 발길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이층짜리 건물에 닿았다.
그곳에서.
“어서오시지요. 고결한 핏줄이시여.”
우아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는 북방 엘프 남성이 아르민들을 맞이해주었다.
마을의 촌장이라는 자는, 보기보다 젊은 외모를 가진 남성 엘프였다.
겉보기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지만, 워낙 장수를 하는 종족이다 보니.
짐작하기보다 나이는 많을 테지.
‘그러고 보면 그레이시아는 몇 살쯤 되려나.’
그런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데.
“경비대원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고귀한 혈족과 그 동료 분께 저희가 무례를 끼친 걸 사과드리겠습니다.”
촌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마을을 대표해 사과해왔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레이시아는 의젓한 태도로 그리 말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민은 시큰둥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갈 길이 바빠서 그런데. 용건이라면 짧게 끝내주겠어?”
그 행동에 주변으로 웅성거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이 ‘감히 촌장님께 무슨!’ 이라거나, ‘무례한 놈!’ 따위의 이야기뿐인 것이 상대해주는 것조차 한심한 소리들이었지만.
정작 그 사이에 낀 채로, 그레이시아가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걸 보고 있으려니.
‘이거 꽤 재밌네.’
괜한 장난기가 동한 아르민이었다.
딴 것보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아가씨였다.
그렇게 아르민이 피식거리고 있을 때, 촌장이 먼저 손을 내저으며 엘프들의 소란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확실히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실 터인데, 숙소부터 준비를······.”
아니, 아르민이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서로 말을 빙빙 돌리지 말자고. 일부러 우리를 여기까지 불렀다는 건, 사과뿐만이 아니라 따로 볼일이 있는 거잖아?”
핵심을 짚는 아르민의 말에, 촌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주변에 있던 경비대의 엘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볼일이라는 건 아마도.
“인간들과 벌어진 트러블 문제일 거고.”
굳이 엘프들이 인간의 마차를 세웠던 이유.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을의 엘프들이 보여주었던 노골적인 감정까지.
이 정도로 퍼준다면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달리 내막이 있으리라 아르민은 짐작한 것이다.
아르민의 확언에 그레이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건가요?”
“그런 거야.”
오히려 어떡하면 그걸 눈치 못 챌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이어진 아르민의 말에, 촌장도 포기를 한 것이겠지.
한숨을 내쉰 촌장은.
“······여기까지 오면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겠지요.”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최근 저희 마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고귀한 혈족께 그 상담을 부탁드리고 싶어,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
최근 요 몇 주 사이.
북방의 엘프들 사이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어린아이나 여성들이 대상으로, 가까이 있는 인간들의 마을로 생필품을 구하러 가거나.
혹은 숲으로 열매나 버섯을 따러 간 아이들이 주로 사라지고 있다고 촌장은 말한 것이다.
“그래서, 당신네들은 그것이 인간의 소행일 것이다. 그리 판단하고 있단 거군.”
“······예. 그렇습니다.”
인간인 아르민이 시원스레 꺼낸 말에, 도리어 촌장을 비롯한 엘프들은 잠시 머뭇거리는 태도로 답했다.
‘하긴 바로 눈앞에 인간을 두고 떠들 이야기는 아닌가.’
대놓고 니네 종족이 문제다. 라는 사회 문제 제기가 아니던가.
그렇다고는 해도.
“그래서 내 마차를 멈춰 세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근방을 지나다니는 마차들을 불러 세워, 혹여 엘프가 잡혀 있지는 않은지 저희 나름대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소득은 있었고?”
아르민이 보기엔 영 뻘짓 같아, 물어보았던 것이지만.
“······아직까지 동포를 찾았던 적은 없습니다.”
촌장의 대답에, 다른 엘프들 또한 아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말은 곧 자신들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르민은 대화 도중에 그들의 말에서 이상한 걸 느꼈다.
인간의 마을까지 내려가서 엘프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나, 인간을 범인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어보면.
이건 마치.
“이미 범인으로 짐작 가는 놈이 있다는 투인데.”
애당초 납치 따위의 인신매매를 다루는 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조직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그것도 상대가 일반적인 인간보다 기본 능력치가 뛰어난 엘프라면 더욱 그렇다.
“······짐작 가는 자라면 있습니다.”
“누군데?”
“변경 행정 관리인 엘자크입니다.”
엘자크.
마도공화국 비발트의 녹을 받아 먹고 사는 행정관으로서, 칼센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 북방 지역을 관리하는 자라고 촌장은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제국으로 향하는 길에, 마을 두 어개가 남아있었지.’
아마 그곳을 관리하는 지방 관리일 거라고, 아르민은 이해했다.
“엘자크는 탐욕스러운 자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저희 마을로 찾아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엘자크가 관리하는 마을에서, 수상한 마차 하나를 목격한 엘프가 있습니다. 비밀스럽게 엘자크가 머무는 관저의 지하로 사라졌다고 하던데. 하필 그 날은 엘프 한 명이 실종된 날이었지요.”
하지만 의혹은 있어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촌장은 말했다.
“엘자크는 마도공화국의 장군 글렘의 아래에서 국경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즉 여기서 괜히 엘자크를 건드리면, 당장에 북방의 장군과 척을 지게 된다고, 그래서 절로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촌장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동족이 사라진다고 한들, 현실적인 문제로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납치 현장을 잡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쥐도 새도 모르게 엘프가 사라지고 있는 지라, 이제까지 그것도 불가능했던 모양이었다.
“크윽! 이게 전부 경비대장인 제가 무능한 탓입니다!”
그 말을 꺼낸 건, 아까 아르민을 향해 협박을 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주변에서는 ‘아닙니다! 대장!’, ‘무능한 건 저희들입니다!’ 라며 부하 엘프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그래. 잘 알고 있네. 니네들 전부 무진장 무능하구만. 엘프들이 납치당하는 동안 대체 뭘 했대?”
기도 차지 않던 아르민이 꺼낸 그 말에, 일순 주변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어떤 놈이든 팩트 폭력 앞에선 말이 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건 그렇고.
“······정말 엘자크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예. 그 자는 좋지 못한 소문이 떠도는 자입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뒷세계와도 연이 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북방의 변경에서 가장 뒤가 구린 자라고, 납치를 저질렀다면 바로 그 자가 했을 거라는 촌장의 설명에, 아르민은 잠시 턱을 두드렸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뿐이라면.
그때 아르민의 머릿속으로 설계도가 그려졌다.
하나의 프레임 위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덧그리고, 보강하며 생각해본 결과.
슬쩍 아르민은 그레이시아를 바라보았다.
“······?”
아르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본 아르민은.
“그거, 잘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겠는데?”
“저, 정말이십니까?!”
마침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와줄 수도 있다.
물론 그 대가는 꽤 비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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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장 – 제국으로 향하는 길 (2) : 계획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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