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5)
내 마법이 더 쎈데-45화(45/203)
< 제22장 – 우리 연극 한 편 찍자. (2) >
습격이 일어나기 10분 전.
집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던 엘자크는 불현듯 연락용 아티팩트가 작동하는 걸 확인했다.
지잉.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자.
다짜고짜 무뚝뚝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 할당량은?
“채웠소.”
건너편의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주인님께서도 만족하실 거요.
애당초 엘자크의 거래 상대는 이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의 윗선.
아마 예상하기로는 엘자크로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인물이 끼어있는 것이겠지.
“거, 다행이군.”
– 말조심하시오. 아무리 우리 둘만의 대화라고는 하지만, 괜한 말실수는 쓸데없는 분란을 불러올 테니까.
그 신경질적인 반응에 엘자크는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이 대화는 변경백도 듣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소? 대체 당신의 주인이라는 자가 누구인지 그 정체가 궁금하군.”
– 섣불리 찔러보는 건 그쪽에게 득에 될 게 없다고 경고했을 텐데.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그것이 위험신호라는 걸 엘자크는 얼른 깨달았다.
농담을 하더라도 위험수위까지는 가지 않는 처세술.
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 엘자크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힘이기도 했다.
“허어,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오.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냥 내가 잡고 있는 줄의 끝이 무엇인지는 궁금해 할 수도 있지 않겠소?”
– 어차피 싫어도 내일 만나게 될 테니, 서두르지 마시오.
‘흠, 드디어 내일이란 말이지.’
히죽 엘자크는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운 좋게 얻은 노예 납품의 기회. 그것을 살린 끝에 간신히 제국의 변경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짜 ‘주인’이라는 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짐작 가는 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거래를 통해, 지긋지긋한 비발트를 벗어나 제국의 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엘자크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참, 그러고 보니 오늘 예상치 못한 물건이 하나 더 들어왔는데······.”
원래대로라면 계약 내용은 엘자크가 손에 넣는 모든 엘프를 변경백으로 넘기는 것이었지만.
할당량도 채웠겠다. 오늘 저녁 아름다운 엘프가 들어온 참이었다.
그러니.
“이번 건 내 것으로 하고 싶은데, 손 좀 빌릴 수 있겠소?”
– 할당량이 끝났다면, 우리 임무도 끝난 셈이오만.
손을 빌린다는 건, 아직 저택에 남아있는 남자의 부하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할당량을 채웠으니, 더는 그들을 움직일 힘도 명분도 없는 엘자크였지만.
“에이,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오? 이번에도 도와준다면 내 찾아뵈었을 때, 섭섭지 않게 대접해드리지.”
엘자크는 자신의 책상 옆에 놓인 금화주머니를 티가 나게 만지작거렸다.
짤랑거리는 소리에 남자는 말을 멈추었다.
“나 엘자크, 이래봬도 통이 큰 남자요.”
답은 곧 돌아왔다.
– 내 아랫놈들도 맛난 술 한 잔이라면 기꺼이 일 할 줄 아는 사내대장부들이지.
“고맙소이다.”
– 그럼, 내일 데리러 가겠소.
뚝.
연락이 끊긴 뒤, 엘자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남자의 부하들만 움직일 수 있다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출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실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크흐흐흐.’
낮에 보았던 그 탐스러운 몸매. 금발, 그리고 깨끗한 피부까지.
조금만 지나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
기대감에 부풀어, 엘자크는 조용히 책상 위에 놓여있던 종을 흔들었다.
딸랑.
이 신호 한 번이면, 남자의 부하들이 곧 원하던 것을 가져올 것이다.
엘자크는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스가아악!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괴한의 단도가 복부를 찌를 듯 뻗어온다.
‘속성은 바람, 형태는 와류.’
마법의 구조를 설계하며 동시에, 아르민은 단도를 피해 괴한의 복부에 오른손을 쳐박고는.
“비켜(Fire).”
시동키를 기점으로 마법은 폭발하듯 그 위력을 발휘한다.
콰아앙!
소용돌이 형태로 빙그르르 튕겨져 나가는 괴한.
그 뒤를 메우듯 또 다른 괴한들이 달려들었다.
그 숫자는 다섯.
입구가 좁은 방이다 보니, 단체 행동엔 당연히도 제약이 생길 법도 하건만.
‘이것 봐라?’
아르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겉으로 보기에 괴한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에 불과했다.
급소를 노리고, 검을 찌르고, 단순히 몸싸움을 걸어올 뿐인 행동들.
그러나 뛰어난 눈썰미를 가진 아르민은 놓치지 않았다.
이놈들.
‘평범한 괴한이 아니다.’
처음엔 그저 엘자크가 고용한 건달 비슷한 놈들인가 싶었다.
실력이 조금 있다고 한들. 어차피 그 뿐인 놈들이라고.
하지만 몇 번을 부딪치고 나니,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놈들이 보여주는 전투 방식은 단순한 시정잡배들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평범한 건달이라면 합공을 하려고 해도 움직임이 서로를 방해하고 뒤엉킬 뿐이야.’
헌데 이 놈들은 다르다.
아르민이 한 놈을 튕겨내고, 또 다시 한 놈을 쓰러트려도 기다렸다는 듯이 톱니바퀴를 연결하듯 빈틈을 채운다.
그 광경은 아르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광경이었다.
‘차륜전(車輪戰)을 쓴다고?’
차륜전이라는 건 최소한의 교육과 경험이 필요한 전투방식이다.
적어도 군대 같은 집단이 아니라면 배우는 것조차 힘든 지식인 것이다.
“에드윈 님!”
한 발짝 늦었지만, 그레이시아가 아르민을 서포트하기 위해 정령을 불러들였다.
“다리를 붙잡아!”
쿠구구궁!
땅의 정령 노움이 돌로 된 바닥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단숨에 돌바닥을 진흙탕으로 바꾸어, 노움은 괴한들을 속박하려고 했지만.
파바밧!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놈들은 바닥을 박차고, 잡기를 디딤돌 삼아, 벽면을 차고 올라 그레이시아에게 달려들었다.
“꺄악?!”
그야말로 신속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아르민은 달려드는 괴한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쏜다. 부순다. 박살낸다의 트리플 액션.
“멈춰라.”
퍼억!
괴한의 피륙이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상자에 갇힌 것 마냥 다진 고깃덩이가 되어 뭉개진다.
살짝 짜증이 치밀어 오른 탓에, 생각보다 과하게 손을 쓴 것이다.
한 놈 한 놈이 허투루 볼 수 없는 전투기계나 다름없었다.
“······!!”
괴한들 사이로 슬며시 동요가 퍼져나간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던 모험가를 손봐주라는 명령을 받은 것뿐이었다.
놈만 처리해주면 좋은 술과 고기를 대접해주겠다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괴한들은 귀찮긴 해도, 엘자크를 거스른 먹잇감을 후딱 해치울 생각으로 찾아왔건만.
– 상대는 단순한 먹잇감이 아니다.
그 공감대가, 천천히 독처럼 괴한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아니, 여기서 먹잇감이 되는 건 오히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괴한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순한 행동이 사라지고, 그들 사이로 묘한 기류가 퍼진다.
행동 양식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절제된 동작은 더욱 날카롭게 변해, 이윽고 하나의 기술로 화했으니.
‘이건······.’
그때 아르민은 깨달았다.
“에드윈 님! 위험해요!”
그레이시아의 경고.
하지만 늦었다.
다섯 명의 괴한이 단숨에 시간차를 두고, 피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로 일거에 아르민에게 쇄도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걸 알고 있다.’
그들의 전투 방식이 묘하게도 눈에 익었다.
머나먼 기억 속.
언제였지? 내가 이걸 보았던 것이.
기도가 바뀌고, 검기의 예리도가 바뀌고, 체내의 기운을 뽑아내 하나의 무술로 승화시키는 이 방식은.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다섯의 공격은 아르민의 코앞에 떠오른 붉은 마법진에 가로 막혔다.
아무리 그들이 진심을 다한 공격일지라도, 아르민이 가진 아티팩트.
케이프의 방호를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큭?!”
충격에 신음하는 괴한을 향해, 오히려 아르민은 기가 차단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떠올랐다.
나는 이걸 카일이 비룡 기사단에 입단할 때 본 적이 있었다면서.
“방금 그거, 기사단이 쓰는 아츠(Arts)잖아. 너희들 설마 제국 기사단원이냐?”
“······!!!”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동자가 부딪쳤다.
철저하게 단련했을 터인데도, 이 순간만큼은 놈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아르민은 캐치해냈다.
그 말은 곧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노예 매매 뒤에 있는 게 제국 기사단이라고?”
아르민이 진실을 입에 담은 찰나.
“놈은 반드시 여기서 제거한다.”
묵직한 호령과 함께.
기사단원들은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을 펼치며 아르민의 사각을 찔렀다.
****
철컹.
“꺄악!”
목에 노예를 상징하는 쇠사슬을 단 채, 그레이시아는 비명을 내지르며 엘자크의 앞에 쓰러졌다.
“크흐흐흐!! 정말로 붙잡아 왔군!”
엘자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있던 모험가는?”
그 질문에 복면괴한 하나가 엘자크의 앞으로 시체를 내던졌다.
“윽, 더럽게시리.”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난도질 된 시체의 모습에 엘자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하게도 해놨군.”
“저항이 심했습니다.”
“뭐, 됐네. 대충 처리해주게.”
고개를 끄덕인 괴한이 물러나자, 엘자크는 히죽거리는 얼굴로 그레이시아에게 다가갔다.
“크흐흣. 마음에 들어. 정말로 아름답군.”
“인간······. 정말로 엘프를 노예로 사고판단 말인가!”
고결한 혈족으로서, 가지고 있는 힘만큼이나 책임감을 가진 그녀였기에.
엘자크가 정말로 엘프를 납치해다가 팔아치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레이시아는 분노했다.
“엘프를 좋아하는 높으신 분들은 얼마든지 있거든. 나만 해도 이렇게 좋아하고 있지.”
엘자크의 손길이 그레이시아의 피부를 쓰다듬는다.
“크으으!”
원래대로였다면, 그녀의 분노에 응해 정령들이 힘을 빌려줬을 테지만.
“어, 어째서 마력이······!”
“그 목걸이에는 마력의 운용 자체를 차단하는 힘이 있지. 아가씨. 너무 화내지 말라고, 그 아름다운 피부가 상하니까 말이야.”
엘자크는 몸이 달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엘프의 몸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그레이시아의 옷가지에 손을 댔을 때였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생각이십니까?”
앞서 그레이시아를 데려온 복면남의 말에 엘자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뭘 어쩌긴 어쩌나. 내일 당신들의 대장이 찾아올 때까지 나는 이 년을 즐길 생각이네만.”
그러니 얼른 나가보라고 엘자크는 눈치를 줬지만.
“내일 대장이 찾아온다면, 직접 대장과 거래를 하시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납치한 엘프들도 보이질 않던데.”
엘자크는 순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네······.”
“궁금해서 말입니다.”
괴한의 너스레에 엘자크는 잠시 끄응 신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야 납치한 엘프들은 이미 제국의 변경백 영지에 데려다 놓지 않았나? 그리고 거래하는 건 자네 대장이 아니야. 그보다 높은 분이지.”
“제국의 변경백 말씀이십니까?”
남자의 말에 엘자크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변경백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변경백은 그냥 들러리야.”
입을 열수록, 엘자크는 왜 자신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이 되면, 나는 내가 쥐고 있는 동앗줄이 어디에 연결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네.”
“변경백보다 높은 자라면 대체······.”
“흥, 해봤자 셋 중 하나겠지.”
제국의 황제 아래에는 수십의 황자와 황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춘 이들이라고 한다면 셋이 있다.
제1황자, 제2황자, 그리고 제3황녀가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엘자크는 예상했다.
“일부러 이런 외지에서 이종족 노예를 끌어 모으고 있는 자라고 한다면, 제2황자 정도겠지.”
“거기까지 파악하신 겁니까?”
엘자크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고작 한낱 복면남 앞에서 이런 말을 떠드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이겠지.
하지만.
따악.
어디선가 들려온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엘자크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애당초 제국 북방의 변경백이라는 키오르세스 백작도 겉으로는 중립인 척 너스레를 떨지만, 제2황자와 손을 잡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네.”
때문에 엘자크 또한 변경백을 통해 엘프 노예 공급을 주문 받았을 때.
처음부터 제2황자 세력을 염두해 둔 참이었다.
아마도 이번 거래의 주체라면 제2황자 아래에서 지금 막 세력을 불리고 있는 공작가.
“밀튼 공작이겠지.”
밀튼 공작이라면 자신 또한 잘 알고 있는 자였다.
2년 전쯤, 오버레이 공작을 밀어내고, 카라클에 존재하는 오버레이의 저택까지 손에 넣고 한창 세력을 키우던 야심가가 아니던가.
“어째서 밀튼 공작이 엘프 노예 같은 걸 모으고 있는 걸까요?”
“알게 뭔가. 깊은 사정까지는 내 알 바 아니지.”
억지로 비밀을 건드려봤자, 돌아오는 건 차디찬 칼날일 뿐이다.
“나는 그들이 필요한 걸 제공하고, 내가 원하는 걸 얻으면 그만이야.”
“그렇군요.”
남자의 말에 다시금 그레이시아의 허벅지로 손을 가져가던 엘자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까부터 뭔가가 이상해. 대체 자네는 누구지? 왜 나랑 이런 대화를······.”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원래라면 이렇게 함부로 떠들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이어진 일련의 대화는 대체 무엇인가.
마치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엘자크는 떠들어댔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깨달은 순간.
“자네, 이름이 뭐였지?”
그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뭐?”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까.”
남자는 손가락을 튕겼다.
****
“저······, 에드윈 님. 이 인간······. 웃다가 찡그리다가 얼굴이 막 바뀌는데요?”
장소는 집무실.
바닥에 쓰러진 채 꺽꺽대고 있는 엘자크를 내려다보며 그레이시아는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버려둬. 어차피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 될 테니까.”
직전 아르민이 사용한 마법은 꿈을 꾸는 상대의 심층심리까지 파고 내려가, 그 내면에서 정보를 뽑아내는 마법. ‘드림워킹’.
일명 공유몽이라고도 부르는 오컬트 영역의 마법이다.
요컨대 방금까지 아르민은 엘자크의 꿈을 멋대로 휘저었다는 소리다.
“상황은 대충 마무리가 됐고.”
그밖에도 주변에는 복면을 뒤집어쓴, 아마도 제국의 기사단원이라고 짐작되는 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지금 막 아르민이 저택을 접수한 참이다.
‘엘자크가 거래하던 것이 타국의, 그것도 제국의 변경백과 그 윗줄이었단 말이지.’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자. 그런 이가 엘프 노예를 끌어 모으고 있다니.
대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요?”
그레이시아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택의 지하까지 싹 뒤져봤지만, 이곳에서 납치되었다는 엘프들은 찾을 수 없었다.
‘엘자크는 엘프들이 이미 변경백 영지로 납품되었다고 떠들었더랬지.’
그리고 그 접선과 거래가 바로 내일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르민은 쓰러져 부들거리는 엘자크를 내려보다, 마력으로 그의 전신을 스캔했다.
‘구조 파악, 골격 재현, 질감 표현.’
그 육체를 3D의 형태로 재현하는 마법을 발휘하며.
이윽고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기자.
파스슷.
아르민의 모습이 바뀌었다.
거기에.
“꺄악?! 에, 에드윈 님!?”
그레이시아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르민의 모습이 난데없이 엘자크로 변버린 것에,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흠흠. 하나, 둘, 셋, 마이크 테스트,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말을 내뱉을수록 목소리가 점점 더 걸걸해지며, 이어 아르민은 완벽하게 엘자크의 목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어때, 엘자크 같아?”
“가, 같은 정도가 아니라, 와, 완전히 똑같은데요······.”
“그럼 됐군.”
“네···? 됐다니······.”
대강의 정보도 파악했겠다.
여기서부터는 아르민이 직접 개입할 생각이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변경백 영지로 빼돌려진 엘프를 구하는 것과 더불어.
‘어째서 긍지 높다던 제국의 기사단이 이번 일에 엮여있는지도 신경 쓰인단 말이지.’
태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남자.
그게 바로 아르민이 아니던가.
그 말인 즉슨.
“내일 있을 거래에, 직접 참가해볼 생각이다.”
엘자크가 되어 직접 그 높으신 분들을 만나보겠다고.
연극의 제2막이 시작된다는 소리다.
****
북방 어딘가에 있는 깊은 숲속.
화르륵.
숨결에 화염이 묻어난다.
쿠웅.
내딛은 걸음에는 열기가 고여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뻗을 때마다, 얼어붙은 북방의 대지가 녹아간다.
까드득.
날카로운 손톱은 나무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두동강을 내버리고.
크가가가각!
단단하고 유연한 비늘이 붙어있는 육체는, 대지를 쓸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토사를 무너트리고, 눈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우수수 쏟아지는 눈발조차, 전신에서 피어나는 뜨거운 열기에 절로 녹아 승화될 정도.
휘이이이잉!
북방의 차디찬 공기조차 그 곁을 침범하지 못하는 사이, 천천히 그 육체는 변모했다.
거대한 체구는 줄어들고, 네 발로 걷던 육체는 어느덧 두 발로 바뀐다.
하늘을 뒤덮을 듯 커다란 날개는 서서히 작아져 자취를 감추는가 하면, 피부를 덮고 있던 비늘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체모와 건강한 혈색이 감도는 피부가 대신한다.
마침내 그 자리에 나타난 건, 인간의 모습을 한 누군가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군.”
후욱.
마지막 호흡을 통해, 주변을 감도는 뜨거운 열기를 한 줌의 티끌로 날려 보낸 자.
그가 바로 모든 생명체의 우두머리이자,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며, 세상 만물에게 우러름을 받는 존재.
“······재앙의 근원지를, 드디어 찾았다.”
드래곤.
처벌자(處罰者)를 자처하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가 북방의 대지에 발을 내딛었으니.
제국의 북방.
그곳에 위치한 키오르세스 변경백의 영지로 여러 꿍꿍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 제22장 – 우리 연극 한 편 찍자.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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