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9)
내 마법이 더 쎈데-49화(49/203)
< 제24장 –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 (2) >
“들어오세요.”
이멜다의 방문을 맞이한 아네솔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 허벅지를 유감없이 드러낸 채로 입을 열었다.
“벌써 당신이 바오르에 찾아오고 2년이 지났군요. 요즘 신당 생활은 어떤가요?”
본론 대신 신변잡기로 시작된 이야기.
이멜다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신도 분들께서 모두 잘 대해주고 계셔서,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2년 전.
이멜다는 모종의 사건을 통해 일광의 증거를 발현하여 태양의 성녀가 되었다.
처음엔 신도도 아닌 자로부터 성녀가 나왔다며, 그 존재 자체를 의심 받기도 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세실리아 씨가 도와주셨죠.’
제7신성기사단 ‘단애의 칼’의 단장으로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세실리아였다.
그런 그녀가 후견인을 자처하고 나섰으니, 큰 문제없이 이멜다는 무사히 2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져 온 2년간의 성녀수행.
그 지난한 과정 끝에 마침내 한 달 전.
이멜다는 공식적으로 성녀임명식을 거쳐 공식 성녀의 직함을 얻게 되었다.
제4성녀 이멜다 바오르.
이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바오르의 진정한 성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명석한 이멜다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바오르를 대표하는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이 말이겠지요.’
신의 인정을 받아 일광의 증거를 발현했다는 말은 곧.
그 존재만으로도 신이 있음을 입증하고, 신의 존재를 대변하는 자가 된다는 소리다.
때문에 성녀와 성자는 신성왕국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했다.
‘태양의 대성녀······. 아네솔레 님 또한······.’
아네솔레.
그녀는 20년 전 고작 9세 나이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일광의 증거를 발현하여, 아예 여신의 강림이라고까지 불린 여성이다.
지난 20년 간 그녀가 일으킨 기적의 숫자만 해도 네 번.
그 결과.
일각에선 현 대주교보다도 아네솔레의 영향력을 더 크게 칠 정도로, 그녀는 이제 신성왕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다.
그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 하면.
“조만간 칼센 제국에서 대륙회의가 열릴 거예요.”
솔선해서 신성왕국의 외교를 이끌어나갈 정도였다.
“······대륙 회의 말씀이신가요?”
“네. 주기적으로 대륙의 미래를 의논하기 위해, 각 국가별로 사람을 보내 일을 처리하는 커다란 행사랍니다.”
연합왕국 소속의 수많은 왕국들과 마도로 이름이 드높은 마도공화국을 비롯해, 여러 소국들도 참가하는 회의.
참가하는 국가만 120여개가 넘는다고 하며, 거기엔 신성왕국 또한 참가한다.
주최국은 다름 아닌 대륙에서 제일로 강성한 국가 칼센 제국이었으니.
“마침 이번엔 황제의 생일을 맞이해, 저희 신성왕국에서도 한 명 사절을 보내기로 했답니다.”
그쯤에 이르러 이멜다는 눈치 챘다.
굳이 아네솔레가 자신을 이리로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이번엔 제가 사절로 보내진다는 이야기시군요.”
“역시 성녀 이멜다는 이해가 빨라 좋아요. 제3성녀와는 전혀 다르다니까요.”
그 아이는 순수하고 착하긴 한데, 조금 머리가 아쉽다면서 가벼운 농을 건넨 아네솔레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가 여신 아르카디아님으로부터 받은 예언. 그 진실의 확인과 차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한 달 후에 대륙회의가 열릴 예정이에요. 그러니 그곳에서 당신의 얼굴을 알리고, 신성왕국의 명예를 위해 힘써주세요. 성녀 이멜다.”
“예.”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선, 이멜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가보세요.”
아네솔레의 축객령에 잠시 이멜다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대성녀님. 최근 신성왕국 내에서 빈민들을 돌보는 정책과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렵사리 꺼낸 말.
아직은 성녀로서, 그 정치적 영향력이 적은 이멜다는 자신이 느끼던 부당함에 대해 대성녀에게 토로하려고 했다.
그녀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아네솔레는 슬며시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아랫사람들을 생각해주는 그 마음씨는 성녀로서 지극히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자잘한 건 다른 분께 맡기셔도 된답니다. 성녀 이멜다. 이번에는 대륙회의에만 집중해주세요.”
딱 잘라 말하는 그 말에, 이멜다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봤자, 그건 상대에게 안 좋은 인상만을 줄 뿐이었다.
끼익.
쿵.
신당의 문이 닫히고, 이멜다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언니!”
“이자벨.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고 말했잖니.”
이멜다는 복도 끝에서 밝은 얼굴로 달려오는 여동생을 맞이해주었다.
“알현은 끝나셨습니까?”
이자벨의 뒤를 따르는 건 세실리아였다.
이런 식으로 평소 임무가 없는 날엔, 세실리아는 이자벨과 이멜다의 호위로서 자리를 함께하곤 했다.
“예. 대륙회의에 참가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최근 예언이 내려오고 왕국 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으니까요.”
세실리아는 나름 납득한 듯, 그리 입을 열었지만.
이멜다는 그런 세실리아를 불렀다.
“세실리아 님은······.”
대륙회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이멜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 물어본다한들, 신성기사단의 단장인 그녀가 답할 말은 정해져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신성기사는 그저 신의 말씀을 따를 뿐.
그리고 대성녀의 말이야말로, 그러한 신의 말과 같다는 것이 바오르의 상식이었다.
“이멜다 님······?”
“아니, 아니에요.”
이멜다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오르에서 보내온 지난 2년의 시간.
그간 그녀는 여러 일을 겪어왔다.
성녀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내내, 이멜다는 의문을 품어왔다.
‘신성왕국이라 하면, 당연히 신의 이름으로 아랫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보다시피 현실은 달랐다.
아랫사람을 긍휼히 여겨, 그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
바오르에서는 대륙회의 같은 정치적인 일에 더 신경을 쏟고는 한다.
지난 2년간, 이러한 신성왕국의 행보에 이멜다는 줄곧 위화감을 느껴왔다.
확실히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좋지만, 대륙회의에 참가하여 암운이 드리우고 있는 대륙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걷는 길이 정말로 옳은 것일까?’
신성왕국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성녀로서 얼굴 마담이 되는 것.
그것이 정말 신께서 귀중히 여기는 일이 되는 걸가?
“아······.”
문득 이멜다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한낱 마을처녀에 불과했던 그녀에게 새로운 운명을 쥐어준 그 사람을.
‘······아르민 님.’
자신이 정말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게 맞는지, 그 사람이라면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이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특이점? 세계방위프로젝트?’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머리를 굴린다고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퍼어어엉!
해킹을 끝냈다고 생각한 찰나,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의 거체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응?”
급작스레 벌어진 사태에 아르민이 경계하고 주변을 살펴보자.
그리 오래지 않아, 드래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드래곤이었던 것의 흔적을 발견했다.
“······허어 참.”
여기저기 널부러진 요새 파편 속에서 아르민이 발견한 건, 짜리몽땅해진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푸슈욱.
콧구멍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다만 생김새가 어째 드래곤이라기보다는 봉제인형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마치 게임의 마스코트 캐릭터처럼 변했달까.
그때 아르민은 메시지창에서 [마력충전율 : 4%]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 말은 즉.
“세계의 백업이 종료되면서 크기가 작아졌다는 건가?”
드래곤이 마력체라는 건, 그 존재가 생명체라기 보단 정령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령은 보통 보유하고 있는 마력에 따라 그 크기나 성질이 바뀌는 법이었으니.
‘그쪽이 가능성이 높군.’
말하자면 세계에서 지원하던 마력이 끊겼으니, 자연스레 그 크기도 존재감도 작아졌다는 말이렷다.
아르민은 여전히 철푸덕 엎어진 채로 새근거리는 드래곤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RD-098의 권리를 획득했다는 건, 내가 이놈의 주인이 되었다는 건데.’
원래 마스터라고 표기된 이름엔 분명 여신 아르카디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뿐이랴.
아르민이 해킹 도중에 접한 시스템 음성들은, 절대로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건 오히려.
“······원래 지구의 것이라고 봐야겠지.”
마음에 걸리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아, 생각이 잘 정리되질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 이 작아진 드래곤이 세계의 비밀과 연결된 열쇠란 소리였다.
이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아르민이 고민하는 그때였다.
“에드윈 님······.”
뒤늦게 그레이시아가 아르민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엘프들은?”
“전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어요. 하지만 방금 그건······.”
드래곤의 앞을 가로막았던 그녀는, 엘프를 대피시킨 이후 줄곧 아르민이 싸운 모습을 직접 목격한 참이었다.
그래서일까.
진짜 드래곤과 싸운 아르민을 보고, 끝내 그레이시아는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당신은, 위대한 존재가 아니신 겁니까?”
이 순진한 아가씨는 드디어 그것을 눈치 챈 것일까.
‘하긴 방금 보여준 모습은, 녀석에겐 이질적이었나.’
아르민이 보여준 마법은 이미 그레이시아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을 테지.
해킹에 대한 자세한 개념은 없겠지만.
아르민이 드래곤에게 손을 대어 무력화시키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여기까지 와서 시치미를 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 난 드래곤 같은 게 아니야.”
그리고
“드래곤이란 놈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위대한 존재 같은 게 아닌 모양이고.”
그레이시아는 드래곤에 대해 하계의 수호자니 뭐니하고 떠들어댔지만.
정작 확인한 진실은, 재앙을 처벌하기 위한 신의 단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엎어져 잠들어있는 봉제인형에 닿았다.
“·········.”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그레이시아.
오늘 하루 종일, 그녀는 정면에서 상식이 무너지는 광경과 맞닥뜨린 참이다.
여러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겠지.
“엘프들도 드래곤에 대해 자세한 정보는 없었나 보지?”
“······150년 전의 일은, 저도 직접 본 적이 없어요.”
그저 마을의 어르신들로부터 들어왔을 뿐.
여기서 그레이시아의 나이가 150살 이상이 아니라는, 새삼 아무래도 좋을 정보가 밝혀진 참이지만.
‘하이엘프인 그녀도, 드래곤의 본질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인간인 아르민이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고작 150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책에서도 드래곤에 대한 진실을 떠드는 걸 본적이 없었다.
고작 150년 전의 이야기다.
아무리 이 세상의 문명 수준이 르네상스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그건 명백히 이상했다.
‘정보가 나돌지 않는다?’
문득 아르민은 거대한 무언가를 느꼈다.
자신의 눈이 미치지 않는 저 암막 뒤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그러거나 말거나.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레이시아의 그 질문은, 아르민이 이제껏 이 세상을 거닐어오며 몇 번이나 받아온 질문이었다.
이제는 더는 예전처럼 현대 마법사···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나를 특이점이라고 했었지.’
그게 아직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선.
“내가 누구인지는, 나도 궁금한걸.”
아르민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오로지 그 뿐.
어째 점점 더 이 세상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아르민이었다.
‘이쪽 세상의 신화를 알아둘 필요가 있겠어.’
북방의 한기가 아르민의 팔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그러나 한기와는 별개로, 아르민의 심장은 뜨거운 열기로 맥동하고 있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처럼, 단순히 평범한 세상이 아니라고.
아르민은 생각했다.
****
그리고 잠깐 동안 뒷수습이 이어졌다.
“저는······. 잠시 마을에 남을까 해요.”
북방의 엘프들을 구하고, 그레이시아는 아르민과 떨어져 마을에 남겠다고 말했다.
아직 다친 엘프들도 있고, 그 뒤처리를 돕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연히 북방 엘프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고마워했지만.
“그러냐?”
아르민은 한 마디로 끝을 낼 뿐이었다.
그 뒤로 아르민은 북방 엘프들에게 뜯어낼 건 뜯어내기로 했다.
“내가 필요한 건 별 거 없어. 식료품 조금하고, 금전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또 하나 더.
“제국으로 향할 생각이다. 그때까지 타고 갈 마차랑 호위해줄 엘프들이 있었으면 하거든.”
아르민은 보는 사람이 절로 소름이 돋을 만큼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는, 당연히도 그 호위로 엘프 경비대장을 선택했다.
“뭐, 뭣이? 나, 나보고 널 호위하라고?”
“원하는 걸 들어준다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력열차 역이 1주일 거리에 있던가? 그때까지 편안한 여행을 부탁한다고. 형씨.”
아르민이 비아냥거리며 엘프 경비대장의 등짝을 칠 때, 그 엘프가 똥 씹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뭐, 없는 놈이 알아서 기어야지. 도리가 있나.
그렇게 마을을 떠나기 직전.
그레이시아는 아르민에게 말했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하고 말을 이은 그레이시아는.
“당신이 동포들을 구해주고, 함께 해주었던 그 행동들은······. 제가 알던 인간들과는······. 달랐어요.”
이제껏 인간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를 보여주던 그녀였다.
그것은 아르민과의 만남을 통해,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것일까.
그레이시아는 아르민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동포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사라지려는 그레이시아를 향해 아르민은 입을 열었다.
“너무 세계수를 맹신하지 마라. 너도 알다시피 세상은 네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한 모양이니까.”
그저 지나가듯 내뱉었을 뿐인 충고.
“·········.”
그레이시아에게서 답은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소리겠지.
****
그로부터 1주일 뒤.
아르민은 북방 엘프 다섯과 함께 제국의 북부에서 몇 안 되는 마력열차 정거장이 들어선 마을에 도착했다.
“······더는 볼일이 없으면 좋겠군.”
엘프 경비대장은 인상을 찡그린 채, 아르민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갑자기 토끼가 먹고 싶다던가, 어디서 버섯 좀 캐오라던가.
아르민이 지독히도 괴롭힌 게 꽤나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은인에게 너무하는구만.”
아르민이 너스레를 떨자.
“······엘프들은 은원을 잊지 않는다. 은혜와 원한. 전부 말이다.”
엘프 대장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도움을 준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일족 전부가 네놈에게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래? 그럼 나중에도 또 만나면 부탁하자고. 오는 내내 쾌적했으니까.”
나중이라도 또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생각해보마.”
그렇게 북방의 엘프들과도 아르민은 헤어졌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 본론이겠지.”
마력열차의 표를 파는 매표소로 향하며, 아르민은 허리춤에 있는 짐 꾸러미를 매만졌다.
그 안에는 여전히 잠든 채로 있는 드래곤이 있었다.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드래곤은 깨어날 기색도 없이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마력 충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만 각성을 할 테지.’
그러니 앞으로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아르민의 목적이 한 가지 더 늘어났다.
“제국으로 가서 민세희, 그 녀석과 만나고······. 이 드래곤도 어떻게든 만져봐야겠어.”
아르민은 고개를 들어, 매표소 간판에 쓰여 있는 문자를 읽었다.
[제도 카라클행 열차표 : 5실버]이제는 진짜 카라클로 향할 때였다.
****
저녁 무렵.
제도 카라클 구석에 위치한 여관.
‘바람이 머무는 언덕’의 1층 식당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서 돈 냄새를 맡고 온 자, 관광차 카라클을 방문한 자 등등.
여러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그 속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검은 머리를 한 여성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크흐흣, 언니. 생긴 게 색다른데? 어디 먼나라에서 왔어? 어때? 오늘밤은 나랑 찐하게 놀아보지 않을래? 옆에 앉아있는 노인네는 밤에 힘 하나 못 쓸 거 같은데?”
경박스러운 태도로, 검은 머리의 여성에게 접근한 남자가 있었다.
그 뒤로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야유를 하고 있었다.
어딜 봐도 뻔한 수작을 취하는 행동에, 여성은 반응조차 하지 않았지만.
“허어, 무시하면 쓰나! 내가 이래봬도 잘나가는 용병단의······!”
남자가 검은 머리 여성에게 우악스럽게 힘을 쓰려는 찰나였다.
퍼억!
바로 옆에 앉아있던 노인이 가볍게 휘두른 지팡이에 얻어맞은 남자는.
콰아앙!
순식간에 수 미터를 나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
“뭐, 뭐야?”
“크하하하! 보다시피 나도 힘은 좀 쓸 줄 안다네!”
자색 마탑주가 그리 말하며, 지팡이를 바닥에 찍자.
쩌저적.
단숨에 바닥에 금이 갔다.
순수하게 육체 능력만으로 보여준 그 위협에, 경박한 남자의 동료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다시 바닥에 앉았다.
날아간 남자와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말할 셈인 듯 했다.
“어떤가? 이 늙은이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지 않나? 처자?”
마탑주의 그런 말에도 검은 머리의 여성.
민세희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마력의 빛무리.
그녀 나름대로 귀찮아지면 힘을 행사할 생각이었던 것이겠지.
자색 마탑주의 눈이 반짝였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지?”
“······당분간은 정보를 모을 생각이에요.”
그녀, 민세희는 천천히 술잔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본격적인 황제 탄신일 행사가 시작되기까지 약 3주가 남은 시점.
지금부터가 진짜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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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수많은 생각과 마음이 카라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황제탄신일까지 앞으로 3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 제24장 –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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