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55)
내 마법이 더 쎈데-55화(55/203)
< 제26장 – 어전대회 예선 (3) : 만났다. >
이른 아침.
축제 준비를 위해 벌써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한 카라클의 거리를, 민세희는 차분히 걸었다.
‘······시합은 괜찮을까?’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어전대회의 예선이 벌어지고 있을 장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강재민을 찾기 위해 마탑주와 미리 이야기를 마쳐놓은 그녀였다.
이 드넓은 카라클에서 선배를 찾기 위해, 그녀는 어전시합에 참가한다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내가 어전시합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인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민세희는 현장에서 괴물과 싸운 경험보다도 실험실에서 약품을 만지고, 의학 지식을 더 쌓아온 사람이었다.
좋은 방법을 택한다고는 해도, 실제로 어전시합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느냐면 그건 별개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며칠 전, 그녀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바로 그때.
.
.
.
“뭐, 괜찮다면 이 늙은이가 대신 참가해줄 수도 있네만.”
“······예?”
마탑주가 뜻밖의 제안을 꺼내들었다.
민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마탑주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길.
“자네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애인·········.”
“······애인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험험. 선배인지 뭔지하는 청년이 대체 누구길래. 자네 같은 참한 처자가 연연하는지 궁금해져서 말일세.”
헛기침을 해대며 분위기를 누그러트린 자색의 마탑주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내 한 손 돕지 못할 것도 없지.”
“음······.”
민세희는 마탑주를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지난 날.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탑주가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게 된 민세희였다.
더구나 마탑주라는 직책이 얼마나 대단하고,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강 짐작이 갔다.
‘아마 지구에 있었을 때라면, 최소 A급 헌터 이상······.’
물론 측정 기계를 이용해 정밀히 조사한 것이 아니니, 순 짐작에 불과하긴 하지만.
마탑주라는 이름만큼이나, 실력은 믿을 수 있었다.
민세희는 고민했다.
그래서.
“······부탁드릴게요.”
“흘흘. 이런 일쯤이야 가뿐하지. 이 늙은이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라네. 축제란 게 참 요상해. 가만히 있는 늙은이의 피도 끓어오르게 만들곤 하거든.”
마탑주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늙은이한테 맡겨만 주게나.”
.
.
.
시선을 거두고 민세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 실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민세희는 생각했다.
내가 선배만큼이나 강했으면, 애당초 시합을 대신 참가해달라는 부탁 따윈 하지 않았겠지.
언제나 생각하는 바였다.
민세희가 생각하는 자신은, 뒤떨어진 인간이었다.
선배를 동경해 같은 실험실까지 들어갔지만, 언제나 그 발목을 잡지 않았던가.
‘마지막엔, 결국 선배 혼자서만 마왕성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제나 민세희에게 있어 마음의 족쇄가 되어왔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진즉 선배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물론 예전에 그녀가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강재민은 이렇게 답했더랬다.
– 남이 하는 걸 부러워하기만 해서 뭐하냐. 너는 너대로 잘 하는 일이 있을 거 아냐.
그 말을 들을 때라면, 민세희는 가슴이 따듯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더욱이 그녀는 강재민이라는 남자를 동경했다.
세계를 구한 영웅을 존경했다.
그래서였다.
지난 150년 간 그녀의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있었던 것 또한.
바로 그 동경하는 선배를 만나겠다는 일념 덕분이었다.
“······후우.”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내고, 민세희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시합을 마탑주에게 맡겨두고, 그녀는 나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곳까지 나온 참이었다.
– 우리 빨리 구경 가요!
– 같이 가!
– 그렇게 뛰면 넘어지잖니!
오늘 하루를 즐거이 보내며, 축제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들로 거리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할 거 없이 떠들고 웃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껏 그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온 민세희에겐, 절로 머나먼 세계의 풍경으로만 보였다.
그래서였다.
문득 민세희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억지로라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만약의 가정을.
만약.
‘······이대로 선배와 만날 수 없다면······.’
자신이 가정한 일들이 전부 실은 착각에 불과하고.
처음부터 이 세상에 강재민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우뚝 민세희의 몸이 멈추었다.
“······아.”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는 마지막 발판이 사라진 듯한 기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앞으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는 숨을 골랐다.
“하아.”
절로 호흡이 가빠져왔다.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린 탓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까.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민세희의 앞으로, 앙증맞은 두 다리가 멈춰 섰다.
“······?”
고개를 들자, 거기엔 처음 보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는 민세희에게, 그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걸 내밀었다.
“이거.”
그건.
‘······꽃?’
보아하니, 꼬맹이는 바구니를 끌어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송이씩 꽃을 나눠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민세희가 그걸 받아들자.
“축제 재밌게 즐겨요! 언니!”
꺄르륵 웃은 꼬맹이는, 이번엔 다른 남성에게 꽃을 나눠주기 위해 달려갔다.
겨우 꽃을 주었을 뿐이지만.
“······아.”
축제.
모든 사람들이 활기차게 웃고 있는 풍경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불안감이 가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 망설이기만 해서는 소용없다.
‘얼른 선배를 찾자.’
그것만을 위해 움직이자고, 민세희가 그리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콰아앙!
– 우와아아아악!!
– 꺄아아악!
– 도, 도망쳐!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거리에 있는 이들도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라, 정적이 감돌았지만.
이윽고.
쿵쿵쿵!
– 쿠어어어어!
둔중한 소음을 일으키며, 철장을 찢고 나타난 오크의 등장에 삽시간에 거리 위로 혼란이 번져나갔다.
– 뭐, 뭐야?! 무슨 일이야?!
– 봉인구는! 봉인구는 어떻게 된 거야!
그것은 아마도 축제에서 투기장용으로 마련한 오크였던 것이리라.
그런 오크가 탈주하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직전 민세희의 피부를 간질이는 마력의 파동이 있었다.
‘이건······.’
그 파동을 캐치한 순간, 민세희의 눈동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떨렸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방금 전에 느껴진 그 감각은, 분명 자신이 체감한지 150년도 넘은 오래된 감각이었기에.
바로.
“······게이트의 파동이라니?”
세계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 감지되는 특유의 감각과 함께.
우우우웅!!!
북쪽에서 새까맣게 피어오르는 벌떼와도 같은 구름을 확인한 민세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것의 정체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아주 가끔 발견되고는 한다는, A급 몬스터 희귀종.
“······검은 역병!”
카라클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아르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민세희라고 생각했던 상대는 정작 자신이 알던 후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을 아는 채 하는 상황이라니.
“흘흘흘, 정말로 강재민이라는 청년이 나타날 줄이야. 솔직히 그 처자의 망상 같은 게 아닐까 했네만.”
“······당신은 누굽니까?”
자연히 날카로워지는 목소리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민세희 처자의 협력자라고 해두겠네. 젊은이. 다만 아쉽게도 젊은이가 만나려고 한 사람은 여기 없다네.”
“·········.”
“어이쿠. 그렇게 노려볼지 말게나.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민세희가 가까이 있다.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만날 수도 있을 터.
그 말에 아르민이 잠깐 안심을 하려는 찰나였다.
키잉.
아르민의 감각으로 밀려드는 정보가 있었다.
저 멀리. 동쪽. 자신이 미리 펼쳐놨던 추적 마법이 이상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발동된 것이다.
그건.
‘드래곤이 움직였다.’
저택에 펼쳐놓았던 방비용 마법진이 깨어졌다.
그 뿐이랴.
추적 마법을 걸어놓았던 드래곤의 움직임까지 실시간으로 아르민에게 전해졌다.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응?”
북쪽.
저 멀리서 느껴지는 감각.
두웅!
심상치 않은 진동이 바닥으로 퍼져 나간다.
그 감각을 파악한 건 아르민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노인네 또한 갑작스레 전해져온 마력의 파동을 느끼곤.
아르민과 노인네는 동시에 북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허허······. 곤란하게 되었구만.”
‘곤란하게 되었다니?’
“저쪽 방향이라면, 오늘 마침 세희 처자가 향한 곳이네만.”
북쪽에서 뭔가 소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노인네가 말하길, 그곳에 민세희가 있다고 한다.
아르민과 노인네의 눈이 마주쳤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겠지.
서로의 목표가 같다는 걸 암묵적으로 확인한 순간.
콰앙!
이미 아르민과 노인네의 몸은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민세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도 안 돼.’
민세희가 발을 딛고 있는 거리의 끄트머리에서 나타난 오크.
그것은 검은색의 연기와도 같은 무언가에 휘감겨 있었다.
새빨갛게 충혈 된 눈동자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도드라진 혈관.
– 뀌에에에엑!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는 저 괴성은 민세희도 잘 알고 있는 현상이었다.
‘검은 역병에 감염된 증상이야······!’
검은 역병.
게이트 너머에서도 A급으로 분류된 흉악한 몬스터였으니, 놈들이 가진 기능은 단순하다.
생명체를 폭주시켜, 무한한 괴력과 생명력을 주는 대신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죽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병에 감염된 증상과도 같다고 하여,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구에 있을 적에도, 놈들은 역병처럼 번져 나가 수많은 헌터들을 집어삼켜왔더랬다.
헌데 바로 그 흉악한 몬스터가.
‘어째서 이곳에 나타난 거지?!’
민세희의 눈동자가 떨리는 사이에도, 오크는 폭주를 하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해치려고 들었다.
‘막아야 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민세희였다.
그녀는 오크를 향해 내달리며 마법을 준비했다.
민세희가 특기로 하는 마법은 제2종 마법에 기반을 둔 외과 마법.
날카롭게 벼린 마력을 심장의 리듬과 동조화 시킨 뒤.
피아노 건반을 치듯 마력을 주무른 민세희는 오크를 향해, 그 마력을 쏘아냈다.
“프레스토(Presto)!”
티잉!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마력은 오크의 머리를 노렸지만.
– 퀴이이이익!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치한 놈은, 고개를 틀며 어깨를 내주었다.
푸슉!
어깻죽지로 선혈이 튀지만.
스르륵.
놀랍게도 그 상처는 곧장 회복되어버렸다.
저것이 검은 역병의 무서운 점이기도 했다. 필요에 따라 생명체가 가진 그 잠재생명력까지 전부 폭발시켜 회복시켜버리는 압도적인 치유력.
놈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선, 검은 역병이 장악하고 있을 뇌를 부수는 게 가장 빨랐다.
“큭!”
하지만 다가간다고 해서, 날뛰는 오크를 상대로 자신이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선배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헌터도 아니었던 내가?
또 다시 마력파를 쏘아냈지만, 이번에도 급소엔 닿지 못했다.
그때였다.
– 크와아아아악!
– 아, 아아아!!
하필 도망치고 있던 여성이 오크의 눈에 띄고야 말았다.
일반인의 걸음은 느리다.
그냥 오크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검은 역병에 감염된 오크의 속도를 이겨낼 리가 없었다.
– 꺄아아악!
손이 닿지 않는다.
앞으로 펼쳐질 끔찍한 광경에 눈을 부릅뜬 그때.
콰아아앙!
하늘에서 작열하는 백색의 불꽃이, 오크를 덮쳤다.
****
쿠우웅!
하늘에서 날아든 작은 체구.
위험구역이라고 판단한 장소에 도착한 드래곤은 주변의 정보를 탐욕스레 빨아들이며 상황을 분석했다.
[외적 발견] [게이트 No.283 위험 등급 A급 몬스터 검은 역병으로 판단] [방위 프로그램에 따라 위협이라 판단.]“적을 배제합니다.”
드래곤이 손이 뻗어진 순간, 미약하나마 그 육체에 잠들어 있던 마력이 깨어났다.
포효하는 불꽃.
백열하는 열기는 단숨에 오크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기능 이상.] [제거 불가.]뜨거운 열기에 타들어가기보다도, 검은 역병으로 인해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마력 부족으로 인해, 단번에 불태워 죽이기 위한 화력이 부족해진 결과였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
그런 그녀에게 민세희는 내달렸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타오르는 것만 같은 붉은색의 머리칼로 전신을 가리고 있다는 파격적인 패션에.
난데없이 허공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화력은 강하지만, 검은 역병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야!’
“내가 보조할 테니까. 놈들의 움직임을 막아줘!”
아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는 민세희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가 화력으로 그 움직임을 봉쇄한다면.
자신의 프레스토로 급소를 노린다.
[외부인의 조언을 적용.] [합리적이라고 판단.] [시스템을 이행합니다.]“제안을 수용한다.”
화르르륵!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불꽃이 오크를 휘감은 때에 맞추어.
“프레스토!”
민세희가 주특기가 날카롭게 오크의 머리통을 날렸다.
****
‘쓰러······ 트렸나?’
민세희는 반신반의 하는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크가 쓰러진 뒤에도 한동안 주변으로는 어수선한 공기와 혼란이 치달았다.
연이은 비명과 고함소리가 오고간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서 방역 작업을 해야 해.’
검은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감염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는 것이었다.
오크를 쓰러트렸다고 한들, 그 개체 하나만 감염되었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다급한 마음으로 민세희가 오크가 도망쳐온 길로 달렸을 때였다.
“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온 아이가 민세희의 눈에 띄었다.
그건.
‘아까······.’
꽃을 나눠준 바로 그 아이였다.
– 콜록 콜록.
기침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려는 그 아이를, 민세희는 서둘러 부축했다.
수상한 발열 증상과 끊임없이 흐르는 땀까지.
아이를 내려다본 민세희는 직감했다.
“발병 증상······.”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비롯해, 거리 이곳저곳에서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금 전 오크로부터 검은 역병이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해.’
손이 떨렸다.
검은 역병에 감염되고, 그 증상이 나타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해봐야 10분에서 20분 남짓.
그 사이에 이 전부를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어린 아이가 새빨갛게 충혈 된 눈을 부릅뜨고, 자신에게 덤벼들지도 몰랐다.
“······아.”
손이 부들거렸다.
오크를 쓰러트리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부족한 자신은 눈앞의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조차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부족한 실력.
동경하는 사람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이 힘으로.
결국 자신은 그 누구도 돕지 못하는 건가······.
민세희의 눈동자가 떨리기만 하던 그때였다.
“잘 봐. 혈관이 도드라지지 않았다는 건, 감염 된지 고작 해봐야 5분 남짓이라는 거다. 시간은 충분해.”
······어?
민세희는 고개를 들었다.
옆에 나타난 이가 있었다.
떨리는 민세희의 손을 부여잡고, 아이의 머리로 이끄는 손길이 있었다.
“내가 도와줄 테니, 어디 시작해보자고. 누군가를 치료하는 건 네 전문분야잖아?”
낯선 목소리, 낯선 외모.
하지만 그럼에도 거기서 느껴지는 이 안도감은.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짝 소리가 나도록 자기 뺨을 때린 민세희는 고개를 들었다.
낯선 남자와 함께 나타난 마탑주를 향해 그녀는 지시했다.
“주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세요. 치료를 시작하겠어요.”
잡생각을 할 틈 따윈 없다.
이를 악문 채, 민세희는 아이의 마력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심장을 어루만지고, 내부에서 진탕을 치고 있을 검은 역병을 퇴치하기 위해서.
그녀는 마력을 일으켰다.
****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민세희는 그 꼼꼼한 성격처럼, 외과, 내과 할 거 없이 치료에 특화된 스킬을 가진 녀석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해, 실력이 부럽다던가. 왜 자기는 강재민처럼 할 수 없는 거냐고 물을 때마다.
– 사람마다 특기분야는 다른 법이잖아? 물론 마법은 내가 더 잘 쓰지만.
하고 낄낄 거렸던 강재민이었더랬다.
아득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이에도 하나 둘.
서로 호흡을 맞춘 아르민은 환자들을 치료해나갔고.
“이 사람이 마지막이라네.”
마탑주의 말을 끝으로.
이 자리에 있는 환자들의 호흡이 전부 무사히 돌아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아······.”
그제야 민세희는 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맥이 풀린 순간 다리 힘이 빠진 것이리라.
“고생했다. 얌마.”
지쳐서 일어서지 못하는 민세희를, 아르민은 부축해주었다.
민세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금발에 벽안. 낯선 얼굴을 한 처음 보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깨달았다.
지친 표정을 지은 채로, 하지만 동시에 안심한 얼굴을 한 민세희는 가까스로 미소를 짓고선.
아르민을 향해 이런 말을 꺼내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그래. 오랜만이다. 요 녀석아.”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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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장 – 어전대회 예선 (3) : 만났다.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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