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56)
내 마법이 더 쎈데-56화(56/203)
< 제27장 – 당신이 없어지고 난 뒤에. (1) >
간만의 재회도 무색하게 아르민 앞에서 지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민세희는 이내.
“아······.”
풀썩.
까무룩 정신을 잃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아르민은 조용히 쓰러지려는 민세희를 받아들었다.
아무래도.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군.’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리라.
앞서 격렬한 싸움을 해냈던 것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체내의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극도로 섬세한 컨트롤을 이어온 결과다.
게다가 하나 더.
이건 순전히 아르민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긴 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안심했기 때문이겠지.’
150년이라는 시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그녀가 여기서 홀로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왔을지 아르민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그야 아르민은 마녀라며 손가락질을 당해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아르민이 이 세계에서 보내온 시간은 고작 해봐야 20년.
민세희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데다, 환생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보니 그녀와는 일대일의 비교도 불가능하다.
당장에 외국에 나갔을 때, 같은 한국인을 보기만 해도 반가워하는 게 사람이다.
그녀도 오죽할까 싶었다.
‘이런 생판 모르는 세상에서 존경하는 선배를 만났으니 안도감이 몰려올 만도 하지.’
암, 그렇고말고.
아르민은 자화자찬하면서 동시에 다른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방금 민세희와 함께 몰아낸 검은 역병에 대해서.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가 어째서 여기서도 나타난 거지?’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게이트 너머의 세계가 이차원(異次元)의 세계라는 건 지구에서도 상식이긴 했으나.
정확히 그 너머의 세계가 무엇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었더랬다.
보다 진득한 시간을 들여 조사를 진행했더라면, 어느 정도 그 비밀이 밝혀졌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지구는, 그리고 인류는 마왕의 침공을 막아내는데만도 급급했다.
정작 마왕을 막아낸 뒤에는.
‘그 후의 지구를 내가 모르니, 세계의 비밀이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알 방도가 없고.’
그래서였다.
아르민은 기절하듯 잠든 채, 색색 숨소리를 흘리는 민세희를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마력기록장치에 따르면 민세희는 무려 아르민이 시도했던 영자이동의 술식을 역산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렇다는 말은, 어쩌면 아르민이 사라진 뒤의 지구에서는 나름대로 이세계의 비밀에 접근했던 것이 아닐까.
즉 후배가 자기보다도 더 게이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공산이 컸다.
“그런데 이 처자는 누군가?”
그때 아르민을 따라 여기까지 도착한 노인이, 바로 곁에서 멀뚱히 서 있는 붉은 머리의 꼬맹이를 가리켰다.
머리카락만으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있는 게, 꽤나 파렴치한 모습이었다.
예의 그 레드 드래곤이었다.
“넌 왜 여기 있냐?”
“답변. 마스터의 위협이 되는 위험등급 A급 몬스터. 검은 역병을 퇴치하기 위해서였음.”
드래곤이 꺼낸 말에 아르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 ‘검은 역병’은 확실히 위험등급 A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가 맞다.
아마도 이 놈은 아르민이 권리를 획득했으니만큼, 사전에 재앙을 배제하겠다고 소리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 위협을 배제하기 위해, 알아서 움직였다는 건가.’
그 행동원리는 납득이 갔다.
요컨대 경호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되겠지.
다만 여기서 아르민의 마음에 걸리는 건 다름이 아닌.
“어째서 그 놈이 위험등급 A급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냐?”
“·········?”
드래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의 질문이 무슨 의도인지 파악이 불가능함.”
“아니, 그러니까······.”
아르민으로서도 풀어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애당초 위험등급의 구분은 국제헌터협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헌데 그것을, 어째서 이 녀석이 알고 있는가.
위화감.
이건 처음 드래곤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을 때 들었던 시스템 메시지에서도 동일하게 느꼈던 점이었다.
이제 와선 외면할 수도 없다.
아르민은 인정했다.
‘이 세계는 지나칠 정도로 지구와 접점이 많아.’
지난 날 단서는 꾸준히 제기되어왔었다.
아르카디아라는 이름.
단절된 세계의 역사.
세계방위프로젝트라는 것의 정체.
나아가 여기에선 헌터협회의 흔적까지 접했다.
‘이건······.’
하지만 드래곤에겐 몇 번 질문을 달리해서 물어보아도 마땅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세계의 백업이 사라진 이상, 드래곤은 결국 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말에 불과해.’
여기서 모든 실마리가 끊겨버렸다.
잠시 고민하던 아르민은 게이트의 파동이 느껴졌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오크가 갇혀 있던 우리 따위가 모여 있는 장소였다.
오크가 역병에 감염 된 채로 날뛴 여파인지.
우리에 있던 다른 몬스터들이나 인간들의 시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균열은 이미 닫혔나······.”
게이트가 열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엔 별다른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잠깐······.’
그때 아르민의 눈동자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언뜻 보면 단순한 잡동사니나, 먼지 부스러기, 혹은 무너진 우리의 파편 따위로 보이지만.
아르민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건 분명.
‘마석의 부스러기?’
아르민은 바닥에 흩어진 부스러기를 손으로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위장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이건 필시 마력의 촉매제로 사용되는 마석이었다.
‘마력은 비어있어.’
그렇다는 건······.
아르민의 사고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였다.
– 먼저 현장을 확보해!
“이거, 곤란해졌구먼.”
멀리서 우르르 달려오는 발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자리에 등장하는 이들이라고는 정해져 있는 법이었다.
“백금 기사단이 출동했네.”
노인네의 말처럼.
아르민의 마력신경에도 감지되는 움직임들은 뻔했다.
제도 카라클의 치안을 담당하여 활약하는, 제국 4대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백금 기사단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소란이 벌어졌으니, 뒤늦게나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겠지.
‘이대로 있다간 귀찮아지겠구만.’
좀 더 현장을 자세히 조사하고 싶었건만.
시간이 촉박했다.
“어쩔 텐가?”
노인네의 질문대로, 여기선 결정을 해야할 때였다.
아르민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단은 빨랐다.
‘우선 퇴각한다.’
물론 얌전히 물러나줄 생각 따윈 없었다.
지잉.
마력이 울리고, 아르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을 사용했다.
“호오?”
이 주변 일대를 장악하는 마법을 본 노인네가 눈동자를 빛내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지.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라고.’
물론 무조건적으로 그러리란 보장은 없지만.
의심이 든 이상,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두는 편이 좋겠지.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민세희를 등에 업은 아르민은 각력강화 마법을 발동한 뒤, 빠르게 자리에서 이탈했다.
****
아르민이 민세희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일레인스의 하녀 마리나는 아르민이 데려온 여성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련님? 등에···. 그 분은······?”
“손님이야.”
“······손님, 말인가요?”
아르민의 말에도 마리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야 난데없이 기절해 있는 한창 나이 때의 처자를 등에 업고 들어왔으니 당황할 만도 하겠지.
‘아, 이거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인가.’
어쩌면 또 자신이 망나니짓을 하며 여자를 끌고 왔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며, 아르민은 자조하듯 피식 웃었지만.
“혹시······ 어디 아프신 건가요?”
마리나는 의심하는 대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민세희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민세희는 지친 나머지, 식은땀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거 참.’
망나니짓을 의심하기보다도, 그런 면을 먼저 고려해주는 마리나의 태도를 본 아르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째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지만, 지난 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마리나와 제법 신뢰도를 쌓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지친 거 같아서 말이야. 일단 뜨거운 물하고 먹을 것 좀 준비해줄래?”
“앗, 넵!”
마리나는 다급한 걸음걸이로 주방으로 향했다.
참고로 드래곤은 다시 봉제인형 크기로 돌아간 상태였고, 민세희의 지인으로 보이던 노인네 또한 “여관에서 챙길 물건이 있어서 말일세.” 라며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그건 참 아르민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여기서 괜히 인물이 더 추가되었다간 쓸데없이 시끄러워졌을 테니까.’
마리나의 배려로 새로이 방을 준비한 뒤, 민세희를 눕혀놓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긴?”
“일어났냐?”
민세희가 정신을 차렸다.
****
깨어난 민세희와 아르민 사이로,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난데없이 만났다지만, 그녀에겐 150년의 공백이.
아르민에겐 20년의 공백이 있던 참이다.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싶던 참에, 먼저 발을 내딛은 건 후배 쪽이었다.
“······선배,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건가요?”
역시 그것부터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하겠지.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는데 말이다. 내가 마왕과 싸웠을 때······.”
아르민은 지구에서 최후의 결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차근차근 민세희에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영자이동 술식 끝에 환생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던 이야기를.
“환생···인가요.”
“덕분에 지금은 강재민이 아니라. 아르민 일레인스라는 이름이다.”
“······그 선배가···. 금발벽안의 미남으로······. 그것도 귀족이라니. 무슨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캐릭터네요.”
민세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순정만화라니,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키워드였다.
그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만.
내가 귀공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의외냐? 하고 생각하는 아르민이었지만.
동시에 믿기지 않는 걸로 치자면, 사실 그건 아르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 150년을 여기서 살아온 거냐?”
“······네.”
민세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50년이라니, 아르민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기나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혼자 버티고 버텨왔다는 건, 대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경험이었을까.
그래서였다.
아르민은 잠시 입을 다문 채로, 마리나가 준비해준 따끈한 차만을 마실 뿐이었다.
섣부른 말로 그녀가 보내온 시간에 대해 떠들고 싶지 않았다.
신중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선배, 지구로 돌아가요.”
끝내 민세희가 꺼낸 말은 그런 것이었다.
마력기록장치에도 기록되어있던, 민세희 그녀 본연의 목적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진즉부터 아르민은 그 말에 대한 답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미안하다. 난 돌아갈 순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간다고 해도 의미 따윈 없겠지.”
이미 아르민은 이 세계의 일원이 된 참이었다.
자신은 강재민이지만, 동시에 아르민 일레인스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르민은 지구에 있을 적에 대해 미련 따윈 없었다.
아르민의 육체인 채로 돌아가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르민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인 2년 전, 그날부터 아르민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이었다.
“그건 이곳에서 환생을, 했기 때문인가요?”
“그래.”
“······정말 선배는 언제나 절 놀라게 한다니까요. 환생이라니, 상상도 못했어요.”
강재민이 앞서 차원을 넘어왔을 거라고 생각한 그녀였기에, 설마 이런 전개를 예상하진 못했겠지.
민세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를 아르민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오로지 자신을 찾아 15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왔건만, 그것이 전부 무의미해진 게 아닌가.
그 시간을 자신이 보상해줄 수 있을 리도 없다.
“미안하다.”
또 다시 사과의 말을 입에 담는 아르민에게, 민세희는 피식 웃었다.
“그 말은 선배답지 않네요.”
한동안 둘 사이엔 다시 말이 없어졌다.
그 어색하기만한 분위기 속에서, 아르민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각오를 하고 다시금 이렇게 입을 열었다.
“15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오면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냐?”
어쩌면 매정하기 짝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은 확실해두고 싶은 아르민이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강재민은 민세희에게 있어 우수하지만 짓궂은 선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헌데 그녀가 이토록 자신을 데리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
아르민이 금방 대답했던 것처럼.
민세희에게서도 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선배가 보고 싶었으니까요. 선배는 몰랐나보지만, 저 생각보다 선배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 스트레이트한 반응에 도리어 아르민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르민이 기억하던 민세희는 이런 적극적인 아가씨가 아니었다.
어쩌면 지난 150년이라는 시간이, 그녀를 이렇게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말해놓고 보니 엄청 부끄럽네요.”
“아, 그래······.”
아르민으로선, 후배가 보여준 호의에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선 호의에 뭐라고 답하기 이전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제가 선배를 찾은 이유는 또 있어요.”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아르민이 고개를 들자.
후배는 찻잔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이윽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선배가 사라진 직후, 제가 영자이동 술식을 발동하기 직전까지 지구는, 말 그대로 개판 오 분 전 ······ 아니, 이미 개판이었어요.”
그녀는 띄엄띄엄.
아르민이 떠나온 뒤의 지구에 대해 말을 꺼내들기 시작했으니.
그 첫 마디는 이걸로 시작했다.
“선배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칠영웅. 아니. 육영웅끼리 반목을 시작했어요.”
···뭐?
****
그리고 카라클 북쪽의 뒷골목.
오크가 난동을 부린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그곳을 소리 없이 내걷는 자가 있었다.
흑의로 전신을 감추고, 은밀함을 추구한 아츠를 사용해 스스로의 존재를 지운 남자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마도구를 꺼내든 뒤.
한 마디를 툭하니 내뱉었다.
“여기는 관측자. 흑문(黑門) 실험에 성공했다고 알림.”
< 제27장 – 당신이 없어지고 난 뒤에.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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