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67)
내 마법이 더 쎈데-67화(67/203)
< 제32장 – 마왕, 인간, 그리고 차원쟁탈전 (2) >
서걱!
– 키에에에!
단칼에 앞을 가로막던 브루탈 맨티스가 쓰러졌다.
“후우······.”
검을 납검하고서 호흡을 가다듬는 여기사.
맹렬히 마물을 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모습은 차분하고 또한 담대했다.
“브루탈 맨티스를 이렇게나 쉽게······.”
민세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B급 몬스터 브루탈 맨티스.
놈은 게이트 너머에서도 순수한 단일 개체 물리 공격력만으로는 순위권에 드는 무지막지한 괴물이었다.
그걸 고작 일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리다니.
엄청난 실력이었다.
“이 정도라면 가뿐합니다.”
자신을 일원교의 신성기사단 소속 성기사라고 소개한 그녀.
세실리아는 칼에 묻은 더러운 피를 털어내며 무심히 답했다.
우연히 마왕의 하수인으로부터 자기를 구해준 그녀와 함께 민세희가 움직이기 시작한지 5분.
“성녀님을 구하러 가야합니다.”
“저는 선배를 만나야만 해요.”
둘은 서로의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렇게 같이 움직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거리는 몬스터로 가득해요. 이래서야 움직이면 바로 들킬지도 모르겠어요.”
민세희의 말대로.
여기까지 오는데, 그들이 마주친 몬스터는 한 둘이 아니었다.
세실리아가 베어낸 숫자만 벌써 열.
뒷골목을 빠져 나와 대로로 나가게 되면, 더욱 본격적으로 전투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 으아아아악!
– 버텨! 버텨라!
– 기사단은 아직이냐!
– 동쪽! 동쪽으로 피해! 그곳이라면 비룡 기사단이 지키고 있다!
치안을 담당하는 기사단들이 움직이고는 있으나,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거리.
– 축제 재밌게 즐겨요! 언니!
그 아이는, 무사히 대피했을까?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서 마물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지금은 선배와 합류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민세희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며 타일렀다.
목적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그때 세실리아가 이를 갈며 목소리를 흘렸다.
“이건 마치······. 신화에 기록된 재앙을 보는 것 같군요.”
신화?
“그게 무슨 소리죠······?”
민세희 또한 이 세계의 신화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150년 간 살아오며, 일원교의 신부라는 작자를 만나 들어본 말에 따르면.
‘이 세계는 여신 아르카디아의 몸짓 아래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이 세계의 창세신화는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뻔한 내용이었다.
태초에 여신 아르카디아가 있었다.
그녀가 발을 디딘 곳이 대지가 되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 태양이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숨결을 불어내니, 이어 인간과 다른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났다는 식의······. 그런 신화 속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느니 하는 아비규환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일원교의 신화에는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사가 있습니다.”
“외경이라 함은······?”
세실리아는 말했다.
바오르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 이르길.
– 태곳적에 이 땅에 흑문이 열리고 괴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 알몸으로 헐벗은 인간들이 괴물들의 횡포에 신음하고 죽어갈 때.
– 그것을 보다 못하여 일어선 일곱의 신이 있었으니.
– 태양과 달, 하늘과 땅, 물과 불, 그리고 마나(Mana)여라.
– 괴물들은 강했고 흑문 너머에서 어둠은 밀려들었다.
– 신들은 맞서 싸웠지만 하나 둘, 어둠에 패퇴했다.
– 하지만 마침내 최후의 항전에서 마나의 신이 직접 나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흑문을 닫았으니.
– 남은 여섯 신은 그를 기리며, 세계를 창조하고, 각각이 이 세계를 통치하며 태평성대를 누렸노라.
그리고
“만물이여······. 사라진 하나를 기억하라. 그가 다시 나타날 때······. 다시 흑문이 열리게 될 지니.”
비유로 점철된 이야기.
그러한 것이 있다고 세실리아가 떠드는 말에, 민세희는 불현 듯 떠올렸다.
‘그 일곱의 신이라는 건 설마·········.’
공교롭게도 저 신화 내용은, 민세희에게 있어선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분명······.
그때였다.
쩌저저저적!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황궁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구멍이 저 머나먼 동쪽에서 하나 더 생겨났다.
그리고
쿠우우웅!
그 게이트를 찢고서 나타난 두 마리의 마물을 목도한 민세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저건······. 대체···?”
세실리아의 놀라워하는 목소리처럼.
난데없이 나타난 두 마리의 S급 몬스터.
“레비아탄······. 그리고 베히모스라니······.”
특히 베히모스가 나타난 동쪽 거리.
저기는 아직도 피난민의 행렬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저들은 단일 개체만으로도 국가를 초토화시켰던 진짜 배기 괴물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엄청난 희생을 낼게 틀림없었다.
‘난······.’
마음이 갈등했다.
당장이라도 선배와 합류하고 싶다.
그를 옆에서 돕고 싶다.
하지만.
“······세실리아 씨, 죄송해요. 여기서부턴 혼자 움직이겠어요.”
“무슨 소리십니까?”
이를 악문 민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선배를 돕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배시시 웃으면서 축제를 즐기라고 꽃을 전해준 꼬마아이.
자신이 의식을 잃고 비몽사몽 하는 사이, 물수건을 건네주던 일레인스 가의 하녀.
호쾌하게 웃으면서, 돕고 싶다고 손을 내밀어 오던 자색의 마탑주까지.
–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라.
선배가 남겨준 말처럼.
‘재민 선배가 싸우는 동안,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야만 해.’
민세희는 품에 넣어두었던 핵을 꺼냈다.
전체적으로 야구공만한 크기를 가진 이 물건은, 지난 150년 간 그녀가 필사적으로 공을 들여 만들어온 ‘자율운동신경계핵심구성체’의 물건이었다.
용도는 간단하다.
주언을 읊어 스위치를 넣으면.
그 순간부터 주변의 물건들을 핵으로 끌어당겨,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150년분의 기간테스인 것이다.
비록 합류할 수는 없지만.
‘선배, 저도 여기서 싸우겠어요.’
망설임은 짧고, 결단은 빨랐다.
“가동.”
그 한 마디에 핵 표면 위로 미세하게 빛나는 마력선이 그어졌다.
직후.
[음성인식 완료. 마스터 민세희. 반갑습니다.]철컥철컥.
요란하게 그 모양새를 뒤바꿔가던 핵은 이윽고.
[핵 가동합니다.]지이잉!
쿠웅!
급속도로 불어난 마력은 삽시간에 주변의 부산물을 끌어 모아 육체를 구성한다.
그렇게 동쪽의 거리에 나타난 검은 거인은.
– 쿠오오오오!!
바다를 먹어치우는 뱀의 마물과 부딪쳤다.
****
– 그오오오오오오!!
화르르륵!
이스텔이 내뿜는 불길이 베히모스의 피륙을 불태운다.
처음부터 아르민이 아무런 생각 없이 홀로 벨레드와 마주한 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그의 종 이스텔은 마물들과 싸우고, 이번에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베히모스까지 물고 늘어진 것이다.
– 기아아아아!!
거기에 반응해, 베히모스는 거구를 떨어대며 용과 부딪쳤다.
거대한 충격이 대지에 내달리고,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성 안의 유리란 유리가 전부 깨져나간다.
쨍그랑!
본래 황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을 스테인드글라스들이 깨져 나간다.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유리조각 속으로, 아르민은 내달렸다.
목표는 벨레드.
왼손으로는 놈을 조준하고, 오른손으로는 마력을 세심하게 커팅해 준비하는 마법은 제1종의 원소 마법.
‘속성은 바람. 형태는 칼날. 구조는 삼중, 사중, 오중 칼날.’
모티브는 면도날.
마력을 더하면 더할수록 날카롭고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여기에 별다른 부가사항을 더할 것도 없이.
필요 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단순할수록 더욱 강력하고 확실하다는 논리학의 일면까지도 적용시킨 마법이다.
그것에 마법사들이 장난삼아 이름 붙여 부르길.
“오컴의 면도날.”
그 말에 튕기듯.
폭발적으로 쏘아진 쿼드 액션의 마법은.
쇄애애애액!
은빛의 궤적을 허공에 수놓으며 벨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흐읍!]흑마탄이 피어오른다.
자욱한 운무처럼 영역을 잡아먹고, 기세를 불린 흑마탄은 방어벽처럼 놈의 앞을 가로 막아 아르민의 마법과 부딪쳤다.
폭발과 함께 피어나는 폭연.
그 여파조차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폭연 사이로 섬전처럼 내달리는 공격은, 아르민이 쏘아낸 공기팡이다.
쉬이이잇!
콰아앙!
[제법이구나!]콰득.
왼손으로 공기팡의 마력을 잡아 뜯으며, 놈은 흥이 오른 듯 진각을 밟듯이 오른다리로 대지를 후려쳤다.
꽈아아앙!
마치 파도가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그그그긍!
지축을 흔들며 다가오는 충격파 앞에서, 아르민은 양손가락을 튕기며 손뼉을 마주쳤다.
한 번에 범위를 지정하고.
두 번째에 개념을 세트하고.
세 번로 반격을 돌려주는 트리플 액션.
제2종 개념 마법.
“충격역전(衝擊逆轉).”
쿠우웅!
땅거죽이 뒤집어지고, 땅으로부터 돌과 흙의 파편이 튀었다.
[그럼 이건 어찌할 생각이냐!]찌이이익.
오른손을 흔들며 흑마탄을 만들어낸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흑마탄을 마치 채찍 같은 모양새로 늘려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휘둘러.
샤아아아앗!
바람을 가르듯 후려치는 공격이 날아든다.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아르민이 아닌, 저만치 뒤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가까스로 서 있는 이멜다였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거리가 멀어진 상황.
‘여기서 막는다.’
미끄러지듯 땅을 손으로 매만져, 그 위에 마력으로 술진을 새긴다.
추출하는 마력소는 한국 토속신앙로부터 끌어오는 대지의 마력정.
‘땅에는 정(精)이 있고, 이는 기운의 성과 쇠함을 결정할지니.’
바람은 기운을 흩고, 물은 기운을 가두며, 땅은 그 기운을 가꾼다.
풍수지리에서 비롯되는 힘을 이용해.
‘태백(太白).’
투웅!
급격하게 솟아난 대지가 휘둘러오는 채찍을 막고, 그대로 휘감아 움직임을 봉했다.
“이멜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마라!”
휘이이익!
콰앙!
연달아 내던져지는 흑마탄을 먹어치우면서도, 아르민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멜다를 질타했다.
본능적으로 사람을 지켜야 한다. 라는 마음에 지지 않고 일어선 건 칭찬해줄 만하지만.
여전히 ‘신이 우리를 그저 장난감으로 취급한다’는 벨레드의 말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아까까지 보여줬던 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힘으로 힘겹게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을 직시하고 믿고 있는 자야말로, 한 번 배신당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법이지. 너도 그렇지 않느냐? 계집?]“아르민, 님······. 저는······.”
고개를 흔드는 그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 명확히 보였다.
벨레드의 노림수도 뻔했다.
계속해서 이멜다를 충동질 하여, 아르민이 후위에 신경이 쓰이도록 만든다.
그걸로 주의를 빼앗고, 결정타를 먹이려는 생각이겠지만.
‘어설프군.’
아르민은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우리 피조물은 신의 장난감일 뿐이었다고? 그게 충격적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이멜다, 애당초 네가 성녀가 된 이유가 뭐였지? 신을 믿기 때문이냐? 세계를 만들었다느니, 인간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놈들의 종이 되기 위해서였냐?”
“저는······.”
아니다.
그녀가 성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전부 2년 전 그날.
“동생을 구하고 싶어서였잖냐?”
[눈물겨운 이야기로군.]쇄애애액!
카앙!
날아드는 흑마탄을 한 발, 지워내며 아르민은 벨레드의 비아냥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맞아. 눈물겹지. 가족의 사랑이라니. 솔직히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르민은 이멜다를 인정했다.
처음부터 이멜다는 아르카디의아 독실한 신실자 같은 게 아니었다.
“신이 뭐가 됐든 상관없어. 그 놈의 신들은 네 동생을 지켜주지 않아. 여기서 네 동생을 지킬 수 있는 건 너 뿐이다. 이멜다.”
“······!!”
이멜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거고 저거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아르민, 자신이 이멜다에게 준 건 일광의 증거도, 신의 힘도 뭣도 아니다.
그저 지키고 싶은 걸 지킬 수 있는 힘.
그 뿐이다.
“······아르민 님······!”
아르민의 말이 닿은 것인지, 이멜다의 떨림이 멈추었다.
하지만 벨레드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피조물끼리, 잘도 서로를 핥아주며 지껄이는 구나! 그래봤자 장난감에 불과한 존재들 주제에!]쇄애애액!
쏘아지는 흑마탄을, 아르민이 펼친 클리포트의 마법이 막아선다.
콰앙!
충격을 흩뿌리면서, 아르민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들의 장난감? 웃기시네. 난 처음부터 신 따윈 믿지도 않았어.”
그래. 신 따윈 아무래도 좋다.
종교 마법 따위를 쓰고, 신의 위광을 직접 목도하더라도.
지난 번 신좌를 거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아르민에게 무가치했다.
– 마법이란 세계의 합의다.
– 마법의 신비란 세계의 비밀이다.
– 마법을 쓰는 건 인간이다.
여기에 신이 끼어들 여지 따윈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가능성.
그건 이미 생전에 강재민이라는 남자가 한 번 증명해낸 적 있지 않던가.
내 의지로 마왕을 토벌하고, 나의 마음으로 마법이라는 궁극에 이르고자 하는 자.
그것이 바로 아르민이었기에.
“나 같은 놈들은 장난감이라고 해서, 예 하고 넙죽 받아들일 만큼 멍청하진 않거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서고 반격한다.
설령 그것이 신이라는 존재.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될지라도 인간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아르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쿠우우웅!
저 멀리, 피어오른 빛줄기가 흑문 위를 가로지르며 그 결계에 부딪쳤다.
콰아아앙!
비록 그것으로 게이트가 닫히진 않았지만.
분명히도 게이트 너머로 충격이 전달되었을 터.
우수수 시체가 되어 떨어져 내리는 괴물들을 보며.
[······방금 그건?]얼굴이 일그러진 벨레드를 향해,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세상엔 나 같은 놈들이 많은 모양이야.”
****
“흐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겐가?”
레프너겐은 주먹을 쥐었다.
마탑주로서 쌓아온 마력. 그 힘으로 저 하늘에 아가리를 벌린 괴상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래도 큰 소용은 없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굉장한 마력이군! 레프너겐!”
스아아아악!
달려드는 늑대형 마물의 몸통을 통째로 베어내며 자리에 내려선 또 다른 근육질의 노인.
검성 지크프리트가 칼을 떨어내자, 근처에 있던 이족 보행 괴물이 순식간에 네 토막의 시체로 변했다.
“마탑에 콕 박혀서 나오지 않을 땐 언제고,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언젠가 당신과는 한 번 더 겨뤄보고 싶었지.”
“허허. 그건 나중으로 미뤄주겠나. 지크프리트.”
레프너겐의 넉살에 지크프리트가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승님!”
“근처의 민간인은 전부 대피시켰습니다.”
검성의 제자 브리타와 카스팔이 뒤늦게 합류했다.
레프너겐과 대화가 멈추자, 끄응 하고 한숨을 내쉰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좋다. 지금부터 수행이다. 상대방보다 적게 죽인 놈은 내년 1학기 때 과제가 두 배가 될 줄 알아라.”
“히익···!”
“······이런 승부쯤이야. 가뿐합니다.”
앞 다투어 나서는 브리타와 카스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훌륭한 제자를 두었구려.”
“하. 귀찮게 제국에 얽매여서 말일세.”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너나할 것 없이 자세를 갖추고 괴물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으라차차차! 사람들은 전부 동남쪽으로 피해! 우리 붉은 깃발이 호위하겠다!”
자랑거리인 쌍검을 휘두르며, 괴물들 사이에서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 용병 데릭이 나서는가 하면.
“서쪽 주택가는 전부 확인했습니다! 남부를 지원 부탁드립니다!”
“좋았어!”
게르빌 남작가의 후티스는 솔선에서 검을 들고 다른 사관학교 생도들과 거리를 지켰다.
‘아르민! 당신도 어디선가 싸우고 있겠지!’
우정을 나눈 친우를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휘둘러지는 검.
비극이 일어나도 이 세계를 지키는 자들은 엄연히 이곳에 있었다.
****
[······귀찮은 놈들 같으니.]멀리서 전해져 오는 기척.
이 사태 속에서 절망에 스러지지 않고, 여전히 싸우는 인간들은 많았다.
장난감?
멋대로 떠들라지.
이 세계의 인간들은 알아서 잘 살고 있고, 소중한 걸 나름대로 지키려고 할 뿐이다.
[제법 반항하긴 하지만, 좋다. 어차피 제일로 강한 우두머리를 치면 헛된 저항도 전부 끝나게 될 터.]벨레드는 손을 뻗었다.
[부에르를 쓰러트려서 기고만장해졌는지 모르겠다만. 어차피 그때는 네놈들 일곱이서 응전했을 뿐! 여기엔 네놈 하나 뿐이다! 네놈 혼자서 무엇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느냐!]그러니 바로 지금.
[서열 13위의 마왕이 가진 진면목을, 그 힘을 보여주마!]벨레드의 외침 속에 아르민은 깨달았다.
놈이 이토록 자신만만한 이유.
그건 처음부터 택도 없는 오해를 했기 때문이라고.
“이멜다, 전력으로 지켜라.”
딱 한 마디.
거기서 아르민의 의도를 읽은 이멜다는.
“·········네!”
고개를 든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망설임으로 혼탁하지 않았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태양의 힘을 가지고, 성녀의 힘을 전부 방어로 돌린 이멜다.
그걸 확인한 아르민은 벨레드를 향해 일갈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지.”
비장의 수단은 끝까지 숨겨라.
그리고
“총이 나왔다면, 반드시 쏴라.”
이제까지 참고 있던 이유는, 이멜다와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게 해결되었다면, 망설일 이유 따윈 없다.
휘릭!
오른손을 날카롭게 움직여, 아르민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허리춤에서 마도구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적의 이목을 숨기기 위해, 이것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없도록 속이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기고 있던 비장의 한 수.
‘규모는 신화급.’
개념을 끌어올린다.
구현하는 마법은, 불교의 마신을 패퇴시켰던 선각자(先覺者)의 마음가짐을 탄환으로 구현한 마법.
우선 한 발.
집착을 끊어내는 탄환.
– 따나(Tanha)
콰아앙!
쏘아진 마력탄은 단번에 벨레드의 앞을 가로막던 마력장을 찢어발겼다.
[······뭣?]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멜다의 방어가 있다면, 후폭풍 따윈 신경 쓸 필요 없을 터.
가감없이 두 발째.
악심을 물리치는 탄환.
– 아라띠(Arati)
콰아아앙!
일대에 후폭풍이 몰아치고, 놈의 팔다리가 찢겨나가듯 박살난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벨레드는 물론.
이멜다가 필사적으로 성력으로 방어하며 견디는 걸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전력으로 마력을 때려 박은 마지막 세 발째.
욕망을 일소하는 탄환.
“·········라가(Raga).”
쇄애애애액!
빛줄기는 벨레드의 미간을 꿰뚫었으니.
[크아아악!!]마왕의 짐승과도 같은 비명을 끝으로.
번뇌는 스러진다.
< 제32장 – 마왕, 인간, 그리고 차원쟁탈전 (2)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