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68)
내 마법이 더 쎈데-68화(68/203)
< 제33장 – 2nd stage (1) >
“허억. 허억. 벨레드, 이 새끼······!”
황궁 내성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남자.
제2황자 아이작은 연신 화를 참지 못한 채 씨근덕거리며 욕을 내뱉었다.
“피오나를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놈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지?!”
갑자기 황궁 하늘에 펼쳐진 게이트.
거기서 쏟아진 괴물들은 난데없이 인간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놈들은 내가 이끌 군세······. 황궁을 뒤엎을 내 군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창밖에 펼쳐진 아비규환을 보아라.
저건 통솔된 병력도, 백년권력을 지닌 자신의 아버지······. 황제 이반을 무너트릴 군대도 아니었다.
단순한 오합지졸의 괴물들.
인간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있을 뿐인 폭도들이 아니한가.
“계약이 다르잖아······!”
아이작은 몰랐다.
마왕과 인간의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사이에 어떠한 조건이 오가야 둘이 대등한 계약 관계가 되는지.
때문에 그는 당연히 자신을 벨레드의 계약자라고 오판했다.
그는 꼼짝없이 자신을 벨레드의 계약자라고 오판했다.
그 결과.
오판의 대가를, 아이작은 지금 치르게 되었다.
복도를 걷던 도중.
툭.
“음?”
갑자기 부하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냐?”
처음에는 뭔가 싶었던 아이작이었지만.
스으윽.
그 뒤로 부하들이 보여준 행동이 왠지 모르게 이상했다.
부하들은 천천히 아이작에게 멀어지듯 물러서더니.
이윽고 입을 다물고 못 박힌 듯 멈춰선 것이다.
“지금 뭣들 하는 게냐? 이 새끼들이 미쳤나 진짜······!”
폭발할 대로 폭발한 아이작은 있는 힘껏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 전에 목덜미를 스치는 싸늘한 감촉이 있었다.
“헛?”
흠칫. 몸을 떨며 아이작이 고개를 돌렸다.
저 건너편, 복도 너머에 실루엣이 떠올랐다.
– 후우. 후우우욱. 후우.
– 그르르르르.
“저게 뭐야?”
그건 기이한 생김새를 가진 짐승들이었다.
마치 물소처럼 생겨 지금 이 순간에도 후욱 후욱. 짐승 특유의 노린내를 풍기며 아이작을 응시하고 있었고.
왼쪽에 서 있는 놈은 호랑이가 두 발로 선 듯한 모양새로 아이작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아이작은 소리쳤다.
“저런 삿된 것이 벌써 이런 깊숙한 곳까지 침입하다니······! 기사단은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이냐!”
짜증을 내는 아이작은 전혀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앞마당.
게다가 옆에는 벨레드의 마기로 종속시킨 부하들마저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부하들은 충실히 아이작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며 길을 열어온 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 거슬리는 놈을 죽여 버려라!”
그 사이에 나는 내성에 마련된 비밀통로로 황궁을 빠져나가 주겠다.
그리 생각한 아이작이었지만.
“······.”
“·········.”
부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능한 아이작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그때.
“그리 외치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말 따윈 듣지 않아요.”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이 자리에 나타난 여성.
피오나는 차가운 눈동자로 아이작을 쏘아보았다.
“피, 피오나······!”
아이작의 두 눈이 커졌다.
제2황자의 이름으로, 유능한 안목을 살려 일을 벌여온 아이작이다.
이런 상황에서, 괴물과 함께 등장한 피오나를 보고 그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을 리가 없다.
마음 한 구석에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
그저 벨레드가 돌아오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다.
“······네년, 설마 처음부터······.”
“예. 당신을 속이고 있었죠.”
피오나가 손짓을 하자, 아이작의 부하들.
아니, 이제는 피오나의 수족으로 전락한 이들이 움직였다.
챠앙!
하나 둘 허리 춤에서 칼을 빼어든다.
그 검 끝이 향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아이작 제2황자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분명 나는 벨레드와 계약을······.”
“악마와의 계약은 단순히 서로 ‘계약을 했다’는 말로 끝나지 않아요. 영혼을 걸고, 내 전부를 걸고, 끝내 죽음 뒤에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계약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당신은.
“그 계약과정을 경험했나요?”
“·········제물이라면 전했다.”
“계약자 당신이 제물이 되지 않았다면, 무의미한 행위죠.”
아이작은 이를 악물었다.
설마 처음부터, 나는 계약조차 성립되지 않은 관계였단 말인가.
아이작이 벨레드로부터 받은 건, 넘칠 듯한 마기의 힘이었다.
그걸 통해 근육에서, 영혼에서, 이 육체에서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을 터다.
이거면 충분하리라 생각했거늘.
‘그 놈의 악마 새끼는, 입을 싹 닫고 받아쳐먹기만 했단 말이냐!’
돌아보면, 실로 악마다운 행위라 할 수 있겠지만.
그 덕에 지금 아이작은,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 그래. 거래를 하자. 피오나,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지불해주마!”
과연 유능한 황자답게, 그는 재빠르게 해결책을 짜냈다.
벨레드와 거래할 수 없다면, 그 계약자인 저년과 거래하면 된다.
어차피 무너져 내린 가문의 여성.
황자인 내 힘이라면,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을 터였다.
“제 소망을 이루어주겠단 말이죠······.”
피오나는 웃었다.
그러한 긍정적인 반응에 아이작 또한 미소 지었다.
역시나 자신의 제안이 먹혀 들었······.
푸욱.
“······어?”
아이작은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울컥 하고 대퇴부에서 피가 튄다.
허벅지에선 삐죽이 날카로운 날붙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피오나의 명을 따라, 부하 중 하나가 주저 없이 칼을 찌른 것이다.
“끄, 끄아아악?!”
“제 어머니를 집어삼키고,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주제에. 웃기지도 않는 군요.”
물론
“당신에게 개인적인 앙심은 없어요.”
그저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어머니를 회유한다는 말로 죽여 버린 제1황자를.
그리고 제1황자를 내버려둔 황실의 피를, 여기서 지워버리겠다고.
“자, 잠깐만 기다려라! 내 설명해주마! 내가 일부러 마왕과 손잡은 이유가 있다! 넌 착각하고 있어!”
아이작은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화, 황실에, 그것도 혀, 혀, 형님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실수다! 처음부터 네 복수는 무의미했어! 애당초 이미 형님은······!”
그 말.
뒤에 이어질 말에서 피오나는 불길한 낌새를 감지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아이작은 쓸데없는 말을.
근본적으로 피오나 자신을 망가트릴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피오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푹.
“끄, 억.”
말이 채 꺼내지기도 전에, 피오나는 아이작의 심장을 후벼 팠다.
“끄륵······. 이미······. 제1황···자···는······.”
툭 하고 떨어지는 고개.
아이작은 절명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부릅뜬 눈동자를 외면하며.
“······쓸데없는 변명이라면 됐습니다.”
피오나는 몸을 돌렸다.
****
‘윽······.’
그때였다.
피잉. 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있었다.
하지만 피오나는 그것을 외면했다.
자신의 재능이 꿰뚫어본 풍경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가슴의 술렁거림 따윈 무시한 채로.
또각또각.
그녀의 발걸음은 이내 황실의 문 앞에 닿았다.
‘······더 이상 방해자 따윈 없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큰 방해자라고 한다면 누가 뭐라 해도 바로 그 남자.
‘아르민 일레인스······.’
검성이 주최한 파티에서 아르민과 마주쳤던 그 순간.
피오나는 씨커의 능력으로, 이미 그 남자의 위험성을 알아보았다.
그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되리란 것도.
그래서 일부러 피오나는 밀튼 공작을 제물로 바치고, 일부러 아르민에게 다가가 아이작을 흑막으로 오해하게끔 만들었다.
상황을 주무르기 위해, 아르민을 자신에게서 멀어지도록 유도한 것이다.
‘전부 계획대로야.’
잠시 눈을 감았던 피오나는 마음을 결심하고 마지막 문에 손을 대었다.
끼익.
보기와는 달리, 커다란 크기임에도 문은 쉽사리 안쪽으로 열렸다.
그 안에 있는 건 두 명의 사람이었다.
“흐음.”
먼저 홀로 왕좌에 앉아있는 노인은 나지막이 신음을 흘리며 턱수염을 쓸어 넘겼다.
마주치자마자 피오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태산(泰山)······.’
전신으로 흩뿌리는 위압감.
마주 보고 선 것만으로도 자신의 옥죄어오는 듯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한 대륙의 패자. 진정한 황제가 갖춘 풍모였다.
피오나의 손에서는 절로 땀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그 곁에 서 있는 여성은 피오나도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손님이 찾아왔네?”
‘누구······?’
터질 듯이 육감적인 몸매를, 일원교의 성의로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금발의 미녀.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입에 머금고는 피오나의 방문을 환영했다.
“반가워요. 아가씨. 제 이름은 아네솔레. 일단은 태양의 대성녀라고 불리고 있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우였다.
****
쿠웅!
벨레드의 육체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선각자와 대적한 마(魔), 마라(魔羅), 마왕 자체를 퇴거시키는 신화 마술 앞에선, 서열 13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벨레드는 쓰러지고야 말았다.
[아무리······ 영격이 높을지언정, 이 위력은 대체······. 인간 주제에······.]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총탄이 꿰뚫고 지나간 이마로부터 쩌적, 쩌적. 금이 가기 시작한 벨레드는 부릅뜬 눈으로 아르민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놈은 고개를 흔들고는 소리쳤다.
[어차피······. 이 육이 멸할지라도, 영혼은 다시 건너편. 어나더 디멘션으로 돌아가 부활할 뿐이다.]‘부에르와 같군.’
육이 무너져도, 영혼은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 부활한다.
부에르 또한 비슷한 말을 지껄이며 영자이동의 술식으로 어나더 디멘션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던가.
예전에는 그 이동에 간섭하는 불완전한 방법으로, 아르민까지도 피해를 입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럴 일 따윈 없다.’
[······잠깐 어째서? 어찌하여 내 영혼이······?]뒤늦은 깨달음.
벨레드는 자신의 영혼이 어나더 디멘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럴 리가 없······.]“없지는 않지.”
[뭣이······?]벨레드는 휙하니 고개를 들어 아르민을 노려보았지만.
뭐, 아르민 입장에선 간단한 이야기였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실패 속에서 이유를 배워나가는 법이다. 네놈의 실수는 내가 이미 부에르와 싸워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야.”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마법사란 수많은 실패란 경험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나간다.
아르민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아르민이 쏘아낸 탄환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왕이라고 불리는 ‘마라 파피야스’를.
스스로를 제육천이라 주장하는 마신을 지옥의 나락으로 처박았던 신화의 재현이다.
“네놈이 돌아갈 장소는 어나더 디멘션인가 하는 고향 같은 곳이 아니야.”
소멸이라는 윤회를 통해 도달하는 저편.
불교에서 말하길.
“삼계육도(三界六道)지.”
[·········!!]벨레드의 육체가 그 말단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어.
끝까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던 벨레드지만.
그 억겁의 신화를, 한낱 마왕 따위가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푸스스슷.
참으로 허무하게도, 벨레드는 그렇게 먼지처럼 변해.
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끝난······ 건가요?”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르민은 몸을 돌렸다.
벨레드는 죽었을지언정, 아직 그의 계약자로 활동하던 피오나는 여전히 황궁 내성으로 향했을 터였다.
‘피오나를 만나서, 게이트의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해.’
이 상황에서 게이트의 입구에 간섭한 건 피오나다.
필요하다면, 그녀를 죽여서라도 입구를 막아야 이번 혼란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내성으로 간다.”
“저, 저도 같이 가겠어요!”
그렇게 아르민은 이멜다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흡!”
고작 두 번.
검을 한 번하고도 또 연이어 휘두른 것만으로도.
스가가가가각!
바람은 곧 칼날이 되어, 피오나의 곁을 지키던 두 마리의 마수를 단번에 일도(一刀)에 양단(兩斷)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휘둘러진 참격이었다.
‘이것이··· 황제······!’
피오나는 이를 악물었다.
“황제를······, 황제를 제압해!”
피오나의 지시에 따라, 벨레드의 마기로 종속된 자들이 황제를 향해 달려든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했다.
“흐읍!”
짤막한 호흡 뒤로, 황제가 칼을 내리긋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종속자들의 몸이 터져 나가며 하나의 육편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
피오나의 눈이 떨렸다.
그간 황제의 수많은 무용담을 들어왔었다.
황제는 철인이라 불리며, 그 검술 실력은 하늘에 닿아있다고.
오죽하면 검성과도 호적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검술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이미 인간의 수준이 아니야······!’
황제의 몸에서는 아지랑이처럼 황금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나와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는 힘.
마치 신성력처럼······.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그 기운을 본 피오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자리에 벨레드가 있다면, 하다못해 벨레드의 힘을 자신이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싸워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황제를 패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피오나였지만.
그 전에 먼저.
“······앗.”
움찔.
피오나의 몸이 흔들렸다.
그녀의 육체로부터 급속도로 마기의 흔적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벨레드가 직접 그녀로부터 마기를 거둬들인 것처럼.
계약 자체가 취소된 것처럼.
‘아니, 이 현상은 마치······.’
자신에게 힘을 빌려주던 마왕이, 죽은 것 같지 않은가.
피오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의 복수심은 이해한다. 내 아들 때문에 어미가 죽었다고?”
“······!!”
피오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이 일의 진상을 어디까지 눈치채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바로 저 뒤에 이어질 대사를, 피오나는 이미 여기 오기 직전에 ‘보아버렸다’.
“그······!”
만. 이라고 외치기 전에.
“하지만 이를 어쩌지. 네 어미를 죽이는데 일조한 아들이라면, 이미 내 손으로 죽여버렸다. 신통력인지 뭔지 하는 걸 탐내며, 내 자리마저 넘보다니. 솔직히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고 있었거늘. 꽤 아까운 짓이었지.”
이해할 수 있는 말과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뒤섞인 듯한 말.
“무, 무슨······.”
제국의 태산은 불쌍하다는 듯이 피오나를 내려다보았다.
“네놈이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소리다.”
감히 황제의 자리를 넘본 죄.
감히 황제의 것을 탐한 죄.
그 덕분에 제1황자는 가장 먼저 황제의 손에 숙청당했다.
최근 제1황자 대신 제2황자만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
그것은 단순하게도 죽어서 없기 때문이라고.
“네 복수가 이루어질 일은 없다.”
황제의 선고에 피오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난. 대체 무엇을 위해······.”
황실의 피를 지운다고 할지라도, 그건 제1황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걸 방해하는 자들을 전부 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그게 불가능했다고?’
피오나는 참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몸을 일으켜, 황제에게 달려드는 그녀를 향해.
“아쉽도다. 조금만 더 갈고 닦았으면, 유능한 장기말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거늘.”
스가악!
황제가 휘두른 칼날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피오나의 앞섬을 가르고, 그 육을 베어내어 최후를 선고했다.
“아.”
털썩.
피오나의 몸이 두 동강이 난 채로 바닥을 굴렀다.
황제 이반은 그저 아쉽다는 듯이 피오나의 시체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흐아아암. 끝났나요?”
이 광경을 전부 흥미 없다는 눈길로 지켜보고만 있던 아네솔레의 말에 이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네.”
하지만 아네솔레는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아니다.
“······흐응? 아니에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음?”
아네솔레의 말대로, 문 너머로 새로운 방문자가 등장했으니.
“이건 또 뭔 꼴이야?”
아르민 일레인스.
그는 황실 내부에서 펼쳐진 풍경에 인상을 찡그렸다.
****
피오나를 쫓아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황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르민이 맞닥뜨린 풍경은, 이미 그 피오나가 죽어서 나자빠져 있는 광경이었다.
‘무슨 일이지?’
자신이 개입하기도 전에 일이 끝나버렸다.
물론 피오나가 죽었으니, 이대로 놔두면 게이트가 닫히는 것도 예정된 일일 테니.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이지만.
문제는 자신과는 별개로 앞뒤 사정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태가 종결되었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르민은 인상을 쓰고 입을 열었다.
“이게 또 뭔 꼴이야?”
바로 그 뒤로.
“아네······솔레 님? 어째서 여기에?”
이멜다가 안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고 놀랍다는 듯이 목소리를 흘렸다.
‘아네솔레?’
그러고 보면 이멜다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이번 사태는 아네솔레인지 뭔지 하는 대성녀가 예언한 일이 고대로 벌어진 사건이라고.
그제야 아르민은 거기에 당당히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한 명은 척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기운을 흩뿌리는 노검사.
아마도 저자는 황제일 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응?”
아르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 기운, 너무나도 익숙했다.
아르민이 그러는 사이.
“새로운 방문객이로고. 그대여, 아는 얼굴인가?”
“···아는 사람이냐고요?”
황제 이반이 묻는 목소리에, 아네솔레라고 불린 여성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슬며시 시작된 웃음이, 이어 폭소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는 정도가 아니랍니다.”
가까스로 잦아든 웃음 속에서 아네솔레와 아르민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의 교류가 이어진 건 고작 해봐야 1, 2초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정체를 깨닫고, 알아보고, 꿰뚫어 보는데는 충분했다.
“오랜만이에요. 강재민.”
아네솔레의 다정한 인사말에 아르민은 인상을 찡그린 채로 답했다.
“·········뭐야, 너. 제이크냐?”
과거 칠영웅 중에서도 리더를 자처하던 남자.
태양의 검사.
그가 그때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서, 아르민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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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 – 2nd stage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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