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69)
내 마법이 더 쎈데-69화(69/203)
< 제33장 – 2nd stage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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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앞에 나타난 여성.
금발에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 위로 고혹적인 미소를 베어 물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완벽한 미녀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었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게이트 너머의 전선에서 괴물들을 향해 유감없이 뽐내던 태양의 기척.
이건 과거 태양의 검사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남자, 제이크의 기운이었다.
“제이크라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하지만 여기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대성녀 아네솔레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옅게 미소 지으며 꺼내든 말.
그야 외모에 어울리는 말투와 목소리이긴 했으나, 그녀가 제이크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르민에게 그 태도는 그저 위화감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또 뭐야? 언제부터 그런 취미에 눈을 뜬 거냐?”
물론 남의 취미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지만, 하도 당당한 태도에 아르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꺼내자.
그녀는 미소 지은 얼굴로 몸을 살며시 비틀며,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 유혹적인 몸짓은, 대성녀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탕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매혹적이고 퇴폐적이었다.
“혹시 당신은 게임을 해본 적 있나요?”
“······게임?”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지만.
아네솔레는 이어 말하길.
“게임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원래 성별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아바타를 만들기 마련이죠.”
일종의 역할극을 즐기기 위해.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세계에서 활동할 육체를 만들 때, 장난삼아 만든 아바타랍니다. 생각보다 완성도 있죠?”
“아바타······라니, 아네솔레 님. 당신은 대체······.”
아네솔레의 말에 침음을 흘린 건 이멜다였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아네솔레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이멜다 양. 당신에게 있어 저는 20년 전에 신의 선택을 받아 나타난 성녀였죠. 미안하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에 불과해요.”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지상으로 전파하는 존재.
일원교를 내부부터 휘어잡아, 자신의 세력으로 다루기 시작한 대성녀.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진정한 정체는 달리 있었으니.
“제이크, 아네솔레 말고도 저의 또 다른 이름을 대자면.”
여신 아르카디아.
“요컨대 저는 이 세계의 신이랍니다.”
충격적인 고백과 함께, 그녀의 전신에서는 신성하기 짝이 없는 힘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이래도 믿지 않겠냐고 주장하는 것처럼.
따사로운 햇살처럼, 만물을 보듬는 그 기운의 등장에 황제 이반도, 그리고 이멜다도 신의 위광에 굴복하듯 저절로 부복한 채로 몸을 숙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신성력이로군.’
아르민마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 에너지의 총량은 수준 자체가 달랐다.
부복한 채로도 이멜다의 몸은 흠칫흠칫 떨리고 있었다.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감각이겠지.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르민은 그저 시큰둥하니 아네솔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어머, 생각보다 별로 놀라진 않네요?”
“처음부터 그러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야.”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주어진 단서는 많았다.
아네솔레라는 이름으로 예언을 내뱉었다느니 뭐니.
신의 목소리를 대행한다느니 뭐니, 수상한 구석이 워낙 많지 않았던가.
‘게다가 일원교의 존재는 줄곧 의문이었지.’
일원교는 정상적인 종교의 교리가 아닌, 마치 달리 목적을 가지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일광의 증거를 가진 자만이 인정을 받고, 그들이 곧 모든 교도들의 위에 선다.
일반적으로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와는 그 궤부터가 달랐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엘리고스와 벨레드 같은 차원쟁탈전 참가자들까지 퇴장한 시점이다. 이럴 때 내 앞에 나타난 놈들의 정체는 뻔하지.’
이 게임을 주최했던 주최자.
아르카디아 정도다.
다만.
“내가 궁금한 건, 어째서 그 미식축구 선수 같던 미국 양키가 여기서 신 노릇을 하고 있느냐야.”
“그걸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져요.”
아네솔레가 손을 흔들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뿅 하고 탁자와 의자가 나타났다.
거기에 더해 간단한 티세트까지 만들어낸 그녀는.
“어디, 차분히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아르민과 이멜다, 그리고 멀찍이 서 있던 황제 이반에게까지 티타임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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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오오오오오!!
쿠우웅!
붉은색의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전신으로 베히모스의 옆구리를 들이 받는다.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코끼리의 대괴수가 옆으로 비틀거리듯 밀려난 순간.
– 그우우우우우!!
그에 질세라 검은 거인은 뱀의 모양새를 한 레비아탄의 몸체를 붙잡아, 있는 힘껏 그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콰아앙!
– 부오오오!!
레비아탄은 물론, 드래곤에게 붙잡힌 베히모스까지도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며, 어떻게든 공격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처벌자라고 불리는 용의 발톱과 완성형 기간테스의 힘은 아무리 S급 몬스터라고 해도 쉬이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약해졌어.’
기간테스의 어깨 팔에 올라탄 채로, 그 옆머리에 달린 손잡이를 단단히 죄고 작전을 지시하던 민세희는 미묘한 변화를 눈치 챘다.
끊임없이 게이트로부터 마기를 공급 받던 S급 몬스터들이, 어느덧 그 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 걸 깨달은 것이다.
아마도 그건.
‘선배가 게이트의 원주인을 쓰러트린 걸까?’
어쨌거나 좋은 기회였다.
“지금 바로 끝장내야 해.”
주언으로 짜올린 지시를 통해, 민세희는 기간테스에게 명했다.
최대 출력으로, 그 거구의 육체를 이용해 레비아탄의 몸뚱아리 자체를 박살내라고.
[전력돌진, 포메이션B]– 그오오오오오!
질량은 곧 파괴력으로 바뀌어, 기간테스는 레비아탄을 짜부라트릴 기세로 쥐어짜기 시작했다.
온 육신을 전력으로 움직여 박살내는 공격.
당연히 약해진 레비아탄 따위가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 키에에에에에엑!!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레비아탄의 몸뚱이가 육편으로 조각난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 그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
붉은용 이스텔 또한 그 아가리에서 브레스를 뿜어내, 베히모스의 전신을 붙태웠고.
이윽고.
쿠우우웅!
마침내 레비아탄과 베히모스 모두, 생명력이 다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기어코 드래곤과 거인이 힘을 합쳐, 제도 카라클을 덮친 재앙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복귀 프로세스 가동.”
[핵을 원상태로 복구합니다.]기간테스의 몸이 무너진다. 곧 핵은 원상태로 돌아와 잠에 빠졌다.
이대로 며칠간 또 마력을 충전해야, 다시 작동하게 될 터였다.
저 멀리서 이스텔 또한 드래곤의 형태에서 인간형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저기서 또 나름대로, 선배가 내린 명령대로 움직이리라.
상황을 확인한 민세희가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
“드디어 끝난 겁니까?”
“······세실리아 씨? 어째서 아직······, 분명 성녀를 만나러 가신다고······.”
마물을 벤 칼을 털어내며 다가온 세실리아의 자태에, 민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이멜다를 호위하러 가야한다는 중요한 임무가 있긴 했다.
하지만···하고 세실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폐허로 변한 이곳,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괴물과 싸운 덕분에 그 피해를 어떻게든 최소화할 수가 있었다.
“특히 당신이 보여준 각오. 그걸 본 이상, 저 혼자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민세희는 자기 목적보다도 이 자리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구하는 걸 우선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세실리아는 떠올렸다.
‘일원교의 교리가 가진 모순······. 우리가 우선해야할 건 일광의 증거 따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느 한 때. 한 귀족 도련님이 짚어주었던 종교의 모순을, 세실리아는 좌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성녀의 앞에선 절대로 할 수 없겠지만.
“······이멜다 님이라면 이해해주시겠지요.”
하여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황궁으로 향하지요.”
“네, 넷!”
앞서 튀어나가는 세실리아를 뒤따라 달리며, 민세희는 황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지금, 만나러 갈게요. 선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뒤늦지 않게 합류하고 싶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가짐을 품고서, 두 사람은 황궁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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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차를 홀짝이며, 아네솔레는 말했다.
“강재민, 당신이 사라지고 세계는 혼란에 휩싸였어요.”
관련된 이야기는 아르민 또한 후배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사라지고도 게이트 발생이 멈추지 않았다고.
“덕분에 세계는 여러 분쟁이 생겼죠. 자원을 두고 벌어진 외교 전쟁뿐만이 아니라. 종래에 그건 헌터들의 무력 다툼으로까지 이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일을 한 방에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게이트 너머에서 새로운 문명으로 향하는 단서······. 모노리스(Monolith)가 발견된 것이죠.”
“모노리스라고?”
물론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2001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모 유명 SF 영화나, 흔히 그런 류의 소설에서 묘사되길 모노리스는 인류보다 위대한 문명이 남겨준 일종의 이정표라는 설정으로 자주 등장하고는 한다.
요컨대 아네솔레의 말은 이런 이야기였다.
“그 유물에는 우리 인류 또한 지구를 침략했던 부에르처럼. 마왕에 준하는 고등정신체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답니다.”
이 세계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사와 악마라고 불리는 자.
아수라와 야차라고 불리는 것.
솔로몬이 기록한 72의 마왕은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팔대용왕.
마라, 마구니, 정령.
그밖에도 기타 등등.
수많은 문화와 신화권에서는 그들이 각자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그들 중엔 여전히 72마왕들처럼. 여전히 우리 세계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었죠.”
그것은 위협이었다.
인류는 모노리스와의 접촉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인류가 바라보는 세계의 개념이 한 단계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월적인 존재들이 세계를 집어삼키는 방법이 바로 차원쟁탈전이라는 거군.’
여기까진 아르민 또한 사전지식으로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였다.
부에르는 결국 시발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제2의 부에르, 제3의 부에르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죠.”
가능성은 충분했다.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된 인류는 걱정했다.
이미 부에르를 물리쳤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첫 번째로.
아네솔레는 그 가느다란 검지로 아르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인류 최고의 희망이던 당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죠.”
“거창한 표현이군.”
“하지만 사실인걸요.”
객관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강재민이라는 남자가 없는 이상, 가만히 있다간 이번엔 정말로 인류는 멸망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인간들은 생각했다.
“차라리 우리 또한 부에르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자고.”
모노리스를 통해 방법을 손에 넣었겠다.
망설일 건 없었다.
“당시의 칠영웅, 아니, 당신이 빠졌으니 육영웅이 한 자리에 모였어요.”
미국의 제이크.
영국의 헬레나.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중국의 샤오메이.
그리고 일본의 모리오카까지.
특히 미국과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 어마어마한 자원······.
즉 마석과 마법 물품들은 물론, 각종 지원들이 함께 하면서 실험은 극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육체를 부수고, 영혼을 으깨어, 존재 그 자체가 더 상위차원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직접 육영웅의 육체에 시험한 것이다.
그리고 실험은.
“보란 듯이 실패했죠.”
아네솔레가 지은 고혹적인 미소에, 아르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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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 – 2nd stage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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