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72)
내 마법이 더 쎈데-72화(72/203)
< 제35장 – 커튼콜 >
‘말도··· 안······.’
한없이 신에 가까웠지만, 신은 아니었던 자.
아르카디아는 자신이라면 강재민을 충분히 제어 가능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이 아무리 지구에서 현대 마법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한들, 놈은 고작 해봐야 인간.
더구나 놈은 마법에 미쳐 있다.
이 세계에서 자신이 제조한 조형에 맞춰져, 육체에 리미트가 걸린 지금이라면, 놈은 더욱 더 마법에 대한 갈망이 커져 있을 터.
그걸 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법만을 위해서라면 인생을 비롯해, 자기 전부를 내건 저 또라이가 상대라면 적당한 당근을······.
그래. ‘마법의 궁극에 이를 수 있는 신좌’를 준비해준다는 말로 꼬드긴다면 그 고삐를 쥘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거늘.
‘오판······이었다.’
딱 하나.
아르카디아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게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설사 신이라고 할지라도 망설임 따윈 없이 적대하고 덤벼드는 저 성정.
강재민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또라이라는 사실이었다.
‘아, 아······. 나의 대계(大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채로 치뜬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린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르카디아의 존재는 육도로 회귀하여.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이멜다는 할 말을 잃은 채로 주저앉아,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굉장해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
처음에는 절망하고, 좌절했다.
성녀의 길은 본디 아르민이 제시해준 길일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성녀로서 활동해오며 여러 일들을 겪어왔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그 속에서 신음하며 신을 갈구하는 자들을.
그런 자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걸어온 성녀의 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이란 자가 그런 것엔 관심조차 없었다는 현실에.
그리고 자신이 착실히 경애해온 신은, 그저 인간을 장난감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더랬다.
하지만.
– 내가 네게 준 힘은 그런 게 아냐.
아르민은 코웃음을 치곤 말했다.
뭐가 신이냐, 뭐가 성녀냐.
신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네 힘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힘.
그러니 자기 다리로 서라고 차갑게 쏘아 붙인 아르민이었다.
‘이자벨······.’
동생을 떠올린 이멜다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아르민 옆에 서서, 인간을 가지고 노는 신과 싸우면서 당당히 버티고 설 수 있었다.
여신 아르카디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아르민과 부딪쳐 전투가 전개되기까지.
그 상황은 전부 이멜다의 눈과 인식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전개되었고.
또한 단시간에 결판이 났다.
그리고 그 승패의 승자는 다름이 아닌.
‘아르민 님이······. 이겼어······.’
가루가 되어 바스라지는 신······.
아니, 신이‘었던’ 존재를 무심히 지켜볼 뿐인 아르민 일레인스를 바라보며 이멜다는 생각했다.
자신을 구해주고, 나아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대표해 신을 단죄한 그야말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아르민이야말로 그녀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대단한 영웅이라고.
“아르민 님······!”
그렇게 이멜다가 당장 아르민에게 달려가려고 마음먹은 때였다.
“······어?”
문득 그녀의 눈동자에, 믿기 힘든 광경이 비춰졌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설마···하고 이멜다의 걸음이 멈춘 순간.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황제 이반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이멜다의 귓가에 닿았다.
****
천천히 아르민은 고개를 돌렸다.
눈길이 닿은 곳. 알현실의 구석엔 황제 이반이 반쯤 무너진 돌더미 옆에 기대앉은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무장해제 완료, 신체 능력 저하, 저항 의사가 없다고 판단. 제압 완료했습니다. 마스터.”
아르민에게 다가와 무감정하게 제 할 일을 보고한 이스텔의 말처럼.
“허억, 허억.”
황제 이반은 죽어가고 있었다.
허리 아래로 육체의 반 정도가 다진 고기처럼 변해버린 신체.
등허리로 길게 난 자상은, 아마도 이스텔의 발톱으로 할퀴어 낸 상처겠지.
대륙의 강자라고 이름이 드높은 칼센 제국의 황제라고 할지라도, 결국 드래곤 앞에선 그 힘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꿀럭꿀럭.
출혈로 쏟아지는 피의 양만해도 진즉 치사량을 넘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형형한 눈빛을 불태우며 아르민을 노려볼 수 있는 건.
“역시 황제라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가 보군.”
과연 한 제국의 패자다운 기세로 이반은 생명의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도 분노를 품은 채 아르민에게 소리쳤다.
“여신 아르카디아는······. 이 세계를 이루는 구심···점이었다······!”
아르카디아를 모시던 대륙 제일의 종교라고 불리는 일원교(一元敎).
그것이 강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국이 직접 국교로 받아들이며, 신성왕국 바오르와 함께 중심을 지키고 선 채, 아르카디아의 신앙을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주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대륙에서 가장 큰 신앙을 그 육에 받아들이고 있던 아르카디아.
남은 여섯 신 중에서는 그나마 아르카디아만이······.
“우리 인간들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단 말이다······.”
아마 그것은 자신이 만든 장난감에 대한 애착일까?
어쩌면 귀여운 애완동물을 내려다보는 주인의 심정이었을까?
무엇이 되었건, 유일하게 인간에게 섣불리 손을 대지 않던 아르카디아였다.
“그녀가 사라진 시점에서······. 대륙은, 점차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
그저 아르카디아가 하는 시늉만을 바라보면서 손을 놓고 있던 나머지 네 신들이, 앞으로는 이 대륙에 개입하게 될 것이라며.
그리고 바로 그 불씨를 당긴 것이 아르민이라면서, 이반은 아르민에게 소리쳤다.
“제국의 황제는 신과 안면을 텄나보지? 황제쯤 되니까. 인맥이 장난이 아니네.”
인간들 중에 영걸이라고 이름 드높던 자는, 이처럼 이미 신과 한통속이 되어 손을 잡은 자였던 모양이다.
너스레를 떠는 아르민의 농담에도 이반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아르카디아는 그나마 온건파······였다. 세계를 통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직접 시스템을 만든 것도 그녀였지······.”
대대로 칼센 제국의 지도자는 바로 그런 신과 소통하며 합을 맞춰왔던 모양이다.
“네놈도 거기에 동조했다. 이 말이냐?”
“당연하다. 네놈도 보아서 알고 있지 않느냐······? 이 차원을 넘어선 건너편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72좌의 마왕들은 하나하나가 강자들이다.
지상에 강림하면, 국가 하나 정도는 쉬이 불태우고 날려버릴 괴물들.
인류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대적하기 어려웠다.
신의 의지로 육체에 리미트가 걸린 몸뚱이로는, 이전의 지구에서 활약하던 헌터 같은 이들이 나타날 환경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으니까.
“신과 타협하여,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거늘.”
이반의 말에 아르민의 표정이 사라졌다.
저 말에는 애당초 처음부터 어폐가 있었다.
“그 리미트를 만든 게 신이라고 해도?”
“······.”
이반의 말문이 멈추었다.
그가 말하는 건 간단했다. 한낱 그들이 신이라 믿는 자의 호의에 기대어, 이 세계를 존속시키고자 한다.
결국 대륙의 패자라던 황제 이반이 걸어온 길은, 그러한 번견(番犬)의 길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네놈이 저지른 짓을 보거라······! 앞으로 남은 신들이 대륙에 어찌 개입해올 줄 알고! 이대로 대륙에 남은 인간들의 운명은······!”
그래서였다.
황제 이반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헛소리로군.”
아르민은 그 말을 끊었다.
“우리에겐 힘이 없으니까. 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예. 예. 대답하면서 살겠다고? 장난감인 채로 만족하겠다. 이 말이냐?”
“······어쩔 수 없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내 알바냐?”
“······!!”
황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당초 신이니 뭐니, 멋대로 주장하는 놈들의 말대로 살아가겠다니?
“이번 차원 쟁탈전만 보아도, 놈들은 원하는 때, 그리고 필요한 때에는 주저 없이 이 대륙의 인간들을 제물로 바치고 가지고 놀고 있다. 너는 황제라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 정말 그것을 납득한다는 거냐?”
“······나는!”
그야 놈으로선 제국 신민을 위해 그리 해온 걸지도 모른다.
나아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생에 무슨 의미가 있지?”
사육당하는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신세로 납득한다면.
인간은 어째서 살아간다는 말이냐.
“······나는······. 노력, 했다······.”
이반의 눈동자에선 천천히 빛이 사라졌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최후는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난······”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변변찮은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했다.
“······남은 신들이란 말이지.”
아르카디아가 주신으로 추대된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이 신들 중엔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만큼 그녀가 사라진 지금, 남은 신들에 대해 대처를 해둘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 전에 먼저.
“아르민 님, 손이······.”
이멜다의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아르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슬며시 가루가 되어 부스러지기 시작한 육체.
그랬다. 바로 이것이.
“······리바운드(Rebound)가 시작되었나.”
아르민이 외법의 사용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왔던 이유.
틴달로스의 계약을 사용한 대가로, 아르민의 육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르민 님, 그건 대체······!”
“이대로라면 앞으로 길어봐야 5분. 아니 3분이면 다 무너지겠군.”
이멜다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냉정한 아르민의 태도에 혼란스러운 듯 연신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에 맞는 대처를 해야만 했다.
아르민이 조용히 준비를 하려는 바로 그때.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뒤늦은 방문자 둘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
“이멜다 성녀님!”
전투의 여파인지, 여기저기 검댕이 묻은 갑옷을 걸친 은빛 여기사와 더불어.
“·········선배?”
후배 민세희가 아르민을 불렀다.
****
성에 도착한 순간부터, 민세희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쿠웅!
커다란 진동과 함께 황궁의 위, 그리고 동쪽 거리에 나타났던 게이트의 문이 닫히고, 그 흔적까지 전부 소멸했다.
‘선배가 해낸 거야!’
민세희는 확신했다. 무려 S급 몬스터까지 등장해버린 이만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알기로는 여기에서 선배밖에 없을 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동안, 선배가 사건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은 것처럼.
그는 민세희의 믿음에 보란 듯이 답해주었다.
하지만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어째선지 황궁 내부의 공기는 무거웠다.
“······이상해.”
평소 연구원으로서 살아온 그녀는 제육감따위를 믿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요소에 무언가를 걸기보다.
늘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을 믿어온 삶을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가슴이 술렁이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전신에 차오른다.
이건 그때와도 같았다.
‘선배를 마왕성으로 떠나보냈던 그 날하고 같아.’
강재민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기 직전.
민세희는 선배에게 말하고 싶었다.
가지 말라고.
여기에 남아달라고.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선배가 무사하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또한.
“선배······. 그 몸은 어떻게 된 거에요?”
그 불길한 느낌을 사실이라고 못 박듯, 황궁 내성의 최상층에서 마주한 아르민은 그 육체가 말단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외법의 후유증이다.”
아르민의 심플한 대답.
당연히도 민세희는 그 말 한 마디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선배가 외법을······!”
“그 정도 마법이 아니었으면,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였으니까.”
“······!!”
실로 그러했다.
상대는 신이 아니라고 해도, 한없이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 세계 출신으로 육체에 리미트가 걸린 몸.
더구나 마력까지 응결된 필드에서, 아르민이 아르카디아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결국 육체와 영혼이 무너진다는 한계를 감수하고서라도 외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어째서죠? 어째서 선배는 또 그때처럼 혼자서···!”
희생하려는 거냐고.
부에르의 결전이 있고 난 뒤, 민세희는 돌아온 영웅들의 면면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엔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던 남자의 얼굴은 없었으니까.
그때와 똑같다.
이번에도 선배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그거야 나란 놈이 원래 그런 놈이거든.”
“······선배?”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사실 지구에 있을 때도 그랬다.
짜증나는 놈이 있다. 그 놈을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은 알고 있다.
게다가.
“내가 생각보다 감성적인 남자인 모양이더라고.”
인간을 장난감 취급하던 신을 상대로, 아르민이 떠올린 건 이 세계에서 만나온 이들이었다.
장난감으로 취급 받으며 죽어갈 이유가 없던 그들.
아마 자신은 의외로 다른 이들을 마음에 들어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저는 여태까지 선배를 만나려고······.”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지금 선배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또 다시 사라지려고 한다.
그렇게 민세희의 눈가에 하나 둘, 눈물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을 무렵.
아르민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
민세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평소 그녀가 알던 선배라면, 절대로 입에 담지 않았을 그 말에 마음이 동요하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아르민은 퍽이나 유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울지 마라.”
“······하지만.”
“누가 보면 내가 죽는 줄 알겠다.”
“·········네?”
무슨 소리냐는 듯, 움찔 움직임을 멈추는 후배를 향해 아르민은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난 죽을 생각 따윈 없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거 같지만, 반드시 돌아오마.”
150년을 기다려온 그녀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에만 조금 짧은 이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대신.
“다음에는 내가 널 만나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남은 사람들을 부탁하마.”
민세희라면 믿을 수 있다.
한없이 신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르민은 후배에게 말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생각보다 친해진 일레인스 가문의 가족들을.
마리나나 이멜다 같이, 남은 사람들을 부탁한다고.
그런 말을 끝으로.
파스슷.
“······재민 선배?! 선배!”
민세희의 애탄 목소리만을 아스라이 남긴 채.
아르민의 육체는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려갔다.
****
– 아르카디아가 사라졌다.
– 설마 마왕에게 패배했나?
– 아니, 우리도 알고 있는 자다. 마법의 궁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자.
– 그토록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자신하더니, 결국 그 자에게 패배했다는 건가.
– 인간의 육체로 신까지 소멸시키다니, 놈이야말로 제일 위험분자인 게 아닌가?
–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놈은 죽었다. 외법의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한 게지.
– 하, 신을 쓰러트려도 자기가 죽어버렸다면 결국 도루묵이거늘.
– 어쨌거나 우리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신앙을 가졌던 자가 죽었다.
– 덕분에 대륙은 공백이 되었군.
– 이때를 노리고 보란 듯이 쳐들어오는 자들도 있겠지.
– 그렇다면 움직여야만 한다.
– 누가 움직일 생각이지?
– 누구냐니, 우문(愚問)을.
지금부터는 우리 전원이 움직인다.
****
암흑천지였다.
시야 따윈 존재하지 않고, 나 자신조차 자각할 수 없는 공간.
아니, 이미 이곳은 공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지각(知覺)이 없다.
감각(感覺)이 없다.
그런 주제에, 아르민은 알 수 있었다.
육체가 먼저 붕괴하고 찾아든 이 암흑천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영혼 또한 저 발끝부터 소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대로 있으면, 정말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은 외법의 후유증으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야 만다.
그리고 아르민은.
‘처음부터 죽을 생각 따윈 없었어.’
아르민은 외법을 사용하면서, 딱히 자살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방법이라면 있다.
‘부에르가 사용했던 영자이동의 술식을 재활용한다.’
부에르가 그랬고, 또 엘리고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나더 디멘션의 마왕들은, 자신의 육체가 붕괴하더라도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마법을 통해 그 최후를 회피하고자 했다.
‘술식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애당초 지구에서 아르민이 최후를 맞이한 이유부터가 바로 그 술식 값에 간섭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온전한 값을 이용해, 마법을 구현코자 한다.
자신에게 패퇴했던 마왕이 썼던 마법이다.
‘내가 쓰지 못할 이유도 없지.’
천천히 아르민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마력을 이용해, 술식을 구축했다.
마왕들은 그 육체가 특유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흉내 낸다면, 나 또한 무너진 육체를, 영자로 이동한 세계에서 재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너지는 걸 기다릴 바엔, 마력을 사용해 내 육체를 다시 만든다.’
보기 드문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림에서도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용어로 전래되는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집중, 구축, 재현.’
쿠우우웅!!
아르민이 주언을 읊자, 암흑천지를 요동케 하는 커다란 충격이 전신을 후려쳤다.
아르민은 눈을 감았다.
이미 육체는 무너지고, 영혼만이 남아있지만.
마법의 근본은 상상력. 나 자신의 상상을 신비로서 구현하는 행위다.
그러니 상상한다.
마법을 사용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서.
따악.
아르민은 손가락을 튕겼다.
‘영자이동을 이용한 소생술을 실시한다.’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렀다.
< 제35장 – 커튼콜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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