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85)
내 마법이 더 쎈데-85화(85/203)
< 제42장 – 봉인의 신전 (2) >
질척거리는 어둠이 발목까지 차오른 공간.
눈을 뜬 바싸고는 눈살부터 찌푸렸다.
“······내 말했을 텐데. 또 이렇게 날 멋대로 부르면,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쿠웅.
마기가 그녀의 의지에 호응하자, 흔들림은 점점 더 거세어진다. 찰랑거리던 어둠이 철썩거리는 파도로 변해 주변을 뒤흔들 즈음.
“그 말을 어기게 된 건 미안하네. 하지만 태초의 맹약에 따라, 그대들을 부르는 것이 내 소임임을 간과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군.”
스르륵.
진동을 제압하고, 어둠 속에서 솟아오른 자가 있었다.
흰색 로브를 뒤집어 쓴 자.
로브 안에서 넘실거리는 어둠으로 바싸고를 오롯이 바라보는 그가 바로.
“······아가레스.”
“오랜만이네. 바싸고.”
바싸고의 노기를 띤 목소리에도 아가레스는 무심히 인사를 건네었다.
“태초의 맹약이라니. 갑자기 거창한 소리나 지껄이고 말이야.”
벌써 5천년 이상이나 된 구닥다리 약속이지 않은가.
바싸고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의 대지, 드림랜드.
이곳은 현생의 물질계 같은 곳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정신과 정신으로 이어져 있는 꿈의 세계.
요컨대 아가레스가 만든 그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빠져나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만······.’
맹약이라는 한 마디가, 바싸고의 주의를 끌었다.
“바알은?”
“저기에 있다.”
바싸고가 시선을 준 곳.
거기엔 마기로 전신을 가린 채, 꿀렁이는 안개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
실체를 감추고,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엄수하는 서열 1위의 마왕.
“흥.”
바싸고는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기분 나쁜 놈이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던 때가, 지난 번 대회합 때였던가?
벌써 천 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그때 이후로는 줄곧 저렇게 얼굴은 물론, 영혼의 기척까지 숨기고 있는 꼴이라니.
“좋아. 맹약이라니 들어주겠어. 어디 한 번 지껄여봐.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른 거지?”
“나의 ‘예언’은 이미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야 난데없이 전 마계를 향해 송출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모를 리가 없지.
그렇지 않아도 따지고 싶은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르카스가 권좌라니, 무슨 헛소리야?”
서열 3위나 되는 그녀가 아르카스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른 세계에서 추방된 ‘영격’.
어느 순간부터 하급 마족들 사이에서, 그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보고가 종종 올라오긴 했지만.
바싸고는 줄곧 무시하고 있었거늘.
“어차피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정령 따위가 마계에 자리 잡는 건 흔한 일이잖아?”
마계란 불모의 대지.
다른 수많은 차원에서 추방된 쓰레기들이 모여드는 쓰레기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추방된 것들 중에서는 마왕급에게 붙잡혀 애완동물로 사육되거나, 조금 더 급이 높은 정괴(精怪) 따위라면 하급 마족들에게 신성시 여겨지는 일쯤이야. 마계에선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인 아르카스가, 최초의 12권좌에 필적하는 영격이라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카스는 아직 권좌로서 기능하진 않는다.”
“뭐?”
바싸고는 아미를 찌푸렸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놈은 봉인된 상태로 마계에 버려졌다.”
정확히는 유폐된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그네들 세계에서 사건에 휘말렸던 것이겠지.
단지 봉인된 채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이대로 내버려두자는 합의 하에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다.
천년을 그저 그 자리에 묶어두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바로 며칠 전을 기점으로.
“차원의 흔들림이 있었다. 그곳에서 넘어온 ‘자’로 인해, 상황은 변모한다.”
아가레스는 보았다.
차원을 통해 넘어온 것이 아르카스와 접촉하는 미래를.
그 결과를 통해, 봉인되었을 터인 그것은 조만간······.
“새로운 권좌로 승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기존의 마왕들이 이룬 세력구도를 뒤흔드는 위협이기도 했다.
“고작 신생권좌 따위한테 우리들의 권위가 흔들린다고?”
바싸고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아가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아르카스가 넘어온 차원이 어디인 줄 아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바싸고, 너에게 건네주었던 변방 차원의 장소다.”
“뭐?”
아가레스는 자신의 힘을 통해 얻은 주소를, 바싸고에게 넘겼다.
변방의 차원.
아직 아무런 영격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을 예언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싸고를 통해 치려고 했거늘.
“너는 움직이지 않았지.”
“내가 네 말 따위에 놀아날 리가 없으니까.”
바싸고는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원채 자존심이 강한 그녀다.
아무리 먹잇감이 되는 차원주소를 받았다고는 하나.
아가레스의 명을 받아 습격하는 꼴이 되는 걸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에게 일임했을 뿐이거늘.
그래도 나름 최초의 12권좌였던 부에르이니, 성공하겠지 싶었지만.
‘놈은 실패했었지.’
예상 밖의 결과에 놀라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어차피 놈이 뭔가 실수라도 했던 것이겠지.”
하고 넘긴 바싸고였다.
그런데.
“그 말은 변방의 차원에, 부에르를 패퇴시킬만한 이가 존재했다는 소리다.”
“그래봤자 변방의 차원이잖아?”
이곳까지 넘어올 실력도, 재주도 되지 못하는 자들.
하지만 아가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선대가 남긴 유산을 통해, 나는 얼마 전 그곳 차원의 진실을 알아냈다.”
그곳은 단순한 변방의 차원이 아니라, 본디 독생자의 차원.
즉.
“3천 년 전, 우리를 배격했던 차원이다.”
“······그건 처음 듣는데.”
마왕들에게 전설로 내려오는 신화가 있다.
최초의 12권좌를 비롯한 72좌의 마왕체를 한순간에 배격해낸 ‘자’가 있노라고.
그 어떠한 자보다도 ‘영격’이 뛰어난 자.
아마도 최초의 12권좌를 뛰어넘는다고까지 알려진 남자.
독생자(獨生子).
바싸고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아르카스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아르카스가 독생자가 되기라도 한다는 뜻이야?”
“아니, 시기상으로나 봉인된 형태로나 큰 관련은 없겠지. 우리들이 선조와 그리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
지난 3천 년 간, 최초의 12권좌를 비롯한 마왕의 권좌는 몇 번이나 그 후계가 바뀌어왔다.
바싸고만 해도 이미 5대의 3위를 맡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다만.
“아르카스와 접촉하려는 자가 심상치 않다.”
아가레스는 보았다.
독생자는 물론, 수많은 영격과 신격을 두른 채로 이 세계에 나타난 자의 ‘영혼’을.
때문에 아가레스는 예언을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려는 자는 도태될 뿐이다.
“조심해라. 바싸고. 이건 경고다. 마계엔 조만간 ‘재앙’이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막을 의무가 있다고.
아가레스의 말이 끝나자.
스르륵.
바알이 자취를 감추었다.
바싸고 또한 혀를 차며, 또한 마찬가지로 기척이 사라졌다.
아가레스의 말을 듣고,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아가레스는 중얼거렸다.
“잊지 말아라···. 신화를 이룩하려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
작열하는 대지.
이곳에 헬레나가 유폐되어있다는 것까진 좋았다.
단지.
“그런데 그······. 신께서 봉인되어있다는 신전의 입구는 어디서 찾습니까요?”
볼프의 의문대로, 당장에 입구를 찾는 것부터 막혔다는 게 문제였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니야.”
무려 아르카디아가 자기 힘을 이용해 봉인한 것이다.
단지 주변을 수색하는 것만으로 쉬이 찾을 수 있도록 내버려뒀을 리가 없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르민은 문득.
“그러고 보면, 너희들이 믿고 있는 아르카스라는 신은 어떤 녀석이지?”
자신이 알고 있는 헬레나가 아니라, 신도들이 믿고 있는 아르카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던진 질문에.
“그게······.”
“신께서는 앞으로 나서지 않는 분이십니다.”
망설이는 볼프와 달리, 아크투루스에게선 금방 답이 돌아왔다.
“나서지 않는다?”
“예. 누군가를 해하라거나, 남을 구하라는 말도 없이. 신께서는 그저 거기에 계실 뿐이지요.”
연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답하는 아크투루스의 얼굴엔 일종의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그 분의 목소리는 단지 모두에게 들릴 뿐입니다.”
오롯이 평등하게.
그것은 아르민에게도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뭐, 헬레나도 직접 누굴 구한다느니 하는, 기특한 생각을 할 녀석은 아니지.’
단지 주어진 책무에 허덕이고.
일국의 공주라는 책임에 가까스로 신음을 참아가며 살던 그녀다.
그런 헬레나가 솔선해서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신을 자처했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인 신.
다만 그 목소리가 닿는 건, 이 땅을 살아가는 ‘전부’다.
“저희 같은 하급 마족들처럼. 억울하게 배척 받는 자들은 물론, 신성을 갈구하는 자가 있다면 중급이나 상급도 구분 않고 목소리를 들려주시는 분이시지요.”
오로지 목소리를 들은 자라면 똑같이 신체에 나타나는 화인의 증거처럼.
“그 분의 목소리를 들은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요. 증거를 받은 우리들은 평등한 존재들이라고. 신은 우리를 전부 평등히 여기신다고.”
그래서 아르카스의 사상은 위험하다고 마계 태반의 마왕들은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마계의 시스템을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인가.’
어쨌거나 대강 아르카스가 어떤 느낌으로 숭배를 받는지는 알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마왕들이, 눈앞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폭력이라면······.
아르카스는 위안을 주는 등불 비슷한 무언가겠지.
“······그렇군.”
일련의 대화 끝에 아르민의 눈길이 닿은 용암 바닥.
그 건너로 보인 실루엣에.
“찾았다.”
아르민은 입구를 특정 지을 수 있었다.
“네?”
“모두 이스텔에게 올라타라.”
아르민의 손짓에, 이스텔은 금방 드래곤의 형태로 현신했다.
그걸 처음 보는 아크투루스는 깜짝 놀란 나머지 몸이 굳었지만.
그걸 이해한다는 듯 볼프는 소년 마족을 이끌고 이스텔의 등에 끙차 올라탔다.
“날아라.”
– 예스, 마이 로드.
허공으로 치솟는 거대한 동체.
그것은 한 바퀴 하늘을 선회하더니, 이윽고 “이대로 돌진한다.” 라는 아르민의 지시에 따라 땅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베, 벨레드 님?!”
“우아아악!?”
경악과 비명이 오고가는 가운데.
이스텔은 가감 없이 용암이 흐르는 바다로 돌진했고.
푸화아악!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그 동체가 용암 아래로 잠긴 순간.
[숨겨진 신전의 입구를 찾았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눈앞에 거대한 신전의 아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용암으로 빠져 들어 도착한 곳은 바닥 아래의 건너편 세계였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이 세계는 이면으로 구성되어있다는 말이다.
‘퀘스트는 갱신되었다.’
갱신된 퀘스트의 내용은 간단했다
[퀘스트 : 장애물을 돌파하고 봉인된 자를 찾아라.]신전에 있을 장애물이 뭔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걸로 끝나지는 않을 터.
“이, 이런 곳에 신전의 입구가 있다니······.”
꼼짝없이 바닥과 충돌하는 줄 알았던 볼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일행은 이스텔이 일으킨 불꽃에 의지해, 천천히 신전 내부로 돌입했다.
그리고
“미로인가······.”
가장 처음으로 맞닥뜨린 장애물은, 지평선이 보일 만큼 거대한 크기를 가진 미로였다.
“이건 통과하려면······. 엄청 힘들겠는데요······.”
아크투루스의 말대로 규모 자체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모티브는 미노타우루스를 가두었다던 전설의 미궁 라비린토스일까.
미궁 건너편에서 불규칙적으로 철그럭 철그럭 들려오는 쇳소리나, 아우우! 하고 떨리듯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미궁 내부에도 꽤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리라.
“어, 어쩔깝쇼, 나으리···?”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볼프에게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느긋하게 미로를 통과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다만 그럴 시간이 없는 게 문제였다.
“꽉 잡아라.”
“예?”
아르민은 정면을 바라본 채, 손을 들었다.
우선은.
‘영역 탐지.’
제2종 비원소 마법을 통한 감지를 시작한다.
두웅.
마력파가 뻗어 나간다.
1초에 수백 미터를, 음파보다도 빠른 속도로 내부를 탐지하여 머릿속으로 미로의 내부 자체를 매핑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이곳에서 약 동서쪽으로 10km 정도.
거리와 방향을 알았다면, 다음 방법은 간단하다.
‘속성은 빛, 특성은 열량 집중, 형태는 광선의 모양으로,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트리플 액션을 섞은 마법을 오른손 검지에 장전한 채로, 아르민은 출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그리고
“빵.”
콰아아아앙!
쏘아진 강력한 열선이 레이저처럼 뻗어나갔다.
콰앙! 쾅쾅쾅! 푸화아악!
중간에 있던 지네 형태의 괴물까지 증발시켜버리며 나아간 마력 열선은 일자로 구멍을 내고.
정확히 아르민이 탐지한 출구까지 통로를 만들어냈으니.
미로의 존재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마법의 폭거였다.
“············헐.”
“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는 볼프와 아크투루스를 향해.
“뭐해? 가야지.”
아르민은 먼저 자기 손으로 만든 통로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
그밖에도 신전을 내려갈수록, 아르민은 여러 장애물을 만났다.
“저, 저건 마계에서도 유명한 전설 속의 가디언······!”
볼프가 호들갑을 떨어댄 조류대가리를 달고 있는 괴물은.
“연쇄폭발.”
가볍게 마법으로 머리부터 터트려준다던가.
“저건 밀림의 마계에서 마왕급에 이른다는 괴물이에요!”
아크투루스가 전율한 괴물을 향해서는.
“귀찮다. 좀 꺼져라.”
따악.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겨, 전신을 다진 고깃덩이로 만들어, 더욱 엄청난 전율을 선사했다.
실제로 만난 놈들은 아르민이 기억하기로도 전부 S급에 해당하는 엄청난 개체들이었지만.
‘공들인 거 치고는 시시하군.’
그때마다 아르민은 손을 휘저으며, 장애물 전부를 무력화시키고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거기엔 장애물을 극복하며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는 서스펜스도.
가슴에 불을 댕기는 화려한 배틀도 없었다.
그저 장애물을 치워낼 뿐인 단순 작업.
“여, 역시 벨레드 님이십니다요.”
볼프가 가까스로 아부를 할 정도로, 작업은 일사천리였다.
“이거 참 그립구만.”
옛날에 게이트가 열렸을 땐, 비슷한 경험이 많았지. 하는 단순한 감상을 내뱉은 채로 도착한 마지막 방.
마침내 아르민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
“여기다.”
그곳은 대강 축구장만한 크기를 가진 방이었다.
저 끝에, 기둥처럼 보이는 곳에 묶인 이가 보였다.
쇠사슬에 감싸여, 왕좌에 유폐되어있는 아름다운 미녀.
금발에 진홍빛 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아르민도 익히 아는 자.
헬레나였다.
“······저, 저분이······.”
“우리들의 신······. 아르카스 님······!”
코앞에서 목도한 신성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흘리는 볼프와 아크투루스였지만.
그때.
쿠웅. 하고 거대한 떨림이 아르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연히 마지막에 이르러선 제일 성가신 방해꾼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지.”
쿠웅. 쿠웅.
연이은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그 앞을 가로 막은 건, 아르민도 얼굴을 아는 자였다.
순백으로 물든 갑옷.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대검의 위용까지.
과거 태양의 검사라고 불리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꼬라지라니.
“······하긴 당연한 일인가.”
헬레나를 봉인한 건 다름 아닌 아르카디아다.
그러니.
“여기서 네놈을 만나게 되다니 말이야.”
– 날 아는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놈의 이름은 제이크.
아니, 정확히는 제이크가 아니겠지.
아르카디아가 과거 자신의 육을 본 따 만든 가디언일 터였다.
“뭐, 알다마다.”
– 흠, 나는 기억이 안 나는 걸. 뭐, 본의는 아니지만. 일단 물어 보마.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뭐지?
제이크의 모습을 한 그것이 묻는 질문에,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동화에 자주 나오잖아. 잠에 빠진 공주님을 되찾으러 왔다.”
단순한 농담.
거기에 제이크 또한 피식 웃으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 그쪽이 얌전히 공주를 되찾으러 온 왕자님처럼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콰앙!
대검이 바닥을 내리찍는다.
전투태세를 갖추는 놈은 어디로 보나 제이크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오히려 그 점이 아르민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긴 놈이 왕자란 걸로 하지, 뭐.”
– 그거 좋군.
후웅!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코앞까지 도달해있는 대검을 똑똑히 두 눈에 새긴 채로.
“베, 벨레드 님?!”
따악.
아르민의 손가락이 튕겨지고, 마력이 용솟음쳤다.
****
저 머나먼 곳.
마계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때였다.
장소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어느 저택의 안.
추위가 물러가고, 조금씩 봄의 따스함이 저택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똑똑똑.
하녀는 조용히 문을 두드리며, 방의 주인에게 방문자가 있음을 알렸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민세희 님.”
“아, 고마워요. 마리나. 안으로 안내해주세요.”
민세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직은 앳된 모습이 남은 소녀 한 명이 마리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섰으니.
그걸 본 민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밖의 눈을 신경 써서라도 이런 방문은 자제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 않나요?”
잠시 눈가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어 바라본 상대.
“미네르바 황녀님.”
제국의 제3황녀이자.
실질적으로 현 제국의 제1권력자라 불리는 소녀.
민세희의 부름에, 황녀라 불린 소녀는 고개를 내젓곤 입을 열었다.
“민, 그대에게 급히 알릴 것이 있어, 내 직접 왔다네.”
< 제42장 – 봉인의 신전 (2)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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