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88)
내 마법이 더 쎈데-88화(88/203)
< 제44장 – 새로운 장 (1) >
아르민 일행은 장소를 옮겼다.
이면세계를 떠나 도약한 곳은, 본래 헬레나가 봉인된 지역으로 오기 위해 중간에 경유했던 영지 <말파스 알리토>였다.
사전에 비에르와 헤어지기 전.
– 모든 일이 끝나면 알리토의 여관에서 합류한다.
그렇게 입을 맞춰둔 참이다.
헬레나를 구하고 무사귀환.
여기까지는 원래 계획과 다름이 없지만, 문제는 그 사이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는 점이다.
탁.
“크흐! 이게 얼마 만에 마셔보는 술이냐!”
여관 1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쉬잇쉬잇 혓소리를 내며 탄성을 내지르는 놈.
검은색 도마뱀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기쁨에 취해 있는 이 녀석의 이름은 발라크.
놈은 말파스의 영지로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술을 한잔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바알과 계약한 뒤로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질 못했단 말이지.”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바알과 계약한 이후부터는 오로지 바알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자신의 기쁨이자,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면서.
발라크는 푸념을 지껄여댔다.
“그것 참 끔찍한 이야기군.”
“진짜 그 새끼는 미친 새끼라니까!”
직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바알을 찬양했던 주제에 이렇게나 바뀐 태도라니.
발라크는 그걸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바알이 가진 능력의 무서운 점이야.”
바알의 권능.
발라크의 말을 빌리자면, 서열 1위의 마왕이 가진 힘은 자신의 마성(魔性)을 타인에게 빌려주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해주는 능력인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서열 1위가 직접 행차해서 힘을 빌려준다니, 이게 웬 횡재냐 싶어서 덜컥 손을 잡았지.”
마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강한 힘을 가진 자가 곧 전부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택하는 것이 마족이라는 존재들이지만.
언제나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어느 한쪽에게만 편리하다거나 하는, 형편 좋은 이야기가 있을 리가 없다.
“바알과 계약하게 되면, 그때부터 계약자의 의지는 바알에게 물들기 시작해.”
계약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계약자의 의지는 바알을 향한 충성심과 호의로 물든다고 발라크는 말했다.
그러나 계약을 한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하는 일들은 그저 내 의지로, 내가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도록 잠재의식을 바꿔놓는 힘이라······. 마법에서도 품이 많이 드는 고난도 술식이다.’
단순히 이지를 제압하는 형태의 세뇌 능력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크로셀도 사용한 적이 있다.
아르민도 별다른 마법 장벽이 없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사전준비 없이 간단한 쿼드 액션만으로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재의식을 바꿔놓는 방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바알이 너와 계약을 통해 얻고자 한 게 뭐지?”
“아르카스를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했어. 그게 있어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면서.”
발라크는 말했다.
“난 똑똑히 이 귀로 들었다고. 아르카스만 있다면······. 이 세계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릴 수 있다······. 원래 세계와 하나로 합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마계를 무너트려야만 한다······. 놈은 그렇게 지껄였다고.”
독생자로부터 배격당한 우리는 원래 있던 차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면서.
그 말은 아마.
****
“지구로 돌아간다는 뜻이네. 앗, 거기 좋아.”
발라크와 일련의 대화를 나눈 뒤, 아르민이 그 소식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자.
때 아닌 풍경이 아르민을 맞이해 주었다.
“이, 이렇게 하면 될까요?”
“딱 좋아. 그래, 거기. 읏, 아앗.”
침대에 엎드려 있는 헬레나와 그 위에 올라탄 채로 조심스럽게 어깨와 등, 허리 부근을 주무르고 있는 아크투루스.
그리고 바로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아, 후루룩 찻잔을 기울이며 그걸 지켜보고 있는 이스텔까지.
실로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참고로 볼프는 미리 비에르 팀과 합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간 참이다.
“······뭐 하냐?”
“오랫동안 봉인되어있어서 그런지, 전신이 뻐근하더라고. 얘 마사지 잘하는데. 어때. 미스터 강도 받아볼래?”
“아니, 됐다.”
그래서 신도를 데려다가 마사지를 시켰다는 건가.
아크투루스는 지금 상황에서도 턱밑에 땀방울이 맺힐 만큼 열심히 자근자근 헬레나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으니.
정말 투철한 신앙심이다 싶다.
그야말로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광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다시 본론이다.
“어떻게 생각 하냐?”
발라크가 꺼냈던 말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말이다.
침대에 엎드려 시원한 쾌감으로 끙끙거리던 헬레나와 아르민의 시선이 교차했다.
“세뇌라니, 솔직히 곧이곧대로 믿긴 힘들지만. 가능성이라면 충분하지 않아?”
“역시 그렇겠지.”
헬레나의 말대로, 둘은 발라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저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각종 생김새를 가진 마족들.
저들은 본디 독생자의 힘으로 지구 차원에서 추방당한 ‘신화시대’의 존재들이다.
지금 당사자들에겐 그런 의식이 옅고, 실제로 마계에서도 관련된 이야기는 어찌된 이유인지 (비에르에게도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들어보지 못했다) 전해지는 것이 없지만.
“바알이 언급한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말은 세계의 형태를 독생자 이전, 기원전의 형태로 되돌리고 싶다는 뜻이겠지.”
길거리에서 악마의 유혹이 당연하다는 듯 들려오고.
악마에 비해 나약한 인간이 유린당하는 세계.
굳이 수천 년 전으로 멀리 갈 것도 없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도, 아르민은 자신이 직접 그것과 비슷한 세계를 겪어보지 않았던가.
“잠깐 게이트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는데, 아예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다면 그건 또 엄청 볼만하겠네.”
헬레나의 말이 맞았다.
게이트가 열린 것만으로도, 이미 세계는 최악을 향해 달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진다면?
“육체에 리미트가 걸려 있는 현 지구로는, 상대하는 것조차 힘들 거다.”
“큰일이네.”
남 말 하듯 이야기하는 헬레나였지만, 누구보다 이 상황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녀였다.
여전히 예언 덕택에 아르카스의 이야기는 마계 전역에 퍼져 나간 상태고.
앞으로도 수많은 마족, 마왕들이 아르카스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 테지.
아르민의 말에 헬레나는 “응? 내가 그 정도로 월드 스타가 된 거야?” 라며 태평하게 떠들어댔지만.
“하긴 내가 비틀즈의 핏줄이긴 하지.”
라며 낄낄거리는 시점에서 역시나 긴장감 따윈 없어 보이는 헬레나였다.
여하간, 이대로 헬레나의 정체나 소재지, 생김새가 특정되었다간.
그야말로 그녀를 노리고 권좌에 눈 먼 놈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랬다간 피곤해질 것이 자명했기에.
“일단 발라크의 입은 봉해두었다.”
“어떻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아하, 잘나신 마법의 힘이네.”
상대에게 비밀을 강요하는 방법이야, 현대 마법에선 쌔고 쌨다.
“불태우는 것밖에 못하는 그쪽보단 범용성이 오죽 넓어야지.”
“오올~ 엄청난 자신감. 미스터 강도 여전한데?”
이렇게나 실없는 대화를 나눔에도 불쾌감이 들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변함없는 헬레나의 성격 덕분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바알은 어쩌려고?”
“마냥 무시할 순 없어.”
아르민은 부연했다.
처음엔 발라크가 “그 미친 새끼가 마계를 멸망시키려고 해! 도와주십쇼!” 라고 떠들었을 때.
솔직히 ‘내가 왜?’라고 생각한 게 사실이었다.
마계의 존폐 문제 따윈 신경 쓸 게 아니다.
어차피 아르민의 목적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 후배를 만나 나머지 칠영웅놈들을 족치는 것뿐이었으니까.
헬레나의 복수와도 상통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일련의 대화 이후.
무엇보다 헬레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 우린 헌터잖아요.
언제였더라.
자신의 후배였던 민세희가 말한 적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헌터로서 싸워왔고, 헌터로서 사람들을 지켜나가는 인간들이라고.
“이대로 내버려두면 바알은 뭐가 됐든 간에 우리를 방해하는 꼴이 되겠지. 그건 염두 해둬야 해.”
게다가 아르민의 마음에 툭하니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예언이 있고, 바알이 움직였어······. 아가레스는 분명 중립이라고 했지만, 놈이 예언을 지껄이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분명 바알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거야.’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뭔가 앞뒤의 아귀가 맞지가 않는다고 할까.
이건 마치······.
‘아니, 아무런 단서 없이 비약하는 건 좋지 않겠지.’
어쨌거나 바알이 마계를 붕괴시킨다느니,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느니 하는 시점에서. 아르민의 짐작이 결론에 닿는다.
“역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하나 뿐이겠지.”
“그래.”
헬레나는 말했다.
“그 녀석도 아르카디아가 그랬던 것처럼, 모노리스를 손에 넣은 게 틀림없어.”
****
아르카스의 성물에 닿았을 때, 헬레나는 말했다.
모노리스에는 다음 장이 있노라고.
“대체 모노리스란 게 뭐지?”
물론 아르민도 아무런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칠영웅이 모노리스를 발견하고, 거기 적혀 있는 ‘무언가’의 방법을 통해 한없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신화나 전설 속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은 얼마든지 있어.’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삼장 법사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나 경전을 찾았던 것처럼.
아르민이 기억하기로 가장 최근의 사태를 뒤져보면 알레이스터 크로울리가 자신의 지식을 마법서에 눌러 담은 것처럼.
읽음으로서 ‘본질’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아이템의 존재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모노리스의 역할도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야.’
다만 문제는 그 이후다.
단지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헬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제물로 바쳐, 신격을 얻는 건 모노리스에 있어서 입문 과정에 지나지 않아.”
“입문?”
아, 여기까지면 됐어. 라는 말로 아크투루스를 물리고.
헬레나는 침대에 앉아, 아르민과 정면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장난기는 사라졌다.
아르민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터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단순한 입문과정일 뿐이라고?
“그래. 세계를 희생시키는 건 그저 제1과정일 뿐. 모노리스의 다음 장엔 이렇게 기록되어있어.”
세계를 잡아먹고 이룩한 신격.
하지만 여기서 나와 동등한 신격을 일정 수준 이상 또 섭취하면 대상자는 ‘신화’를 만들 자격을 갖추게 된다.
“단순히 초월적인 힘만 가진다고 신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신이란 그만한 업적을 후세에 남기는 법이야. 미스터 강.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신들에겐 이야기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가리켜 신화(Mythology)라고 부른다는 걸.”
단지 개인으로서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그건 초능력자. 괴짜, 기인이라 불리는 데서 그친다.
하지만 그 개인이 거대한 서사를 만들 수 있다면.
수많은 힘을 취한 끝에, 자신만의 신화(神話)를 이룩할 수만 있다면.
“그 존재는 한없이 신에게 가까운 존재에서, 진정한 ‘신’으로 거듭날 수 있어.”
“그럼 아르카디아가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서까지 차원쟁탈전에 목을 매단 것도······.”
“맞아. 전부 모노리스의 다음 장에 도달하기 위해서야.”
헬레나는 말했다.
모노리스의 기록에 따르면 기존의 기독교, 불교, 북유럽, 중국, 한국, 일본 등지의 신화는 전부 모노리스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엇보다 신화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미스터 강. 당신 아니야?”
“·········.”
아르민은 이제껏 수많은 신화들로부터 신화소를 빌려와, 힘을 가져다 써왔다.
그들의 서사로부터 힘을 빌리고, 자신보다 강대한 초월적 존재를 무찔러온 게 바로 아르민이지 않던가.
그 누구보다 신화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
그게 바로 아르민이었다.
“모노리스의 다음 장에 도달한다면, 우린 진실로 법칙을 초월할 수 있어. 생과 사,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세계의 창조와 파멸에서도 벗어나. 신화의 완성도에 따라 더욱더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야.”
되돌아보면 아르카디아도 결국엔 법칙의 굴레에 묶여 있는 자에 불과했다.
바로 그걸 이용해, 그녀를 육도의 길에 처박은 것이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 법칙까지 초월해, 진정으로 ‘신’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육도조차 닿지 못하는, 모든 걸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욕심이 있는 자라면 당연히 그걸 노리겠지.”
그리고 아마.
“바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잠시 아르민과 헬레나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있었다.
“대체 그놈의 모노리스는 누가 준비한 깜짝 선물인 거지?”
답은 금방 돌아왔다.
“흥. 누가 있겠어.”
아마도 우리 이전의 절대자.
이 세계를 일으킨 누군가.
그런 존재를 부르는 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진짜배기 ‘신’밖에 없지.”
헬레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냉소를 띠고 있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덜컹.
여관의 문을 열고, 볼프가 데리러갔던 비에르 일행이 이곳에 등장했다.
“벨레드 님······! 무사하셨군요!”
비에르는 얼굴 가득 걱정이 어린 표정으로 아르민 앞에 다가왔다.
“······벨레드?”
그 말을 들은 헬레나는 해괴한 표정으로 아르민을 바라보았지만,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적당히 설명을 해둬야겠지. 싶던 아르민이었다.
“일은 잘 해결하셨나요?”
“그런 셈이지.”
아르민이 슬쩍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헬레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따라간 비에르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원채 이해력이 좋던 그녀다.
“그럼 바로 저 분이······.”
상황을 파악한 듯, 비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모습을 보였다.
잠깐이나마 헬레나와 비에르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흐응.”
“······으.”
재미있다는 듯이 콧소리를 흘리는 헬레나에 반해, 무언가 거북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돌린 비에르였지만.
이내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다급한 표정을 지어보인 비에르는.
“그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어요.” 라면서 말문을 연 것이다.
“중요한 일?”
“네, 바싸고 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 내용은 간단한 한 문장이었으니.
– 새로운 서열 10위의 후계자여, 나의 영지로 찾아와라.
즉.
‘드디어 차원주소의 패스워드를 얻을 수 있겠군.’
생각보다 착실하게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지구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제44장 – 새로운 장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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