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91)
내 마법이 더 쎈데-91화(91/203)
< 제45장 – 너를 기다렸다. (2) >
‘독생자 차원에서 넘어온 재앙?’
처음 듣는 키워드에 아르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멀쩡한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전염병 같은 취급이냐. 싶은 것도 잠시.
“그게 무슨 소리지?”
아르민이 던진 질문에, 도리어 바싸고는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아가레스가 예언으로 말했어. 독생자 차원에서 넘어온 녀석이 있다고. 녀석은 마계를 무너트릴 ‘재앙’이 될 거라고.”
여전히 가슴께엔 황동 아조트 검을 박아 넣은 채로 말하는 바싸고였지만.
그 이야기야말로 아르민에겐 금시초문이었다.
“아, 이건 밖으로 새어나가진 않은 말이었으니까. 뭐, 사소한 건 신경 꺼.”
그야 마계가 무너지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예언자로 칭송 받는 아가레스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온다면, 단순착오만으로는 끝나진 않을 터.
생각지 못한 혼란이 마계를 뒤덮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건.
‘나를 두고 재앙이라고 말하는 건, 역시 아르카스가 엮인 일 때문인가.’
더구나 아르카스를 노리는 바알과 놈이 이미 손에 넣었을지도 모를 모노리스를 고려한다면, 관계성은 충분했다.
당장에 짐작이 가는 건 그 정도.
어쨌거나 바싸고는 자신을 재앙인지 뭔지로 여기고 몸소 행차하셔서 싸움을 걸어왔다는 소리다.
다만 더욱 의문인 건.
“······그게 날 시험한 이유와 무슨 상관이 있지?”
굳이 번거로운 수단까지 써가면서 그녀가 자신을 시험한 이유가 궁금했다.
오히려 재앙이라는 부정적인 키워드를 달고 있는 상대라면, 더욱 배제하려고 드는 게 상식이지 않나?
그러나 바싸고는 뭘 새삼스레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그야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지.”
“······뭐?”
급작스럽게 터져 나온 선언에 이어, 바싸고는 손을 들어 아르민의 뺨을 쓸었다.
그윽한 감정이 담긴 시선과 애정이 묻어나는 손짓까지.
“나는 말이야. 원하는 건 전부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려.”
서늘한 감촉을 따라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수법은 아름다웠어. 내 능력을 간파하고 공략하는 순간까지. 감탄을 넘어 감동까지 했으니까.”
탐미의 마왕이 말하길.
아르민이 보여준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마족보다도 훌륭하고 우수했다 칭찬하며.
“마계를 무너트릴지도 모를 재앙을 내 것으로 삼는다니, 짜릿하지 않아?”
기쁨과 환희의 감정으로 물든 얼굴 뒤편에 도사린 의도를, 아르민은 진즉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유겐도 말했었지.’
서열 3위의 마왕 바싸고는, 순전히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는 마왕이라고.
“특히나······. 나는 지금의 마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열 1위에 앉아있는 바알이 주도하는 세상은 모르긴 몰라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
세계가 멈춰있다.
천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바알이 1위라는 왕좌에 군림한 채로 흘러온 시간.
그것은 회색으로 빛바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 세계엔 자극이 부족해. 그럴 때 네가 이리로 넘어온 거야.”
독생자 차원에서 넘어온 아르민이라면.
자신의 능력까지 간파하고 꿰뚫어본 이 자라면.
“지루한 세계 따윈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
그래서 그녀는 아르민이 능력을 공략한 순간, 그토록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단지 지루해서 나를 필요로 했다. 이 말인가?”
고작, 단지, 그저 그것만인 이유인데도 불구하고.
“그것 이상 뭐가 더 필요하지?”
옅은 푸른빛을 띤 고요한 눈동자가 아르민을 직시한다.
실로 의문 한 점 없이.
그것만이 진실이라 믿는 눈동자는, 바싸고가 입에 담은 말들이 거짓 없는 본심이라는 걸 대변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 만남을 원한 건 나뿐만이 아니잖아? 반대로 당신 또한 원하는 게 있어서 날 찾아왔을 텐데?”
바싸고가 흘린 말을 들은 아르민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도 눈치를 챈 것이다.
“나는 이미 벨레드를 만나본 적이 있어. 뭐, 자신감 넘치는 또라이라는 느낌이었지만. 당신과는 확실히 다른 자야. 굳이 그런 이름을 사칭하여 부에르의 후계자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만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과연 서열 3위라고 해야할 까.
그녀가 지나가듯 떠본 말들은, 바싸고가 이미 아르민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부정을 해도 소용없겠지.’
실제로 아르민이 바싸고를 찾은 이유는 달리 있었으니까.
숨겨봤자 득이 될 게 없다면, 반대로 뻔뻔하게 밝히면 된다.
“지구······. 그쪽의 말을 빌리자면 독생자의 차원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차원주소와 그 패스워드가 필요해.”
시원스레 밝힌 목적을 들은 바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르민의 목적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바싸고는 그저.
“그런 거라면야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아.”
대신.
“거기엔 약간의 대가가 따를 뿐이지.”
바싸고는 고혹적인 미소를 베어 물었다.
****
연회가 열렸다.
새로이 부에르의 후계자가 된 비에르를 축하하며, 정식으로 바싸고의 군단이 된 걸 기념하기 위한 연회였다.
‘과연 탐미의 마왕답군.’
연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화려했다.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악단이 연주하는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무희들이 파티장의 중심에서 춤을 춘다.
나오는 음식들은 전부 산해진미들 뿐.
아르민이 마계로 넘어와 처음 보는, 제대로 된 연회의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식······이라.”
문득 접시 앞에 선 아르민의 머릿속으로 흘러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르카스가 봉인되었다던 신전을 돌면서, 지난 며칠 간 먹은 게 하나도 없었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아르민은 어째선지 지난 며칠 간‘공복’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이 의아했다.
아무리 매일이 바쁘고, 당장에 부딪힌 일을 해결하기에 급급했다고는 하나.
먹지 않고서 여기까지 버텨왔다는 건, 아르민에게 있어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소리였다.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음.”
기다렸다는 듯이 어마어마한 공복이 밀려들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의식적으로 육체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건······.
“육체의 재구성 탓인가······.”
그렇게 아르민이 자신의 육체를 살피며, 무덤덤하게 자리에 서있을 때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벨레드 님.”
연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아르민에게 다가왔다.
비에르와 유겐이었다.
“화려한 연회군요.”
“서열 3위의 마왕인 만큼,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회도 그만한 격식을 차린 거겠지.”
“그렇군요······.”
잠시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비에르는, 이내 결심한 듯 아르민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바싸고 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떨리는 목소리.
비에르의 눈동자에 슬며시 담긴 감정을 알아챈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단순한 잡담을 나눴을 뿐이야. 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신가요.”
비에르는 살짝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벨레드의 사칭 건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싸고와 나눈 이야기를 밝힐 순 없지.’
바싸고와 헤어지기 전, 그녀는 단적으로 말했다.
“패스워드라면 넘겨주겠어. 하지만 그 전에 내게 협력해줬으면 해.”
그녀가 미리 말했던 예의 ‘대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근 바알 근처의 분위기가 뒤숭숭해. 천 년을 가만히 있었던 것치고는, 갑자기 자기 세력을 결집시킨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기저기서 놈이 권능을 사용한 흔적이 보이고 있어. 아르카스 건도 마찬가지야. 아마 놈은 벌써 움직였을 거야. 분명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잘도 거기까지 알아냈군.’
서열 3위라는 지위는 허명이 아니란 것인지.
아르민이 발라크와 부딪치며 직접 겪은 일들을, 바싸고는 이미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 대가란 것이 뭐지?”
“조만간 바알과 한 판 붙을 거야. 거기에서 ‘재앙’이라고 불리는 당신의 힘을 빌려줬으면 하는데.”
바알의 독주는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손에 넣어온 여왕님은, 바알 자체를 배제할 생각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싸고라면, 내가 쓰는 현대 마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지.’
아르민은 기억에 없지만, 바싸고는 아르민의 마법을 직접 경험했다.
전회차, 그리고 전전회차의 만남을 통해.
현대 마법을 자기 몸으로 직접 경험해봤을 테니까.
“당신이 가진 힘이라면 권능과는 다른 의미에서 바알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피식 웃으며 동의를 구하는 그녀의 말에 아르민은 일부러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전회차의 자신이, 그녀에게 전력을 보여주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신뢰한다는 건, 아르민의 능력을 그녀 나름대로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리라.
‘물론 헬레나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있고, 모노리스를 얻었을지도 모를 바알과 만나볼 필요도 있어.’
바싸고는 모르고 있지만.
바알의 목적은 지구와 마계 차원을 기원전의 형태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이상.
“좋아.”
“잘 생각했어.”
아르민은 순순히 바싸고와 손을 잡았다.
바싸고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앞으로 있을지 모를 바알과의 일전에서 자잘한 것들은 그녀에게 맡길 수 있을 터였다.
바싸고 본인은 직접 바알과 담판을 지을 생각인 것 같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바알만 막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 결판을 짓든 상관없다.’
.
.
.
“후우······. 벨레드 님?”
“음?”
비에르의 부름에 아르민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먹고, 마시고, 취하기 위한 연회.
비에르도 예외는 아닌지, 어느덧 그녀의 얼굴은 살짝 취기가 오른 듯 달아오른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술을 제법 마신 듯 했다.
“······으.”
취기가 올라온 채로, 꾸벅꾸벅 흔들리는 몸뚱이.
그 모습은 마족이라고 해도, 여느 여염집 아가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가씨,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시겠습니까?”
“아, 아니에, 요······. 오늘만큼은······. 마지막까지 있, 겠어요.”
유겐의 권유에도 한사코 거절하며,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던 비에르였다.
여기까지 와서 연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멋대로 자리를 비웠다간 주최자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뭐, 그런 생각도 있었을 테지만.
“으······.”
역시나 달아오른 취기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조금만 앉아서 쉬시지요.”
“······네.”
이끄는 유겐을 따라, 잠시나마 두 사람은 연회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털썩.
의자에 앉자마자 참지 못하고 비에르는 유겐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거나하게 취한 모양이군.”
“······부에르 님이 영지를 떠난 이후, 아가씨는 늘 마음고생을 하면서 그 입에 술 한 잔 대지 못하셨지요. 자신이 먼저 흐트러지면 안 된다. 늘 상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번 주점에서 술을 권해준 주인장을 향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던가.
알콜에 기대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테지만.
정작 술을 마시면 전부 무너져 내릴 지도 모른다고.
지난 100년 간, 그렇게 비에르가 술에 취하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벨레드 님과 만나고, 당신이 곁에 계신 지금은 다릅니다.”
“내 덕에 취할 수 있단 건가?”
유겐은 비에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마······. 당신 덕분에 아가씨는 안심하실 수 있는 걸 테죠. 마음 푹 놓고, 기분 좋게 취하실 수 있는 겁니다. 원래라면 모시는 자로서 막아야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바빠질 테니, 오늘 정도는 괜찮겠지요.”
유겐은 아르민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짓더니,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전부 벨레드 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아르민은 피식 웃으며, 연회에 나온 와인을 들이켰다.
자신이 감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전부 나를 위한 일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도.
벨레드의 이름을 사칭한 것도, 비에르에게 접근한 것도.
마왕 바싸고와 손을 잡는 것도 전부.
잔속에서 흔들리는 와인을 바라보는 사이, 아르민의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까.
– 마스터.
‘······이스텔?’
비에르의 영지에 두고 온 이스텔로부터 심언(心言)이 날아들었다.
충실한 종복인 그녀는 어조의 변화 없이 담담히.
아르민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 마스터, 헬레나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
장소는 비에르의 영지.
가만히 자신에게 준비된 방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던 여인이 있었다.
순금을 그대로 녹인 듯,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비에르가 손수 준비해준 진홍빛 드레스를 걸친 미녀.
헬레나는 홀로 자리에 남아, 창밖에 펼쳐진 마계의 풍경을 기렸다.
‘지금쯤 미스터 강은 잘 하고 있으려나.’
우리 사이에 공통된 목적은 하나.
지구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돌아가 자신을 이 꼴로 만든, 그리고 아르민을 마계로 처박은 칠영웅에게 반격하고 복수하기 위해.
아마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그 남자는 자기 목적을 완수하고 멀쩡한 얼굴로 돌아올 테지.
‘같이 가도 됐을 거 같은데 말이야.’
그래도 아르카스라는 이름이 마계 전역에서 화제가 된 이상.
굳이 서열 3위라는 범의 아가리 앞으로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다.
아르민의 그런 판단 하에, 헬레나는 이곳에 혼자 남았다.
“심심하네······.”
지구에 있을 때처럼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즐길 거리가 남은 것도 아니다.
결국 헬레나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창밖을 바라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을까.
– ·········.
무언가가 헬레나의 귀를 간질였다.
“응?”
그것은 소리였다.
어딘가 감미롭고, 달콤하면서. 분명히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아······.”
그곳에 그림자가 있었다.
달빛을 받아 만들어진 그림자, 헬레나의 발 아래로 쭉 뻗은 그것은 넘실거리면서 헬레나를 향해 속삭였다.
– 천 년 전에 행한 맹약을 이룰 때가 도래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
그림자가 내뱉은 한 마디에.
달칵.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헬레나의 몸이 멈춘다.
그렇게 그림자는 말했다.
– 아르카스여, 때는 다가왔다. 위업은 코앞에 있다.
천 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 동안 줄곧.
나는
– 너를 기다렸다.
그림자.
바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 자리에 나타났다.
****
직후 마계 전역에서 바알의 군단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 제45장 – 너를 기다렸다. (2) > 끝
ⓒ 뫄뫄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