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94)
내 마법이 더 쎈데-94화(94/203)
< 제47장 – 발아하는 악의 (1) >
화약 냄새와 피 냄새,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가득 찬 전장.
바로 그런 장소를 향해, 아르민은 드래곤 이스텔을 타고 당도하여,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렸다.
동시에 구사하는 마법은, 그간 마기의 폭주를 우려해 자제하며 사용하기를 꺼리고 있던, 여섯 개 이상의 특성을 부여한 헥사 액션 마법.
– 몰락(沒落).
개념과 개념이 중첩된다.
법칙을 비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제2종 비원소 계통을 기반으로 짜올린 이 마법의 술식은, 단순히 날아오른 투사체를 떨어트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이잉!
카아아아앙!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모든 ‘것’들이 되돌아간다.
역전된 개념을 따라, 날아오던 궤도를 따라 다시금 돌아가는 길의 끝에는.
– 끄아아악!
– 피, 피해!
– 투, 투석기의 바위가 다시 되돌아온다! 도망쳐······!
당연히도 그 투사체를 쏘아낸 자들이 존재했다.
콰아아앙!
상식을 뛰어넘고, 법칙을 거슬러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마법 속에서 벌어진 아비규환.
물론 파이몬의 군대 전부가 그렇게 혼란에 빠진 것만은 아니었다.
“네······노옴!”
무엇보다 이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던 자.
군대의 주인인 파이몬은 혼돈으로 치달은 전황 속에서도 확실하고도 날카롭게 아르민을 쏘아 보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가 공으로 서열 9위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 놈을 처 죽여야 이 전황을 수습할 수 있다.
아르민에게서 느껴지는 기세.
놈이 방금 보인 신위에 가까운 힘.
그것만을 고려하더라도, 전장의 군대를 생물처럼 지배하는 자뿐만이 아니라.
저 남자까지도 군대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한순간에 간파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꿰뚫어라!”
파이몬의 노호성에 이어.
타앙!
놈이 지니고 있던 장총이 불꽃을 내뿜는다.
쏘아진 탄환은 단 한 발.
바람을 가르며 열 개로 늘어난 탄환은, 대기를 꿰뚫으며 수 백 개로 몸집을 불린다.
아르민의 코앞까지 도달하는 시점에서 탄환의 개수는 천 개를 넘어 탄막(彈幕)을 구성했으니.
‘이게 파이몬의 권능인가?’
아르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흥미로운 힘이었다.
마왕의 권능이란 늘 그러했다.
상식을 변통하고, 능가하고, 개찬한다.
파이몬의 저 힘은 질량보존 따윈 싹 다 무시한 마왕만의 권능이다.
‘마법을 통해, 비슷한 일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근본 구조까지 따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바싸고의 힘도, 아가레스의 능력도, 바알의 권능조차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부조리 자체를 체현한 듯한 힘 앞에서도, 아르민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콰아아앙!
탄막이 아르민을 집어삼킨다.
자욱하게 피어나는 폭연.
그걸 지켜보며 파이몬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자신만만하더니, 내 권능조차 피해내지 못한 게냐! 단숨에 해치웠다!”
마기를 두른 탄환은 한 발 한 발이 이미 어지간한 마탄에 이를 정도의 위력이다.
그걸 천 발 이상 처먹은 이상, 놈의 육신은 갈기갈기 찢겨졌을 터.
파이몬은 자신했다.
놈을 죽여버렸노라고.
그리고
“······내가 있던 곳에선 말이지. 적에게 공격을 퍼붓고 난 다음엔, 모두 입을 다무는 게 불문율이야.”
“······!”
파이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폭연이 물러간 자리에는 천 개의 마탄을 처먹고도 멀쩡히 서 있는 놈이 있었으니까.
“해치웠나? 라고 말하고 나면, 보통 다들 살아있는 법이거든.”
아르민의 주변으로 떠오른 붉은 빛의 마법진.
방호의 룬과 방어를 위한 스펠을 섞어 만든, 특제 룬방어 앞에서 모든 마탄은 무효로 돌아갔다.
상식을 벗어나는 마왕의 권능이라고 해도, 놈이 가진 힘은 겨우 이 정도.
바알을 목표로 하는 아르민의 성에는 차지도 않는다.
그저.
영역 지정, 속도 강화, 절단효과 부여, 회복불가 특성 부여, 폭발 특성 추가.
도합 다섯 개 특성 부여.
– 펜타 액션.
따악.
아르민은 손가락을 튕기며, 놈이 장총을 들고 있는 오른팔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허도양단(虛刀兩斷).”
스각.
“······어?”
전조 없이 울려 퍼진 절삭음.
파이몬이 고개를 내린 순간, 놈은 발견했다.
자신의 오른팔이 잘렸다는 ‘현상’을.
거기에 뒤이어.
콰앙!
놈의 잘린 팔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파이몬의 육신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팔을 무력화 시키며, 동시에 놈이 제대로 반응할 수 없도록 폭발로 정신을 교란한다.
펜타을 넘어 헥사 액션까지 구사하는 입장에선, 이런 짓까지도 가능해졌다.
이것이 현대 마법사.
아르민 일레인스가 마왕을 능가하기 위한 수단이다.
“끄아아아악! 이······! 하등한······ 놈이·········!”
고통과 혼란 속에서, 파이몬이 내지르는 괴성에도 아르민의 눈은 놈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마기가 요동친다.’
울컥.
연이어 일정 레벨 이상의 마력을 다룬 결과, 강력한 현대 마법을 연발하는 사이.
아르민의 체내에서는 이때만을 노린 듯 마기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울컥.
“······크으.”
심장이 벌렁거리고, 아르민의 머릿속으로 부정한 감정이 치솟는다.
끊임없이 되새겨지는 감정은, 바알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벽’에 대한 감상이다.
– 놈은 강하다.
현대 마법사로서 길러온 아르민의 눈은 어지간한 건 꿰뚫어보는 마안(魔眼)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바알의 정체가 보이질 않았다.’
단순한 마왕이 아니다.
현세에 발을 딛고 있는 자도 아니다.
신화와 전설, 사건, 세상 만물을 분석하고 파악해온 아르민이 끝내 파악해내지 못한 ‘정체불명(正體不明)’.
그래서일까.
어느 때보다도 아르민의 심장은, 마이너스의 감정으로 가득 메워졌다.
‘놈은 신화시대의 신들 이상으로, 그 존재력(存在力)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때문에 아르민의 본능은 속삭였다.
– 이길 수 없다.
바알은 네놈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마이너스하며, 끊임없이 육체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좀먹는 생각.
심장에서 흘러넘치는 차갑고, 싸늘하며, 무겁기 짝이 없는 감정은 지금도 아르민을 충동질한다.
그렇구나.
아르민은 깨달았다.
‘마기의 부작용이란, 결국 이런 거였나.’
단지 육체가 무너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음을 부수고, 생각을 좀먹는다.
아르민은 피식 웃었다.
그 말은 즉 그런 이야기였다.
마기를 다루는데 실패하여, 이것에 잡아먹혀 타락한 자는 결국.
“나약한 놈이로군.”
흘러넘치는 감정을 씹어 삼킨다.
부정의 감정이 체내를 날뛰건 말건.
눈앞에서 노호를 터트리며 덤벼드는 파이몬을 보며, 아르민은 손가락을 튕길 뿐이었다.
“죽어라·········!”
마기는 제어한다.
생각은 뒤바꾼다.
개념은 뒤집는다.
한 마디로 말해.
덤벼드는 파이몬을 향해, 녀석이 아닌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을 바알을 향해 입을 연다.
“좆 까.”
아르민은 마법을 사용했다.
****
파이몬의 군대를 쓰러트리고, 뒤처리는 비에르에게 일임한 채로 아르민은 바싸고를 찾았다.
마차까지 준비하여 사절로 보내준 당사자다.
바알이 떠든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알이 어떻게 움직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려둬야, 전황을 이끌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터였다.
화려한 궁전에 마련된 지휘통제실.
“어머, 좀 늦었네.”
작전지휘를 위해 들고 있는 건지, 들고 있는 지휘봉으로 꼬고 앉은 자기 다리 허벅지를 탁탁 내리치며.
바싸고는 한껏 요염한 태토로 아르민을 맞이해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민은 바싸고를 향해 볼일을 이야기했다.
“아가레스는 이미 바알에게 당했다. 뭐, 놈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고 봐야겠지.”
주어진 정보대로 추론해본다면, 이미 그것은 1천 년 이상.
마계의 서열 세력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지난 기간.
그 태반을 아가레스는 바알의 수족으로 존재해왔다는 소리다.
그렇게 아르민이 무심히 꺼낸 말에.
툭.
바싸고는 저도 모르게 지휘봉을 떨어트렸다.
“······그건 예상을 너무 벗어난 이야기인걸.”
생각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겠지.
바알이나 아가레스나, 바싸고 입장에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아가레스가 떠드는 마계의 공익을 위해서니 뭐니 하는 건, 솔직히 헛소리라고 생각해도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았어.”
최소한 놈은 마계에 해가 될 짓은 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마계에 존재하는 마왕과 마족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거늘.
아예 그 기반 자체가 바알의 기만으로 쌓아올려진 것이라면.
“······아가레스와는 싫어도 몇 번 협력한 적이 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가레스는 예언을 통해 마계 전역에 명성이 알려져 있는 저명한 인사다.
그게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아가레스의 예언이 실적을 지닌 이상.
바싸고는 마냥 무시하지 못한 채, 부하들을 시켜 아가레스와 협력해.
몇 번이나 부하들이나, 아랫것들의 영지를 위협하는 위험을 배제해온 적이 있다.
“녀석이 건네준 차원 주소를 얌전히 받아든 것도, 그런 실적이 있었던 덕분인데.”
그러한 일들 전부가, 아예 애당초 바알의 노림수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바알의 의도대로 움직여준 거라고?”
바싸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마계 서열의 근본 자체를 부정하고 뒤흔드는 이야기를 접한 이상.
자존심 강한 그녀로선 평정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리라.
“······바알의 능력이 세뇌란 말이지.”
“일단은 그렇게 판단했다.”
물론 더욱 자세한 구조나, 권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보다 연구가 필요할 테니.
단순히 확답할 수는 없겠지만.
타인에게 호의를 품게 만드는 그 힘은, 세뇌라는 이름이 가장 걸맞는 능력이었다.
“곤란해. 아가레스까지 당했을 정도라면, 지난 천 년 간 대체 몇이나 되는 마왕과 마족이 놈에게 넘어갔을지······. 그걸 알 수가 없어.”
심지어 바알의 능력은, 세뇌 당한 당사자가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부류의 능력이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어디까지나 자기 신념에 따른 행위라고 ‘착각’해버리는 이상.
세뇌의 징조를 먼저 파악하고 배제한다는 것도 힘들다.
아르민은 바싸고에게 물었다.
지금 순간에 있어 가장 궁금한 것.
“바알의 영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건 바알과 결착을 지으면 될 일이지만.
상황은 아르민의 바람처럼, 호락호락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바알의 차원주소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어. 원래부터가 비밀스러운 놈이었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차원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아가레스를 대행자로 삼아, 계속 은밀하게 움직여왔다는 말이군.”
그것이 더욱 골치가 아팠다.
“어떻게 놈이 있는 곳을 찾을지 부터가 문제야.”
바싸고는 그리 말했지만.
어째선지, 아르민은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기다린다고 했다.’
그 말은 반대로 뒤집으면, 아르민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아오게 할 방법이 있다는 뜻일 터.
그리고 그 추측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
연합마왕 세력은 끊임없이 바싸고의 영지를 비롯해, 그녀의 군단이 머물거나 주요 요충지로 생각하는 영지를 침범해왔다.
“네가 공략에 성공한 내 권능의 진짜 힘을 보여주지.”
그곳에서 바싸고는 피식 웃으며, 아르민에게 자신의 권능을 가감 없이 드러내보였다.
군대와 군대가 부딪쳤을 때, 그녀의 군대가 패배에 이를 것 같으면.
“돌아가라.”
바싸고는 망설임 없이 세계의 태엽을 되감았다.
권능을 이용해, 아르민을 데리고서, 시간을 뒤로 되돌린 것이다.
“패배하더라도, 끝내 패배하지 않는 군대······란 건가.”
“맞아, 굉장하지?”
서열 3위의 마왕은 말했다.
원점회귀의 권능을 지닌 그녀에게 전쟁이란 결국 시시한 게임과도 같다고.
‘꼭 세이브 로드를 반복하는 게임을 보는 기분이군.’
그런 능력이 있는 덕분에, 그녀는 절대로 패배 따윈 하지 않고 자신의 승리가 확정되었다고 믿는 듯 했다.
실제로 그녀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봉해지지 않는다면, 결국 전황은 그녀의 승리로 귀결될 테지.
하지만.
‘역시 뭔가 이상해.’
아르민이 서열 9위의 파이몬을 쓰러트리고, 그 뒤에도 서열 8위의 바르바토스, 서열 7위 아몬의 군대를 바싸고와 함께 무찌르는 과정에서.
무수한 의문이 아르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든 군대가 단번에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단계적으로 쳐들어오고 있다.’
물론 놈들도 우직하게 바싸고의 영지만을 노리는 건 아니었다.
시간 차 공격으로, 어쩔 때는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타이밍으로 군대는 영지를 침범해왔지만.
군대를 이끄는 마왕은 별개였다.
아르민이 군대를 제압하러 가면, 그제야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왕들은 나타났다.
“캬하하! 네놈이 최근 유명한 마도마왕 벨레드냐!”
아몬과 부딪쳐, 놈을 무릎 꿇렸을 때 머릿속으로 지나간 것은, 바알이 지껄였던 말이었다.
– 주어진 장애물을 극복해라. 내가 보낸 신화의 사자들을 물리치다보면, 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노라.
연합세력의 마왕들도, 머리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덤벼오는 짓 따윈 하지 않겠지.
그럼에도 상식을 반하고, 놈들이 불꽃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구는 건 역시.
‘바알의 힘 때문인가.’
이 서사 구조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정말로 이것이 바알이 준비한, 신화에 이르기 위한 단계라면.
만약 놈이 지껄였던 말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놈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선 반드시.
– 구도자에겐 시련이 존재하는 법이다.
전투가 반복되는 이 과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르민은 깨달았다.
‘······그런 거였나.’
가족을 잃고 복수에 미쳐 날뛴 헤라클레스.
십자가에 못 박혀, 뭇 인간들로부터 박해 받던 독생자.
마라의 유혹 앞에 참선하던 석가모니처럼.
‘내게 차례대로 시련을 주고자 한다는 말이냐.’
하지만 지금의 전투가, 정말 시련으로서 의미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아르민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아몬을 쓰러트렸을 때.
“베, 벨레드 님······!”
비에르가 다급한 목소리를 흘리며 아르민이 머무는 방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아가레스가······!”
다시 한 번, 예언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급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바싸고 영지 위로는 커다란 스크린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면을 앞에 둔 바싸고는 빠직, 손에 든 잔을 깨트리며 이를 갈았다.
“아가레스······. 뻔뻔하게도 모습을 드러내는 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 안의 아가레스는 말했다.
[모든 마계의 마족들에게 알린다. 현재 마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력 다툼에, 힘들어하는 자도, 괴로워하는 자도, 도망치고 싶어하는 자도 있겠지.]거기 있는 아가레스는 철저하게 예언자로서 행세하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말 그대로 예언자가 마계의 운명을 걱정하는 듯.
아가레스의 화술은 교묘하게 마족들의 마음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이야기한다.
[이 모든 전쟁과 아픔, 끊임없는 반목은 누가 시작했다고 생각하나?]하나의 질문은.
하나의 답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건.
[서열 3위의 마왕. 바싸고다.]“뭐?”
바싸고는 물론, 아르민조차도 그 선언에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여기서 저런 말을 한들, 무엇이 목적이란 말인가.
아가레스는 말을 이었다.
[저번에 말했던 아르카스의 권좌. 그걸 획득한 것이 바로 바싸고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걸 숨기고, 도리어 서열 1위가 전쟁을 시작했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하지만 아니라고.
바알이 움직인 건 그저.
[바싸고의 만용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마계 모두의 신임을 얻고 있는 자가 꺼내든 말.
바알을 두둔하고, 바싸고를 적으로 몰아가는 말.
[바싸고는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까봐 먼저 선수를 쳤다. 아르카스를 꽁꽁 싸매고, 그녀의 군단은 물론, 다른 마족까지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지. 나는 이를 규탄한다.]예언자의 말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족들의 마음 속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다.
“저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바싸고가 소리쳐도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쌓아온 명성과 이름값이, 상황을 부채질한다.
무엇보다.
– 바싸고 님이 먼저 전쟁을?
– 아르카스를 손에 넣고도 비밀로 하고?
군단 내부로 소요가 인다.
원래라면 믿을 수 없는 헛소리가, 어째선지 마족들 사이로 파고든다.
거기서 느껴지는 기묘한 기척을, 아르민은 놓치지 않았다.
이건.
‘발라크가 마기에 잠식당했을 때와 같다.’
말 한 마디로 퍼져나가는 독기.
하나의 의심이 피워 올린, 하나의 씨앗.
이건 마치······.
‘이곳 전체에 바알의 힘이·········.’
아, 그제야 아르민은 깨달았다.
바알의 능력이 무엇인지.
놈이 가진 권능이 진정으로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바싸고! 얼른 방송을 중단시켜라! 이대로 있다간······!”
“······뭐?”
바싸고가 의아하다는 듯 아르민을 되돌아본 순간.
콰아아앙!!
바싸고 성의 외벽이 있는 곳.
정확히는 군수물자가 쌓여있는 곳에서 난데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바, 바싸고 님! 군단 소속의 마족들 중 일부가 갑자기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마족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연이어 들어오는 보고에 바싸고의 얼굴이 시시각각 일그러졌으니.
이미 바알의 독은 퍼져나가고 있었다.
****
방송을 마치고, 아가레스는 미소 지었다.
방금 것으로 필연, 1천 년을 준비해둔 독은 퍼져 나갔다.
바알의 권능.
– 발아(發芽)하는 악의(惡意).
이제 꽃을 피울 때였다.
< 제47장 – 발아하는 악의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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