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96)
내 마법이 더 쎈데-96화(96/203)
< 제48장 – 처음부터 시련은 없었다. >
유겐이 비에르를 찔렀다.
그 누구보다 아가씨를 모시는 데 충실했던 그녀가, 직접 자기 손으로 주인을 시해한 것이다.
“어, 어째서······. 내가······. 나는······. 분명······.”
혼란이 치달은 상황에서도, 유겐은 그저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듯.
울컥 피를 토하는 비에르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엔 빛이 돌아오지 않았다.
“유겐······!!”
뒤늦게나마 두두두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든 것은 우르켈이었다.
유겐을 쓰러트리고 그녀를 제압한 우직한 켄타우로스는.
“비, 비에르 님! 비에르······!”
“움직이지 마시오! 섣불리 움직인다면 목을 꺾어버리겠소이다!”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나, 나는······!”
유겐은 무어라 변명하려고 했지만, 얌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줄 짬 따윈 없었다.
애당초 유겐이 아가레스의 지시에 움직였다는 건.
‘유겐조차도 우리가 모르는 새에 바알의 독에 당했다는 이야기다.’
아가레스는 말했다.
굳이 방송만이 바알의 독을 작동시키는 트리거의 전부가 아니라고.
유겐의 저 행동이, 바로 지금 순간을 위해 준비해둔 함정이라고 한다면.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아르민은 마법사일지언정,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미리 정보를 얻어 대응할 수 있다면 대응하겠지만.
자신의 시선조차 닿지 않는 모든 것을 미리 깨우치고, 납득하고, 이해하여 대응한다는 건.
이미 공상의 산물이나 다름없다.
“아······.”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육체.
그녀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 아르민은 늦지 않게 그녀의 몸을 받아낼 수 있었다.
울컥.
충격에 피가 튄다.
‘가슴에 구멍이 났다.’
아르민은 담담히 비에르의 상태를 파악했다.
인간이라면 진즉 죽었을 상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잇고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지 않은 건.
순전히 그녀가 질긴 생명력을 가진 마족 태생의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영역지정, 세포 활성화, 자가 치유력 증진.’
더 늦기 전에 마력을 조종해 육신을 보수한다.
현대 마법에 있어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가 치유 마법이라고는 하나, 아르민이 전력을 다한다면 이 정도 상처쯤이야 복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 판단했다.
하지만.
“······마법이 듣질 않는다고?”
우뚝.
아르민의 몸이 멈추었다.
아무리 마력을 쏟아 붓고, 구멍 난 가슴에 주언을 읊고, 술식을 그려도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육신이 마력 자체를 전부 ‘거절’하는 것처럼.
‘저주 걸린 물건 중엔, 그런 게 있다.’
마법이란 세계와의 대화다.
특정한 방법론.
예를 들어 정해진 술식을 통해, 세계를 향해 발언을 던지면, 그에 따라 답을 들려주는 것이 현대 마법이란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가끔 이러한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저주로 만들어진 아이템이나, 가호로 보호되는 방패 따위처럼.
대상을 폭발시키고 싶어도, 술식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것 같은 일은 몇 번이고 경험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파괴 마법 쪽이라면, 이야기는 쉽다.’
대상에게 직접 해를 끼칠 수 없다면, 까짓것 대규모 술식을 사용해 아예 그 주변부를 통째로 붕괴시켜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치유 마법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대상에게 듣지 않으면, 치유 자체가 불가능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그것이 바로 권능의 힘이다.”
반으로 잘린 채로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진 전직 예언자가 꺼내들었다.
****
마왕 아가레스.
서열 2위의 마왕이자, 마계를 위해 움직이던 예언자라는 명성도 허무하리만치.
그의 육신은 더러운 진흙 바닥에 쓰러져.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권능?”
“그래, 권능이다.”
아르민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
외부와 연결된 힘이 아니라, 독자적인 법칙으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구조를 가진 힘.
그것이 바로 아르민이 권능에 대해 내린 정의였다.
“바알의 악의에 당한 이상, 그 육신은 치유되지 않는다.”
외따로이 떨어진 ‘법칙’으로서 존재하는 이것에, 마법은 개입할 수 없다고.
그 말은 곧.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건, 같은 법칙상으로 움직이는 또 다른 권능뿐이라는 말이었다.
“바싸고, 권능은?”
“······아직, 사용할 수 없어.”
끙 하고 바싸고가 힘을 다루기 위해 집중하는 듯 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아직은 무리인 모양이다.
당장에 방법이 없다. 아르민이 그리 생각했을 때였다.
아가레스는 입술을 비틀고서, 기괴하리만치 일그러진 얼굴로 놈은 말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소용없다. 이미 나는 권능, ‘내다보는 세계’를 통해. 미래를 보았노라.”
이 앞을 가득 메운 암흑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당신의 미래를.
그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너 자신을.
“아아······. 이 시련으로 인해, 그대는 변모하겠지. 바알이 꿰뚫어본 것처럼. 아픔을 겪는 당신은 더욱 더 신화에 걸맞은 존재가 된다.”
그녀는 죽는다.
이 자리에서 비참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단지 바알의 시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르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저 어린 처녀의 차례가 된 것이라, 놈은 단언했다.
“상실과 고통은, 너를 다음 단계로 이끈다.”
“고작 이런 게 내게 시련이 되리란 말이냐?”
그러한 아르민의 반문에도 아가레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내 손으로 새로운 신화의 싹은 틔웠다.”
단정하는 그 말을 끝으로.
파사삭.
아가레스는 가루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실로 하찮고 쓰레기 같은 최후였지만.
놈이 남긴 말만이 조용히 귓가에 감돌았다.
– 비에르가 죽는다.
그 단순한 울림이 입안에서 감돈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비에르의 죽음은 내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아르민이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는 단순했다.
마계에 적응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녀를 이용한다.
부에르의 후계자라는 포지션이 마침 써먹기 좋았고, 그걸 위해 벨레드라는 이름을 사칭했다.
애당초 마족이란 아르민에게 있어 악(惡)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이 꼴이 된 것부터가, 마왕이 멋대로 게이트를 열고 지구를 습격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니까.’
우습지 않은가.
돌고 돌아, 인과의 인연은 아르민을 여기까지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에르의 후계자인 비에르가 죽는다고 해봤자.
환영을 했으면 했지, 그녀를 가엽게 여길 리가 없다.
그래. 시련이라니 언어도단.
바알의 헛소리에 어울려줄 것도 없이, 눈 하나 깜짝할 일 따윈 없을 터.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툭.
아르민의 손안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있었다.
피가 빠져 나가, 생명력조차 바닥을 드러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아르민의 손을 맞잡은 건.
천천히 죽어나가는 비에르, 그녀였다.
그녀는.
“전······. 괜찮아요. 벨······레드 님······.”
아니, 벨레드가 아니라.
“······저를 구해주신······ 은인 님.”
****
“······비에르.”
“처음부터······. 당신이, 벨레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벨레드라는 이름을 밝혔을 때, 그녀는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타 차원을 침략하러 간 자. 그런 아비에게 친우가 있다니, 그럴 리가 없고. 무엇보다 벨레드란 이름을 자처한 남자는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얼굴에 불과했다.
“이미 벨레드와 안면이 있다는 소리군.”
“······바싸고 님이 열었던 연회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아득하리만치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분명히 안면이 있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르민의 거짓말에 넘어가주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받아들였나.
“······저도,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어요.”
크로셀의 지배 이후, 비에르는 유폐된 채로 지내왔다.
그 누구의 보호도 없이, 그저 혼자서 어둠 속을 거닐어왔다.
그때 등장해준 것이 바로 벨레드.
아니.
“······당신이었어요.”
그저, 괴로움에서 벗어나 기대고 싶었다고.
“저도······. 당신을 이용한 거죠.”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결국엔 그 뿐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끝이 나는 것도 당연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상냥해요. 당신이 버팀목이 되어준 덕분에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상냥하다.
자신에게 그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아르민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비에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정말로 그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태로.
“전 괜찮아요. 이대로 저 같은 건······. 내버려두고 부디 바알을 쓰러트려······ 주세요.”
가빠진 호흡을 이어나가며, 비에르는 마지막으로 아르민에게 부탁했다.
“바알에게서······. 제 친구들을······, 절······ 위해 싸워준 이들을······.”
지켜주세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툭 하고 힘이 빠진 듯 손이 떨어졌다.
생명은 스러졌다.
그렇게 죽음은 찾아온 것이다.
“비······에르 님!”
비통한 유겐의 외침을 끝으로, 비에르의 죽음은 시련도 뭣도 되지 못한 채로 막을 내렸다.
그래, 고작 그 뿐이지만.
–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감정에 따라, 마기가 움직였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슴에 일어나는 이 파문은 무엇인가. 하고.
‘동정, 그리고······, 연민인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마족을 보고도, 어째선지 아르민은 적의를 불태울 수가 없었다.
이 땅에 내려서고 느껴온 것들이 있었다.
– 마족은 악이자, 적이다.
게이트 사태로 뼈저리게 느껴온 그 일반상식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무참히 깨져 나갔다.
마족도 결국엔 살아있는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고 깨달았다.
가슴에 일어나는 감정.
이것을 극복하고, 무시한다면, 비로소 자신은 시련을 극복하는 게 되는 것일까?
아르민은 문득 떠올랐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150년을 기다려준 후배.
‘민세희······.’
그녀 또한 내게 말해주었었지.
재민 선배는 상냥하다고.
어째선지 그 말을 해주었던 후배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보고 싶었다.
“시련을 극복하고 신화가 되라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거절한다.”
마기로 몸이 대체되고도, 여전히 배고픔을 느끼고 싶다고 ‘착각’할 만큼, 아르민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나는 인간이다.’
자신을 믿어준 주제에, 허망하게 죽어버린 처녀를 보면 짜증이 나고, 연민이 솟고, 끝내 동정하고야 마는 평범한 인간.
아르민은 이내 인정했다.
자신은.
– 비에르를 구하고 싶다.
그녀의 죽음을 시련으로 치부하고,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결론은 내렸다.
비에르가 권능에 의해, 죽고, 그저 이것만으로 끝나버린 이야기라면.
그것을 무를 방법이 예의 ‘권능’이라는 것밖에 없다면.
“좋아, 그 권능이라는 거. 나도 써먹어주지.”
언제나 그렇듯.
현대 마법사는 답을 찾는 법이다.
****
‘바알이 지껄였지. 시련이 나를 신화로 이끌 것이라고.’
신화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죽음이, 신화의 주인공을 다음 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면.
“좆 까라고 그래.”
그런 이야기에 일일이 어울려줄 만큼, 자신은 한가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아르민에겐 ‘가능성’이 있었다.
‘우선 체내의 마기를 증폭시킨다.’
쿠우웅!
몸이 떨린다. 육신이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이 세계에서 육신을 재구축하면서부터 마기를 가지게 된 아르민이다.
근데 자신은 이걸 지금껏 원래 자기 몸과 다르다고.
다른 물건이라고 이분법으로 생각해왔지만.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어.’
착각하지 마라.
마기까지 손에 넣은 이상, 이건 내 것이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마왕을 사칭해온 주제에, 아주 간단한 사실조차 깨닫는 게 늦어져버렸다.
‘마계에 당도한 순간부터, 이 육체가 만들어진 그때부터. 나는 이미 입구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격은 갖춰졌다.
그 ‘힘’에 대한 가설도 내려졌다.
단서라면 있다. 아직 비에르의 시체엔 바알의 독이 남아있었다.
이걸 더듬어가며, 권능의 법칙을 ‘해석’한다.
구조를 역산하고, 근본을 따라간다.
권능은 마왕에게 있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힘이다.
72좌라는 시스템 안에서 공고히 전해져오던 힘.
그 비슷한 걸, 아르민은 이미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헌터로서 각성했던 능력, 기프트도 그 본질은 권능과 다르지 않아.’
아르민이 강재민이던 시절 각성했던 능력.
그건 ‘마법을 사용하는 힘’도, ‘현대 마법을 마스터하는 능력’도, 무지막지하게 막강해, ‘칠영웅이 될 수 있는 힘’ 같은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
– 마나를 볼 수 있는 능력.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식을 초월해, 내가 서 있는 세계에 달리 존재하는 ‘법칙’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
‘권좌의 권능이, 기프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힘이라면······.’
나는 볼 수 있다.
눈을 감고.
뜬다.
그 순간.
끼이익.
눈앞으로 거대한 톱니바퀴가 보였다.
그것은 72개로 이루어진 ‘왕좌’였다.
이 세계를 유지하고, 보수하고, 이끌고 있는 힘의 총량.
톱니바퀴처럼 맞춰져, 하나하나가 회전하고, 돌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보인다.’
아르민은 손을 내밀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는 멀고 또 멀지만, 아르민은 자신의 눈을 통해 옥좌의 색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촤라락.
눈앞에 펼쳐지는 72개의 권능을 본 순간, 아르민은 확신했다.
하나만이 아니다.
자신이라면 여기 적혀 있는 72개의 권능을 전부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딱 하나.
필요한 것을 손에 쥔다.
“비에르······. 멋대로 퇴장분위기를 풍긴 참에 미안하지만.”
그건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권능을 발동한다.
여기서 아르민이 택한 건 여기까지 오는 지난한 과정을 반전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능력이자.
현대 마법사가 찾아낸 해답.
원 소유자.
바싸고의 권능.
그 이름.
– 원점회귀(原點回歸).
쿠웅!
세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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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정중히 행동하는 그들의 뒤를 따르고 따라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왔군.”
그 중심에 있는 남자가 보였다.
다른 마왕들이 겉으로 과시하듯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다면, 아르민의 앞에 선 자는 달랐다.
흰색 로브 바깥으로 전혀 새어나오지 않는 마기.
세련된 형태로 갈무리된 그 기운은, 눈앞에 선 자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걸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뭐, 그럴 만도 하겠지.
눈앞의 저 자식은 아가레스 같은 게 아니라.
“바알, 야, 이 개새끼야.”
아르민은 먼저 선수를 쳤다.
< 제48장 – 처음부터 시련은 없었다.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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