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98)
내 마법이 더 쎈데-98화(98/203)
< 제50장 – 돌아갈 시간. (1) >
종말을 그린 신화는 수도 없이 많다.
요한묵시록(Apocalypsis Ioannis) 또한 그 중 하나.
종말에 대한 관점을 기독교적으로 풀어낸 그 이야기는, 어찌하여 신의 시대가 그 끝을 고하게 되는지를 집대성하여 적어낸 기록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요한묵시록의 본질이다.
그러한 요한묵시록 안에서도, 아르민이 활용한 신화소는 다름이 아닌 ‘신을 모독하는 짐승들의 왕’이라는 기호.
본디 일곱 개의 머리에는 각각이 왕을 상징하는 왕관을 쓴 채, 고개를 들어 울부짖는 포효는 신을 모욕하는 말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신을 적대하기 위한······.
신화시대의 끝을 고하기 위해 찾아온 타락의 사도.
‘같은 붉은 용이라는 기호를 이용해, 공감 주술을 시도한다.’
마법의 근본은 기호의 유사성이다.
때 마침 홍련의 용으로서, 아르민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이스텔에게 기호를 적용해 펼친 마법이 바로.
그 이름.
<묵시록의 붉은 용>
적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반(反) 기독교적인 요소를 짜올려 구성한 신화급 마법은, 스스로를 신이라 자처한 자를 집어 삼키고, 먹어 치우고.
끝내 신화시대의 종말을 불러온다.
본디 기록된 신화와는 다른 결말로 자아내는 신화급 마법.
이것이 바로 현대 마법사가 이룩할 수 있는 신비의 궁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끝났다.’
아르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었다.
마계로 떨어지고 난 뒤 보내온 시간.
그것은 아르민이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그 뿐인가.
분투를 이어오던 중, 아르민에게 자신에 관한 새로운 진실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부에르의 침공 이후, 아르민이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알고 보니 바알의 안배였으며, 음모였고, 놈이 꾸민 계획의 연속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신화를 이끌어나가는 자여.
놈은 말했다.
강재민, 그리고 아르민 일레인스로 살아가는 자신이야말로 모노리스의 다음 장을 열 자격이 있는 자라고.
그걸 위해 시련을 주고, 극복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겠노라고.
그렇다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은 결국 놈에게 희롱당할 뿐인 인생이었나?’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시간도.
아르민으로 환생하여, 마법을 배우고, 좀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보며, 끝내 여러 사람을 만나, 후배 민세희를 보고 여기까지 도달한 시간 전부가.
그저 바알의 의도에 따라 흘러온 시간에 불과했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르민의 마음속에서 결론은 금방 났다.
설사 모든 것이 놈의 의도대로 흘러왔을지 모를 인생일지라도, 아르민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부했다.
놈이 지껄이는 시련이든, 신화의 주인공이 되라는 말이든, 바알이 지껄이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아르민은 이 자리에 섰다.
‘좆 까.’
가운데손가락을 날리며, 동시에 아르민은 자신의 손으로 눈앞에 선 저 거인(神)에게 ‘최후’를 선고했다.
그 결과.
– 고오오오오.
신의 육체가 무너져 내린다.
묵시록의 붉은 용이 놈을 물어뜯은 순간, 결국 신화소에 의해 패배한 놈의 ‘신격’이 상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도에 놈은 반격하려고 했었다.’
마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마력적 감각이 날카로워진 아르민이었다.
때문에 아르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스텔의 동체가 놈에게 직격하기 전, 놈은 분명 손을 움직여 무언가 액션을 취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직전에.
“······불꽃이 놈의 팔을 뒤덮었지.”
누구 짓인지는 뻔했다.
헬레나, 꼼짝없이 위험을 피해 도망쳤다고 생각한 그녀가.
끝끝내 이 자리로 돌아와 바알을 방해하고, 아르민을 도와준 것이다.
아마도 걸지게 욕설이라도 날리며 녀석의 팔을 성화로 불태웠을 테지.
헬레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르민은,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자, 진짜 마지막이었다.
쿠우우웅!
육신의 파편들이 아가레스의 영지 이곳저곳으로 떨어지며, 충격에 대지가 떨렸다.
그렇게 육신이 녹아내리고,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일렁이는 그림자의 개체였으니.
아르민은 직감했다.
‘바알의 본체인가······.’
저벅저벅.
아르민은 놈에게 다가갔다.
놈의 존재감은 한없이 약해진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불어오는 바람에 훅 하고 꺼질 것만 같은 존재감 속에서, 아르민은 입을 열었다.
“내 승리다.”
– 크흐흣, 그런 것 같군. 확실히 방금 마법 덕분에 손 하나 깜짝할 수 없다. 이 육체는 여기까지인 것이겠지.
놈이 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말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저 말에서 감지할 수 있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말투.
그것은 단순히 허세인가?
아니면 자칭하는 신이라는 이름답게, 이 뒤에도 뭔가가 있는 것인가.
그것조차도 아니라면, 저 놈은 그저.
– 설사 나는 이 자리에서 스러질지라도, 네 신화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목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인가.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
존재가 소실되는 과정에서도 내뱉는 말은, 단순한 허세일 뿐이지 않느냐고.
아르민의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놈은 그림자 째로 고개를 흔들었다.
– 그렇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보아라. 지금 네가 걸어온 길은 어떻지?
한 뼘, 한 뼘, 부스러지고, 바스라져서 존재가 소멸해가는 와중에도 놈은 말했다.
– 돌이켜 보아라.
마법을 배우고, 누군가를 성녀로 만들고, 태양을 자처하던 흡혈귀를 쏘아 떨어트리고, 욕망을 드러내던 신격을 물리치고, 나아가 신화를 자아내고자 하는 신마저 쓰러트린 그 시간들은.
결국.
– 신화 그 자체다.
결국 아르민이 걷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목적과 다름이 없다.
놈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을 하는 군.”
– 내가 없어질지라도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 네가 걷는 길은, 신화가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대는 모노리스의 다음 장을 열게 되겠지.
스러져가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놈은 저주와도 같은 말을 쏟아냈다.
흘린 목소리가 독처럼 퍼져 나가, 아르민의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침범한다.
그러니.
– 난 저 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네가 도달하는 길의······.
“미안하지만, 네 생각대로 될 일은 없어.”
따악.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긴 행위에, 그림자는 불꽃에 휘말려 타오르기 시작했다.
놈이 말을 끝내길 기다려줄 필요도 없다.
점차 재로 변해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신화니 뭐니 하는 이야기랑 엮일 생각 따윈 없어, 설사 나중에 다시 네놈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때는.
“다시 쳐부수면 그만이야.”
그렇게 바알은 사라졌다.
****
마계 전역으로 혼란이 치달았다.
폐허가 된 건 아가레스의 영지뿐만이 아니었다.
바알의 천년계획에 따라 마계 곳곳에서는 바알이 펼친 권능의 영향을 받아, 알게 모르게 조종당하던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바로 그 바알이 아르민에 의해 소멸해버렸으니.
– 연합마왕 세력에서 화평을 제의해왔습니다!
– 서열 8위의 바르바토스가 아직 응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싸고의 지휘통제실로는 각종 보고들이 어지러이 날아들었다.
바알의 지배에서 벗어난 마왕들과 마족들 사이로, 의견이 갈리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터.
“보다시피 개판이야. 바알, 그 새끼한테 당했던 놈들이 한 번에 정신을 차리니까. 자기가 하던 일이 정말 자기 의도로 저지른 건지 의심하는 녀석도, 그냥 꾹 믿고 밀고 나가는 바보도 있고. 난리도 아니란 말이지.”
모든 일을 끝내고, 아르민이 바싸고의 영지로 돌아왔을 때.
바싸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러면서 동시에 유쾌한 미소를 짓고는 아르민을 맞이해주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쪽이 뭔가 했나보네?”
바싸고는 은근한 시선으로. 아르민을 떠보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떠드는 것도 귀찮았고, 어차피 그럴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아르민이었다.
아르민은 그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뭐, 그런 셈이라고 쳐두지.”
“그래도 인력이 딸리긴 해. 상황이 이러다보니 마왕과 마왕 사이를 중재할 놈이나, 새로 동맹을 맺으려는 마왕에게 보낼 사절, 그리고 무력시위를 진압할 놈도 또 필요하단 말이지.”
바싸고는 흘낏 아르민을 돌아보면서 은근한 목소리를 내었다.
여기까지 속내를 보였다는 건, 응당 바라는 바가 있단 소리다.
“차원주소는 그 이후에, 이런 말인가?”
“역시 그쪽은 이해가 빨라서 좋네. 해줄 거지?”
“거절할 명분도 없군.”
뭐, 거기까지는 아르민도 케어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이 벌어졌는데, 냉큼 약속했던 차원주소만 받고 내빼는 것도 뒷맛이 쓰다.
게다가 더는 모른 채 하고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아르민은 마계와 커다란 연을 맺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바싸고가 마련한 지휘통제실에서 나와, 아르민이 숙소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아! 벨레드 님!”
“일은 전부 보시고 오신 겁니까?”
건너편에서 낯익은 두 마족과 마주칠 수가 있었다.
비에르와 유겐.
원래라면 영지로 돌아가서 방비를 단단히 구축했을 그녀들이지만, 바알이 사라지고 시간축이 달라졌다.
비에르의 영지를 침공했던 파이몬은 당사자부터가 먼저 화평을 제안해온 모양이니.
이렇게 그녀들은 상황 파악과 정리를 위해 다시금 바싸고의 영지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벨레드 님? 제 얼굴에 뭔가 묻었나요?”
아르민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비에르는 살짝 홍조가 깃든 표정을 짓고는 자기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른다.
자신이 어떻게 아르민에게 본심을 고백했고, 추후 어떤 결말을 맞이했던 적이 있는지.
이제까지 아르민에게 있어, 그녀는 원수의 딸 내지. 그저 이용해먹기 편한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상황이 어수선하더군. 돌아가서 수습하는 게 우선이겠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도와줄 수 있겠나? 비에르?”
아마 처음으로, 아르민이 직접 건넨 손.
자기 입으로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그 말에, 잠깐 비에르의 표정이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물론이에요!”
고개를 끄덕이고, 아르민의 뒤를 따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르민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여기에서 괜히 숨겨두고 있던 그녀의 본심을 파헤치는 것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촌스러울 뿐이다.
여기서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면, 그건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자.
“앞으로 바빠지겠군.”
****
그렇게 약 삼일 정도.
일련의 사태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야호~ 나 왔어!”
뒤늦게 헬레나가 비에르의 영지로 찾아왔다.
“늦었군.”
그때 바알을 칠 때 도움을 준 것도 있고 해서, 금방 접촉해올 줄 알았건만.
아르민의 말에도 헬레나는 검지를 흔들며 칫칫, 혀를 차는가 싶더니.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단 말이지. 미스터 강. 황을 수습해줄 똘마니가 필요한 거잖아?”
그러면서 헬레나는 저택 바깥에서 서성이는 일단의 무리를 가리켰다.
저마다가 검은색으로 통일된 특색 있는 제복을 걸치고 있는 것이, 제법 눈에 띄는 무리였다.
설마.
“아르카스의 신도들인가?”
“빙고! 정답이야. 마계에서 벌어진 일은, 마계 녀석들이 수습하는 게 제일이잖아?”
확실히 그 중에는 볼프나 아크투루스의 얼굴도 보였다.
과연 자기를 따르는 녀석들을 인력으로 갈아 넣는다면 시간도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이건 지금도 상황 수습에 매진하며 골머리를 앓는 바싸고 세력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만 생각한 건 아닐 텐데.”
아르민이 쓴웃음을 짓고 꺼낸 말에,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역시 미스터 강이네. 맞아.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준다면서 나서면 저 아이들도 조금은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긴 아무리 척박한 대지에서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마족들이고, 그 안에서 차별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어려운 순간에 내미는 도움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법이다.
뭐, 마족들도 똑같다고 일률적으로 적용할 순 없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들의 도움을 받는 자들은, 섣불리 아르카스의 신도라고 손가락질을 하긴 힘들어질 테지.
헬레나, 그녀는 자신이 떠난 뒤까지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다.
그녀가 일부러 발 벗고 나서서 이런 짓까지 한다는 건.
“그쪽이야말로 역시 일국의 공주답군.”
자기 입으로는 끊임없이 싫다고, 괴롭다고 말했던 주제에 헬레나는 결국 국민들을 위해 희생해왔던 영국의 공주님이지 않던가.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기분 나쁜걸······.”
그렇게 헬레나와 아르민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결국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신격을 얻고, 마기와 융화되어 마왕에 가까운 존재가 될지라도.
서로의 근본은 저 멀리, 과거에서 헌터로 싸워오던 그곳에 있다.
뿌리가 있는 이상,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새삼 확인한 채.
“그럼 감사히 도움을 받도록 하지.”
“물론 나한테는 별개로 술 한 잔 쏴.”
“그것 참, 여부가 있겠습니다.”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으며, 아르카스의 신도들을 이끌었다.
****
그리고 또 일주일 후.
바싸고의 영지 한 구석에 마련된 ‘도약의 문’ 앞으로 여러 마족들이 모였다.
바싸고는 물론 그를 호위하는 상급 마족들.
그밖에 비에르와 유겐, 우르켈, 그들을 따르는 비에르 영지의 새로운 기사단 마족들을 비롯해.
아르카스를 추종하는 일단의 세력까지.
그 중심에서 차원주소를 입력하고, 패스워드까지 전부 끝마쳐 게이트의 손질을 끝낸 바싸고는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자.
“차원게이트를 열 준비는 전부 끝마쳤어. 언제라도 넘어갈 수 있을 거야.”
바싸고의 말대로.
새삼스레 눈앞에 놓인 게이트를 바라보며 아르민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드디어.
‘돌아갈 때가 왔다.’
< 제50장 – 돌아갈 시간.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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