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
00. Prologue
애인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한때 세상에서 가장 완벽했던 내 남자는 말에서 떨어지며 기억과 함께 인성까지 날려 먹었다.
슈욱-!
날아온 단검이 나의 뺨을 스치고 반대편 벽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검날이 스쳐 간 자리, 따끔- 하고 핏물이 배어 나왔다.
“저런, 빗나갔네.”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마치 고대의 명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잘생긴 남자가 거만하게 턱을 괴고 앉아 나를 향해 비식 웃고 있었다.
테오도르 레온느 알브레히트.
대륙에서 가장 광활한 땅의 주인이자 찬란한 알브레히트의 황제. 그리고 나의 애인.
“아쉬워라. X같이 예쁜 얼굴을 제대로 망가뜨려 줄 수 있었는데.”
……이었던 남자.
테오도르는 빗나간 단검과 나를 쳐다보며 나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를 둘러싼 또 하나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1황자 전하께서는 종종 주변인을 과녁 삼아 유흥을 즐기신다더라.]심지어 그 소문은 10년도 더 된 아주 옛날의 것이었는데.
힐끔, 시선을 내려 바닥에 떨어진 은색 머리카락을 보았다.
조금 전 스쳐 간 칼날에 베여 우수수 떨어진 그것들의 신세가 꼭 내 처지 같아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뭐 해? 안 주워 오고.”
문득 들려오는 삐딱한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바닥에 떨어진 그의 단검을 주워 왔다.
“여기 있습니다, 폐하.”
담담히 그것을 바치자,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치켜올렸다.
“흐음…….”
그는 내가 내민 단검을 받을 생각도 않은 채, 내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어설프게 잘려 나간 내 머리카락을.
“…….”
한참이나 계속되는 대치에 슬슬 팔이 저릴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그를 훔쳐보았다.
비록 기억과 함께 인성까지 잃어버린 그였지만, 잘생긴 얼굴만큼은 여전했다.
문득 어느 호사가들이 그를 향해 찬양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테오도르!알브레히트 황가의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브리힘 신의 가호가 그에게 있으라!]
검은 머리카락은 어느 고독한 겨울밤과 같이 고혹적인 색채를 띠었고, 태양을 닮은 황금빛 눈동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과도 같았다.
고대 신화 속 남신을 빚어 놓은 듯 조각처럼 아름다운 이목구비하며, 금욕적인 제복 아래 숨겨진 완벽한 몸까지.
그는 누가 뭐라 하여도 현존하는 대륙의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나는 테오도르의 저 잘생긴 얼굴과 단단한 몸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그의 완벽한 외모보다도, 다정하고 순수한 그 성격이었다.
테오도르는 언제나 봄바람처럼 따뜻한 남자였다.
누구에게나 상냥했으며, 어린아이만큼이나 순진했다.
물론 밤의 그는 조금 흉포한 한 마리의 짐승 같았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고.
‘그래, 테오는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어.’
불과 얼마 전까지 그가 내게 보였던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마음에 안 들어.”
잔뜩 불쾌감에 젖은 목소리와 함께 혐오를 넘어 경멸에 가까운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내가 이딴 버러지 같은 것을 착각했을 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고혹적인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어느 고명한 음악가의 영혼을 불살라 작곡한 유작과도 같았다.
얼핏 들으면 욕설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한때 그는 저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사랑을 속삭였다.
“안 들리나?”
내가 그의 욕설을 들리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가만히 귀를 닫을 적에, 그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당장 꺼지라고, 내 눈앞에서.”
그가 내게 험악한 표정으로 화를 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폐하.”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멍하니 서 있었던 건 내 잘못이기에, 나는 황급히 사과하고 몸을 돌렸다.
그의 집무실에서 돌아 나오는 길.
핏물이 배어난 왼쪽 뺨보다도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손목이 더욱 따끔거렸다.
이를 악물며 밖으로 나오자, 복도에서 수군거리던 기사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괜찮아, 이브 경?”
“이것 봐, 내가 뭐라 했어? 폐하는 인성이 조금…….”
“조금이 아니라 굉장히…….”
“쓰레기…….”
“인성 파탄자…….”
“분리수거도 안 되는…….”
“역사에 둘도 없을 폭군…….”
“알브레히트의 미래가…….”
숙덕거리는 말소리는 대개 황제의 인성에 관한 험담이었다.
“아니야.”
나는 단호한 말씨로 그를 두둔했다.
“폐하는 아직 편찮으시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 이건 그가 많이 아픈 탓이다.
낙마를 하며 머리를 다쳐서, 그래서 이렇게 변한 것이다.
모두 회복하여 기억을 되찾을 때는 분명 다정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까 폐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내 앞에서 나의 테오를 욕하지 마.
나는 내 앞에서 그의 욕을 한 기사들을 팩 노려보며 무섭게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비호와 절대적인 신뢰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의 기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나를 핍박했고, 잔인한 목소리로 아픈 상처를 주었다.
“끈질기기도 하지. 네가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버틸 거냐고?
테오도르는 죽은 나를 10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맸다.
그리고 끝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나를 찾아냈다.
비록 나는 그의 지난 10년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내가 그의 기억을 기다린 한 달은 그가 나를 찾아 헤맨 날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더 기다릴 수 있었다. 나의 테오가, 나를 다시 기억해 낼 때까지.
얼마 전 그가 내게 남긴 뺨의 상처는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걸 어떡하냐고 나를 대신해 호들갑을 떨었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하나였다.
테오도르, 나의 아주 작은 상처에도 대신 아파하던 순수하고 착한 남자.
그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 이걸 보고 울면 어떡하지.
그래.
그뿐이었다, 내가 속상한 건.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얼굴 보기 역하니까.”
괜찮다.
“얼마나 더 추한 꼴을 보일 참이지?”
괜찮았다.
“너만 보면 기분이 나빠. 영영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참을 수 있어.
“테오……!”
참을 수 있…….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테오’는 오직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애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그는 다른 여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내게만 보여 주던 표정, 눈빛, 미소로 그 여자를 보았다.
아, 그런데 이건 좀…….
아픈데…….
…….
그가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다정한 웃음을 터뜨렸다.
싫어.
그런 눈으로 그 여자를 쳐다보지 마.
나를 돌아봐.
내가 여기 있어, 테오.
나는 테오도르가 나를 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쳐다보았으나, 효과는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네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차렸을 거야.]다시 만났을 때, 분명 그렇게 말했으면서.
애정이 듬뿍 담긴 손짓으로 여자의 뺨을 쓸어내리던 그가 서서히 여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입술이 여자의 이마에 닿는 순간.
까르륵-!
행복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테오도르는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의 한 자락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함께 웃었다.
여자의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그 위로 몇 번 더 자잘한 입맞춤을 남겼다.
여자를 향해 둥글게 휜 그 매혹적인 눈웃음에 아플 리 없는 손목이 또다시 욱신욱신 아팠다.
고개를 내려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손목을 보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몹시 그윽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순간에 그런 눈을 하는지 잘 안다.
조금 전과 달리 다소 진득한 분위기 속에서, 여자가 그를 향해 까치발을 들었다.
나는 그 이상 보고 있을 용기가 없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기 직전,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건 좀, 참기 힘들었다.
* * *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과거 내가 사랑했던 테오도르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나를 볼 때마다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그 남자와 내가 과거 사랑했던 남자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걸.
[임신했습니다.]의사의 그 말만 아니었더라면 내 기억 속 상냥한 그가 돌아오길 조금 더 기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그 여자에게 죽임을 당할 테지.
나도, 배 속의 아이도.
한때 나와 사랑을 속삭였던 남자의 약혼녀에게 죽는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랑을 놓을 참이다.
“아니지. 사랑을 놓은 건 내가 아니야. 네가 먼저 놓았어, 테오도르.”
더 이상 나와 그가 사랑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
나와 함께 종적을 지워 낼 작은 흔적을 제외하고는.
나는 아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그 납작한 아랫배를 가만히 매만져 보았다.
“아직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데…….”
이제 떠날 것이다.
이틀 뒤, 두 사람의 약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내게 약혼식장에서 그 여자를 호위하라고 명령했지만, 내가 그녀를 지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짜증이 났다.
언제는 내게 두 번 다시 검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래 놓고 그 여자를 위해서 다시 검을 들라고 해? 폭군 새끼…….”
격한 욕설을 짓씹던 나는 불현듯 배 속의 아기가 욕을 들었을까 걱정이 되어 멈칫했다.
“괜찮아, 아기야. 다 잘못 들은 거야. 나쁜 말은 모두 잊어버리렴.”
나는 아랫배를 한 번 토닥이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분노를 꾹꾹 담아 짤막한 편지를 남겼다.
나는 잠시 쓰던 걸 멈추고 종이 위의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10년간 입이 험한 견습 기사들 틈에서 자라야 했던 나는, 결코 욕을 할 줄 몰라서 그동안 참았던 게 아니다.
혹 그가 이걸 보고 열 받아서 나를 죽이겠다고 찾아오면 어쩌나 슬쩍 걱정이 되었으나…….
“괜찮겠지, 뭐.”
어차피 그와는 이제 영영 만날 일 없을 것이다.
황제의 측근 기사, 이브 로웰린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될 테니까.
그동안 내가 당해 온 것을 생각하니,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만년필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미련 없이 두 문장을 더 휘갈기고서 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