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2_1
11. 시간의 거울
[에른스트……!] [안 돼……!]감겨 있던 테오도르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두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가, 이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브레히트의 황궁, 저의 알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처음 보는 장소였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들판, 지저귀는 새들과 나무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기 다람쥐들.
“어떻게 된 거지?”
테오도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브는…… 에른스트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물씬 밀려왔다. 이브도, 에른스트도 보이지 않았다.
“이브…… 울고 있었는데…….”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울고 있는 수많은 그녀들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는 그녀의 모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계속…… 울고 있을까…….”
그녀가 제가 없는 곳에서 또 울고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너무 많이 울면, 안 되는데…….”
물론, 이브는 저의 걱정 같은 건 바라지 않겠지만…….
욱신-
서럽게 울던 그녀를 떠올리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마 저는 평생을 살아도 그녀의 눈물에 가슴 아파할 것이다.
정작 그녀를 울렸던 주제에 염치없게도 말이다.
테오도르는 이브와 에른스트를 떠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감히 제가 끼어들 수 없는 우정이 있었다.
그것이 질투가 난다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걸 보니, 제가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에른스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이 뒤흔들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 속에서 에른스트가 자신의 심장에 다시 한번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얗게 탈색되었던 긴 머리카락이 조금씩 줄어들며, 테오도르가 기억하는 본래의 그의 머리 색으로 돌아왔었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눈동자 색도 돌아왔는지는 보지 못했으나…….
아마 앞으로 그 눈꺼풀이 다시 뜨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욱신, 욱신-
[하지만, 에른스트는 네게도 가족이잖아.]이브의 말마따나.
에른스트 같은 한심한 놈에게 어떤 애정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에른스트는 그의 성력으로 만들어 냈던 그 황금빛 검으로 죽었다.
평소에는 잘만 사용하던 그 성력이,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 애의 심장에 머물러 있던 테네브리스의 영혼이 엉겨 붙은 탓이리라.
마지막에 흘러나와 주변을 덮던 그 검은 기운, 그것은 분명 소멸 앞에서 발악하던 테네브리스의 영혼이었다.
어찌 되었든 에른스트, 그 눈물 많고 한심한 이복동생을 제 손으로 죽인 거나 마찬가지이다.
한심한 건 에른스트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쓰레기도 참, 이런 쓰레기가 없군.”
테오도르는 스스로를 향해 자조했다.
“이브를 울리기나 하고…….”
어쩌면 저는 이브를 울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인지도 모른다.
‘에른스트 대신 내가 없어졌으면, 이브는 울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짙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이브에게 더 행복한 일 아닐까?’
그것은 그녀의 무의식에서부터 계속 생각하던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급작스러운 일들에 휘말려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지만…….
“젠장.”
갑자기 눈가가 홧홧해졌다.
테오도르는 한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흙바닥 위로 풀썩 드러누웠다.
손바닥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렇게 우는 건 한심하고 찌질하지만, 뭐 어때. 이브가 보는 것도 아닌데.’
테오도르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소리 없이 얼굴을 적시던 때였다.
“테네브리스, 왜 울고 있어?”
불쑥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러나 저는 테네브리스가 아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계속 울었다.
“테네브리스?”
달콤한 목소리는 꼭 제가 좋아하는 이브의 것과 닮았다.
저 목소리가 ‘테오’ 하고 제 이름을 불러 준다면 참 좋을 텐데.
“테네브리스!”
따뜻한 감촉이 그의 손에 닿았다.
가늘고 길쭉한 감촉은 분명 여자의 손인데, 군데군데 굳은살이 느껴졌다.
꼭 이브의 손처럼…….
홱-
두 눈 위로 찰싹 달라붙어 있던 테오도르의 손바닥이 타의에 의해 떼어졌다.
그 순간 시야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
테오도르의 눈이 놀라 커졌다.
“이브……?”
햇살에 반짝 빛나는 은색의 머리카락.
싱그러운 녹색 눈동자.
처음 본 순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하고 그를 놀라게 하였던 어여쁜 얼굴.
그 얼굴이 저를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여자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의 시선이 자꾸만 여자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브다.
이브를 제가 분간해 내지 못할 리 없었다.
분명 이브였다.
그런데 여자는 이브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일단 이브라면 제게 보일 리 없는 저 상냥한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가 그러했고…….
무엇보다 저를 ‘테네브리스’라고 그 재수 없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녀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체르니시아.
그녀의 가문이자, 동시에 고대 4대 사도 중 하나였던 땅의 인도자의 이름.
“체르니시아 님!”
“테네브리스 님도 함께 계셨군요.”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색이 조금 달랐다.
테오도르는 이런 복색을 역사서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저건 고대의 사도들이 살아가던 시절의 의복이었다.
테오도르는 테네브리스의 성물에 대해 조사하면서 오래된 문헌에서 찾은 내용을 떠올렸다.
‘고대의 사도…….’
분명 세상이 뒤흔들리기 직전,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거울이 반응했다.
‘그럼 또 시공을 넘어온 건가?’
이미 그 거울을 통해 몇 차례 시공을 건너 오딜리아와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어쩌면 시간을 넘어서…… 고대 사도들의 시대까지…….’
테오도르는 이브와 닮은 여자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가 그 거울을 찾았던 건 시간을 되돌리기 위함이긴 했다.
시간을 돌려서, 죽은 이브를 다시 살리려고…….
이후로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잠시 신경을 끄긴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먼 과거까지 올 생각은 없었다.
“왜 그래, 테네브리스?”
여자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테오도르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체르니시아.] [보고 싶었어. 줄곧.]테네브리스는 이브를 그렇게 불렀다.
체르니시아, 라고.
처음에는 모두를 죽일 듯 공격적이던 테네브리스는 돌연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태도를 변화하였다.
“테네브리스? 너 오늘 이상해. 어디 아픈 거야?”
여자가 테오도르의 이마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찌릿, 하는 전율이 일었다.
이건, 이브를 볼 때면 느끼는 그 두근거리고 설레는 감정이었다.
“아까 울던 것도 그렇고…….”
“테네브리스 님! 체르니시아 님!”
이때, 사람 하나가 그들에게 뛰어왔다.
“무슨 일이지?”
“아, 아이가…… 아이가 강물에 빠졌는데……! 마, 마물이 있어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자가 강물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도 얼결에 함께 뛰었다.
여자가 달리며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올려 묶었다.
그 바람에 드러난 하이얀 목덜미에 시선을 빼앗겼다.
강가에 도착하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물에 빠진 아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나, 강 하류에 도사리고 있는 커다란 마물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흐르는 물살에 아이의 몸이 점차 아래로 떠밀려 갔다.
“테네브리스, 아이를 부탁해!”
여자는 곧바로 검을 뽑아 마물에게 달려들었다.
테오도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여자가 마물을 상대하는 사이, 아이를 구해 밖으로 꺼냈다.
사람들이 몰려와 우는 아이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 주었다.
“오, 에릭……! 괜찮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테네브리스 님!”
사람들이 그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멍청하니 굳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탓이다.
붉은 눈동자…….
얼굴의 생김새는 분명 제 것이었는데, 투명한 수면 위에 비친 한 쌍의 눈동자는 루비처럼 붉었다.
‘이게 어떻게…….’
그 와중에 풍기는 차가운 분위기가 미묘하게 ‘그자’를 닮아 있었다.
에른스트의 몸속에서 깨어났던 고대의 어둠, 테네브리스를.
“테네브리스?”
어느덧 마물을 해치우고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마친 여자가 그에게로 다가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가호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물에 들어간 거야?”
“……?”
“몸 쓰는 거, 귀찮다고 싫어하잖아.”
“가호, 라니……?”
성력을 말하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찰나.
“아이참, 정말 오늘 왜 그래, 테네브리스. 네가 부리는 어둠 말이야.”
“…….”
테오도르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옷이 다 젖어 버렸…….”
“체르니.”
이때, 다정한 목소리 한 자락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레오!”
여자가 활짝 웃으며 남자를 돌아보았다.
테오도르는 여자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태양을 닮은 황금색 머리카락, 금색 눈동자를 지닌 미형의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왠지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빛의 길잡이 레오브란테.’
테오도르는 자신의 외가를 잠깐 떠올렸다.
“레오, 이것 봐. 테네브리스가 오늘 조금 이상해.”
“저런, 테네브리스가 꼼짝없이 젖어 버렸네. 무슨 일이야, 이게.”
남자는 상냥한 태도로 여자의 말을 들어 주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향해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응시하던 중, 문득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순간 테오도르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저를 보는 남자의 눈에서 미묘한 적대감이 느껴진 탓이다.
‘뭐야.’
테오도르도 남자를 똑같이 노려보았다.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다.
이내 남자가 피식 웃더니, 여자의 귓가에 무언가 속닥속닥 말을 건넸다.
순간 여자가 얼굴을 화끈 붉히며 테오도르를 돌아봤다.
“레오랑 잠시 다녀올 데가 있으니 기다리지 마.”
그리고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기다리지 말라고 했으나,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따분하게 여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여자는 오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젖은 옷이 모두 마를 때까지도.
‘뭘 하느라 돌아오지 않는 거지?’
테오도르는 조금 짜증이 나서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멀리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게 보였다.
‘저 자식이…….’
불쑥 치솟은 불쾌감에 두 사람을 방해하고자 할 때였다.
“어…….”
나직한 탄성이 그의 잇새로 새 나왔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가슴이 싸하게 내려앉았다.
‘아니야. 저 여자는 이브가 아니야. 이브가 아니잖아.’
테오도르는 애써 부정했다.
‘여긴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온 과거고, 그리고 저 여자는 이브가 아니라…….’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여자는 이브였다.
이브를 제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이브……. 이브야. 틀림없는 이브야.’
인정한 순간 확신이 크기를 부풀렸다.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는 저 눈앞의 여자는 이브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이브가 이보네라는 것을 알았으면서, 그 본능적인 직감을 무시하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
‘이브가…….’
테오도르는 입 안의 여린 살을 피가 나도록 꾸욱 베어 물었다.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 낸 두 남녀가 서로를 지그시 응시하더니, 이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반달 모양으로 휜 여자의 눈매가 가슴이 아릴 만큼 예뻤다.
남자가 느리게 손을 뻗어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맡기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무어라 떠들고 있었다.
오래전…… 이브가 제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브가, 저 남자를…… 좋아해.’
슬쩍 까치발을 들어 올린 여자가 애정을 담뿍 담아 남자의 입가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멀어지려는 여자의 머리통을 남자가 부드럽게 붙잡아 당겼다.
긴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꼬옥 맞물린 두 사람을 보며 테오도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브가 제 앞에서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비록 저를 모르는 옛 시간대의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시리게 아파 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도르는 몇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곳은 고대 사도들의 시대이며, 제가 고대 4대 사도 중 하나라 불리는 테네브리스의 몸속에 들어왔다는 것.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그리고 마찬가지로 4대 사도 중 하나인 체르니시아가 이브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
에른스트의 안에 있던 테네브리스 또한 그것을 뒤늦게 알아보아서, 마지막에 돌연 소멸되지 않고자 몸부림을 친 걸 테다.
‘흥, 멍청한 놈.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고, 이브를.’
테오도르는 테네브리스를 향해 무의미한 경쟁심을 불태웠다.
그러다 결국 저도, 테네브리스도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처지라는 걸 깨닫고 울적해졌다.
패자들끼리 경쟁심을 불태워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테오도르는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곳의 이브는…… 제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
물론, 본래의 시간대의 이브도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그녀를 보는 게 못 견디게 괴로웠다.
한편으로 이곳은 아직 제가 그녀에게 저지른 잘못들이 일어나지 않은 고대의 시간대라, 그녀는 제게 한결같이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직 친구에게 주는 친절에 그친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
테오도르는 나무 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활한 대지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모두 이브의, 체르니시아의 힘이 뻗은 곳들이었다.
땅의 인도자, 체르니시아.
레오브란테로부터 그녀를 빼앗고 싶다는 못난 마음과 함께, 그녀가 관장하는 저 땅을 자신의 어둠으로 덮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불쑥 일었다.
테오도르는 이것이 저의 욕망이 아니라 테네브리스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착한 개새낀데, 그런 못된 생각을 할 리가 없잖은가.
그러니 이건 모두 그 개놈의 자식이 품고 있는 추악한 욕망이다.
‘그래, 이건 절대 내 의지가 아닌…….’
뚝-
나뭇가지 하나가 그의 손안에서 부러졌다.
저 아래, 그녀가 레오브란테와 함께 걸어오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하필이면 테오도르가 올라 있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다리를 베고 눕는 레오브란테의 모습에 테오도르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저 날씬한 다리 위에 못생긴 머리통을 올리다니!
저러다가 이브가 다리에 쥐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그렇지만 그 장면을 보고 분노를 불태우는 것은 오직 테오도르뿐인 듯했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두 사람의 주위로 새가 지저귀고,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추고, 동물들이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세상 만물이 그들의 결합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저조해진 기분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제 다리를 베고 누운 레오브란테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헤집으며 책을 읽었다.
그 모습이 너무 다정해서 눈물이 났다.
“아얏.”
문득 그녀가 눈을 찡그렸다.
“왜 그래, 체르니?”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어디 봐 봐.”
몸을 일으켜 앉은 레오브란테가 그녀의 눈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주었다.
“아…….”
그녀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이제 됐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어여쁜 미소였다.
그리고 그 감상은 그녀의 앞에 마주 선 남자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그녀를 보며 짧은 웃음을 터트린 레오브란테가 그녀의 눈가에 입을 쪽, 하고 맞추었다.
“……!”
순간 테오도르는 눈이 뒤집힐 것 같은 추악한 질투심에 휩싸였다.
쿠과과과과과과광!
저 멀리 산 하나가 날아갔다.
“어?”
두 사람이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어둠이야…….”
“테네브리스의 기분이 또 안 좋나 보군.”
“요새 계속 그러네…….”
두 사람이 걱정스럽게 주고받는 목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더 짜증이 났다.
“있지, 체르니. 우리 잠깐…….”
레오브란테가 그녀의 귓가에 뭔가 속닥거리더니, 두 사람은 또 자리를 옮겼다.
뻔하다.
근처에 제가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서 그 대단한 사랑을 나누려는 거겠지.
“…….”
테오도르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서 ‘어둠’이라 불리는 검은 기운이 그의 손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본래의 육체에서 사용하던 성력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의 기운이었다.
이 힘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겠으나, 섬세하게 다루는 게 조금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