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2_3
그것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어둠의 폭주를 막기 위한 브리힘 신의 안배였다.
그러니 레오브란테는 테네브리스의 숨통을 쥐고 있는 목줄이자, 유일한 통제자였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레오브란테는 그것을 빌미 삼아 체르니시아를 협박하여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제 앞에서 보이던 다정한 모습들마저…… 모두 거짓되고 연출된 것들이었다.
그녀는 테네브리스를, 저를 위해 그 관계를 감내해야 했다.
테오도르는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때부터 자신의 외가가 싫었다.
어미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레오브란테.
그 이름에 거부감이 있었던 건,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
한때 온 세상에 위명을 떨치던 사도들 또한 세월이 흘러가며 소멸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땅이었고, 그 뒤를 하늘과 빛이 따랐다.
그러나 정작 가장 먼저 세상을 등졌던 땅의 인도자는 소멸이 아닌 순환을 선택했다.
애석하게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빛의 길잡이와 하늘의 대리인은 소멸을 통해 안식을 얻었지만.
그렇게 브리힘 신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보호하였던 사도들이 모두 떠났다.
다만 사도들이 사라진 세상에는 그들을 기리는 이들이 남았다.
테오도르는 기나긴 흐름 속에서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외롭게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사도가 떠난 땅에 제국을 세웠다.
고대 알브레히트 황가였다.
“테오도르?”
흠칫.
테오도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결코 잊지 못할 목소리였다.
사무치게 사랑하여, 홀로 떨어진 차원 속에서 고독에 질식해 가면서도 오래오래 그리던 목소리였다.
“이브……!”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돌아보자, 그곳에 이브가 있었다.
이브와 같은 영혼을 지녔으나 그녀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그 여자가 아니라.
제가 아는 이브.
제가 기억하는 이브.
언제나 곧고, 선하고, 단단한.
동시에 여리고, 사랑스러워 지켜 주고 싶은.
그래서 자랑스럽고, 이따금씩은 눈물겨운.
제가 사랑하는…… 그 이브였다.
“이브!”
테오도르는 이브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벅차 왔다.
정말 이브였다.
진짜 이브였다.
멈칫.
반갑게 달려가던 테오도르는 돌연 멈춰 서며 눈치를 살폈다.
당장 달려가 저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러지 못했다.
‘젠장. 몇 번을 생각해도…… 이브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무뎌지지 않아.’
가슴이 시큰시큰 아팠다.
테오도르가 울컥거리는 마음을 삼키며 그녀의 앞에서 절절매고 있을 때.
이브가 먼저 질문을 건네 왔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지?”
“아, 여긴…… 고대 알브레히트 황가야.”
“고대?”
그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번져 나갔다.
“저기 봐 봐. 사람들이 황금 궁전을 짓고 있잖아.”
테오도르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이브의 눈동자가 둥글게 커졌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고대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바로 그 황금 궁전을, 고대의 복식을 한 사람들이 짓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 전?”
테오도르가 퍼뜩 그녀의 말을 잘라 내며 물었다.
“그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네 알현실에서 테네브리스에게 맞서고 있었잖아.”
“잠깐, 이브. 그럼, 그럼 너는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브가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전에 테네브리스가 소멸되던 순간 땅의 흔들림을 느꼈어. 그리고 그 소동에 휩쓸려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떠 보니 이곳이었고.”
“…….”
“낯선 공간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당황하던 차에 네가 눈에 띈 거야.”
“아…….”
테오도르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브는…… 조금 전에 이곳에 온 거구나.’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며 두 사람 모두 고대로 오게 되었으나, 그 지점이 조금 차이가 난 것이다.
‘다행이야.’
테오도르의 입가에 피시식 힘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브가 나처럼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외롭게 혼자 있지 않고, 곧장 나와 마주쳐서 정말 다행이야.’
테오도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대 사도들이 다스리던 세상에서 눈을 떠 이브를 만나기까지, 외딴곳에 홀로 떨어진 그는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였다.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외로이 버텨야 했다.
그리운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약 하나 없이.
저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그처럼 괴로울 줄은 몰랐다.
이브가 그 깊은 고독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여러 번 그녀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는데, 또 그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막지 못했더라면 그 무력함에 죽고 싶어졌을 것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이브가 수상쩍다는 듯 물었다.
“으, 응……?”
“너, 나한테 뭐 잘못했어?”
“내 표정……?”
테오도르는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물론 잘못이야 그간 셀 수 없이 많이 하긴 했는데…….
그 사실을 상기하자, 테오도르는 또다시 울컥해졌다.
“꼭 무슨 잘못 저지른 표정인데…….”
유독 촉촉한 눈을 하고서 눈가를 발그스름 붉힌 테오도르를 보며 이브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보다 우리가 어쩌다 고대에 오게 된 거지? 테네브리스는 확실히 소멸한 게 맞아? 그리고 에른스트는…….”
에른스트의 이름을 언급하는 이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부러 나쁜 가정을 피하고자 애써 에른스트의 죽음을 외면하는 중이라는 것을.
테오도르는 양 주먹을 꾸욱 말아 쥐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거울 때문인 것 같아.”
“거울……?”
“아, 그게…… 테네브리스의 성물인데…….”
“네가 모으고 있었다는?”
이브가 알은체를 했다.
“어…… 으응……. 알고 있었어……?”
그녀가 자신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테오도르가 조금 감동을 받으려는 찰나.
“네가 카타리나의 실종으로 미쳐서 그걸 모은다는 소문은 들었지.”
“뭐? 누구?”
순간 테오도르는 당황하여 물었다.
“카타리나 말이야.”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그 여자 때문에……!”
버럭 목소리를 높이는 테오도르를, 이브는 뻔뻔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 그런 소문이 돌았을지, 정말 이유를 몰라서 그래?”
“…….”
그녀의 물음에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죄인이 되고 말았다.
황제의 괴팍한 성정을 두려워한 주변 이들이 누구도 소문을 전달해 주지 못했으나, 어째서 그런 소문이 돈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타리나와 부러 요란한 애정 행각을 보였던 것은, 그녀와의 거래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이보네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라는 제 나름의 명분으로 인한 행동이었으나…….
도리어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게 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여자의 실종으로 인해 제가 미쳐 버렸다는, 그런 허튼 소문까지 나도는데도 알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하다니.
이브가 떠난 직후에는 그녀가 죽었다는 생각에 무엇도 깊게 생각지 못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쳐 있었으니까.
그저 시간을 돌려 그녀를 살려 내겠다는 집념뿐이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는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무지하고 무능하기까지 한 최악의 쓰레기다.
그런 저를 이브가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안해…….”
테오도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사과했다.
“돌아가면 다시 바로잡을…….”
“그걸 왜 나한테 사과해?”
이브는 사과를 받아 주는 대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누구와 무슨 스캔들이 나든, 나랑은 상관없잖아.”
“아…….”
“바로잡든 말든 그건 네 일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겠는데, 혹시나 덧붙이자면 괜히 나를 끌어들이진 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곧바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사실 네가 좋아하는 건 카타리나가 아니라 나였다느니, 뭐 그딴 소문으로 나까지 피곤하게 만들지 말란 소리야.”
“…….”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나 봤자 불쾌하기만 할 것 같거든.”
“…….”
테오도르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브가 하는 말들이 모두 맞는 말이었다.
때문에 테오도르는 무엇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이브는…… 왜 이렇게 말도 잘하는 거지…….’
이브는 잘하는 게 참 많은데, 심지어 말까지 잘한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언제나 구구절절하게 옳은 말들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 여자 때문에 모은 거 아니야.”
테오도르는 소심하게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변명하듯 말했다.
“뭐, 그러겠지.”
이브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대체 그런 건 왜 모은 거야?”
“시간을…….”
테오도르는 부디 제가 미친놈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아니, 이미 그녀는 저를 미친놈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덜 미친 강아지로 보기를 바라며 간신히 입을 뗐다.
“시간을 돌리려고 했어.”
“뭐?”
예상치 못한 그 답변에 이브가 당혹스러워 두 눈을 끔뻑였다.
가늘게 좁혀 뜬 두 눈이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가늠하고자 했다.
“고대 사도들의 힘을 모으면 가능하다고 해서…….”
“시간을 돌려서 뭘 하려고?”
“그게, 너를…… 너를 알아보지 못한 그 새끼를 죽이고…… 너의 죽음을 막고…… 너한테 사과하려고…….”
“…….”
어렵게 꺼낸 고백에 이브가 정말로 자신을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아주 작게 입술이 달싹였는데, 그 입 모양이 꼭 ‘미친놈……’ 하고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테오도르는 슬퍼졌다.
솔직하게 말했는데도 그녀가 저를 미친놈처럼 보았다.
‘그렇다고 이브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잖아…….’
그래도 거짓말쟁이보다는 솔직한 미친놈이 조금이나마 덜 미움받지 않을까, 하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그 거울이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테오도르는 자신이 몇 차례 거울을 통해 시공을 이동해서 오딜리아와 만난 것과, 마지막에 테네브리스의 검은 기운이 거울에 닿았던 것을 설명했다.
“그럼 우리가 과거로 온 건가…….”
이브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지?”
“나도 잘 모르겠…….”
이때였다.
테오도르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거울이었다, 테네브리스의.
‘뭐야, 이게 왜 여기 있어?’
테오도르는 당황해 하며 그것을 주워 들었다.
“이게 그 거울이야?”
“응, 그렇지만 사용법은……. 어?”
그리고 거울 위의 검은 유리판에 자신의 얼굴을 비춘 순간.
테오도르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그 거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고대의 알브레히트가 멸망하고, 수많은 나라가 새로이 등장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놀란 이브는 테오도르의 팔을 붙잡은 채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조금 떨리고 있었으나, 그녀는 꼿꼿하게 선 채로 수많은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테오도르!”
그러다 이브가 문득 외쳤다.
테오도르는 그들이 현 알브레히트 제국이 세워진 시기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복색이 저희가 기억하는 것과 비슷했다.
테오도르는 천천히 시간의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발견했다.
헤르멜린다 황후, 테오도르의 친모이기도 한 여자를.
테오도르는 신기한 듯 여자를 쳐다보았다.
기억에 없는 어머니였다.
자신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던 것은, 어릴 적 보았던 초상화 덕이었다.
테오도르가 여자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자, 이브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어…… 내 어머니…….”
그의 답에 이브는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멜린다 황후는 부푼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용맹한 드래곤은…… 쿨럭, 쿨럭.”
헤르멜린다는 동화를 읽다 말고 잔기침을 했다.
“젠장. 레오브란테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거야?”
그녀는 우아하게 읽던 동화책을 집어치우고는, 사나운 목소리로 시녀에게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황후 폐하.”
시녀는 절절매며 답했다.
“그 망할 늙은이. 사람 하나 보내서 성력 좀 써 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헤르멜린다는 험악한 욕설을 내뱉었다.
테오도르의 안 좋은 인성은 그녀를 닮은 것 같았다.
얼마 뒤 의사가 찾아왔다.
“아직 신성력을 나눠 줄 사람은 못 찾은 겁니까?”
그녀의 오래된 지병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아주 강한 신성력을 지닌 자들 중에서는 그 힘을 운용해 병을 낫게 하기도 했다.
하여 황제가 나서서 신전에 친히 부탁하기까지 했으나, 누구도 그녀에게 신성력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레오브란테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후 폐하, 감히 아뢰옵건대, 아기님을 포기하시는 게…….”
순간 헤르멜린다가 두 눈을 무섭게 희번덕거리며 의사를 위협했다.
“한 번만 더 네 입에서 포기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는 네 목숨을 포기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흐억……! 죄, 죄송합니다, 폐하.”
헤르멜린다의 고집에 의사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결국, 헤르멜린다는 테오도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아직 어미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어린 황자만이 빈 황후궁에 남아 울음을 터뜨렸다.
“…….”
테오도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장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브는 그런 테오도르를 힐끔 쳐다보더니,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다.
“아…….”
순간 테오도르가 당황하여 탄성을 터뜨렸다.
“이브, 왜…….”
“말했잖아. 나는 너랑 다르다고.”
이브는 테오도르를 돌아보지 않고 정면만 묵묵히 응시한 채로 대답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거 못해.”
“아, 이브…….”
“감동받지 마.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니까.”
“응, 응.”
테오도르는 두 뺨 위로 홍조를 띤 채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이브는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해 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테오도르는 걷고 뛰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황제로부터 선물받은 커다란 드래곤 인형을 들고서 황궁을 뛰어다녔다.
“아이고, 황자 전하. 조금만 천천히……!”
“어쩔 수 없어. 나는 뚜래고니까. 뚜래고가 천천히 나는 거 봤어?”
“하지만 지금 전하는 나는 게 아니라 달리고 있는 거잖아요?”
“너, 두래고 부레쓰를 맞고 싶은 건가?”
어린 테오도르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 흉내를 냈다.
테오도르는 조금 창피해져서 이브의 눈치를 살폈다.
그 장면을 쳐다보는 이브의 표정은 조금 심각했다.
“말도 안 돼……. 닮았을 리가…….”
그녀가 자그맣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테오도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그녀와 맞잡은 손을 힐긋 쳐다보았다.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저를 잡은 그녀의 손은 참 단단했다.
어렸을 적에 저를 잡아 주던 그 손이었다.
검을 잡은 탓에 굳은살이 박여 조금은 거칠고, 그렇지만 제 손에 쏘옥 들어서는 작고 귀여운 그 손이었다.
테오도르는 차마 제가 맞잡은 손에 힘을 줘도 되는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손에 힘을 뺀 채 약하게 떨고만 있었다.
손에 점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이브가 불쾌하다고 손을 떼 버리면 어떡하지.’
그는 아주 조금씩,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미하게 성력을 개방하여 땀을 식혀 맞잡은 손에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했다.
가슴이 뜨겁게 술렁거리던 때였다.
“아.”
이브가 손에 힘을 불끈 쥐며 탄성을 터뜨렸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어느덧 시간이 또 많이 흘러 있었다.
마르가라테 황후가 루돌프와 작당하여 에른스트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젠장, 에른스트를…….”
마르가라테 황후의 배는 아직 임신한 태도 나지 않을 만큼 납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배 속에 든 작은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테오도르의 손을 놓은 이브가 당장 검을 들고 뛰어나갈 태세를 취할 적이었다.
“안 돼, 이브!”
테오도르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가 화들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놓았다.
“왜 안 되는데?”
이브는 그가 제 손을 잡은 것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째서 안 되는지를 물었다.
“이쪽이랑 저쪽은 차원이 막혀 있어서 접근하기 힘들기도 하고…….”
“네가 테네브리스의 성물을 찾은 건,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라며.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렇긴 한데…….”
테오도르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과거를 건드리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그러니까…… 잘못 건드렸다가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그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는데도, 이브는 멈칫하며 표정을 굳혔다.
테오도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채 버린 탓이다.
그들이 건드리게 될 과거는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미래가 바뀌게 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들의 운명이 뒤틀릴 것이다.
어쩌면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없는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았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과거가 이렇게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에르빈과 오딜리아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정만큼 괴로운 것은 없었다.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이었으니까.
“…….”
이브가 망연자실 서 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황궁에 찾아온 어린 이브가 에른스트와 함께 황후궁 후원을 뛰놀았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커다란 나무 위에서, 이브는 테오도르와 만났다.
“아……! 이브! 너랑 내가……!”
이에 감격한 테오도르가 잠시 주제를 잊고 반색할 때였다.
“내 머리 위에 저런 시체 같은 사람들을 숨겨 두고 있던 거야?”
이브가 질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아니, 저 사람들이 아까 나를 죽이려고…….”
테오도르는 조금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하였으나, 이브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어린 테오도르와 어린 이브의 사이좋던 순간들이 지나갔다.
테오도르는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기뻤는데, 이브는 그저 무표정하였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테오도르는 저 그리운 장면들을 보고도 기쁜 내색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체르니시아가 몰락하는 순간이 닥칠 적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린 이브가 불타는 체르니시아 저택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
테오도르는 이브의 눈치를 힐끔 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두 눈을 찌푸리며 테오도르를 돌아보았다.
마치 ‘뭐냐?’ 하고 묻는 듯한 표정에 테오도르는 재빨리 그 손을 놓았다.
“아, 미, 미안. 실수로…….”
사실은 저도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건데…….
왜 저는 위로에도 소질이 없어서…….
‘아니지. 소질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거지.’
테오도르는 곧바로 생각을 정정했다.
마르가라테 황후의 사람들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잘린 머리카락을 쳐다보는 그 허망한 표정은 테오도르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가 언제 또 저러한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한다.
테오도르는 제게 그녀를 위로할 자격이 없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