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2_5
“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에르랑 리아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이브, 나는…… 나는…….”
그녀의 물음에 테오도르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제 자신이 이처럼 언변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테오도르는 처음 알았다.
그녀는 더 이상 재고의 여지 없는 목소리로 제게 물었다.
네가 에르랑 리아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내가 믿겠냐고.
아니야.
정말 아니야, 이브.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에르와 리아에게 그래.
정말, 정말 아니야…….
테오도르는 변명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저지른 일들이 있었기에, 그 말이 어떤 변호도 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제는 무슨 말로도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내가 착해지면…….”
“네가 착해지는 것도 결국 내 앞에서 보이는 모습뿐이잖아.”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네 기억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진 거라고 생각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까지와 달리 따뜻하고 상냥했다.
마치 기억을 잃기 전의 그를 대하듯.
그래서 테오도르는 더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차갑게 제게 쏘아붙였더라면…….
“낙마하면서 그 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생각하려고.”
그녀의 사랑은 이제 그녀의 안에서 죽은 사랑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미안해, 이브. 내가, 내가 정말 미안해…….”
절망이 그를 덮쳤다.
“내가, 내가…….”
“그래, 용서할게.”
피식, 쓸쓸하게 웃으며 이브가 말했다.
“이브……?”
놀란 테오도르가 헐떡이던 숨을 가다듬는 찰나.
“그런데 사랑은 못 하겠어.”
그녀는 조금은 서글픈 목소리로 덧붙였다.
용서는 해도, 사랑은 할 수 없다고.
“나도 알아. 그런 사고가 일어난다는 게 얼마나 희박한 일인지.”
“…….”
“평생에 한 번 있기도 어려운 사고니까. 그래, 아마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
“그런데 나는 여전히 무서워. 기억을 잃은 뒤에 네가 나한테 보였던 그 차가운 눈빛과 낯선 목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아.”
“…….”
“어쩌면 너를 볼 때마다 계속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지도 몰라.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사고를 걱정하며 내 감정을 불필요하게 소모하겠지.”
그녀의 말투는 꼭 상대를 설득하듯이 조곤조곤했다.
“그러니까, 우린 안 돼.”
테오도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망연자실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울지 마.”
“미, 미안…….”
그녀의 말에 테오도르가 퍼뜩 사과하며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이브가 그 모습을 잠잠히 응시하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어, 어……?”
“네가 우는 게 조금 속상해서 그래.”
“…….”
“너를 정말 많이 미워했는데,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나는 그게 조금 어려워.”
누군가를 평생토록 미워하고 저주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많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 누군가가 제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더욱 그러했다.
“미안…….”
테오도르는 울음을 참아 보고자, 아랫입술을 꾸욱 베어 물었다.
이브는 왜 이렇게 착하고 상냥한 거지.
저조차도 용서하기 힘든 제 자신을, 이렇게 용서하고…….
[그래, 용서할게. 그런데 사랑은 못 하겠어.]조금 전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동시에,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가슴이 찢겼다.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를 보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웠다.
이미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회한 이후로 쭉 알고 있었음에도, 날카로운 고통은 조금도 무뎌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느낄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깨달음이 한 가지 있었다.
저를 사랑하지 않는 그녀를 보는 게 이렇게나 아프고 괴로운데…….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무뎌질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이 아팠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테오도르는 더더욱 마음이 아파 왔다.
차마 그녀의 앞에서 울 염치가 없다는 사실에, 애써 울음을 참고자 다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그럼에도 차마 막지 못하고 새어 나온 울음소리가 애처로이 흘러나왔다.
이브는 서럽게 우는 테오도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테오도르 또한 벤야민과 카타리나에 의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그는 저를 아프게 한 사람이라서.
난도질당한 저의 마음은 온전히 그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너절하게 닳아 버린 탓에.
그래서 울고 있는 그를 달래 줄 수가 없었다.
“…….”
이브는 어깨를 들썩이는 테오도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히끅, 히끅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시간은 점점 더 지나 이브가 아르벨라에 자리 잡은 시기까지 흘러갔다.
‘그래도…… 이브가 힘들지 않게 생활해서 다행이야.’
테오도르는 빨개진 코를 훌쩍이며 그렇게 안심했다.
그러다 이브가 산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는 눈물마저 쏙 들어가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이브…….”
그녀가 아파하고 있었다.
“어, 어떡해, 네, 네가…….”
안절부절못하는 그에게 이브가 한마디 했다.
“테오도르, 정신 사나워.”
“미, 미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응애응애- 하는 귀여운 울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아…….”
아기들을 품에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이브의 모습에 테오도르가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에르와 리아야…….”
테오도르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신이 모르는 에르와 리아의 아기 시절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에르와 리아야.”
이브 또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벤야민을 불러 오딜리아의 머리 색을 숨겼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녀가 리아의 머리 색을 숨긴 이유가, 저를 닮은 검은 머리가 꼴 보기 싫었던 게 아니라…….
‘내 아이란 걸 들킬까 봐 그랬던 거구나.’
그녀는 제가 아기를 해칠까 봐 걱정하여 저를 떠났었으니까…….
미련한 제가, 그녀가 오해하도록 그런 말을 흘리는 바람에…….
[하찌만…… 하찌만……! 어몬니는 리아 머리카락 새까만 거 시러하신단 말야!]그렇게 외치며 울먹이던 오딜리아가 생각이 났다.
“이브.”
테오도르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리아가, 네가 자신의 검은 머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뭐……?”
“실은 지난번에 리아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거…… 리아가 어머니가 알면 안 된다고 울어서…….”
이브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리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덜컥, 마음이 안 좋아졌다.
처음 리아의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었을 때, 너무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아이를 다그쳤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리아는 저보다 더 많이 놀랐을 텐데…….
어른인 제가 놀라 하는 모습에, 아이는 얼마나 더 많이 놀랐을까…….
“내 실수야.”
이브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의 눈물 앞에서도 엄격하게 훈육하던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러고 나면 늘 마음이 아파서 혼자 훌쩍일 때가 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눈물을 뽑아낼 데가 어디 있다고…….
아이들이 우는 것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팠다.
“가서 달래 주면 되잖아.”
테오도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그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딜리아가 그걸 감춰야 했던 건…… 저 때문이니까.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리아가 운 거야.’
결국 모든 죄는 다 저의 몫이었다.
‘이브가 슬퍼하는 것도, 리아가 운 것도…… 다 나 때문이야.’
테오도르는 그녀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이 아주 작은 점처럼 작아져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정말…… 개만도 못한 새끼야.’
그사이, 어느덧 시간의 끝에 다다랐다.
* * *
한편,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테오도르에게 잔뜩 토라져서 함정을 더 깊게 파는 중이었다.
“나쁜 아조씨!”
“아조씨 혼내 조야 해!”
“다랑지, 너도 함종 같이 만두러.”
에르빈과 오딜리아와 제리코는 셋이서 사이좋게 함정을 팠다.
더 많이, 더 깊게.
‘대체 이딴 허술한 함정에 누가 걸린다는 거지.’
제리코는 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열심히 몸을 움직여 밤송이들을 주워 왔다.
왜냐하면…….
‘그나저나 통로를 열 수 있었다니. 정말 보통 여자애가 아니었어.’
그의 시선이 오딜리아에게 닿았다.
작고 귀여운 외양과 달리, 굉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괜히 심기를 거슬렀다가 꼬리가 세 개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오딜리아가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찌, 에르. 우리가 나뿌게 함종 파서 아조씨가 그냥 가 버린 거 아냐?”
“우, 웅……?”
여기저기 구덩이를 파던 에르빈이 그 말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처음 마주칠 때부터 저만 보면 멍청한 표정으로 두 뺨을 발그레 붉히던 테오도르가, 저의 애교에도 굴하지 않고 그냥 가 버렸다.
“구롬 어떡하지…….”
에르빈이 오딜리아를 따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조씨 이제 에르 안 죠아해…….”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기가 막히게 구분하곤 했다.
테오도르는 분명 저희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제는 저희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조씨가 리아랑 에르가 나뿌게 함종 판 거 다 알아 버린 고야.”
아이들은 울적해져서 함정을 파던 것도 그만두고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어……?”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제리코도 아이들을 따라 함께 몸을 숨겼다.
“누구지? 지지 아조씬가?”
“쉿, 에르! 아조씨가 우리 목소리 들으면 어케!”
“합……!”
에르빈은 재빨리 양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숨을 홉 참으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 * *
테오도르와 이보네는 시공의 끝에 다다라 ‘통로’에 들어섰다.
테네브리스의 기억과 동화된 이제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은 ‘통로’였다.
“통로를 지나면 원래 있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테오도르는 이브에게 설명했다.
묵묵히 그 설명을 들으며 걷던 이브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근데, 저건 뭐야?”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음……?”
지난번에는 없던 수상하고 어설픈 함정들이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던 테오도르는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자그마한 인영들을 발견했다.
작은 아이 둘과 다람쥐 한 마리였다.
“구론데 리아, 아조씨가 함종 걸려서 아야 하면 어케?”
“아야 하고 울면 그때 나타나서 혼내 조야지. 왜 우리 오몬니 화나게 만드냐구.”
“아조씨가 아야 하고 안 울면 어케?”
자그맣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이곳까지 다 들렸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 수상하고 어설픈 함정들은…….
‘나를 노리고 만든 건가?’
테오도르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어 아이들이 만든 귀여운 함정을 쳐다보았다.
누구도 당하지 않을 만큼 야트막한 크기에 뾰족뾰족한 밤송이가 노골적으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따가운 밤송이와 나뭇가지를 주워 왔을 아이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함정이었다.
‘내가 함정에 걸리지 않으면…… 에르와 리아가 실망할 거야.’
테오도르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이거 에르랑 리아가…….”
“쉿.”
황당한 표정을 짓는 이브를 돌아보며, 테오도르가 제 입술 위로 손가락을 얹어 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주었다.
“……?”
이에 이브가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테오도르는 부러 바스락거리는 발소리를 내었다.
저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인영들이 바짝 굳으며 긴장하는 게 보였다.
테오도르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어리었다.
그는 아이들이 만든 자그마한 함정을 힐긋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쪽 발을 들어 함정을 코옥 밟았다.
듬성듬성 덮여 있던 나뭇잎 아래로 발이 쑥 빠졌다.
“으윽…….”
괴로운 신음을 덧붙이는 것은 덤이었다.
“누가 이런 함정을…….”
테오도르는 함정 속에서 발을 휘휘 저으며, 더 많은 밤송이가 신발에 달라붙도록 하였다.
“어? 방금 지지 아조씨 소리 들려써!”
“아조씨 함종 걸린 거야?”
아이들은 나무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어?”
아이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어모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보네를 발견한 것이다.
“어모니이! 보고 싶었어요!”
“어몬니 갠차나요?”
“어모니 개물 다 죽였어요?”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이보네를 향해 오도도 뛰어왔다.
이보네가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 주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에르, 리아.”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쁜지, 그녀의 두 팔에 매달려 재잘재잘 떠들었다.
테오도르는 오른발에 밤송이가 붙은 채로 멀찍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 탓일까.
유독 더 가슴이 뭉클하고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둘 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어모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저씨를 괴롭히려고 무서운 함정을 파 둔 건 아니고?”
“녜, 녜……?”
순간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뜨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구, 구게 아니라…….”
“에, 에르랑 리아는…….”
아이들은 ‘어모니가 그걸 어케 알았찌?’ 하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렸다.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향해 이브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 나쁜 짓이야.”
“아, 아조씨가 어몬니 화나게 만드러서…….”
“구래서 에르랑 리아는 어모니 복수 해 주려고…….”
더듬더듬 변명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에르, 검을 배울 때 어머니와 약속했지? 체르니시아의 가호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는 거라고.”
“자, 잘몬해써요, 어모니…….”
에르빈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에르를 데리고 온 건, 리아가 한 거니? 함정을 만든 거 리아의 생각인 것 같은데, 맞지?”
“리, 리아도 잘몬해써요, 어몬니…….”
오딜리아의 얼굴도 울상이 되었다.
“으힉, 자, 잘못했습니다…….”
오딜리아의 등에 매달려 있던 제리코도 덩달아 기가 죽었다.
“내가 아닌 아저씨에게 사과해야지.”
이브가 뒤편에 서 있는 테오도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침울해진 얼굴로 테오도르에게 다가갔다.
“어……? 나, 난 괜찮아.”
테오도르가 재빨리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테오도르.”
그러자 이번에는 이브의 엄한 목소리가 그에게 향했다.
“잘못을 감싸 주는 건 교육에 전혀 도움이 안 돼.”
“아…….”
안타깝게도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테오도르의 귀에는 ‘도움이 안 돼’라는 말만 박혔다.
테오도르의 얼굴 또한 침울해졌다.
“잘몬해씀미다, 아조씨.”
“리아랑 에르가 잘몬해써요.”
“밤송이 때문에 아푸지요? 리아가 밤송이 떼 드릴게요.”
“에르가 아푸지 말라고 치료해 드릴게요.”
아이들은 테오도르의 신발에 붙어 있는 밤송이를 떼어 주고, 호- 하고 아프지 말라고 입김도 불어 주었다.
테오도르는 아이들이 하는 양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럴 적에 그의 얼굴은 조금 전의 침울함을 잊고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제 신발을 털어 주는 단풍잎처럼 자그마한 두 손이 너무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테오도르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이브에게 달려갔다.
“어모니, 아조씨한테 잘몬해씀미다 했어요.”
“이제 리아랑 에르랑 나쁜 어린이 안 할 거예요.”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양손을 배꼽 위로 모으고서 이브의 눈치를 힐끔 봤다.
그러자 이브가 아이들을 향해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고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했어, 에르, 리아. 앞으로는 화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돼. 알겠지?”
“녜, 녜……! 이제 안 구러 꼬에요!”
“리아랑 에르랑 이제 착한 어린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누그러진 것을 알아차린 아이들이 재빨리 그 품에 안기며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어몬니, 리아랑 같이 나가요. 리아가 나가는 길 알아요.”
“웅, 웅! 리아는 마봅사예요!”
“어머, 정말?”
“어모니, 이고 비밀인데…… 리아가 두래고보다 더 머싯써요!”
에르빈이 비밀이라며 이브의 귀에 속닥거린 말에 오딜리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금세 기운을 차린 아이들의 모습에 이브가 짧은 웃음을 흘렸다.
몸을 일으킨 그녀가 테오도르를 힐긋 돌아보았다.
“아이들을 데려다준 뒤에 황궁으로 바로 갈게.”
“어, 응…….”
테오도르는 멀거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모니 또 황궁 가야 해요?”
“히잉……. 리아는 어몬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아이들은 이브의 양팔에 매달려서 그녀와 함께 떠났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혼자 멀뚱히 서 있는 테오도르가 신경이 쓰였다.
‘에르랑 리아가 아조씨를 너무 아푸게 했나?’
‘아조씨, 함종 걸려서 속상한 거 같아…….’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이브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순간.
테오도르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나, 나는……! 나는……! 나도 데려가……!”
덩그러니 남겨진 제리코가 자신을 두고 떠나는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망할 꼬맹이들! 이 배은망덕한 것들! 그간 놀아 주고 돌봐 줬더니, 은혜를 모르고 이 제리코 님을 버리고 가다니!”
이보네가 나타나자마자 그녀에게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그를 남겨 두고 가 버린 것이다.
그가 씩씩거리며 외치던 때였다.
“으, 으익……?”
덜렁- 그의 꼬리가 높이 들렸다.
“……”
테오도르가 수상하게 생긴 다람쥐를 빤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