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2_2
시종이 다가와 에른스트의 공부 시간을 알렸다.
에른스트는 정말 가기 싫다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나는 산책 좀 하다 갈게.”
“지난번처럼 또 길을 잃으면 어떡해?”
에른스트의 걱정에 조금 미안해졌다.
지난번 숨바꼭질을 하다가 사라진 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에른스트와 노는 게 귀찮아서 숨은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에른스트가 더 크게 울 게 뻔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산책하는 건 위험하단 말야!”
결국 나는 에른스트가 붙여 준 황후궁의 시녀들과 함께 산책을 해야 했다.
그녀들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왔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종종거리며 후원을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그 애를 다시 발견했다.
“어? 너, 너는……?”
짙은 밤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이 나의 외침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놀라 허겁지겁 그 애에게 달려갔다.
그 애는 창백한 안색으로 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너, 너……! 괜찮아?”
“아…….”
눈이 마주친 그 애가 나를 보며 흐리게 웃었다.
“안녕.”
입술을 달싹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지, 그 애가 눈가를 찡그렸다.
콜록, 콜록.
그 애가 내 시선을 피해 마른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오한이 든 사람처럼 몸을 웅크리며 파들파들 떨었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괜찮아, 그냥 감기, 콜록. 그보다 잘 지냈…… 콜록콜록.”
“지금 이렇게 인사를 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버럭 외치며 그 애를 일으켰다.
“어서 의사에게 가자!”
황후궁으로 데려가려는 내 팔을, 그 애가 덥석 붙잡았다.
“황후궁은…… 가기 싫어. 1황자궁으로 가자.”
멈칫.
언젠가 언니들이 해 주었던 말이 다시금 귓가에 메아리쳤다.
[황궁에 가면 테오도르 1황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하지만 그건…… 다 헛소문이랬잖아.’
언니들이 내게 전해 준 건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들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1황자궁에서 직접 일하며 그 소문이 거짓이라 부정해 준 증인이 있었다.
계속 망설이기에는 그 애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 네가 편한 곳으로 가자.”
나는 그 애를 부축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찍이서 뒤따르던 시녀들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이, 이보네 아가씨. 저, 저…….”
“왜 그래?”
“그, 그, 그…… 흐익!”
시녀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창백해진 얼굴로 도망가 버렸다.
‘왜 저러지? 1황자에 대한 소문들 때문에 그러는 건가?’
시녀들의 행동이 몹시 의아했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있는 그 애의 숨소리가 순간 멎을 듯 가늘어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내가 부축해 줄게.”
“고마워…….”
아픈 와중에도 나를 보며 힘겹게 웃는 그 애의 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나는 그 애를 부축해서 1황자궁까지 갔다.
막상 도착한 1황자궁은 소문처럼 으스스하지도, 마귀 성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여기가 정말 그 소문의 1황자궁이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이내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체했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모른 척하다니.’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어색하게 못 본 척을 하는 행태가 무척 괘씸했다.
그나마 죄책감은 느끼는 건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는 이들이 보였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다가와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네 방은 어디야?”
“으응, 저쪽…….”
“히이이익!”
이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홰액 돌렸다.
1황자궁의 사용인들이 보이는 한결같은 모습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그렇지만 공연히 나섰다가 1황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그저 한 번 노려보았다.
내 옷자락을 꼬옥 붙잡으며 어서 가자고 속삭이는 그 애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이, 이보네……!”
에른스트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자 공부하러 간다던 에른스트가 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에른스트?”
그런데 에른스트의 표정이 이상했다. 꼭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이보네를 돌려주세요!”
“……?”
황자인 에른스트가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에른스트가 마르가라테 황후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두 눈을 끔뻑이던 나는 이내 에른스트의 시선이 내가 아닌 내게 기대어 있는 남자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 제, 제가 부탁드릴 테니, 이, 이, 이보네는…….”
에른스트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에른스트가 고개를 푹 숙이며 애원하듯 말했다.
“부, 부탁이에요, 테오도르 형님.”
응? 잠깐만, 누구라고?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내게 기대어 있던 남자애를 쳐다보았다.
‘테, 테오도르 1황자라고? 이 애가?’
그 애는 입술을 꾸욱 다문 채 에른스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테오도르 1황자는 분명 검은 머리를 지녔다고…….’
에른스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1황자 전하……세요?”
어색하게 말끝을 올리며 묻자, 그 애가 나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나, 아파.”
내가 물은 것과 전혀 관계없는 답을 내놓으며 내 어깨에 머리통을 툭 기댔다.
“헉! 이, 이보네!”
그것을 본 에른스트가 울먹이며 발을 동동거렸다.
“제발 이보네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서도 겁 많은 에른스트는 차마 가까이 오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제가 물은 것에 먼저 대답해 주세요. 정말 1황자 전하인가요?”
“…….”
다시 묻는 내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애써 씩씩한 척하고 있었지만, 조금 무서웠다.
그러자 그 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보았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그 애의 입술은 꾹 다물려 있었다.
약간의 침묵 끝에, 이윽고 그 애의 입술이 열렸다.
“그게 중요해?”
“…….”
꼴깍.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애가 느릿하게 두 눈을 감았다 뜨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락-
짙은 밤색을 띠던 그 애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검은 빛깔로 물들어 갔다.
“……!”
정말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나는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보네!”
그 순간 에른스트가 내 손목을 낚아채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같이 도망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나는 남겨졌을 그 애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 * *
“그 애 앞에서 티 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차가운 목소리에 1황자궁의 사용인들은 제각기 사색이 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잘못했습니다, 전하!”
“죽을죄를 지었습…….”
“사, 살려 주십…….”
조금 전, 저도 모르게 테오도르를 발견하고 티 나게 괴상한 소리를 내었던 사용인이 바닥에 이마를 쿵쿵 찧으며 빌었다.
테오도르는 그를 스윽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홱 돌렸다.
뒤에서 살려 달라며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지금 테오도르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에른스트.
1년에 두어 번 마주칠까 말까 하던 이복동생 때문에 모두 망쳐 버렸다.
저를 보며 뒷걸음질 치던 그 애의 표정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이래서, 숨기려고 했던 건데…….”
어차피 제 정체를 계속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그 애가 마음을 열 때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귀찮게 됐네.”
테오도르는 조금 짜증이 났다.
* * *
그 후로 며칠이 더 지났다.
“이보네, 너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것 맞지?”
에른스트는 재차 물었다.
“테오도르 형님이 네게 해코지한 뒤에 입막음한 거라거나…….”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에른스트. 1황자님의 몸이 안 좋아서 부축해 드린 것뿐이야.”
나는 정말로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저 소문으로 듣던 검은 머리카락을 실제로 봐서 조금 놀란 것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은색은 불길하다고 배워 왔으니까.
그 바람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그대로 도망쳐 버린 것에 대해 뒤늦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뒤로 그 애를 만나지 못했고, 미묘한 죄책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럽게 남았다.
“정말 다행이야. 네게 큰일 생기기 전에 데리고 나올 수 있어서.”
에른스트의 과도한 반응에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에른스트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에른스트와 함께 황후궁으로 돌아오자, 안절부절못하던 시녀들이 나를 붙잡고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사람들은 1황자를 마치 나를 잡아먹는 마귀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과 내가 보았던 1황자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한동안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점점 1황자에 대한 생각을 잊어 갔다.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보네! 이보네, 어디 있어?”
저 아래에서 나를 찾는 에른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찮은 에른스트를 피해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참이었다.
에른스트는 물론 좋은 친구였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그 애와 놀아 주는 것은 너무나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즈음의 나는 그랜시 할머니가 말한 ‘미래’가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됐다.
황후궁의 시녀들이 숙덕거리던 것을 우연히 들은 것이 계기였다.
시녀들을 탈탈 털어 진실을 알게 된 나는 곧바로 에른스트를 찾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도 알고 있었어, 에른스트? 너와 내가 결혼을 할 거래!] [어, 음…….]그러나 에른스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두 눈만 데룩데룩 굴렸다.
[정말 끔찍해!]그러다 내가 이어 외친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왜 끔찍해……?] [당연하잖아?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나와 같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개할 것이라 여겼던 에른스트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너 설마……?]두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에른스트는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니야, 이보네!]나의 시선에 에른스트는 울먹이며 외쳤다.
[너,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나는…….]에른스트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며 울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에른스트는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했다.
에른스트가 나를 좋아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껄끄럽게 여겨졌다.
특히나 그 이후로 언뜻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발견하는 그 애의 홍조 띤 두 뺨이라든가…….
새빨개진 귓불이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나와 에른스트가 결혼이라니. 그건 너무 이상하잖아.’
그런 생각을 품으며 나뭇가지 위에 앉아 두 다리를 까딱일 때였다.
바스락-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눈앞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테오도르가 있었다.
“1황자 전하……!”
“쉿.”
놀라 소리치려는 내 입을, 그 애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막았다.
“에른스트한테 들키겠어.”
“헙!”
나는 숨을 꼴깍 삼키며 아래를 보았다.
다행히 에른스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조금 뒤, 더 이상 에른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
그러나 막상 입을 여니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몰라 망설일 적에, 테오도르가 불쑥 내게 물었다.
“이제 내가 싫어진 거야?”
그렇게 묻는 그의 얼굴이 퍽 속상해 보였다.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해.”
테오도르는 울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날 피할까 봐 그랬어. 내가 누구인지 알면 다들 떠났으니까.”
“아…….”
“미안해.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않을게.”
“아, 아니에요!”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돌아서려는 테오도르를, 나도 모르게 덥석 붙잡고 말았다.
“나, 난 그런 거짓 소문들 안 믿어요!”
그러자 테오도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말?”
“네, 정말…….”
나는 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너무 놀라서, 황자님일 거라곤 생각을 못 해서, 그래서 실례를 저질렀어요. 죄송해요.”
“그럼 내가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니야?”
“네, 절대,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내 대답에 그의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기쁘게 웃는 그 얼굴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숨을 헉 삼켜야 했다.
“그런데 그 머리카락은…….”
힐끔 쳐다보자,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그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마법이야. 내 머리 색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아버지가 페르디난트에 부탁해 마법을 심어 두었거든.”
담담하게 대답하는 말씨에 나는 왠지 가슴이 시큰해졌다.
어린 날, 나를 볼 때마다 화를 내던 친부가 생각난 탓이다.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던 체르니시아의 후계자가 술에 취해 체르니시아령의 작부를 부인으로 착각하고 하룻밤을 보냈다가 덜컥 생긴 아이.
그게 나였다.
만일 어린 시절의 내가 검기를 발현하지 않았더라면, 친부가 나를 거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는 자주 콜록거리고 자주 아팠다.
그렇지만 돈이 없어 제때 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치료는커녕 매일같이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죄송해요, 콜록…… 몸이 나을 때까지만, 콜록…….] [빚을 못 갚겠으면 딸년이라도 내놓든가.]연약한 여자와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데에도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퍽 온순한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나는 버럭 외치며 남자들을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우연히 집어 던진 포크가 푸른빛을 내며 반대편 벽면에 꽂힌 것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쩌저적, 쩌적.
포크가 꽂힌 벽면 주위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콰앙! 소리를 내며 벽이 무너졌다.
[히이이익!] [거, 검기……!]남자들은 마치 유령을 본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후다닥 달아나 버렸다.
[세상에, 이, 이브……?]그리고 그것은 나의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길로 나를 데리고 으리으리한 저택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은발에 녹안을 지닌 남자가 둘이나 있었다.
[오스발트 님의 아이입니다. 부디 아이를 받아 주세요.]엄마의 말에 둘 중 조금 더 젊은 남자가 발끈했다.
[내 아이라니, 무슨 소리! 그럴 리가……!] [가만있어라, 오스발트.]그러나 늙은 남자가 그를 제지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정말로 이 아이가 검기를 썼다고?] [네, 포크를 던졌는데 푸른빛을 내며 날아가 벽면을 무너뜨렸어요.]늙은 남자는 사람을 시켜 진상을 확인하라 일렀다.
그리고 조금 뒤, 수하의 보고를 받은 그는 나의 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확실하다. 체르니시아의 아이군.]엄마는 늙은 남자에게 돈을 받아 뒤도 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내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늙은 남자가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보네 체르니시아, 그것이 앞으로 네 이름이란다.]늙은 남자는 나를 위로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네 할애비다. 그냥 편하게 군터 할아버지라고 부르렴.]군터 할아버지는 체르니시아의 역대 주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이처럼 빠르게 검기를 체득한 이가 없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체르니시아에는 검기를 체득한 자는 열 살이 될 때까지 영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가풍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친부와 단둘이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그와 둘이서 보낸 시간들은 내게 썩 즐겁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내가 아홉 살 무렵의 일이었다.
[에휴.]나는 손목에 난 상처를 보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얼마 전 친부가 남긴 것이었다.
이따금 죽은 부인이 생각나는 날이면, 친부는 나의 존재를 못 견디게 혐오스러워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뒤에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았지만.
[이보네 아가씨? 그 상처는 뭡니까?] [앗,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긴요? 이리 줘 보십시오.]영지의 성을 관리하던 집사가 결국 손등의 상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는 친부가 아닌 군터 할아버지의 사람이었다.
집사는 곧바로 군터 할아버지에게 나의 학대 정황을 일러바쳤고, 진상을 파악한 군터 할아버지는 친부를 가문 밖으로 쫓아냈다.
약한 이를 돌보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체르니시아 가풍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하구나, 아가. 이제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내가 지켜 주마.]나는 군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수도의 체르니시아 저택에 발을 디뎠다.
내게 제대로 된 동성의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군터 할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후처를 들였다.
그랜시 할머니는 체르니시아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으나, 어찌 됐든 나를 살뜰히 챙겼다.
그랜시 할머니와 나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랜시 할머니는 내 몸에 남은 상처를 치료해 주고자 의사들을 불렀다. 자잘한 상처들은 모두 치유가 되었으나 손목의 상처만이 그러지 못했다.
[이건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처입니다.]마치 뜨거운 것에 덴 것 같은 그 상처는 검기가 스쳐 간 자리였다.
[강한 신성력으로만 치유할 수 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