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6_1
05. 이브 로웰린의 죽음
테오도르 황제와 카타리나 페르디난트의 약혼식 당일 아침이었다.
황제의 약혼녀를 호위하기 위한 황궁 기사단이 페르디난트가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사들은 이날만을 기다린 듯 화려하게 꾸민 카타리나를 황금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그들이 약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돌연 자객들이 난입했다.
“누구냐!”
“젠장, 카타리나 양. 절대 이곳에서 나오지 말고 계십시오.”
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챙강-!
여기저기서 쇠붙이들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의 기사들은 자객들에게 맞서 황제의 약혼녀를 지키고자 하였다.
이때, 카타리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자, 카타리나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마차 밖으로 기어 나와 자객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자객 하나가 카타리나를 향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가 기겁하는 사이, 이브 로웰린이 재빨리 그쪽을 향해 뛰었다.
쇄애액-!
자객의 검이 그대로 이브 로웰린의 몸을 베어 냈다. 이브 로웰린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안 돼! 이브 경!”
동료 중 하나가 그쪽으로 뛰어가 그녀를 벤 자객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이에 놀란 자객들이 우수수 도망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깊은 자상을 입은 이브 로웰린은 동료의 품에 안겨 피를 쿨럭였다.
“콜록, 콜록.”
“이브 경, 괜찮은가? 이브 경……!”
“제 책상 오른편 서랍에 유서가 있습니다. 그걸 꼭…….”
그녀는 마지막 유언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완벽한 죽음이었다.
* * *
테오도르는 약혼식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단장을 했다.
되지도 않는 연극 놀이에 이런 귀찮은 짓거리까지 해야 하는 게 퍽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이브 로웰린이 함께 올 것이라 생각하자 평소보다 힘 주어 꾸미게 되었다.
어젯밤 이브에게 얻어맞은 곳이 얼얼했다.
“그 미친 여자,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쳤어.”
제 머리통을 깨부수기라도 할 참이었던지, 흰 베개 위에는 옅은 핏자국마저 남아 있었다.
테오도르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오늘 약혼식이 끝나기만 하면, 불러서 가만두지 않을 참이다.
“설마 정말로 페르디난트의 사주를 받아 내 목숨을 노린 건 아니겠지…….”
그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
그녀를 떠올리자 자그마한 웃음이 입가에 흘러나왔다.
어젯밤엔 대체 무슨 조화였던 걸까.
한순간, 그녀만 옆에 있으면 괜찮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사납게 몰아붙이는 저를 향해 흐드러져라 웃던 그 얼굴 때문에.
부드러이 휘던 눈매와 살랑살랑 흔들리던 촘촘한 속눈썹, 입가에 매달린 아름다운 함박웃음…….
그래, 그 예쁜 웃음 때문에 한순간 미쳐 버린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저는 지금까지도 미쳐 있는 것 같다.
이것 보아라.
지금도 그 여자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린 채 실실 웃고 있지 않은가.
테오도르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입가를 더듬었다.
기실, 그는 아침부터 내내 웃고 있었다.
시종들은 그가 오늘의 약혼식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 웃는 것이라 여겼으나, 실상은 이브 로웰린을 떠올리며 웃는 것이었다.
가만히 자신의 입가를 쓸어 보던 그는, 문득 어젯밤 이 입술이 그녀에게 뜨겁게 닿았던 것을 상기했다.
그 순간 가슴이 뜨겁게 들끓었다.
확실했다.
이건 결코 분노나 경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여전히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고, 스스로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테오도르는 어서 빨리 이보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낸 뒤, 카타리나와의 이 연극을 끝내고 싶었다.
그다음에 모든 것을 결정짓고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절대 그 여자를 벤야민 페르디난트에게 보낼 수 없었다.
어제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거짓이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제가 입을 맞추자, 제 목에 양팔을 두르며 강하게 입술을 엉켜 오던 그 뜨거운 체온이 아직도 제 살갗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나를 좋아하면서 아닌 척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요 며칠 불쾌했던 감정이 싸악 날아가고, 한껏 기분이 고양되었다.
“솔직히,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벤야민 페르디난트보다는 내가 훨씬 더 낫잖아.”
테오도르는 거울에 비친 잘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어제 제가 그녀를 향해 웃어 주자, 놀라 굳던 모습이 꼭 토끼 같았다.
아마도 제 웃는 얼굴에 큰 깨달음을 얻은 거겠지. 벤야민 페르디난트 같은 쭉정이를 좋아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저를 기절시키고 도망친 건…….
“뻔해. 부끄러움을 탄 거겠지.”
하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벌써부터 혼자 미래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걸 저한테 들키지 않았나.
[만약 제가 폐하의 아이라고 가지게 되면 어떡하시려고.]아기라니. 참 앙큼하기도 하지.
제 아기를 갖고 싶었던 걸까?
“딸이든 아들이든 그 여자를 닮으면 좋겠군.”
테오도르는 아주 잠시 그녀를 닮을 아기를 떠올려 보았다.
그녀를 닮았다면 딸이든 아들이든 귀여울 것 같으니, 딸과 아들을 모두 낳아도 좋을 것 같았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어려우니, 쌍둥이를 낳으면 딱 좋겠어.”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 손으로 거두어야겠지.]그녀의 물음에 잠시간 고민하였으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답이 나온 탓이다.
물론 아기라는 게 황새가 물어다 주어 뿅 하고 생기는 것은 아니니, 갑자기 그녀가 제 아기를 가질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만일 그녀가 제 아기를 갖게 된다면, 응당 제 손으로 거두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그녀도, 그녀의 아기도.
딱히 그녀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여자가 너무 티 나게 자신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이 관대한 알브레히트의 주인께서는 넓은 아량을 베풀어 그녀를 거두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 여자에게 이 중대한 결심을 이야기하면…… 좋아할까?
“분명 좋아할 거야.”
테오도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스스로를 향해 자답했다.
“나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여자니까.”
거울을 보며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이 퍽 미친 사람 같았다.
“폐하, 폐하……!”
테오도르의 혼잣말을 끊어 낸 것은 그를 부르는 다급한 외침이었다.
지금쯤 카타리나를 에스코트하여 약혼식장으로 향했어야 할 기사 중 하나가 그의 방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폐하, 이, 이브 경이……!”
“그놈이 왜? 설마 또 사고라도 친 건가?”
테오도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나 속으로는 오늘 같은 날마저 사고를 치고 만 그녀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니, 잠깐. 귀엽다니. 내가 미쳤나?’
퍼뜩 인상을 구기려던 테오도르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나오는 자신을 깨달았다.
‘아……. 그래, 맞아. 나는 미쳤었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쭉, 내내 미쳐 있었지. 그 여자 때문에.’
솔직해지자.
[그럼 저는요?]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노라, 그처럼 당당하게 말한 것과 달리 테오도르는 그 아무것도 아닌 여자에게 미쳐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녀가 제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을까.
그녀는 저를 오롯이 미치게 만드는 여자였다.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그녀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고…….
이따금씩은, 이보네마저…… 제게 가장 소중한 것마저 그녀로 인해 잊어버리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여자와 이런 짓도 해요?] [뭐 어때.]부러 담담하게 답했으나, 참 발칙한 질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여자와 그런 짓도 하냐고?
아니, 누구와도 그런 짓은 해 본 적 없었다. 입맞춤조차 처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위장 연애를 하기 위해 카타리나 페르디난트와 애정 행각을 보이긴 했지만, 그것은 모두 시늉이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그 여자의 머리카락이나 이마 따위에 입 맞추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정말로 입술이 닿은 적은 없었다.
그 여자의 목덜미에 남았던 붉은 흔적 또한 그 미친 여자가 스스로 제 살을 꼬집어 낸 것이었으며, 제 입가며 셔츠 깃 따위에 묻힌 여자의 화장품 흔적 또한 부러 보이기 위해 장난질을 해 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여자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감싸는 시늉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살이 닿는 게 싫어서 장갑을 벗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하늘 아래 떳떳했다.
이만큼이나 정조 있는 남자가 어디 있는가.
정조란 모름지기 좋아하는 이성과의 관계에서 순결을 지키는 일이라 들었다.
그렇다면 오직 그녀에게만 정조를 지킨 저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브 로웰린이…… 좋다.
어쩌면 저는 그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 많이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브 로웰린을 좋아한다.
그녀가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 또한 그녀를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저를 좋아하는 것보다 제가 그녀를 더 많이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저는 그녀와 달리 정조도 지켰고, 벤야민 페르디난트를 죽이고 싶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알브레히트의 황제 테오도르는, 이브 로웰린을 좋아한다.
그녀가 원한다면 제 머리통쯤이야 몇 번이고 깨부수어져도 기꺼울 정도로.
마침내 인정하고 나자 히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앞에 선 기사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테오도르는 타인에게 대체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눈치는 좋았다.
“왜 그러지?”
그의 물음에 기사가 울 듯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했다.
“……죽었습니다.”
기사는 침통한 목소리로 이어 설명했다.
“이브 로웰린 경이……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그만…….”
“…….”
순간 멍해진 테오도르가 들고 있던 것을 툭 떨어뜨렸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카타리나 양을 향한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브 경은 카타리나 양을 지키려다가…….”
주절주절 설명하는 말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여 그는 그녀의 죽음을 부정하며 물었다.
“그래서 이브 로웰린은, 지금 어디 있지?”
테오도르는 곧바로 말을 달렸다.
커다란 황금 마차 주변은 자객들의 습격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테오……!”
테오도르를 발견한 카타리나가 그에게 뛰어와 안기려 하였으나, 테오도르는 제게 달려드는 카타리나를 냅다 내동댕이쳤다.
“꺄아악!”
졸지에 바닥을 구른 카타리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테오도르의 관심은 오직 이브 로웰린뿐이었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죽은 이의 시신 주위로 애통한 표정을 한 기사들이 쭈욱 둘러싸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이브 로웰린의 시신을 허겁지겁 끌어안았다.
“이브 로웰린……?”
식어 버린 몸이 싸늘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함께 있었던 그녀가 짙은 피 냄새로 뒤덮여 있었다.
그 피 내음이 어찌나 지독한지 아무것도 맡을 수 없었다.
“정말 죽었……다고?”
시체를 보는 건 어릴 적부터 종종 있었던 일이다. 개중 몇몇은 테오도르, 그 자신의 손에 의해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늘 보아 온 것 중 하나였는데, 왜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테오도르는 제 가슴을 가득 메운 이 감정이 무엇을 닮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오래전, 체르니시아가 멸망하고 이보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꼭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한 절망감이 그를 잠식해 나갔다.
* * *
황제가 이브 로웰린의 시신을 끌어안고서 황궁으로 돌아왔다.
죽은 이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인해 그의 몸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폐하……!”
사용인들은 놀라 경악한 얼굴로 그를 보았으나, 테오도르는 누구도 따라오지 말라 짤막하게 명하고는 침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말도 안 돼. 네가 죽었을 리가 없어.”
그녀의 시신을 침대 위에 정갈하게 올려놓은 테오도르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황금색 빛무리가 그녀의 상처를 향해 천천히 번져 나갔다.
“조금만 기다려, 이브 로웰린. 내가 널…… 금방 치료해 줄 테니까…….”
그러나 깊은 자상은 아무리 성력을 쏟아부어도 치유가 되질 않았다.
피는 멈추었으나, 살이 아물지 않아 붉은 속살이 드러난 벌어진 상처가 그대로 남았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왜…….”
그가 오랫동안 단련했던 힘이었다.
본래는 이보네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길렀던 그 성력이, 그녀에게 전혀 들지 않았다.
더 강한 힘을 쏟아부으려 하자, 상흔에서부터 몸이 썩어 가기 시작했다.
“안 돼…….”
놀란 테오도르는 재빨리 그녀의 몸을 얼렸다.
“하…… 왜…….”
그녀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대체, 왜…….”
이브는 눈을 뜨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감긴 눈꺼풀 위, 그 촘촘한 은색의 속눈썹을 가만히 손으로 매만져 보았다. 차갑고 딱딱했다.
“이브…….”
테오도르는 그 시리도록 차가운 몸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서, 그녀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브…….”
소리 없는 흐느낌이 공기 중에 부유했다.
* * *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나는 벤야민과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지금쯤 모든 일이 끝났겠지.’
오늘 아침 카타리나를 호위하는 기사들 틈에 섞인 이브 로웰린은 가짜이다. 벤야민의 술법으로 만든 허수아비이다.
그날, 벤야민이 카타리나와 함께 황궁에 왔을 때, 나는 허수아비와 바꿔치기 당했다.
어제 잠깐 마지막으로 테오도르를 보고 싶어서 허수아비가 카타리나의 호위를 위해 황궁 밖으로 나온 틈을 타, 황궁에 갔다.
다행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인간 말종이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약혼식 하루 전날에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입을 맞추는 남자라니. 끔찍해.’
그가 기억을 잃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의 본모습도 알지 못한 채로 그의 사랑에 눈이 멀어 좋지 않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렇지만 지난 반년간 나의 반짝이던 사랑이 퇴색되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내가 사랑했던 테오도르와 기억을 잃은 개차반 테오도르를 분리하여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가만히 그의 체온이 닿았던 입술을 만져 보는데, 이때 갑자기 벤야민이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며 코를 킁킁거렸다.
“너한테서 황제의 냄새가 나.”
“응? 냄새?”
“응, 어젯밤부터…… 굉장히 짙은 냄새가…….”
나는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이고 킁킁거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테오도르도 그렇고 왜 자꾸 다들 나를 두고 냄새 타령을 하는 거지.’
속으로 꿍얼거릴 때였다.
벤야민이 불현듯 멈칫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놓았다.
“왜 그래?”
“그 미친 황제가…….”
벤야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벤야민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네 시체를 들고 갔어. 황궁으로.”
“뭐?”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내 시체를 가져갔다고? 대체 왜?’
문득 오래전의 소문이 떠올랐다.
[1황자궁에서는 밤마다 시체가 나온다더라. 테오도르 1황자는 시체를 가지고 노는 고대 어둠의 화신이라더라.]‘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아, 나는 팔뚝을 문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큰일이네.”
“왜, 왜?”
“허수아비의 지속 시간이 다 하면 황제가 눈치를 챌 수도 있어. 그 전에 빨리 그걸 땅에 묻어야 할 텐데…….”
맙소사, 이건 정말 큰일이다.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되는데?”
“3년.”
그러나 이어 흘러나온 벤야민의 답에 나는 안도했다.
아무리 테오도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지만, 설마 죽은 이의 시체를 3년 동안이나 들고 있겠는가.
게다가 비록 오늘의 약혼식은 망치고 말았겠지만, 그의 곁에는 카타리나가 있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카타리나의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그가 내 시체를 3년이나 가지고 있을 일도 없을 터이고, 그 덕에 나의 죽음이 거짓이라는 일이 밝혀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쯤 그 편지를 발견했으려나?’
나는 욕설이 난무하는 나의 유서를 떠올리며 잠잠히 차를 홀짝였다.
* * *
같은 시각.
테오도르는 이브의 숙소에 있던 물건을 모두 자신의 침실로 옮겨 왔다.
그리고 그 물건들 사이에서 이브가 제게 남긴 편지를 찾아냈다.
특히나 ‘만나서 X같았다’는 부분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봐서, 감정을 담아 꾹꾹 눌러쓴 게 틀림없다.
그럴 적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꾸욱 다물고 있었을 그녀를 떠올리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가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있는 이브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이브?”
그러나 이브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싸늘한 낯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테오도르는 그런 이브를 향해 물었다.
“아직도 나한테 화가 안 풀린 거야?”
당연하게도 죽은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주먹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싫어. 나한테 그딴 표정 짓지 마.”
그가 입술을 잘근 베어 물며 전전긍긍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돌연 벌떡 일어난 그가 자신의 서랍을 열어 언젠가 그녀에게서 빼앗아온 머리핀을 꺼냈다.
“화 풀어, 이브. 이거, 다시 돌려줄게.”
그가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왜 이걸 너한테 줬는지 알 것 같아.”
한쪽 무릎을 침대 위에 걸친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도 널 좋아했던 거지? 그렇지?”
생긋 눈꼬리를 휘며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분명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틀림없어. 널 보고 반해 버린 거야. 그래서 페르디난트에서 널 데려오고……. 그런데 왜 내게 말 안 했어? 내가 널 좋아했다고…….”
그러다 돌연 드는 생각에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설마, 벤야민 페르디난트 때문이야?”
그 남자를 떠올리는 순간, 거센 분노가 가슴 안에서 들끓었다.
저 모르게 그 남자와 밀회를 갖던 그녀가 생각이 나고, 그 남자의 냄새를 가득 묻히고 돌아오던 그녀가 또 생각이 났다.
“그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놈 때문에?”
그러나 그는 곧바로 진정했다.
“아니지, 아니야. 너는 날 좋아하잖아. 나도 널 좋아하고.”
그렇게 생각하자 차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우리는 서로 좋아했어. 벤야민 페르디난트 따위는 감히 끼어들 생각도 못 할 만큼. 그런데, 왜 너는…… 아…….”
문득 테오도르는 자신이 그녀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내게 무언가 말을 걸려고 했었지, 너는. 그게 혹시…….”
일말의 고민 없이 찢어서 버린 그녀의 편지가 생각이 났다. 끝내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 버렸으니, 다시 찾고자 하여도 찾을 수 없는 편지였다.
“내가 왜 그랬지…… 네가 전하려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테오도르는 서글피 중얼거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모았다.
그러나 짧아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떻게 해도 모아지질 않았다.
그 길고 반짝이던 머리카락을 무참히 잘라 낸 것은 바로 이 손이었다.
“…….”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테오도르의 얼굴이 고통스레 일그러졌다.
테오도르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결국 그는 들고 있던 머리핀을 놓치고 말았다.
챙그랑!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다니는 머리핀을 보자, 자신의 심장도 저렇게 나락으로 곤두박질쳐서 뒹구는 것 같았다.
이브는 여전히 자신을 보며 웃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침대 시트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황제가 며칠째 침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죽은 이브 로웰린의 주검과 함께.
그가 미쳤다는 소식이 돌았다.
그러나 황제의 기사들은 황제가 미친 것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원래 황제는 한 번도 정상인 적이 없었으므로.
다만 그들은 동료의 죽음에 슬퍼했다.
“이브 경의 시신을 가져와야 합니다.”
“맞아요, 이브 경을 땅에 묻어 줘야 해요.”
“불쌍한 이브 경……. 살아 있을 때도 폐하의 괴롭힘에 시달리더니, 죽어서도…….”
“대체 폐하는 왜 이브 경의 시신을…….”
“오래전에 그런 소문도 있었잖아요? 1황자 전하께서는 밤마다 시체들을 가지고 흑마법을…….”
“하지만 그건 그냥 소문이잖아?”
그들이 복도에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숙덕거리는 사이,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박, 자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