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7_2
“…….”
“리아, 화 마니 나써?”
“…….”
오딜리아가 끝끝내 대꾸해 주지 않자, 에르빈은 울상이 되었다.
“미아내, 리아. 화 푸로, 웅?”
에르빈이 오딜리아의 팔에 매달려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귀여운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에르가 다 잘몬태써(잘못했어).”
“…….”
“셰샤(세상)에서 쩰루 강한 고 다랑지 아냐. 두래고야!”
“…….”
“아니, 셰샤에서 쩰루 강한 고 리아야!”
“……셰샤에서 쩰루 강한 게 리아라구?”
그제야 오딜리아가 에르빈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에르빈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웅, 웅! 리아가 셰샤에서 쩰루 강해! 리아는 힘 숨긴 다랑지…… 아니, 두래고일찌도 몰라!”
얼핏 듣기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같았는데, 오딜리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에르빈을 따라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쟈! 리아 힘 쑴긴 뚜래고야! 뚜래고 브레쑤(드래곤 브레스)! 뿌우우!”
“멋있어, 리아! 두래고 부레쑤! 뿌우우우우!”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멀미도 하지 않는지 마차 안에서 과격하게 움직였다.
‘뿌우우’ 하는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짧은 두 팔로 드래곤의 날갯짓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얌전히 앉아서 가지 않으면 말들이 놀라 길을 헤맬 거고, 그럼 우리는 공연에 늦게 될 거야.”
결국 내게 한마디 들은 뒤에야 두 아이는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얌전히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로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 * *
우리를 태운 마차는 시가지의 광장에서 부드럽게 멈추었다.
활기찬 아르벨라의 시가지가 우리를 반겼다.
가판대에 꽂힌 형형색색의 솜사탕이 아이들의 시선을 앗아 갔다.
“어몬니, 리아는 쏨사따(솜사탕) 먹꼬 싶어요!”
“에르도요, 어모니.”
“그래, 여기서 로라랑 기다리고 있어.”
나는 아이들을 로라에게 맡기고 솜사탕을 사러 다녀왔다.
“평소보다 무장한 기사들이 많네.”
솜사탕이 준비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가판대의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말도 말아요. 얼마 전에 아르벨라 시가지에 마물이 나타나서 진압하느라 애를 먹었대요.”
“마물?”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그래도 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아르벨라 기사들만으로는 조금 벅차서 영주님이 용병을 알아보고 계시거든요.”
양손에 초코 맛과 딸기 맛 솜사탕을 각기 받아 들며 돌아섰다.
‘결국 아르벨라까지 마물이 나타났구나.’
얼마 전 벤야민이 해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호수 저택에도 경비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서 내 양손에 들린 솜사탕을 발견한 에르빈이 두 팔을 붕붕 흔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전쟁을 일으킨 알브레히트의 그 미친 황제가 가는 곳마다 승리를 해 버린다지.”
“케르벨의 국왕도 무릎을 꿇었다고…….”
테오도르의 연승 소식은 이곳 아르벨라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다.
“황제가 고대 어둠의 현신이라던데…….”
“눈이 돌아가서 시체를 안고 지냈대.”
“미친 황제가 고대 어둠의 성물을 모으고 있대.”
“전쟁을 벌인 이유도 고대 어둠의 성물을 강탈하려고…….”
이어진 말들에 귀가 쫑긋 섰다.
‘테오도르가 고대 어둠의 성물을 모으고 있다고?’
고대 어둠의 성물을 모으다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에 헛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테오도르를 무슨 마귀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록 그는 마귀 같은 인성의 소유자이지만, 정말 마귀는 아니었다.
그러니 어둠의 성물을 모은다는 것도 분명 헛소문일 것이다.
아마도…….
아마도……?
* * *
마치 어둠이 깃든 듯 새카만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약탈한 왕좌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스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테네브리스의 성물을 내놔.”
그의 발아래에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케르벨 왕국의 국왕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것은 왕국의 국보입니다. 절대 외지인에게 보이면 안 되는…….”
“…….”
위에서 굽어보는 남자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저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지는 시선에 케르벨의 국왕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테오도르의 눈매가 가느스름하게 좁혀졌다.
“그래?”
붉은 입술로 느슨한 호선을 그린 그가 퍽 관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네 목을 대신 받아 갈까?”
얼핏 오늘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묻는 듯한 여상한 말씨였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서 피어난 황금색 빛무리가 뾰족한 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히익!”
케르벨의 국왕은 놀라 얼어붙었다.
그는 저 성스럽게 생긴 황금빛의 검이 지난 전쟁 중 얼마나 끔찍한 학살을 벌였는지 알고 있었다.
“사, 살려…… 살려…….”
그러나 살려 달라는 애원에도, 테오도르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의 검이 목을 찌르기 직전에, 케르벨의 국왕이 다급히 외쳤다.
“바, 바치겠습니다! 테네브리스의 관을 바치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어 낸 테오도르의 두 눈이 나른하게 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케르벨 국왕의 신하들이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테오도르는 거침없는 손길로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을 꺼내 확인한 순간, 테오도르의 얼굴 위로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가짜였다.
4년 전, 서쪽 대륙과 전쟁을 시작한 테오도르는 발길이 닿는 곳들마다 테네브리스의 성물을 찾아내 강탈하였지만, 모두 가짜였다.
어렵사리 손에 넣은 물건들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손에 든 가짜 성물을 짜증스럽게 내던졌다.
챙강-!
케르벨 왕국 사람들은 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구는 성물을 보며 경악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국보를 이리 다루시면……!”
“왕국의 보물인데……!”
그러나 그들은 이내 무섭게 쳐다보는 테오도르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 * *
테오도르는 무료하게 혼자 걸었다.
참 싱거운 전쟁이었다.
테네브리스의 성물을 찾기 위해 시작한 전쟁은 가는 곳마다 그의 승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사이, 잘생긴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욱 흉흉해졌다.
테오도르가 보다 깊고 사나워진 차가운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던 때였다.
꾸르륵 꾸륵-
기분 나쁜 소리에 테오도르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의 뒤편으로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일렁였다.
테오도르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순간 그의 황금안에 번뜩이는 광채가 돌았다.
꾸웨에에에엑-!
그를 덮치듯 달려들던 마물들이 그 스산한 황금안과 마주친 순간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그쪽을 향해 힐긋 턱짓을 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만들어진 황금색 빛의 검이 달아나는 마물들의 몸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끼에에에엑-!
듣기 싫은 비명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터졌다.
테오도르는 마물들의 잔해를 무감각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별 같잖은 것들이 짜증 나게 하네.”
4년 전. 이브의 죽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 범람한 마물들은 전쟁을 나선 와중에 깨작깨작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몇 차례 토벌을 했더니, 이후로는 마물들 사이에 무슨 소문이라도 난 건지 테오도르와 눈만 마주치면 모두 달아나기 바빴다.
덕분에 상반된 두 가지 소문이 테오도르를 휩쌌다.
-마물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구원자!
손가락을 몇 번 까딱여 마물들을 쓸어버리는 그를 보며 구원자라 반기는 이들이 더러 있었고.
혹은…….
-마물들을 다스리는 고대 어둠의 현신!
마물들이 그를 보면 달아나는 이유가 바로 그가 마물들의 주인이기 때문이라며 숙덕이는 자들 또한 있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온갖 흉흉한 소문들에 휩싸였던 테오도르는 자신을 둘러싼 낭설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뺨에 튄 검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저조했다.
테네브리스의 흔적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실패했다.
이브를 살릴 단서를 찾아 서쪽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건만, 막상 마주하면 모두 가짜였다.
그리고 그 가짜를 두고 국보니 뭐니 하며 얼싸안는 멍청이들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폐하.”
이때 나타난 린든이 테오도르의 앞에 부복했다.
“말씀하신 대로 다음 목적지를 물색해 보았습니다.”
린든은 테오도르를 향해 지도를 내밀었다.
테오도르는 서늘한 시선을 내려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서쪽 대륙의 무수한 나라들 위에 붉은색으로 X 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미 테오도르의 군마가 짓밟고 지나간 곳들이었다.
테오도르는 아직 X 자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작은 나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칼리고르 왕국?”
“네, 폐하. 그곳 왕의 선조가 오래전에 케르벨 왕국으로부터 받은 보물이 있는데…….”
린든이 칼리고르 왕국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을 했다.
어찌나 작은 곳인지, 두 눈을 가늘게 좁혀 뜨며 보아야 그 위에 적힌 이름이 읽힐 정도였다.
한참 뒤, 테오도르의 입술이 열렸다.
“그래. 다음 목적지는 칼리고르 왕국으로 정한다.”
* * *
극장에서 를 보고 나오는 길,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무척 흥분해 있었다.
“다랑지가 셰샤(세상)을 구한다!”
“다람찌 용짜(용사) 젤리꼬!”
어느새 오딜리아도 다람쥐 용사 제리코의 팬이 되어, 에르빈과 한목소리로 외쳤다.
“다랑지가 두래고(드래곤)보다 더 쎄지?”
에르빈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오딜리아에게 물었다.
“웅웅! 다람찌가 셰샤에서 쩰루 쎄! 리아 두래고 말구 다람찌 할 꼬야!”
까르륵 터져 나오는 오딜리아의 웃음소리에 내 입가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오딜리아의 장래 희망이 드래곤에서 다람쥐로 바뀌겠는데…….’
문득 작은 걱정이 들었다.
지난가을, 벤야민이 선물해 준 동화책에서 드래곤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오딜리아는 한동안 드래곤이 되고 싶다며 괴이한 소리를 내며 복도를 뛰어다녔다.
무얼 하느냐고 묻자, 천진한 목소리로 드래곤 브레스를 뿜는 중이니 어머니도 어서 피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에르빈의 장래 희망은…… 드래곤의 친구인 요정 공주였지.’
에르빈은 요정 공주가 되고 싶다며 오딜리아의 원피스를 입고 정원을 누비며 꽃잎을 뜯어 먹었다.
다람쥐 용사 제리코의 활약상을 떠들며 두 눈을 반짝이는 에르빈과 오딜리아를 보자, 왠지 불안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람쥐는 드래곤처럼 괴상한 소리도 내지 않고 날갯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드래곤이나 요정 공주보다는 저택이 평화로울 거야.’
오딜리아는 에르빈의 품에 안겨 있는 다람쥐 인형을 쳐다보았다.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이 다람쥐 인형에게로 향했다.
“에르, 리아도 젤리꼬 안아 보면 안 대?”
“우우움…….”
“한 번만, 웅?”
에르빈은 눈썹을 찌푸리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을 때였다.
“어? 호수 저택의 마녀…… 헙!”
지나가던 남자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아르벨라 영지의 기사인 듯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
남자는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게 뭐라 하든 상관없었지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삿대질을 하는 건 참기 힘들었다.
천사처럼 착한 우리 아이들이 부디 테오도르의 인성을 닮지 않길 바라며 그동안 열심히 교육을 해 왔는데, 저 무례한 짓거리를 보고 배우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나는 로라에게 아이들을 맡긴 뒤, 남자의 멱살을 끌고 구석진 곳으로 갔다.
남자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는 다급히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말이 헛나왔어요!”
“누가 죽인대?”
“죽일 것처럼 쳐다보고 있잖아요, 지금.”
“입조심해.”
싸늘하게 일갈하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너, 아르벨라의 기사야?”
“네, 넵!”
마침 아르벨라의 기사단을 찾아가 알아볼 것이 있었는데,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최근 아르벨라에 마물이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이때였다.
쿵-!
아이들을 두고 온 광장 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꺄아악!”
“마, 마물이……!”
“다들 도망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뭐지?’
그러자 저 멀리, 시커먼 무언가가 보였다.
* * *
이보네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사라진 직후.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로라와 함께 광장에서 이보네를 기다렸다.
“아까 젤리꼬가 두래고 무찌를 때 말야. 지쨔(진짜) 멋있었지?”
“웅웅, 지쨔 멋있어! 리아는 커서 다람찌가 되구 싶어.”
“데릭에게 두런는데(들었는데), 도또리 천 개 모으면 다랑지 될 수 있대.”
“지쨔?”
“웅, 지쨔!”
“구, 구럼 우리 도또리 주우러 가자!”
“안 대. 도또리 주우려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해.”
“히잉…….”
오딜리아의 눈꼬리가 축 늘어졌다.
“리아 도또리 주우러 가고 씨뿐데…….”
“리아, 젤리꼬 안아 볼래?”
오딜리아가 울적해하자, 에르빈이 내내 품에 꼬옥 안고 있던 다람쥐 인형을 들어 보였다.
“젤리꼬?”
“웅, 대신 눈물 뚝!”
에르빈은 어머니가 저희를 달랠 때 종종 그러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웅! 뚝!”
오딜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막상 오딜리아에게 다람쥐 인형을 건네려는 에르빈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지금 오딜리아를 달래기 위해 제리코 인형을 건네주면, 분명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에르빈은 직감적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에르빈이 다람쥐 인형을 건네주다 말고 굳어 있자, 오딜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에르, 젤리꼬 안 줘?”
“쟈, 쟈깜만…….(자, 잠깐만…….)”
망설이던 에르빈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부우욱-!
그러더니 헝겊으로 만들어진 다람쥐 인형의 앞발에 접착제로 붙어 있는 장난감 단검을 뜯었다.
그러고는 단검을 제가 갖고 인형만 오딜리아에게 건넸다.
“요, 요기…….”
“꺄아! 쩰리꼬 기여워!”
오딜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다람쥐 인형에 제 뺨을 비비적거릴 때였다.
쿵-!
강한 진동 소리에 두 아이는 토끼 눈이 되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로라였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본 로라의 눈동자에 공포가 깃들었다.
“세상에……!”
로라는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에르빈 도련님! 오딜리아 아가씨! 어서 도망가야 해요!”
말을 끝맺기도 전에, 로라는 에르빈과 오딜리아의 손을 양손으로 각각 붙잡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왜, 왜 구래, 로라?”
“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마물이 쿵, 쿵 소리를 내며 광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공포스러운 소리에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자그마한 입술을 앙다문 채 함께 뛰었다.
그러다가 그만 마물을 피해 달아나는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
“아얏!”
그 바람에 오딜리아가 들고 있던 다람쥐 인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안 대! 젤리꼬! 에르가 리아 준 곤데!”
오딜리아는 황급히 다람쥐 인형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함께 도망치던 인파에 휩쓸려 로라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로라……!”
오딜리아는 그대로 딱딱한 돌바닥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으으…….”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오딜리아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커다랗고 흉측하게 생긴 검은 마물이 그녀를 쳐다보며 입을 찢고 있었다. 마치 웃는 것처럼.
“안 대, 리아……!”
“오딜리아 아가씨!”
로라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에르빈이 그녀의 손을 홱 놓았다.
“에르가 리아 지켜 조야 해!”
“에르빈 도련님! 오…… 맙소사, 안 돼요!”
에르빈은 로라가 붙잡을 새도 없이 뛰쳐나갔다.
“이 몬샌기고 멍총한 개물(괴물)!”
에르빈이 오딜리아의 앞을 막아서며, 마물을 향해 소리쳤다.
“리아 개로피지(괴롭히지) 마!”
오딜리아를 향해 입꼬리를 찢으며 웃고 있던 마물이 텅 빈 동공을 스르륵 움직여 에르빈을 보았다.
마물의 관심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애석하게도 에르빈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거라곤 제리코의 장난감 단검뿐.
그러나 마물과 눈이 마주친 순간 발끝에서부터 번진 공포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에르빈은 장난감 단검을 손에 쥐고 마물을 향해 겨누었다.
여름의 녹음을 닮은 푸른 빛깔이 장난감 단검을 휩싸며 서서히 번져 나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에르빈이 장난감 단검을 그대로 내던졌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휘이익-!
푸른 검기를 두른 단검이 그대로 마물의 왼편을 살짝 스치며 광장 반대편의 나무에 꽂혔다.
우지끈! 쿵!
나무가 무너졌다. 그 소란에 마물이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모, 모지?’
에르빈은 무너진 나무를 보고 놀랐으나, 마물이 등을 돌린 틈을 타 오딜리아에게 냅다 달려갔다.
‘이러 때가 아냐! 리아 구해야 해!’
에르빈은 겁에 질린 오딜리아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리아! 갠차나?”
“에, 에르으으…….”
“갠차나, 갠차나. 에르가 와써.”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마물은 화가 나서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에르빈은 달달 떠는 오딜리아를 꼬옥 끌어안은 채 마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작 오딜리아를 달래는 에르빈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이때였다.
쇄애액-!
끼에에에엑!
허공을 가르는 검의 소리와 함께 마물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쿵!
순간 작은 정적이 광장 위로 내려앉았다.
“에르! 리아!”
단칼에 마물을 베어 버린 이보네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아이들을 살폈다.
“어, 어모니……!”
“어몬니이, 으아앙……!”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이보네에게 달려가 안겼다.
이보네는 아이들을 두 팔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괜찮아, 어머니가 여기 있잖아.”
“우, 우우으으으흑…….”
“흐어어어어어엉…….”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이보네의 블라우스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마, 마물이 죽었다!”
이때 누군가가 외쳤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저 여자가 마물을 죽였어!”
“자, 잠깐, 저 여자 호수 저택의 마녀잖아?”
“예쁜 외모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잡아먹는다는, 그……?”
사람들은 은발에 녹안, 그리고 요정 같은 그녀의 외양을 보며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보네는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아르벨라 영지의 유명 인사였다.
요정처럼 아름다운 비현실적인 외모로 말이다.
“마녀님이 마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셨어!”
“마녀님! 아르벨라의 마녀님……!”
에르빈과 오딜리아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던 이보네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들이 외치는 ‘마녀님’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 *
알브레히트 황궁의 정무 회의실.
황제가 자리를 비운 곳에는 황제의 보좌관인 아르민 마이어를 비롯하여 각 가문의 대표들이 정례회를 위해 모여 있었다.
테오도르가 막 즉위한 직후 알브레히트의 양대 가문이라 불리는 두 가문, 페르디난트와 레오브란테는 그 힘이 약해졌다.
당시 마르가라테 황후와 가주 루돌프를 동시에 잃은 페르디난트의 젊은 새 가주는 딱히 권력에 관심이 없었고, 레오브란테는 이미 그보다 오래전부터 정계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년 전 마물들이 범람한 이후로 양대 가문의 힘이 다시 커지게 되었다.
세상은 과거 마물로부터 사람들을 수호하였던 두 가문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과거 마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켰던 또 다른 가문, 체르니시아의 복권 문제가 최근 몇 달 사이에 대두되었다.
그 시발점은 레오브란테의 가주 셀린느였다.
[레오브란테는 수년 전 세상에서 지워진 체르니시아의 이름을 다시 역사서에 기록할 것을 요청합니다.]지난달 정례회 때 셀린느는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체르니시아의 복권을 요구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체르니시아의 부활이 필요합니다. 양대 가문이 마물들을 막아 내고는 있으나, 본디 땅의 마물을 물리치는 것은 체르니시아의 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미 체르니시아는 몰락하여 일족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브리안 체르니시아가 살아 있습니다.]셀린느는 몹시 담담한 목소리로 체르니시아의 생존자가 살아 있음을 알렸다.